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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반남박씨족보 원문보기 글쓴이: 박창서[昌緖]
동성동본 결혼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
정희진(한국여성의전화 상담국 차장)
1. 머리말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필자 역시 동성동본 결혼을 했으며 혼인신고도 하고 세 살 짜리 딸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 집은 민주적인 집안이라 딸이 엄마 성(姓)을 따랐다는 농담도 해 가면서 말이다. 필자의 아버지 주장에 의하면 필자는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14대 직손(直孫)으로서 양반 중의 양반이고 영일 정씨(迎日 鄭氏, 이라고 한다.) 중에서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양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영일 정씨는 우리나라에서 김?이?박?최 다음으로 많은 5대 성씨 중의 하나인데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삼척동자도 웃을 얘기지만, 매사에 합리적인 필자의 아버지가 이 같은 얘기를 할 때는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지난 6월 1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동성동본 금혼 위헌 제청 심판을 앞두고 반대 시위에 나선 사람들 중에는 나이 드신 유림(儒林)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필자는 적지 않게 놀랐다.
우리나라 민법 제 809조 제 1항의 “동성동본의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 제 816조 제 1호 “위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는 법원에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라는 동성돈본금혼 규정은 매우 간단한 논리로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과도 같은 억지 법이다. 그런데 그 간단하고도 당연한 논리가 일반인에게 쉽게 설득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동성동본 불혼제도는 전 세계에도 유래가 없는 법이다. 오직 한국에만 있다. 전래국인 중국에서도 폐지된 지 오래다. 중국의 주나라 때부터 생겨 조선 시대 유학자들에 의해 명나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그것이 우리의 풍습인 양 고정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정작 이 법의 창시국인 중국에서는 80여년 전 청나라 말기(1908년)때 폐지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이래 줄기차게 계속되어 온 우리나라의 가족법 개정 운동은 1989년 그 결실을 보았지만 동성동본 금혼 만은 빠지고 말았다. 당시 13대 국회에서 가족법 개정을 주도했던 한 여성 의원은 유림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수천 통의 항의 엽서를 받았는데 그 중에는 “니년은 아들하고도 그 짓을 할 년”이라는 문구도 있었다고 한다. 동성동본 금혼법은 현행여성관련법 중 가장 먼저 폐기되어야 할 의미 없는 법인데도 유림의 표가 무서운 국회의원들은 개정을 포기했다. 우리 사회의 일부 세력이 이토록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왜 일까?
2. 몸 말
1) 동성동본 금혼의 불합리한 근거
동성동본 금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수 백년동안 내려온 전통 관습(미풍양속)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동성동본 혼인은 우생학적인 문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미풍양속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전통과 인습을 구분하는 것은 그것이 보존, 육성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한다. 무조건 오랜 세월을 지켜 온 것이니 전통이고 미풍양속이라면 우리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가야 할 판이다. 과연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을 보존하는데 중요하다는 근거가 있는 것인가?
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미풍양속 계승과 전혀 관계가 없는지 살펴보자.
동성동본 금혼은 유교문화의 산물로 오히려 근친혼이 허용되었던 고대 씨족 사회의 전통을 해치고 혼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이전에는 동성 혼은 물론 근친혼도 혼했으며 신라 시대에는 왕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이 빈번했다. 고려 시대에도 삼촌과 조카간, 사촌간의 혼인만 금했을 뿐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없었다. 유림 등 일부 세력들이 주장하는 미풍양속이라는 것은 사실은 남성 중심의 성씨(姓氏)제도를 고수하고자 하는, 남성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그들만의 미풍양속이다.
현행 가족법에 남아 있는 호주제도와 관련된 것 중 가장 크고도 어려운 과제는 부부 사이에 평등하게 자녀에게 성(姓)을 물려주는 것이다. 성씨란 출생의 계통을 나타내는 표시인데 아버지의 계통만을 표시하는 현재의 남계 중심 성씨제도는 반쪽 계통만을 표시하는 잘못된 제도이다. 남자가 씨를 제공하는 여자는 단지 밭이 되므로 씨가 중요하다는 남계 혈통 사상에 기초를 둔 성씨 제도는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씨 제도 개선은 사회적으로 금기 대상이다. 남자 가장(家長) 중심의 가정 생활과 관혼상제 제도가 보편적인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엄마의 성을 따른다는 것은 혁명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성을 자녀가 따르는 경우는 입부혼(데릴사위)이나 혼인외 자녀(사생아)의 경우에만 허락되며 소위 정상적인 가족에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미 서구와 일본 등 외국의 가족법에서는 아이들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씨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두 성을 합한 성씨를 갖도록 규정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에서는 ‘부부 공동 가장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라 나라 가족법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일본 민법은 1947년에 호주제도를 폐지했고 그 후 가족의 성을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 중에서 자유로이 선택하게 했다.
동성 동본 금혼론자들이 주장하는 우생학적인 문제라는 것도 비과학, 비현실적이다. 만일 진정 우생학적인 우려 때문에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을 반대한다면 어머니의 성씨가 동성동본일 경우에도 불혼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성은 전혀 문제삼지 않고 아버지의 성이 같다는 것만으로 금혼을 주장한다. 이는 이 논리가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의 성씨 제도를 고수하고자 하는 저의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림에서는 동성동본 불혼 조항이 폐지되면 마치 가까운 혈족끼리 혼인이 가능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미 8촌 이내의 혈족 또는 인척이나 그러한 친족 관계가 있었던 경우에는 혼인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전혀 설득력이 없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16촌 이상의 동성동본 결혼은 우생학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유전되고 있는 병을 갖고 있는 공통의 조상이 있다고 가정할 때 4촌 이상의 발병률은 16명 중 1명, 8촌은 1024명 중 1명, 12촌은 4096명중의 1명인데 16촌의 경우는 65536명중의 1명 꼴로 나타나 동성동본 혼이 아닌 일반 집단에서 나타나는 발병률 40000명 중 1명보다 오히려 적다고 한다.
더욱이 문제는 현재 자신의 성씨가 과연 정확한가 하는 것이다. 주저하다시피 우리 나라는 빈번한 외침과 전쟁 등으로 족보와 호적이 대부분 유실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족보는 그 내력의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다. 왕이 성을 하사한 경우도 있으며 고아들의 경우 고아원 원장이나 양부모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김, 이, 박 3대 성씨가 우리나라 인구의 45%를 차지한다는 것도 동성동본을 정상적인 친족 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다. 18세기 말 조선 시대의 극심한 국가 기강의 문란과 부패, 매관매직은 우리나라의 인구 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는데 세금을 내지 않는 양반 계층의 인구가 전 인구의 무려 70%를 차지했다. 이러한 한국의 역사에서 성씨의 순수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2) 억압의 기제
현대 사회의 8촌은 물론이고 4촌끼리도 얼굴을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먼 친척보다는 이웃이 더 가깝다. 이제 동성동본이라는 사실이 통합된 사회집단을 이루는데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즉 내가 무슨 성씨이고 누구의 자손이라는 데서 정체감이나 자부심을 느끼는 현대인은 없다는 말이다. 사회구조와 생활 환경이 바뀐 상태에서 전통적인 관습만을 고집하게 되면 그 관습 자체가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금 일탈 행위를 하게 만든다. 현재 동성동본 금혼 규정이 실제로는 ‘어김으로써 없애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준법성 자체가 설득력을 잃어 가는 사문화(死文化)가 될 처지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성동본 부부가 약 20만 쌍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성동본 중 최대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김해 김씨는 혼인을 허용하고 있는데 너무 인구수가 많기 때문이다. 외형상 동성동본이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부계 혈족이 아닌 경우에는 혈족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 가능하다. 예컨대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와 대갈 수로왕 후손인 김해 김씨, 최문한을 시조로 하는 강릉 최씨와 최입지를 시조로 하는 강릉 최씨 등은 같은 본을 가진 성씨라도 혼인이 가능하다. 즉, 모계는 무시되고 부계는 철저히 구별하는 것이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는 동성동본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면 유효하다고 유권해석을 하였다. 이는 대법원에서도 동성동본 불혼제도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불합리한 법으로 본의 아니게 범법자를 만들어서, 그 법을 피해서 불법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동성동본이라고 해도 혼인신고를 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호적계 공무원이 공식적으로는 혼인신고를 거절하지만 음성적으로 돈을 받고 하거나 사법 서사에게 혼인신고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얼마를 줘야 해주는 것이냐며 묻기까지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법들이 그러하듯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법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빌미로 공무원에게 금품을 수수하게 하는 비공식적이지만 공식적인(?) 부패 관례를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구청이라는 1차 관문을 뚫고 나면 혼인신고가 반려되거나 혼인이 취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선 행정 부처에서도 동성동본간의 결혼에 대해 ‘굳이 적발하여 못 살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암묵적 방침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성동본이라도 일단 아이를 낳고 혼인 신고가 되면 유효한 혼인 관계가 된다. 동성동본 혼인은 혼인 최소 사유에 해당되지만 당사자의 친족이 혼인 취소를 청구하지 않는 한 그들이 법률상 부부로서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그들 사이에 출생한 자녀도 당연히 호적에 등재된다. 동성동본으로 혼인 신고를 못한 부부를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한시법(限時法)을 만들어 구제해주고 있는데 이것은 법이 자체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이별하게 하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가 된다.
유림을 비롯한 동성동본 금혼론자들에게 이 법의 폐지는 ‘불행한 연인’들에게 합법적인 사람을 부여해 주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 중심의 성씨 제도가 붕괴되는 것이며, 종친회가 사라지고 족보가 의미 없게 되며 일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는 호주(戶主)제도로 대변되는 나라의 가족제도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는 남성 호주를 중심으로 그의 배우자와 장자 부부(자녀), 손자 부부(손자녀)로 구성되는 가부장제적 호주 제도를 근간으로 한다. 이 호주 제도의 핵심은 남성의 성씨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호주란 한 집안의 장(長)으로서 가족 구성원의 우두머리이며 가족을 통솔하는 자를 말한다. 우리나라 가족법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이혼 후 일가 창립 등) 하고는 가장으로 인정되는 남자만 호주가 될 수 있다. 여자는 결혼 전에는 호주인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가정에 소속되고 결혼 후에는 남편의 가정에 소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남성 중심의 색안경(세계관)을 벗어 던지고 본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호적제도의 측면에서는 아버지의 호적에서 벗어나 남편의 호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결혼식장의 풍경을 생각해 보라. 아버지에 의해 신랑에게 건네지는 신부...) 아이들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父家)에 입적되는 것이 원칙이다.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만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이 점은 가족구성원 모두 동일한 성씨를 갖는 외국의 제도와는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성씨 제도이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결혼하면 장남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분가하여 새로운 가족을 이룬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족법은 장남 중심 남계 혈족의 가부장제를 기초로 한다.
이는 크게 보면 모든 인간관계를 성별, 연령, 지위 등의 차별 원리에 의해 수직적으로 고정화하여 지배층의 권력 유지를 뒷받침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일제 시대 때 家의 공법상 대표자로서 가장권은 호주권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수직적 인간관계를 기본 모형으로 내면화하여 가족 가치관을 국가의 충성심으로까지 확대 연결하려는 의도였다. 윤리적 규범으로서 도덕적 수준에서 다뤄져야 할 가족의 질서가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실정법의 뒷받침을 받음으로써 철저히 사회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족법이 개정되면서 호주의 권한은 많이 축소되었고 장자도 본인이 원한다면 호주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다. 법은 바뀌어도 관습은 100년을 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법은 잘못된 관습을 변화시키는 최후의 강제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근본적으로는 호주제도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 호주제도는 남녀가 평등한 지위에서 가정에 관한 모든 일을 참여하는 가족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나며 남아 선호를 부채질하여 남녀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제도적, 구조적 불평등이 남아 있는 한 태아 성감별, 여아 낙태의 불행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3) 법제적 상황
현재 동성동본 금혼 조항은 서울 가정법원이 그 피해 당사자들(동성동본 부부8쌍)에 의해 낸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 재판을 제청함으로써 위헌 여부를 심사 중에 있다. 동서동본 금혼은 근본적으로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혼인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제 10조 행복추구권, 11조 평등권, 36조 혼인과 가족 생활의 권리 침해) 이 법이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혼인과 가족 생활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다음의 사례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여성들이 왜 주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도 알 수 있다.
1) 94년 5월 경기도의 한 주부가 11개월 된 아기와 함께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그녀는 동성동본인 남편과 7년동안 행복하게 살았는데 아이가 태어나자 우울증에 빠졌다. 아기가 뭔가 이상하지 않을까, 기형아가 아닌가 하는 과잉 불안 증세였는데 의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강박적인 의심과 환상에 계속 시달리다가 자신의 아이가 기형아라는 착각 속에서 같이 자살한 것이다. 동성동본 혼을 하면 기형아나 장애아를 출산한다는 근거 없는 통념에 ‘세뇌’된 경우이다.
2) 밀양 박씨로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쳤으나 결혼을 앞두고 애인한테 절교를 당하고 상담실의 문을 두드린 28세의 여성이 있었다. 혼전 성관계로 2번이나 낙태를 경험한 그녀에게 파혼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남자의 마음이 변한 것 같은데 그녀는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은 동성동본이라도 결혼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걸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남자 쪽에서 궁색하나마 그것을 핑계로 댄 모양이다. 그녀는 파혼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수용할 마음의 용기를 잃은 채 남자가 이유로 둘러댄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3) 전주 이씨로 동성동본이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5년간 아이 둘을 낳고 살던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의 외도가 시작되었다. 물론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상대 여성으로부터 남편을 양보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한다는 협박을 받고 상담실을 찾았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실제 법정으로 가면 누가 먼저 부인인가 하는 동성동본 혼의 상황이 밝혀지겠지만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 관계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피해 상황을 잘 보여준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물론 당사자 부부들이다. 그러나 특히 여성의 고통과 피해 의식이 큰 것은 법적으로나마 확실하게 해 놓지 않으면 실제로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남녀간의 구조적 불평등이 가정 내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부부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과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우선 자녀들이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아버지 호적에 ‘혼외자’(서자)로 입적시켜야 한다. 물론 아이 어머니의 이름은 어디에도 올릴 수 없다. 남편의 직장에서 제공되는 의료보험 혜택이나 맞벌이 부부 세금 공제 혜택 같은 것도 누릴 수 없다.
혼인한 여성의 법적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못함으로 해서 생기는 비극이다. 아울러 여자 쪽에서는 남편, 아이들, 가정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입증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증거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사태를 대비하여 부부가 각기 따로 재산을 관리하거나 서로를 불신하며 헤어질 것에 대비하며 산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오직 남편의 마음이 변함 없길 바라면서 믿고 매달려야 한다.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남편의 변심과 시댁의 냉대와 괄시 때문에 말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이 무척 많은데 상담소를 찾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다 이런 피해 상황에 있는 경우이다. 이는 모두 동성동본을 핑계로 여성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것이지 동성동본 그 자체가 이유는 아닐 것이다. 동성동본이라는 여성의 불안한 상황을 악용하는 것인데 당사자들은 동성동본 문제만 해결되면 좋아질 것이란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상담자들을 안타깝게 한다. 마치 아들을 못낳으니까 때리고 외도한다는 식의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동성동본 혼을 근친혼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의식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 왜냐하면 어느 사회나 가까운 친족 사이의 혼인은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말이나 영어나 가장 심한 욕은 자신의 어머니랑 성교를 한다는 의미이다. (니 에미 씨팔, fuck your mother...)
앞에서 얘기한대로 동성동본 혼은 근친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동성동본은 까마득한 옛날의 조상이 같을 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군 할아버지가 시조인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근친혼의 대상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맺음말
미풍양속의 붕괴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유림등 보수 세력이 진짜 해야 할 일은 동서동본혼 반대운동이 아니다.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해 더 급하고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 그 중 하나가 근친에 의한 성폭력(근친 강간, 근친 상간이 아니다) 실태를 알고 그 추방을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폭력 신고율은 2%정도로 알려져 있어 실제로는 1년에 약 25만 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 약 35% 내외가 아버지나 오빠, 친인척에 의해 저질러진다. 근친 강간은 대체로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나 오빠, 삼촌 등 가장 가까운 친족에 의한 강간이 이토록 많은데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동성동본끼리의 혼인을 막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군다나 친족에 의한 강간은 외부로 노출되기 힘들며 지속, 반복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피해 아동이 외부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영원한 비밀로 남는 완전 범죄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는 굳이 외면하면서 근거 없는 동성동본 금혼이 미풍양속과 전통 계승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미풍양속으로 은폐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감히 떨치고 남녀평등에 기초를 둔 진정한 미풍양속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동성동본 금혼 폐지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대구 지방 법원에서는 94년도에 동성동본 금혼제도의 폐지를 건의한 바가 있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혼인 금지 범위를 모계는 8촌이내, 부계는 모든 동성동본으로 정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이 규정의 개정 또는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현실에 맞는 바른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30여년 동안의 개정청을 무시한 채 유림의 눈치나 보면서 외면하는 것의 명백한 직무 유기이다.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이 동성동본 금혼법 폐지 운동의 기폭제가 될 것을 기대한다.
출처(원문):http://sosim.jinbo.net/2-default/datas/25호자유기고1-2.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