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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똥 묻은 개, 바로 당신과 나.
사 2:12
(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이 세상엔 교만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에는 교만한 모습, 그리고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들을 매우 잘 찾아내지만
자신에게서는 도무지 찾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가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자로 재듯 객관적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서 이런 모습은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잠 3:7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자기 자신을 ‘그래도 남들보단 나은 자’,
‘상당히 거룩하고, 꽤나 의로움을 가진 자’로 여김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쉽게 멸시하며, 경멸하고, 판단하며, 수군대는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교만을 품은 자들이며,
아직 복음의 진리에 관해서도 깨닫지 못한 자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자는 결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죄 수치를 100으로 본다면
99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각 사람의 죄입니다.
나머지 1을 가지고 서로가 “네가 더 나쁘네, 내가 더 낫네”하면서 옥신각신하고 있는 꼴인데
0.1의 죄를 가진 사람은 0.5의 죄를 가진 사람을 경멸의 눈으로 보면서 미워하고,
0.5의 죄를 가진 사람은 0.9의 죄를 가진 사람을 경멸의 눈으로 보면서 미워합니다.
“내가 너보다는 낫다.” 하는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99.1이나 99.9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여기면서 목을 곧게 세웁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 평생 경찰서나 감옥에 가볼 일도 없었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가본다는(?) 음란한 퇴폐업소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려서부터 도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
자신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특별한 교제를 나눈다며
스스로를 거룩하게 생각하면서 자랑하는 사람들,
성령님의 은사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여
자신은 그저 그런 흔한 기복주의의 기독교인들,
더 나아가 무당집에나 들락거리는 한심한 교회 출석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최상위의 성도(목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렇습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 공생애 당시보다 오늘날에 더 많아 보입니다.
눅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듯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거대한 교만에 대해선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심판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멸시하는 자는
어디 멀리 있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자들, 그리고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교만한 자의 도드라진 특징은 사랑이 없다는 점입니다.
교만한 자의 눈엔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의롭고 거룩한 자로만 보이고,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
그리고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아직은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자들에 대해선
아주 한심하고 하찮게 보기 때문에 도무지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는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멸시하는 것 자체가
신을 우습게 여기는 교만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신앙이 깊은 특별한 자로 인식하여
겉으로는 선량한 미소를 가지고 선대하는 척은 할 수 있지만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이 그 안에는 온갖 더러운 교만과 위선과 멸시가 가득합니다.
자신도 과거 더러운 죄인이었고,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합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마 23:26-28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자신에게서 이 크고 작은 교만들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회개하여 돌이켜
예수님의 사랑을 닮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힘쓰지 않고, 자신의 어떠함을 인정하지도 않은 채
가만히 앉아서 “이제 다 이루었다.” 하며 예수님을 아무리 흉내 내봐도
예수님께선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라고 단호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라는 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부담 없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교만한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 ‘죄 수치 99’를 넘긴 죄인들입니다.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자신을 남들보다 거룩하며, 대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자는 없고,
남들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도 없습니다.“ 이런 말은 도저히 듣질 못합니다.
성장과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훈계와 교훈을 너무나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신앙의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맞습니다. 제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든 장본인이며,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죄 공장입니다. 저는 제가 조금 성장한 것 같으면
다른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고, 혀를 차는 교만을 보이는 악인이며,
저도 다를 바 없는 죄인이면서도 스스로를 의롭다고 느끼면서
높은 마음이 되는 부끄러운 자입니다.“ 라고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만이
교만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교만의 죄는 스스로 자각 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사람,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언행과 무례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
거짓으로 나를 억울하게 만들고,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대할 때에
‘나는 의인이고, 너는 악한 죄인이다. 이 의로운 내가 너의 악함을 참아준다.’ 라는 생각을
베이스로 갖고 있으면 도무지 사랑이 되질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도저히 온전하게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만큼은 그런 생각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저 귀신들린 악하고 교만한 자가 감히 선하고 거룩한 나를 공격한다.’
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만하기 때문에 회개기도를 할 때에도
가장 먼저 자신이 최근에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되짚어 떠올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은 원래 존재 자체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지만
요 근래 몇 가지 실수로 잘못한 부분이 있는지
애써 찾아보는 태도로 회개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바 사람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품고 났으며, 자범죄로 하나님을 배반했고,
행실이 가증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고, 마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한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런 구제불능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대속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기에 ‘원래는 거룩한 내가 최근 잘못한 것이 있는지’
우선적으로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회개기도 할 때에 준비되어야 할 마음가짐은 우선적으로
“하나님,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 그리고 저의 신앙에 제 공로는 조금도 없으며,
저는 여전히 악함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고선
저는 언제든 다시 죄로 빠르게 달려갈 발을 갖고 있습니다.“ 이며,
이런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들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만이 자신의 교만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시 14:1-3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8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창 8:21 중
(21)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어떤 이는 “우리는 이미 다 용서를 받았고, 이제는 자유하라고 하셨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라며 반문하겠지만
자신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아무런 공로도 없으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면서)
더불어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불순종의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의롭고 거룩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멸시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모습,
즉 바리새인의 태도로 마음이 교만해져 있다면
그런 신앙이 과연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그것이 바로 자유가 맞는지,
과연 어떤 태도가 구원에 가까운 태도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길을 걷는 올바른 신앙생활은
자유와 방종, 겸손과 교만을 구분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나도 죄인이고, 너도 죄인이다. 우리 모두 약간 다를 뿐 다들 의롭지 못하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대죄인, 장본인이다.’ 라는 이 분명한 사실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우리가 기본적으로 갖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며,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 사랑하며, 품을 수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 됩니다.
삼상 2:3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제가 아는 어떤 목회자는 설교도 하고 있고, 은사도 있고, 하나님께 직통계시를 받고 있다고 하여
성도들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는 존경과 인정을 받기에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며,
앞에서는 걱정으로 가장한 조롱의 말을 하면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뒤에서는 수군수군 함부로 험담을 합니다.
또한 그 목사의 어린 자녀들은 기도 중에 환상을 보고, 하나님을 만난다며 자랑하지만
그들도 똑같이 부모의 모습을 닮아 눈의 흰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백안시로 눈을 흘기며
어른들에게 인사도 전혀 하질 않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체 왜 저런 현상이 나타날까? 어떻게 거룩함과 악함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을까?
그들의 믿음과 은사와 체험들은 과연 누구에게서 받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데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명확한 해답을 얻었고,
혹여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면밀히 점검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렘 2:37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딤전 6:3-5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이 땅에 살면서 생각지 못하고 간과했던 부분 때문에 후회하게 될 것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최근 우리 마음속의 세세한 작은 부분들까지 드러내주시며, 점검하도록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시 141:5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하나님의 권면은 듣기가 싫고,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적해주는 ‘용기 있는 사랑’을 베풀었을 때
머리의 기름 같이 여기는 고마움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와 증오를 품으며,
그래도 나는 남들보다는 낫다며 끝까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교만에 사로잡혀 있는 자는
마지막 날에 땅을 치고 이를 갈며 후회하겠지만
어떤 말씀이든 일단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해보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거룩한 두려움으로 살피며,
뭔가 발견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인정하여 고백하고, 돌이킨 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가,
그리고 구원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자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렘 48:29-30
(29)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의 노여워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교만,
그래도 내가 이 부분에선 남들보다 낫다는 교만함을 최소 하나 이상 품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고, 예수님처럼 온전히 겸손하며 완벽하다고 말하면
그것은 분명히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이며,
혹은 교만에 강하게 사로잡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솔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리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잠 8:13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볼 때 매우 쉽게 생각합니다.
마치 드라마나 축구를 보듯이 ‘아휴... 저기서 왜 저렇게 해?
저건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나 같으면 절대 저렇게는 안 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삶에서는 그 객관성을 잃고, 매우 감정적이 되어
기분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안타까운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혹은 그보다 더 한 실수나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말하는 것만 보면 세계무대에서 뛰는 프로선수 같던 축구의 관객이
조기축구회에서 직접 축구를 해봤을 때 우스꽝스러운 헛발질을 하며 넘어지거나
드라마의 시청자가 직접 연기를 해보면 어눌한 발음과 어색한 표정과 갈 곳을 잃은 시선처리로
‘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발 연기: 매우 형편없는 연기를 낮잡아 이르는 뜻의 신조어)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장한 변명도 아주 확고합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뭇사람들에게 24시간 생중계되고 있다면?
만일 우리가 성경의 등장인물들이고, 그것을 우리가 인지하고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태도가 될 일들이 많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저와 여러분들을 항상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다 기록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기록물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더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들까지 다 기억하십니다.
지금은 할 얘기가 많고, 자신이 정당한 듯 보이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선악 간에 판결하시는 그 날에는
부끄러워질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우리 모두에게 크고 작은 교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고,
‘그래도 나는 이 부분에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의로운 나를 저 악한 자가 괴롭게 하는 구나.
내가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구나.’ 하면서
도무지 예수님의 사랑을 닮질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방법 중에는
책망,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당하는 망신을 통해 부끄럽게 하심으로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는 것들을 드러내주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던 다윗처럼
즉시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지만
교만한 사울처럼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삼하 12:1-7 하, 13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 것도, 우리가 영적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도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이지 우리가 뭘 잘해서가 결코 아니며,
우리 모두 예수님 없이는 구제가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
우리에게선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은 연약한 자나 온전해 보이는 자나 아주 약간 다를 뿐인 다 같은 큰 죄인임을 깨달아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가
바로 진리를 조금은 깨달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가고 있기에
자신은 겸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아직 신앙이 연약한 자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감히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이제는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자,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품고 인내하는 자,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원리입니다.
이 내용이 도무지 공감이 되질 않고, 자신은 교만한 자가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이 든다면,
겸손하고, 의롭고, 거룩하여 고결한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만 들린다면
그는 아직 신앙의 걸음마 수준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들이며,
신앙의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 일뿐인
‘예수님 없이는 구제가 불가능한 존재’라는 이 명확한 사실을 늘 잊지 마십시다.
잊지 않기에 이제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교만을 버리고, 교만과 싸우면서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의 사랑을 닮기를 애쓰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에 즉시 멸하지 않으시고,
돌이켜 회개할 기회와 시간을 오늘까지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하나하나 드러내주시어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다 해결하도록 이끌어내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여
마지막 그 날에 한 점의 후회도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3:21-23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빌 2:1-8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3.12.03.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1.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2. 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야 죽였네
3.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4. 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 받네
[후렴]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아멘
216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1. 아버지여 나의 맘을 맡아 주관 하시고 완악하고 교만한 것 변케하여 줍소서
2. 부드럽고 겸손하여 화평하게 하시고 망녕되고 악한 일을 물리치게 합소서
3. 하나님의 은총속에 나를 보호 하시고 주의 사랑 줄이되어 나를 매어 줍소서
4. 구세주의 흘린 피로 죄를 씻어 버리고 성령으로 하늘길에 나를 인도합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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