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18. 예수 십자가로 죄인 구원이 완결됨을 믿습니다 》
요 19:30
〈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랴 〉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마음, 부모로서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자신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웁니다.
그제야 어렴풋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는 것이 바쁘고, 또 자기 자식 돌보느라 정작 부모의 마음을 잊고 삽니다.
세상사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제 자식 걱정하느라, 자신을 걱정하며 키워주신 부모의 은공을 외면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부모 은공 되새겨 무엇하랴?’
‘먹고 살기 바쁜 세상, 내 코가 석 자이니…’ 매일매일 살아가기 바쁩니다.
인생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자식 때는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황혼을 맞이하고 세상을 보면서 독백처럼 내뱉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 부모가 자식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부모는 이렇게 탄식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자식이 또 부모가 되고, 황혼을 맞이하면서 똑같이 탄식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이렇게 대를 물리면서 가슴앓이를 합니다.
참으로 “한 많은 이 세상”입니다.
☞ 여기서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모를 통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
그 사랑이 마치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꼭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어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겠나, 부모가 자식 마음을 헤아려야지!”
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조물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겠나,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지!”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부모의 사랑을 안다면,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알게 됩니다.
☞ 예수 십자가, 구원의 완결이 딱 이와 같습니다. 할렐루야~
〈 피조물이 어찌 창조주의 사랑을 알랴 〉
자식은 부모의 속정을 깊이 알지 못하고 부모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냅니다.
부모는 부모심정 몰라주는 자식을 보며, 눈을 감습니다.
그 자식은 다시 부모가 되어 똑같이 다람쥐 쳇바퀴를 돌립니다.
이를 ‘내리사랑’이라 하기도 합니다.
사실 사랑은 위로부터 내려오는데, 위는 안 쳐다보고 아래로만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삶의 이치, 인생의 순환 고리입니다.
사람이 부모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데, 부모님 너머에 계신 하나님 사랑은 어련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다릅니다. 달라야 합니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내 코가 석자라 할지라도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알아야합니다.
먼저 부모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알아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 예수 십자가로 죄인 구원이 완결됨을 믿습니다 》입니다.
네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②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알아야 합니다.
③ 죄인 구원을 알아야 합니다.
④ 구원의 완결을 알아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알고자 어버이의 사랑,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했습니다.
이 네 가지가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의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① 예수 ② 십자가 ③ 죄인 ④ 구원입니다.
〈 ① 예수 〉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는 ‘세 위격 한 본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삼위의 두 번째 위격 ‘성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 부르는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할 때 아버지는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 ② 십자가 〉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신 줄 믿는 믿음이 기독교신앙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 희생,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피조물 사람을 위한 희생입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식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 위기를 외면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설령 자신이 떨어질지언정, 부모는 위험을 무릎쓰고 자식을 구해냅니다.
피조물 인간이 지금 벼랑 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신 예수님, 세상 사람들을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십니다.
자신이 죽어야 함을 마다 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매달립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매달려 죽음으로써 이 땅의 죄인을 구해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 ③ 죄인 〉
부모님이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듯이,
하나님은 창조 엿새째 날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피조물 중 유일하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한 존재라면, 희로애락을 알아야 합니다.
토라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돌아서기도 하고, 그런 중에 깊이 사랑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배신할 수도 있어야 인격적 교제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배신할 가능성을 열어두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는 길은 죄의 길입니다. 사람은 죄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죄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와 의절하고, 집을 나간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부모와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딴 길을 갔습니다.
겨우 기어 다닐 수 있는 어린아이가 화로 속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부모는 그런 자식을 돌려세웁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기를 바라십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묵상해 봅니다.
태어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가 부모님 앞에서 한 일들을 돌이켜보십시오!
부모님에게 죄가 아닌 행동이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늘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부모님의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부모님은 화롯가에 내놓은 자식 걱정으로 인생을 마치십니다.
부모가 된 이후 우리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피조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십니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니지요!
“부모 앞에,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 ④ 구원 〉
부모님이 불 속으로 기어가는 자식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심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불구덩이로 하나님이 들어가셔서 죄인을 막아내십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대신 떨어지면서 자식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대신 죽으시면서 자식을 생명으로 밀어 올리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사람의 죄가 주홍빛과 같이 붉어 천번 죽어 마땅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렇게 주신 생명은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 영생입니다. 할렐루야~
〈 맺음 ~ 다 이루었다 〉
《 예수 십자가로 죄인 구원이 완결됨을 믿습니다 》
오늘 설교 제목의 뜻, 그 의미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가 오늘 설교 본문으로 삼은 요한복음 19장 30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물속으로 기어가는 자식을 밀어내고 대신 물 속에 잠깁니다.
불속으로 기어가는 자식을 밀어내고 대신 불 속에 재가 됩니다.
천길 낭떠러지로 자기가 떨어지면서 이 땅의 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으로 사는 우리가 실감하기에 용이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부모님을 주시고, 부모님의 희생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둔하고, 뻔뻔하여 자기의 죄를 못 봅니다.
자기의 죄를 못 보니, 부모님의 사랑도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사랑은 언감생심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이 안타깝다고 죄인의 죄가 어물쩍 넘어가지 못합니다.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과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부모님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헌신, 희생,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인간이기에 자식을 향한 헌신, 희생, 사랑을 완결짓지 못하고 세상을 뜹니다.
부모가 된 우리도 그렇습니다. 또 부모가 되는 오고오는 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헌신, 희생,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죄인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 예수 십자가로 죄인 구원이 완결됨을 믿습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