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에서 밤기차를 타고 옛날 카스티야의 수도인 부르고스를 구경하다!

10월 19일 성 야고보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축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를 보고는 빌바오 로 가는 도중에 부르고스 를 보기로 합니다.
그러자면 22시 30분 경에 마드리드 가는 밤 기차 를 타야 하므로... 역사내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들며 레알 마드리드 와 밀란 과의 축구경기 를 보며 시간을 죽입니다.

10월 19일 밤 22시 33분에 출발한 마드리드행 는 침대 기차 는 마드리드 에서 리스본
올 때 탔던 밤기차 처럼 남녀가 별도 차량 에 분리되어 타는지라.....
차장 이 입구에서 스페인어로 뭐라 말한 것 같은데, 실제 들어가는 칸이 티켓에 적혀
있는 차량과는 체계가 다른지라 우리 부부는 자기 차량을 찾지 못해 곤욕을 치릅니다?

남자끼리만 들어간 4인용 이층 침대 바곤 에는 옷장 비슷한 곳을 여니 수건과 물이며
휴지등이 비치되어 있는데 침대기차니 내릴 때가 되면 차장이 와서 깨어주지 싶다만.....
그 밤중에 또 마눌이 탄 바곤을 찾아야 하니..... 마음이 급하기로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가 새벽 4시 넘어 눈이 떠 집니다?

그런데 도중에 화장실 간다고 나갔던 위층 침대의 서양 녀석 이 들어오면서 문고리만
잠근게 아니라 쇠사슬 까지도 걸어 버렸는 데.....
아무리 열려고 해도 그 홈통이 약간 구부러진 탓인지 빠지지를 않아 20여분이 넘도록
애를 태웁니다?

이제 기차가 도착할 시각은 5분도 남지 않았는 데 쇠사슬이 벗겨지지 않아 문이 열리지
를 않으니 조바심 이 극에 달하는 데 폐쇄 공포증 까지 느껴져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어찌어찌 더듬어 불을 켜고는 다시 젖먹던 힘 까지 써서 손가락에 상처 를 입어가며....
간신히 고리를 벗겨내고 밖으로 나가니 울 마눌이 나를 찾지못해 안달이 났던 모양이네요?

10월 20일 04시 52분 Medina del Campo 역에 내리니 사위는 쥐죽은 듯이 고요 한데
역에는 차장 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를 않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 부부 외에는 서양 노인 한명 이 전부인 데..... 다행히도
기차 역사의 문은 열려 있으니 대합실 로 들어 갑니다.

부르고스 가는 기차는 아무도 없는 이 추운 역사에서 두시간 반 은 기다려야 하기에
화장실에서 물 을 받아 휴대한 전기남비로 라면 을 끓이고 커피 를 탑니다.
서양 노인 에게 다가가 커피를 건네주니 반갑게 받아 마시리라던 기대 와는 달리 사양
하는데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네요? 우리를 약물중독을 사용하는 소매치기 로 보았나?

머나먼 이국땅 에서 깜깜한 새벽 시간을 죽이자니 좀 처량한 생각도 드는 데.... 어차피
인생이란게 “공수래공수거”이니 어찌보면 이런게 인생의 본모습이 아니겠는지요?
이윽고 사위가 희부염해 오면서 새벽 6시 가 넘으니 승객들도 하나둘 나타나고 역무원이
출근해서는 문을 여는 모습을 봅니다.

아마도 6시 반 에 들어오는 레온 가는 기차 승객들인 모양인 데, 레온왕국 의 수도였던
레온의 대성당 도 부르고스 못지 않다지만 다녀올 시간이 없는지라 그냥 바라만 봅니다.
드디어 부르고스 가는 기차는 들어오고 07 시 21분 Talgo 기차 ( 좌석예약 6.75 유로 )
를 타고 달리니..... 사위가 점차 밝아오는게 이제 해가 뜨는 모양이네요?

08시 56분 부르고스 Burgos Rosa de Lima 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오니..... 이런!
세상에나??? 여긴 허허벌판 인데 건물이라고는.....
단 한 채도 보이지를 않네요? 유럽에는 영국과 노르웨이등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시내와는 4km 떨어져 있는데다가 버스 는 커녕 택시 도 한 대 보이지를 않아 난감
한데.... 역무원 에게 물으니 태평스러운 목소리로 그냥 기다리면 차가 온다나요?

이윽고 도착한 택시 를 타고 부르고스 시내 로 들어가니 10여분만에 성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 로 접어드는데 거리며 집들을 보니 과거와 현재가 공존 하고 있음을 봅니다?

남쪽 버스정류소 에서 내렸으면 아를란손 강 을 건너 성문인 산타마리아 문 Arco de
Santa Maria 을지나 산페르난도 광장 Pl. del San Fernando 에 도착 하겠지만....

우리는 동북쪽에 있는 기차역에 내렸으므로 알론소 마르티네스 광장 Pl. de Alonso
Martinez 을 거쳐 바로 대성당 카테뜨랄 앞에서 택시에서 내립니다.

대성당 은 9시 반 부터 문을 연다기에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산페르난도 광장
을 지나 거꾸로 나가서는 14세기에 건축했다는 산타마리아 문 을 올려다 봅니다.

한때 카스티야왕국의 수도 였던 도시의 성문 답게 웅장하며 예술적 가치가 돋보이는데...
마리아며 천사상 외에 카를로스 1세 와 엘시드 등 6명의 영웅 동상 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페니카아인 들의 국가 카르타고 에 이어 로마 가 다스리던 스페인 땅에 5세기에
게르만 민족의 침략으로 반달족 을 거쳐 프랑스땅을 프랑크족에 빼앗기고
스페인땅으로 물러난 게르만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가 서고트 왕국 을 세웁니다.

711년 들어 이슬람 아랍인 들이 아프리카에서 바다 를 건너와 게르만족의 서고트왕국
을 멸망시키고 스페인 땅을 지배할 무렵에.....
여기 북쪽 지방에는 아스투리아스, 나바라, 아라곤 등 기독교 왕국 이 일어납니다.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전성기 에는 고개를 숙이다가 914년에 아스투리아스 의 왕자인
가르시아 1세 가 수도를 오비에도에서 레온 으로 옮기면서 탄생한 레온 왕국 아래에서
961년 부터 국경지대의 변경백 으로 신하인 페르난도 곤살레스 가 세력을 키웁니다!

1035년 페르난도 1세는 레온 왕국을 합병해 레온과 카스티야 통합왕 이 되었는데 1065년
에 죽으니 장남 가르시아 산초 2세 는 카스티야 왕국 을 상속받아 레온 왕국
에서 분리되었으며....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인 부르고스는 크게 발전 하게 됩니다.

이후 한 때 나바라 왕국의 지배 를 받았던 카스티야는 왕자들의 분할 상속 으로
떨어져 나오면서 제2의 발전을 시작해 알폰소 6세 는 1085년에 300년간
이슬람 왕조가 통치해 오던 톨레도 를 탈환하고는 수도를 톨레도 로 옮깁니다!

이에 놀란 분열되었던 이슬람 영주들 은 아프리카의 알모라비드 왕조 에 도움을 청하니
베르베르인 들이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 스페인에 상륙하여.....
사그라하스 전투에서 승리 하니 카스티야는 타호강 이북 톨레도로 후퇴 하게 됩니다.

그후 1143년에는 카스티야에서 포르투갈이 독립해 나가고 이슬람에서도 알모하드
왕조 가 새로 일어나는데.....
1157년 전투에서 카스티야 왕국 알폰소 7세가 전사 하니 왕국에서 레온이 분리 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로마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가 단결을 호소하니 카스티야, 레온,
포르투갈, 아라곤, 나바라....
그리고 템플 기사단 및 프랑스 기사들 이 기독교 연합 십자군 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에 이슬람 알모하드 왕조 도 칼리프 무함마드 알 나시르가 10만대군 을 이끌고 북상해
1212년 7월 라스 나바스 전투 에서 격돌하는데.... 기독교 연합군의 승리 로 끝납니다.

이에 패배한 이슬람 세력들은 분열 하고 그라나다에 나스르 왕조 가 들어서는데....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 는 1230년에 레온 왕국을 병합하고 남진 을 시작하게 됩니다.

1236년에 이슬람의 수도인 코르도바를 공략 하고 이어 1248년에는 세비야 까지 함락하여
국토 회복 운동 레콩키스타 를 거의 이루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후 알폰소 10세가 수도를 톨레도 로 옮기고 1561년 다시 마드리드로 천도 하니 여기
부르고스는 천천히 쇠락해 갔던 것입니다!
이 도시 부르고스 는 1492년 그라나다 함락 까지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수도 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로 가는 순례길 이었으며....

1221년에 페르난도 3세 가 착공하여 40년만에 완공된 산타마리아 대성당 은 세비야
( 혹은 레온 ), 톨레도 와 더불어 스페인 3대 카테뜨랄 이라고 합니다.

카테드랄 Catedral 은 13세기에 프랑스 부르주 대성당에 영향을 받은 엔리케 가
건축한 외관은 일견......
간소해 보이지만 15세기에 고딕 양식이 추가되면서 내부는 화려하기 그지 없습니다.

종루 와 코로네리아 문의 조각 이 볼만한데, 내부에는 성서의 장면을 묘사한 조각 과
걸작 미술품 을 소장하고 있으며....

성당 준공 당시에 예수상이 미완성 되었기에 급한대로 그랬다지만..... 치마 입은
예수상 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제단 후면에 주랑을 따라 여러개의 미술관 이 있고 콘데스 타블레 예배당 천장의
채광창 이 무척 아름다우며....

또 성물실 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상 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이라고 전해집니다.

또 부르고스는 레콘키스타의 영웅 이자 서사시 에 등장하는 엘시드 의 탄생지로 그는
대성당에 매장 되었으니 미사를 드리는 30여명 노인들을 지나 그 무덤 을 찾아 봅니다.
엘시드 캄페아 도르 는 별명이니..... 엘시드 는 아랍어로 “군주(주인)”를 뜻하며
캄페아도르는“전사( 戰士 승리자)”를 뜻한다고 합니다.

엘시드의 원 이름은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인데 1065년 스페인 왕국 상속에서 장남
가르시아 산초는 카스티야왕국를 차남 알폰스 6세는 레온왕국을 상속한후 야심가인 차남이
쳐들어 오자 엘시드는 골페헤이라 전투 에서 레온군을 쳐부수고 알폰소를 사로 잡습니다.

알폰소 는 항복후 형인 산초에게 골목길에서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자고 유인한후 부하를
시켜 살해 하고는 카스티야왕국의 국왕 으로 즉위하니 내란을 걱정한 엘시드 는 사람들
앞에서 알폰소왕 더러 성경에 손 을 얹고 형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발표 하라고 합니다.

알폰소는 태연히 발표했고 엘시드는 1074년 알폰소의 조카딸인 히메나와 결혼 하는데
알폰소 6세 는 엘시드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능멸한 것으로 생각해 궁지로 몰며
톨레도를 진압하라 명하자 성공후 귀국하니 추방령을 내리고 부인과 딸은 감금 합니다.

엘시드 는 알폰소 6세 치하에서 왕과 불화 를 겪어 3차례나 추방 되어 심지어는 적인
이슬람의 사라고사 왕국에 몸을 의탁 했는데... 엘시드는 기독교 바르셀로나의 침략을
방어해 준후 함께 카스티야를 섬기기로 했는데 잘못돼 무라비트왕조에 도움을 청합니다.

이는 적국인 페르시아 로 망명한 스파르타 왕 데마라토스 나 아테네의 솔론 이며... 또
동양에서도 적인 전진에 망명했다가 훗날 후연 을 세운 모용수 같았었나 보네요?

사라고사의 무어인 영주 모타미드 의 요청으로 바다를 건너온 아프리카 무라비트국의 왕
유수프의 대군으로 카스티야가 위험에 빠지자 엘시드 는 다시 기독교 진영으로 돌아와
군대 지휘를 맡아 침략군을 격퇴하지만... 토사구팽 (兎死狗烹) 이라고 다시 추방 됩니다.

이에 엘시드는 자기를 따르는 1만 5천의 병사 로 1089년 스페인 동쪽 항구 무어인들의
요새 인 발렌시아를 함락 시켜서 스페인의 영웅 이 되었는데.... 중세에 프랑스의
극작가 코르네유의 희곡 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니 이름은 르 시드 Le Cid 로 나옵니다.

산타마리아 대성당 을 나와 뒤로 돌아가니 옛날 집들이 많이 보이고 아랍풍 으로
보이는 산 에스테반 성문 을 지나면
옛 성터 Castillo 가 보이는 데.... 여기서 바로“카스티야”가 유래 한다나요?


1180년 알폰소 8세와 왕비 를 위한 여름 궁전 으로 건립한후 수도원이 된 비단과
은실로 직조된 바지 가 있다는....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 Real Monasterio de las Huelgas 과 .....

또 15세기 후안 2세 가 건립한, 소박한 외양에 비해 내부는 화려하며 제단 장식 은
탄성을 자아낸다는 플랑드르파 3연작 그림 이 있는 후안 2세의 왕묘 며.....

선사 고고학 및 로마시대 유물 과 9세기 이후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는 부르고스
미술관 Museo de Burgos 등 볼거리가 허다 하지만....

빌바오 로 가는 기차 시간이 임박 한지라 아쉽지만 택시 를 잡아 타고는 시내를 통과
하여 교외에 있는 부르고스역 Estacion de Burgos Rosa de Lima 에 이르러....

10시 25분 기차를 타고 바스크족의 땅 빌바오 로 향하는데 1시쯤 도착한다고 하네요!
참고로 마드리드의 차마르틴역 에서.....
고속철 아베 Ave 를 타면 불과 2시간 반 만에 이 도시 부르고스에 도착 한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