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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차 구례 화엄사 남원 실상사를 다녀와서 2018. 8.12.
53선지식 및 명찰순례단 8월 둘째 일요일 73주년 광복절을 몇일 앞두고 화엄사와 실상사를 가다.
그 동안 폭염(暴炎) 한발, 초열대야 날씨는 사막지방의 열풍을 연상하며 8월 7일 입추(立秋)를 기점으로 밤에는 서서히 폭염이 수구려 들어가고 있는데 더위를 이겨 내신 법우님들의 건강하신 모습으로 만나 뵙게 되어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7시에 43명은 대구를 출발(出發)하였다.
구례 화엄사(求禮 華嚴寺)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로 통일신라시대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던 선종(禪宗)대본산(大本山) 가람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 및 중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중관대사(中觀大師)해안(海眼, 1567~?)이 1636년(인조 14년)에 쓴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등의 모든 사적기들은 “544년(신라 진흥왕 5, 백제 성왕 22) 인도의 승려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웠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백제 법왕이 3,000명의 승려를 주석하게 하였다”고 부연하고 있으며 화엄사의 중건에 대해서“신라 선덕왕 때에 자장(慈藏)율사님이 증축하고, 문무왕 때에 의상(義湘)대사님이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에는 백제 땅에 속하였던 화엄사를 자장이 중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 797년(원성왕 13)에 번역된 『정원본사십화엄(貞元本四十華嚴)』이 의상에 의하여 석각(石刻)되어 장륙전의 사방 벽에 장식될 수 없다고 하는 점 등으로 보아 현존 화엄사의 석조물이 모두 8세기 후반부터 9세기에 걸쳐 조성(組成)되었다고 하여, 창건과 중건에 대한 의문(疑問)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1978년 이 의문은 신라 경덕왕대의『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이 발견(發見)됨으로써 완전(完全)히 풀렸다 한다.
사경(寫經)에 의하여 연기대사는 황룡사(皇龍寺)의 승려로서 754년(경덕왕13) 8월부터 화엄경(華嚴經)사경을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完成)시켰던 실존 인물임이 밝혀져 창건 연대가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 신라 제24대 王)때가 아닌 경덕왕(재위 742~765: 신라 제35대 왕)때이고, 아울러 자장율사 및 의상대사님의 중수 또한 사실이 아님이 입증(立證)되어 8세기보다 앞선 어느 시기부터 이 터에 가람(伽藍)이 있었으며, 연기조사 대(代)에 이르러 대가람(大伽藍)으로 확장(擴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 말 도선(道詵)국사에 의하여 크게 확장, 고려 광종 때에 홍경선사(洪慶禪師)가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였고, 문종이 전라도 및 경상도에서 이 사찰에 매년 곡물(穀物)을 헌납(獻納)하는 것을 허락(許諾)함으로 이를 저장(貯藏)하기 위한 2채의 큰 창고(倉庫)를 일주문 밖에 짓기도 하였다 한다.
또한, 인종은 정인왕사(定仁王師)로 하여금 이 절을 중수, 1172년(명종 2) 도선국사의 비(碑)를 세우도록 하였으며, 충숙왕 때에는 조형왕사(祖衡王師)가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고 조선시대의 화엄사는 1424년(세종 6)에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 후, 임진왜란의 병화(兵禍)로 완전히 불타버려, 석경(石經)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며, 이에 각성(覺性)은 1630년(인조 8)에 중건을 시작하여 7년만인 1636년에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을 이룩하였으며, 1649년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승격(昇格)되었다 하였다.
1702년(숙종 28)에는 각성(覺性)의 뜻을 이어받은 성능(性能)이 장륙전을 중건하였고, 숙종은 이를 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賜額)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격을 높였으며 이후에도 부분적 보수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대규모의 중수는 없었다 한다.
1798년(정조 22)과 1827년(순조 27)에 각각 적조당과 보제루(普濟樓)를 중수했고 1977년 각황전(覺皇殿) 해체보수를 완료, 1984년부터 만월당과 일주문을 세웠으며 1989년 청풍당을 짓고, 연기암을 복원했다고 전한다.
화엄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던 화엄사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승(高僧)대덕이 머물면서 창사의 이념인 화엄사상의 구현이 이루어져 왔으며 창건주인 연기조사를 비롯하여 여러 화엄학승(華嚴學僧)이 머물렀다.
고려시대에는 의천(義天)대사님이 사찰에 들러 연기조사의 영정(影幀)에 예(禮)를 표하고 그를 찬탄(讚歎)하는 시(詩)를 남겼으며, 의천의 문도인 정인왕사는 이곳에서 도량을 베풀었다 한다.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많은 고승(高僧)대덕이 배출되었으며, 선수(善修)가 『화엄경(華嚴經)』을 강의(講義) 종풍(宗風)을 크게 날렸고, 그 뒤를 이어 여러 고승대덕님이 화엄(華嚴)사상(思想)을 펼쳤으며 임진왜란 당시 주지로 절을 수호한 고승(高僧)대덕은 사찰을 위하여 크게 기여(寄與)하였다 한다.
당우(堂宇)와 문화재(文化財)로 현존 건물은 각성이 중건한 17세기 이후의 것으로‘智異山華嚴寺’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면, 좌우에 금강역사(金剛力士)와 문수(文殊)·보현(普賢)의 동자상(童子像)을 안치한 금강문(金剛門)이 있고, 그 바로 뒤에는 제3문인 천왕문(天王門)은 전면 3칸의 맞배집에 목각 사천왕상(木刻四天王像)을 안치(安置)하였다.
강당(講堂)으로 사용되는 정면 7칸의 보제루(普濟樓)가 종루(鐘樓)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화엄사의 중요한 당우들이 있다.
동서 쌍탑(雙塔)의 정면에는 대웅전(大雄殿), 그 서쪽에는 각황전(覺皇殿)이 있으며 중수 공사 중이었고, 이 밖에 영산전(靈山殿)·나한전(羅漢殿)·원통전(圓通殿)·명부전(冥府殿)과 노전(爐殿)으로 사용되는 삼전(三殿) 및 요사(寮舍)인 원융료(元戎寮)·청풍당(淸風堂)·만월전(滿月殿)등을 거닐며적광 강지호님의 사찰 해설로 경내(境內)를 둘러 보다 각황전에서 법회를 시작 사회 부단장, 집전 범공, 경담, 발원문에는 52학번 안연화 최영옥 법우님이 수고 하셨다.
보물 제299호인 구례 화엄사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조선 중기에 조성된 삼존불(三尊佛:법,보,화신불)이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1757년에 제작된 보물 제1363호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華嚴寺 大雄殿 三身佛幀)과 국보 제67호인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으로 그 건축수법이 뛰어나는데 외부 중수공사중 이었다.
각황전 내부에는 3존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다보불 불상과 4보살상(관세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적보살)이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보제루(普濟樓)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황전 앞 석등(石燈)과 사사자 삼층석탑(四獅子 三層石塔)·노주(露柱)·동서오층석탑(東西五層石塔)·석경 등의 중요한 유물이 전해 오고 있다.
국보 제12호인 각황전 앞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높이 6.36m나 되는 거대한 석등은 8각의 하대석(下臺石)이 병(甁)모양의 간석(竿石)을 받치고 중간에 띠를 둘러 꽃무늬를 연이어 새긴 것으로 현존하는 국내 석등 중에서 가장 큰 것이며 통일신라시대의 조각미를 간직한 대표적 작품이다.
각황전(覺皇殿) 서남쪽의 높은 대상(臺上)에는 국보 제35호인 구례 화엄사 四獅子 삼층석탑과 석등(石燈)이 있는데 공사 중 칸막이로 가보지는 못했는데 이 석탑의 사방에는 머리로 석탑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사자와, 그 중앙에 합장을 한 채 머리로 탑을 받치고 서 있는 승상(僧像)이 있다.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전(傳)하며, 석탑 바로 앞 석등의 아래쪽에도 꿇어앉은 한 승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불탑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어머니에게 효성(孝誠)이 지극한 연기조사가 석등을 머리에 이고 차(茶)공양(供養)을 올리는 모습이라고 하며 이 석탑은 창건주 연기조사님의 효성을 나타낸 것이기에 효대(孝臺)라고 불리고 있다 하였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그 능숙한 기법과 균형 있는 조형미로도 주목되지만, 그 특이한 형태는 더욱 눈길을 끌고 원통전(圓通展) 앞에는 네 마리의 사자가 이마로 방형(方形)의 석단(石壇)을 받치고 있는데, 이를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앞의 계단 아래에는 양식을 달리하는 동서 양탑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인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에 비하여 아무런 조각과 장식이 없고, 단층기단(單層基壇)으로 되어 있다.
서탑은 1995년에 해체하여 보수되었는데, 이때 진신사리와 더불어 4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가운데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필사본 다라니경과 불상을 찍어내는 청동불상주조틀 등이 있다.
장륙전의 사방벽은 화엄석경(華嚴石經)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하며 보물 제1040호인 이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은 의상이 조성한 것이라는 전승이 있지만, 화엄사가 세워진 경덕왕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見解)이다.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은 1653년(효종 4)에 조성된 것으로 1997년 국보 제301호로 지정. 이 밖에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인 구층암석등과 교지(敎旨), 인조 하사(下賜) 어석(御席)1건, 가사(袈裟)1령, 어작(御爵)1대와 선조 어필각본(御筆刻本) 1권, 선조 하사 서산대사발우(西山大師鉢盂)1좌, 서산대사 향합(香盒)1건, 각황전중건상량문(覺皇殿重建上樑文)1매, 각황전삼여래사보살복장기(覺皇殿三如來四菩薩腹藏記)1축, 고종(古鐘), 인조 14년간『화엄사사적(華嚴寺事蹟)』1책 등이 있다.
남원(南原)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선문구산중 최초 사찰로 영기(靈氣)어린 천황봉(天皇峯) 서쪽 평지에 지어진 사찰로 조선 세조때 화재로 인하여 200여년 동안 폐사(廢寺)이었으며 숙종 때 침허대사님께서 30여동 대가람을 크게 중창(重創)하셨다.
보광전(普光殿)안에 범종은 조선 18대 현종때 주조(鑄造) 종목을 치는 자리에 일본(日本)지도 모양 무늬가 있는데 이 종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아 일제 때 순사가 주지(主旨)를 문초(問招)하는 일이 있었다 하며, 법우님들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였다.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는 우리나라 땅의 정기(正氣)가 지리산 청황봉을 거쳐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막기 위해 실상사에 4천근(四千斤)이나 되는 철재(鐵材) 약사여래불(보물 제41호)를 봉안(奉安)했으며 삼층 쌍석탑과 화재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은 장륙전에 5층 목탑(木塔)을 세워서 지맥(地脈)을 눌러 놓았다고 전(傳)한다.
실상사 최고의 명당 극락전(極樂殿) 등 경내를 두루 참배 후 사찰 앞 연못에 연꽃을 감상하며 오후의 무더위에 15시경 실상사를 나왔다.
남원(南原)하면 가장 유명한 장소로 손꼽으며, 옛부터 천부지지(天府之地)요 옥야백리(沃野百里)라 이는 하늘이 정해준 땅이요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산자수명(山紫水明) 고을 광한루(廣寒樓) 문화탐방은 무더위로 관람은 취소 하기로 하였다.
회향(廻向) 법회를 마치고 행운권 추첨에 들어 갔는데 범공국장의 15년동안 관봉 약사여래님께 올린 기도와 원력이 담긴 약사여래 부처님을 누가 모셔 가느냐? 이 번 순례에서는 56학번 경담 김영호 기획국장이 당첨 모셔가는 행운을 득(得)하여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기를 기원(祈願)드리며 거창 휴게소에서 산악회 회장 다선정 박순선님이 보시 한 수박 2덩이를 나누어 먹고 승차 또 약사여래 행운의 당첨 경담국장이 부라보콘 보시로 먹으며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눔며 17시30분경 대구에 일찍 도착 했다.
존경하옵는 법우님! 우리들 인생에 가장 크신 스승 사생의 자부 부처님을 만나 가장 큰 공부 불법을 배워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수행정진으로 대원 능성취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현대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혁명이랄까 수많은 변화를 가져 왔는데 우리는 백세 인생시대를 살아가면서 지난 얼마간 가마솥 무더위와 가뭄속에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 최고인데 어느 분의 글귀에서 아족불행(我足不行) 아수불식(我手不食) 아이불청(我耳不聽) 아목불시(我目不視) 내 발로 걸어 움직이지 못하고, 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지 못하고, 내 귀로 듣지 못하고, 내 눈으로 보지 못할 때 백세인생을 살아 본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건강(健康)할 때 건강을 잘 챙겨 노년(老年)을 유복(有福)하게 보낼 수 있게 준비(準備)를 해야 겠습니다.
무더위에도 본 단 명찰순례에 동참하시어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법우님과 원만한 순례를 위해 수고하신 감사님을 비롯 인솔에 무량행 부단장, 집전과 일정소개에 범공 총무국장, 초연성 재무국장, 안전담당에 경담 기획국장, 회원소개에 심향 홍보국장님 사찰해설에 적광 강지호 법우님에게 다시 한 번 더 깊은 감사의 인사 올리며, 5차 해외성지순례 중국 귀주성 황과수폭포, 만봉림,호수, 마령하대협곡, 수렴동 등 해외사찰순례는 이 달말까지 신청을 받으니 많은 동참 권유 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단장 우담 이경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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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후기 글 감사합니다.
단장님 후기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