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8. 나무날. 날씨: 햇살이 따갑다.
아침열기-집짓기 수업-점심-청소-난타(1,2)/풍물(3,4), 고물상 가기(5,6)-다 함께 마침회-교사회의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침 산책 가기 앞서 숲속놀이터에 있는 줄타기 놀이감을 치웠다. 낮은 학년 아이들을 위한 놀이감인데 다른 위치를 찾는게 나을 듯
싶어서다. 미리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해 미안하긴 한데 사정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숲속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양지마을 숲속놀이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참 많이 놀러오는 곳이 됐고, 동네 어르신들도 많이 다녀 가신다. 옆집 할머니는 친구를
데리고 와서 같이 아이들 그네를 타며 "참 좋다 좋다" 를 줄곧 말하기도 하고, 손녀 손자 손을 잡고 숲속 놀이터를 오가며 그네를 타는 양지마을
사람들이 많아졌다. 학교가 들어온 뒤 쓰레기로 가득찬 음습한 숲이 새로운 숲속놀이터로 탈바꿈되어 마을에 새로운 명소가 되어가니, 쓰레기를 치우고
숲속놀이터를 가꾸어 가는 맑은샘 식구들 처지에서는 참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늘 생각하는 거지만 바로 옆 공동주택 분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공동주택 사는 아이들이 많이 놀기도 하지만 동네 아이들과 학교 아이들이 노는 곳이고 보면 시끌벅적할테니 불편할 때가 왜 없겠는가.
학교와 같이 집을 짓는다 할 때부터 마음 먹은 바지만 줄곧 살다보면 부탁하고 싶은 게 자꾸 생길 것 같은데 언제나 웃으며 아이들을 보듬어주시고
챙겨주시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시는지 늘 존경스럽다. 아이들과 사는 선생 처지에서는 늘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양지마을과 둘레 분들을 생각해야할텐데 안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부족한 걸 어찌할꼬. 양지마을 방범대 활동을 시작으로 양지마을 분들이 모두
바라는 바를 찾아 함께 해결하는데 힘을 쏟아야 작은 학교가 사랑받지 않을까. 학교 식구들이 애쓸 게 많은 셈이다.
산책길 텃밭에서 어린 호박을 여섯 개나 땄다. 구석구석 호박 찾느라 신발이 축축하다. 아이들과 호박을 손을 들고 동네 어르신들 집
초인종을 누른다. 양지마을 어른들에게 텃밭 호박을 나눠드리며 인사를 하려는 건데 어제 전해주지 못한 집들을 들렸다. 사과나무집 할머니는 반갑게
받으시고 아이들 준다고 마당에 있는 작은 사과나무에서 작은 사과를 따서 안겨주신다. 탁구공만한 사과가 맛있는 홍옥 사과 맛이 제대로 난다. 여섯
개를 집마다 한 개씩 나눠주고 오니 금세 아침 공부 시간이다.
오전 공부 집짓기는 지붕을 올리는 일인데 예상보다 목재가 부족해 계획대로 다 하지 못했다. 다락을 깔고 지붕을 올려야 해서 아이들이 조수
노릇을 하고 목공 선생과 내가 나사를 주로 박는다. 덕분에 아이들은 조금 여유로운 목공 수업이 됐는데 목재 나르고 조수 노릇하고 할 노릇은
충분히 했다. 지붕이 일부 올라간 작은 나무집이 숲속놀이터와 잘 어울리는데 쭉쭉 자라는 콩과 넝쿨 식물을 심으면 나무와 조화로운 넝쿨나무집이
되겠다. 바닥 마루는 봄에 아이들과 만든 평상을 넣으면 안성맞춤이고, 다락쪽으로 작은 층계를 놓으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숲 속 쉼터가
되겠다. 모레 비가 온다고 해서 내일 목공 선생과 둘이 못올린 지붕을 마무리 짓기로 했으니 마지막 수업때까지는 집짓기 수업 목표를 모두 달성할
것 같다. 움집과 평상을 만들고, 설계를 하고, 모형을 만들어 본 뒤, 나무를 재단하고 나사를 박고 집을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과 나누려고
했던 집살림 교육 꼭지를 잘 갈무리하는 몫이 남는다. 집 짓는 과정이 즐겁고 힘을 합쳐 생산하는 기쁨을 맛보고,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진짜 만들어본 경험은 어린 시절 아주 소중하며 강렬한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내 어린시절에도 산에다 늘 나무집을 얼기설기 나뭇가지로
엮고 비밀장소처럼 썼던 기억이 있다.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지낼 때에 대한 설렘과 기대, 함께 쓰며 놀고 싶은 사람이 있어 좋은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숲속오두막에서 또 어떤 상상을 펼칠까.
낮공부 사물놀이는 쉬고 5, 6학년이 함께 고물상을 간다. 학교 마당쏙 쓰레기를 모두 분류하고 정리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 갔다.
고물상 가져갈 품목들을 쌓아놓은 곳을 잘 꾸미고, 쓰레기 분류 공부를 더 정성들일 필요가 있겠다. 분류함을 만들어는 놓았는데 뒷 처리가 안되어
있어 청소 배정표에 분류와 쓰레기 내놓기까지 같이 가야겠다. 2학기 들어 처음 가는 고물상인데 양이 적어서 2만7천원을 버는데 그쳤다. 빗물을
모을 통을 설치하는 데 들어갈 비용인데 조금 더 고물상 갈 준비를 잘해야겠다. 고물상 다녀오기로 모은 돈으로 올해 초에 설치한 태양광발전기
덕분에 전기세가 많이 줄었으니, 내년에는 빗물을 모아 써서 물을 아껴 쓰는 공부를 하도록 열심히 고물을 모으고, 쓰레기를 분류해야겠다. 고물상
사장님이 건네준 시원한 요쿠르트가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새참으로 들고 간 빵과 음료수를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갈현동 논에서 먹으니
든든하다. 내일 벼를 베는데 땅 상태가 어떤지, 벼가 잘 익었는지 보려고 온 건데 내일 베도 충분하겠다. 밤나무에 햇볕이 가린 쪽은 아직
시퍼런데 햇볕이 잘 드는 쪽은 누렇게 잘 익었다. 다 벨 게 아니고 삼분의 일 정도 베서 탈곡기로 털고 나머지는 벼 손실을 막기
위해 기계로 베고 털 계획이니 걱정 없겠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던 것 처럼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중력과 무게 때문인데
사람 인생으로 보면 끄집어 낼 마음가짐이 많다. 자연, 식물은 늘 우리에게 겸손과 다양성을 가르치는데 우리는 그리 살지를 못하니 늘 깨달을
수밖에. 아이들과 줄곧 밖에서 산 날이라 자연속학교 연습 제대로 한다.
다 함께 마침회에서 벼베기와 자연속학교 준비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낮은 학년, 높은 학년 따로 사는 자연속학교라 짐도 따로 챙겨야 하니
선생들도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손호준 선생과 탈곡기를 빌려오고 내일 벼베기에 쓸 천막이나 물품을 모두 차에 싣고 물건들을 사서 학교에 들어오니
자연속학교 부엌 살림 꾸리느라 다들 바쁘다. 짐을 쌀 때면 늘 그렇듯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싶다. 악양 벌판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