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국남성합창단을 벤치마킹하는 이유

[풍류인]

제목 : <콰이어&오르간>에 실린 한국남성합창단(전문)

<한국의 진짜 "남성합창단">

풋내기 대학생 시절 모인 이 남자들은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노래하며 지내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43년이 지난 지금,진짜 흰머리 노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함께 노래하고 있다.1958년 서울고등학교와 경기고등학교 출신의 노래 잘하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이 합창단은 정해진 연습장소도,반주악기도 없이 대학강의실이나 교회 등을 전전하며 노래부르기를 시작했다.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남성합창단이 돼버린 이들에게 있어서 반세기를 이어오는 동안 한 번의 단절없이 연주활동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그들이 직업적인 연주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있는 합창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기적과 같은 일이라고도 볼 수있는 일이다.

이 합창단은 지금까지 50여회의 정기공연과 30여회의 일반공연을 해왔다.일본의 가장 오래된 남성합창단 "도꾜 리더타펠 1925"와는 1985년부터 두 나라를 오가며 합동공연을 해오고 있으며,미국에서도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한국남성합창단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반세기 남성합창의 역사>

한국남성합창단은 일찍이 단원이 중심이 되어 창단한 연후에 지휘자를 초빙했다.초대지휘자인 주한미군 중령 고에츠 이래로 서수준,유병무를 거쳐 현재는 한서대 김홍식교수가 지휘를 맡고있다.그리고 일체의 운영은 운영위원회를 따로두어 지휘자는 오직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또한 한국의 합창단체로는 최초로 후원회 조직을 두어 조직의 운영을 맡겼다.순수 아마츄어 합창단임에도 400여명의 후원자가 있을 정도로 그들의 성격은 독특하다.

이러한 체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것이었으며,일반적으로 지휘자가 중심이 되어 창단된 단체들의 수명이 길지 못했음을 볼 때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었음이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반세기 전,어느 누가 이런합창단을 창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젊음,노련미,지혜의 조화로운 집합체>

대학생 35명이 만든 한국남성합창단은 그동안 남자들만 가입을 받아 현재 단원수 150여명,환갑을 넘긴 사람부터 대학생까지,학생,회사원,교사,의사 등 단원들의 연령층과 직업은 다양하다.이들의 구성 또한 신기하다.이 가운데 현재는 창단멤버만도 20명이며,父子단원이 10명이나 된다.

스스로를 일컬어 "젊음과 노련미와 지혜의 조화로운 집합체"라는 것이 이들의 표현인데,요즘 부모 자식 간에도 어려운 세대간의 융합이 이들에게는 가능한 것이다.가족적인 분위기의 끈끈한 결속력은 이 합창단이 지닌 저력중 하나다.부자지간,형제지간이나 학교 선후배인 단원들이 많은 이유로 서로가 더욱 친근하다.지난해까지는 6 - 8 명의 父子 단원이 한 무대에 섰는데,아쉽게도 모두 유학을 떠나 지금은 아버지들만 무대를 지킨다.

<新宗敎 集團>

세대 극복,시간 극복,체력 극복이 모두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음악이라는 매개체 때문이리라.어떤 이들은 그들을 일러 '종교집단' 같다고 한다.자신들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합창을 사랑함이 신앙의 그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낮에는 직장에서,밤에는 노래하는 합창단원으로서 사는 이들의 이중 삶은 분명 고달프리라 짐작된다.게다가 이들을 찾아가던 날,설연휴를 앞둔 강남의 교통사정은 이들이 한 자리에 쉬 모이지 못하게 방해꾼 역할을 톡톡히 했다.정각에 모인 인원은 적었지만,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들어차는 자리를 통해 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짐작되었다. 이 열정은 다시 최고를 지향하려는 정성으로 모아져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도 매우 열심이다.그 노력은 결국 국내에 희귀한 남성합창곡을 수집하고 번역해 소개함으로써남성합창곡의 레퍼토리를 확대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남기기도 했다.

<예술감독과 아마츄어>

한국남성합창단이 음악적 고마움을 표하는 대상은 당연히 그들에게 음악적 도움을 주고있는 지휘자다.10년이상 합창단을 이끌던 서수준,30년 동안 한국남성합창단을 이끌어온 유병무에 이어 지난 1999년 부터는 현재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으로 재임 중인 김홍식이 상임지휘를 맡고있다.김홍식은 오페라,심포니,합창을 넘나드는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지휘자로서의 입지 또한 확고한 인물이다.

"프로의 맛과 아마츄어의 맛이 다르죠.제가 그들에게 음악적인 부분을 가르친다면, 저는 그들로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에 관해 배웁니다.기계적인 연주가 아닌 음악의 혼이 들어있는 연주를, 그것도 매 공연 때마다 심혈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남성합창단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습니다."

음악이란 청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는 한국남성합창단만큼 무대와 관객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단체는 없다고 말한다. 직업적인 합창단에 30 ~ 40 대 이상의 연령대가 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단원들의 문제나 재정적인 문제가 합창단의 오랜 존립을 방해하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인데 지휘자를 통한 공식적인 오디션이 끝나고 나면 술집 오디션이란 것이 있다고해요.단원으로서 얼마나 음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할까요? 이들은 가는 곳마다 합창을 합니다.그 모습이 매우 남성적이면서 열정적이죠.저는 이들을 '최후의 로맨티스트'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 마디로 이들에게 아마츄어로서의 어려움은 없다.선발시 어느 정도 음악적 소양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하나 되어 연주하는 이들에게 테크닉과 같은 문제들은 부담거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은 많은 연주를 감당해 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국남성합창단의 길>

물론 이들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단원들의 신변 변화(유학,입대,전근...)로 인한 급격한 단원 격감을 맞이하기도 했고, 연습 장소를 상실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단원들은 더욱 헌신적으로 합창단을 가꾸고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게 했다.

해외 공연을 통해 국제적 역량도 쌓았다. 2003년 독일에서 열릴 세계합창제에 초청되어 그곳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자신들을 보고 감격하기도 했다. 이제는 문화 사절로서의 역할 또한 그들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되었다.

남자들만으로 끈끈하고도 질기게 반세기를 지탱해 온 합창단. 어디 이런 합창단이 또 있을까? 황영선 원로이사의 말처럼 꿈을 현실로 만든 이들의 열정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보는 이를 더욱 벅차게 했다.

글/김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