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곡 '바위고개' 이야기
바우와 순이는 소꿉놀이 친구로, 순이는 건너마을 공장에 다녔는데, 순이가 공장에서 산길로 돌아올 때면, 바우는 나무를 다하고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서 둘은 나란히 바위고개를 넘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우는 머슴살이하러 고향을 떠났고, 순이는 혼자 남아 계속 공장에 다녔는데, 혼자 돌아오는 고갯길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1절)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위에 숨어서 기다리는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2절)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은/우리 님이 즐겨즐겨 꺽어 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바우는 머슴살이 10년간 정말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모아 순이를 만나러 고향에 돌아왔는데, 순이가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위에 걸터앉아 진달래꽃을 안고서 하염없이 울고 울었답니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집니다"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이흥렬(1909~1980)"이, 작곡한 노래가사로,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양음악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귀국 후인 1932년에 이 곡을 만들었는데, "10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라는 가사로, 일제치하의 민족의 울분을 이 노래에 담았기에, 이 곡은 일종의 애국가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만들었으나, 그가 과거에 친일행적이 있다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갔는데,
이러한 예술의 영역까지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친일판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일본월간지 "문예춘추"를 매달 빠지지 않고 봤었는데, 항상 하는 말이, "일본을 이길려면,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일본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극일극일 하면서,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하는 말, "일본사람들 정직하고 부지런한 것은 꼭 배워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저는 일제 강점기 때의 한국가곡 중, 이 "바우고개"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서글픈 가사와 서글픈 멜로디가, 그때의 우리나라의 입장과 너무 같았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워낙 유명한 노래인지라, 수많은 성악가들이 이 노래를 불렀으나, 저는 중앙대음대 성악교수였던 "메조소프라노 정영자 (1946~ )"가, 이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흥렬 작곡인데,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양음악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귀국 후인 1932년에 이 곡을 만들었는데, "10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라는 가사로, 일제치하의 민족의 울분을 이 노래에 담았기에, 이 곡은 일종의 애국가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만들었으나, 그가 과거에 친일행적이 있다하여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갔는데, 이러한 예술의 영역까지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친일판단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일본월간지 "문예춘추"를 매달 빠지지 않고 봤었는데, 항상 하는 말이, "일본을 이길려면, 일본말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일본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극일극일 하면서, 말로만 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하시는 말, "일본사람들 정직하고 부지런한 것은 꼭 배워야 한다" 라고.
- 칼럼니스트 문효주
(음표) 바ㆍ위ㆍ고ㆍ개
이흥렬 작곡/
메조 소프라노 정영자
https://youtu.be/2PjAgE0T2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