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2 코제트
밤의 싸움
1815년 6월 18일 밤은 만월이었다. 대포의 마지막 한 방이 울린 후 워털루의 싸움터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을 미화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전쟁의 진실을 말할 따름이다. 전쟁에는 가공할 아름다움이 있고 또 몇 가지 추한 면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추한 것의 하나는, 스일 뒤에 전사자가 발가벗겨지는 일이다. 싸움이 끝난 이튿날의 아침 해는 반드시 벌거벗은 시체 위에 떠오르는 것이다. 달빛은 이 평원 위에서 살벌했다.
한밤중에 어떤 사내가 오앵의 협곡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아마도 낮보다는 밤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짐은 갖고 있지 않았으나 외투 밑에는 큰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그는 가끔 동작을 멈추고는 누가 보는 사람이라도 없나 하고 평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몸을 낮추어 지면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들추어 보고는 재빨리 일어나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 태도, 신속하고도 불가사의한 행동을 보면 마치 페허에서 출몰한다는 고대 노르망디의 전설에 나오는 알뢰르라는 유령과도 같았다. 어떤 종류의 밤새는 늪지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갑자기 그 사내가 멈춰 섰다. 그의 몇 걸음 앞 후미진 곳에 펼쳐진 손 하나가 달빛에 드러나 보였다. 그 손에는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었다. 금반지였다. 사내는 몸을 구부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가 일어섰을 때에는 그 시체의 손에서 반지가 벗겨져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일어선 것이 아니었다. 짐승처럼 엎드려 엉거주춤하게 궁둥이를 쳐들고 있었다. 시체가 쌓인 쪽에도 등을 돌리고 무릎을 꿇은 채 지평선을 살펴보면서 땅을 짚은 두 손으로 상반신을 지탱하고 후미진 곳에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늑대의 네 발도 어떤 종류의 행동에는 적합했다.
그런 다음 그는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이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누가 목덜미를 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보았다. 퍼져 있던 손이 오므라지면서 그의 외투 자락을 붙잡았던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서웟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내는 웃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뭐야 이건. 단순한 송장이 아닌가. 헌병보다는 유령이 낫지.”
그 사이에 손에 힘이 빠지면서 그를 놓았다. 무덤 속에서는 인간의 노력도 이내 허무해지는 것이다. 배회하던 사내가 말했다.
“그렇지! 이 송장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 한번 살펴보자.”
그자는 또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시체 더미를 헤치고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했다. 잠시 뒤 후미진 어둠 속에서 목숨이 끊어진, 아니 기절해 있는 한 사나이를 끄집어냈다. 그는 철갑 기병 장교, 적어도 상당한 계급을 지닌 장교였다. 철갑 속에서 커다란 금빛 견장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장교는 군모를 쓰고 있지 않았다. 얼굴은 무참하게도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손발에는 부상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요행이라는 말이 적용된다면 그는 요행히도 전사자들이 그의 위에 둥그렇게 쌓여 있어서 눌려 죽지 않고 있었다. 눈은 잠겨 있었다. 그의 철갑에는 레종도뇌르 은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사내는 그 훈장을 떼어 외투 밑에 달린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 그자는 장교의 안주머니를 뒤져 시계도 꺼냈다. 다시 조끼를 더듬어 지갑을 꺼내 시계와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그 자가 이 죽어 가던 장교에 대한 구조를 여기까지 했을 때 장교가 눈을 떴다. 장교가 겨우 말했다.
“고맙소.”
자신을 다루고 있던 사내의 난폭한 동작, 밤의 냉기,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된 공기가 그를 반죽음 상태에서 구한 것이다.
사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들에서 발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순찰병이 오는 모양이었다. 장교가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단발마의 고통이 어려 있었다.
“어느 편이 이겼소?”
“영국군.”
사내가 대답했다. 장교는 계속해서 말했다.
“주머니를 뒤져 보시오. 지갑과 시계가 있을 거요. 그것을 드리겠소.”
그것은 이미 사내가 가졌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장교의 말을 따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군요.”
장교가 말했다.
“도둑맞았군, 유감이오. 당신에게 주려 했는데.”
순찰병의 발소리가 점점 분명해졌다. 배회하던 사내는 도망가려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누가 오는군요.”
장교는 고통스러운 듯한 팔을 들어 그자를 붙잡았다.
“당신은 내 목숨을 구해 주었소. 누구시오?”
사내는 나직한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나도 당신처럼 프랑스군이었소. 이제 가야 하겠소. 붙들리면 총살이니까. 내가 당신 목숨을 구했으니 이제부터는 혼자 행동하시오.”
“당신 계급은?”
“하사관”
“이름은?”
“테나르디에.”
장교가 말했다.
“그 이름을 잊지 않겠소. 내 이름도 기억해 두시오. 퐁메르시라 하오.”
장 발장은 다시 체포되어 있었다. 당시의 신문에 났던 두 기사는 사건의 대강만을 말하고 있다. 그 무렵에는 아직도 <법정일보>라는 것이 없었다. 첫째는 <드라포블랑>의 기사로서 1823년 7월 25일자의 것이다.
최근 파드칼레 군에서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마들렌이라 칭하는 타관 사람이 몇 년 전부터 그 고장의 전통적 산업인 흑옥과 검은 유리 가공산업을 새로운 방법으로 부흥시키고 있었다. 그는 이것으로 자기 재산을 만들고 그 고장의 경제 발전에도 공헌했다. 그의 공헌에 감사하여 주민들은 그를 시장으로 추대했다. 경찰은 이 마들렌이 1796년에 절도죄로 처벌받은 장 발장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장 발장은 다시 수감되었다.
그는 체포되기 전에 예금했던 50만 프랑 이상의 금액을 라피트 은행에서 인출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다만 이 돈은 상업으로 정당하게 번 것이라 한다. 장 발장이 툴롱 교도소에 다시 수감된 이후, 그 돈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다.
이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두 번째 기사는 같은 날짜의 <파리 신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장 발장이라는 석방된 전과자가 최근 르바르의 중죄 재판소에 출두했는데, 그동안 사정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중죄인은 경찰의 경계망을 벗어나는 데 성공하여 이름을 바꾸고 북부의 한 소도시에서 시장이 되기까지 했다. 또한 그 도시에서 중요한 상업을 진흥시키기도 했으나 당국의 꾸준한 노력으로 끝내 가면이 벗겨져 체포당했다. 그는 한 매춘부를 정부로 두었으나 그녀는 그가 체포되자 충격으로 사망했다.
이 악한은 거인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탈옥에 성공했으나 탈옥한 후 3-4일 후 경찰이 파리에서 체포했다. 이때 그는 파리에서 몽페르메유 마을로 가는 작은 마차를 타려 하고 있었다. 그는 탈옥 중인 며칠 동안에 어느 큰 은행에 맡겼던 거금을 인출했다고 한다. 그 금액은 60만-70만 프랑에 이른다고 한다. 기소장에 따르면 그가 이 돈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춘 듯,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장발장이라는 자는 약 8년 전 한길에서 범한 강도 행위의 피고로서 르바르의 한 중죄 재판소에 회부되었다. 피해자는 저 페르네의 장로가 그 불멸의 시 가운데서 노래한 ‘해마다 사부아에서 찾아와 검댕으로 막힌 긴 굴뚝을 그 손으로 가벼이 씻네’라고 한 그런 어린이들 중의 하나였다.
이 악한은 변호를 거부했다. 당국의 능란하고도 집요한 추궁에 따라 이 강도행위에는 공범이 있었다는 것, 또 장 발장이 남부에 있는 강도단의 하나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장 발장은 유죄가 선언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범인은 상고를 거부했다. 관대하신 국왕께서는 황송하게도 감형하셨다. 장 발장은 즉시 툴롱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1823년 11월 1일자 <툴롱신문>의 한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 오리옹 호 함상에서 취역 중이던 한 죄수가 수병을 구출한 직후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공창의 교각 밑에 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나이의 죄수 번호는 제9430호, 이름은 장 발장이다.
그러나 장 발장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바다에 빠질 때, 아니 바다로 뛰어들었을 때 쇠사슬에서 풀려 있었다. 그는 바닷속을 헤엄쳐 브렝 가까이의 해안에 다다랐다. 이로부터 장 발장은 법의 추적과 사회의 제재를 벗어나려 하는 모든 도망자들처럼 파란만장한 인생행로를 더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