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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강해 4)
종교적 의식의 회개가 아닌 악한 길에서 떠난 회개
231008낮 (욘3:1-4:1)
<3: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4:1)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아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요나 2장에 기록 되어 있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의 요나의 처절한 회개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며 은혜 받았습니다.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고,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사흘 동안 하나님께 처절하게 회개하게 되죠.... 그 내용이 2장입니다. 요나가 기도한 장소는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지옥 같은 환경이었습니다. 우리도 지옥 같은 환경, 참고 견디기 힘든 어려운 환경...목숨 부지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요나가 우리에게 교훈해주는 말씀은 바로 거기가 기도의 장소요, 기도할 때임을 보여주었다고 말씀드렸죠...
요나는 처절하게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며 회개합니다. 결국 물고기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삼일 만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고 맙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육지로 토해진 요나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 두 번 째로 요나에게 임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1절입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다시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쫓겨난 신세라 할지라도(2:4)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고, 사용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2절입니다.
<2)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선포하라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가룟 유다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팔아먹고 하는 죄를 지었지만,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자살하고, 베드로는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지만, 그는 네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마26:74-75절입니다.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은 부활 후 그런 베드로를 친히 찾아오셔서 사명을 맡기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요21:14-17절입니다.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신했지만, 회개하고 돌이킨 베드로에게 부활 후 친히 찾아오셔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 되고, 대 사도가 되어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자를 쓰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죄 없는 자를 쓰셨다면 아무도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쓰시기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절입니다.
<3)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처음부터 순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나는 주의 손에 붙들려 회개한 후 그분의 명령을 따라 니느웨로 갑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일하는 사람은 주의 일꾼이 아닙니다. 환경이나 여건이나 자기 생각에 관계없이 아골골짝 빈들이나 소돔 같은 거리도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가서 일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요, 일꾼이 아닙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대도시나, 신도시나 큰 교회만 찾아다니며 아무리 큰 교회를 목회를 하며 수천수만 목회를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이 보내서가 아니라 내가 찾아 나선 목회라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일까?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만 간다면 과연 하나님의 진정한 일꾼의 모습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충실한 일꾼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4절입니다.
<4)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의 메시지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주석가들은 요나가 아직도 자기민족의 적대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 주신대로만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진다>고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처럼, 여기에 전혀 설명이나 다른 말들은 일체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40일후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니까 빨리 죄악의 자리를 떠나고 회개하라는 등 일체의 덧붙임이 없다는 것이죠... 이것은 요나가 아직도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 심판으로 망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4장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니느웨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이 되어 이 요나의 외침을 들은 백성들이 회개합니다. 이 소식이 왕에게도 들리게 되자 회개하고 대신들도 회개하고, 조서를 내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고 악한 길과 포악한 짓들을 중단할 것을 선포합니다.
요나의 메시지의 특성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던 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만 선포했다는 점이고, 그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임하여 니느웨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만 전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말씀에 여러 가지 군더더기를 붙이고, 세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붙여서 재미있고, 좋은 설교를 하는데... 말씀에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은혜는 안 되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나의 메시지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말씀전하는 자는 철저히 성경중심으로 말씀을 전해야 되고, 성도들도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6-10절까지 읽겠습니다.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니느웨에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그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느웨의 회개의 특징
1. 종교적 의식을 넘어 악한 길과 행위에서 떠났다.
단순히 종교적 의식으로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서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이 아닙니다. 8절에 보면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종교적 회개의식을 넘어 그들의 잘못된 행위들을 고쳤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립니다.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들이 행한 것, 곧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그 뜻을 돌이켜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8-10절 다시 읽겠습니다.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2. 니느웨의 회개에는 신분고하(身分高下)가 없었다.
왕으로부터 백성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했다.
6-7절입니다.
<6)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데에는 신분고하가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회개하지 않아도 될까요? 장로는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살면 될까요? 회개는 초신자들이나 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임금은 회개하지 않아도 될까요? 임금이 회개하면 창피할까요?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선지자에게 지적 받고는 침상이 젖도록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 했습니다. 못된 왕들은 선지자가 잘못을 지적할 때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설교를 듣다가 죄가 지적당하는 것 같고, 마음이 찔릴 때가 있죠? 그럴 때 어떻게 하시는지요?
겸손히 말씀을 받습니까? 주여! 어찌하오리까? 하며 통회자복 합니까? 아니면 설교하는 목사를 향해서 비난을 화살을 퍼붓습니까? 서운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도 아니고, 감정이 상하거나 만족하는 문제가 아니고, 내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내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
미국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였던 로버트 A. 하디(1865~1949)는 1903년 8월 원산에서 사경회와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토론토 대학 의대를 졸업한 하디는 기도회 내내 울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그리고 원산의 토착 교인들 앞에서 ‘괴롭고 창피한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명문대를 나왔다는 우쭐함, 의사라고 자부하는 교만, 꾀죄죄한 조선인과 자신은 인종부터 다르다는 백인우월주의 등 자신의 마음에 도사린 편견과 차별심을 토해내듯 적나라하게 고백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디의 차별심이 그만의 것이었을까요? 서구 선진국에서 온 선교사들 상당수가 속으로는 하디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디의 회개는 순식간에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와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원산 일대에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원산부흥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07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의 불씨가 됐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한국 개신교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평안도에서 올라온 교인 600여 명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유산을 정리하다가 당시 화폐 가치로 100달러에 해당하는 큰돈을 착복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길 장로의 통절한 회개는 곧 교인들의 회개로 들불처럼 퍼져갔습니다.
노름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성경 말씀과 달리 첩을 둘이나 두는 등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회개가 얼마나 통절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사는 이날의 사건을 ‘성령의 임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니느웨의 왕으로부터 고관 일반 백성 짐승에 이르기까지 회개나 원산의 하디선교사의 회개의 시작으로 선교사들의 회개가 조선백성들에게, 이 회개운동이 4년 후 평양의 길선주장로의 회개가 온 성도들의 회개운동으로 번진 부흥들이 모두 형식적인, 종교의식적인 회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고, 악한 행위에서 떠나는 삶의 변화가 있는 회개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진정한 회개의 모습에 하나님의 은총이 니느웨 성에 임했음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봅니다. 하나님은 40일후면 니느웨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가도 그 뜻을 거두셨습니다.
요나의 핵심은 회개와 용서라고 요나서 강해시작 서두에 말씀 드렸습니다. 요나의 불순종과 회개 그리고 용서하시고 다시 요나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 니느웨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요나를 통하여 말씀을 선포하도록 했고, 그 심판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의 진정한 회개...그리고 하나님의 용서가 요나의 핵심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관심은 세상나라 모든 민족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가 살길은 회개입니다. 종교적 의식의 회개가 아니라 악을 떠나고 못된 행실을 고치는 진정한 회개만이 우리 성도들과 온 인류가 살길입니다.
10절을 결론으로 읽고 마치겠습니다.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