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직포에 갇힌 봄
조순희
길을 잃었다
사람들,
간밤을 기침으로 지새운 낮달이
이마를 짚으며 병원 쪽 행방을 더듬는다
방송을 틀면 연일
상한 빵처럼 부푸는 창백한 숫자들
관 속에서 걸어 나온 소문이
좀비처럼 떠다닌다
너와 나의 거리가 서둘러 단속되고
마스크 쓴 봄이
소독약을 피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선다
바깥 풍경에 합류하지 못한 화분 하나
신발을 신고 싶어
현관 쪽을 기웃거리는데,
그의 뒤척임 알아챈 것일까
결빙의 마음 추스려
반 뼘씩 향기를 운반하는 달력
남쪽을 수혈하는 바람이
지느러미 늘여 화한 길을 내고 있다
----애지문학회 사화집 {문어文魚}에서
부직포는 천연섬유, 화학섬유, 합성섬유 등을 기계방식으로 접착시킨 것이며, 물과 기름의 분리, 각종필터, 전기절연재, 연마재, 농업용 보온피복재, 실험복과 수술복, 방음과 여과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조순희 시인의 [부직포에 갇힌 봄]의 부직포는 오, 폐수를 차단시킬 때 사용되는 부직포를 뜻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19 방역시스템을 뜻한다. 코로나19는 인류의 역사상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염병이며, 그 전염속도가 너무나도 빨라서 순식간에 세계적인 대재앙으로 덮쳐왔던 것이다. 양성반응자와 음성반응자를 선별하여 양성반응자를 격리시키고, 더 이상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되지 못하도록 전세계가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새로운 백신이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개발되었고, 아직도 그 대재앙의 불길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5인 이상 모임금지, 마스크와 손 소독필수, 식당, 노래방, 대중목욕탕 출입제한과 이용금지, 비대면 수업과 학원과 학교의 휴교, 외국여행의 중단과 물류대란, 모든 스포츠 경기와 연극과 영화상연 금지 등으로 모든 인간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수백 만 명이 죽고, 아직도 이 대재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가 있다. 코로나19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크나큰 대재앙이며, 지난 100년 동안 50억 명 이상의 인구증가와 고령화가 그 원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연의 파괴와 천연자원의 고갈 이외에도 고령화로 인한 의약품의 오, 남용과 항생제의 과다 사용이 그것을 말해준다. 에너지는 형체만 바뀔 뿐 소멸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병도 퇴치되지 않는다. 하나의 질병이 퇴치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른 질병이 나타나고, 이 또다른 질병이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더욱더 악성의 형태를 띠게 된다.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 앞에서 전세계가 벌벌벌, 떨게 되었고, 이제는 마치 유령들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기피를 하게 되었다.
혼술, 혼밥, 배달음식, 대인기피와 외출자제는 일상생활이 되었고, 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모두가 길을 잃었고, 갈 곳이 없게 되었다.“간밤을 기침으로 지새운 낮달,”즉, 간밤을 기침으로 지새운 사람이“이마를 짚으며 병원 쪽 행방을 더듬”으면, TV와 라디오에서는“연일/ 상한 빵처럼 부푸는 창백한 숫자들”이 실시간으로 터져 나온다. 미국의 감염숫자와 사망숫자, 유럽의 감염숫자와 사망숫자, 중국과 일본의 감염숫자와 사망숫자, 서울과 부산의 감염숫자와 사망숫자 등, 수많은 국가와 수많은 지역의“관 속에서 걸어 나온 소문이/ 좀비처럼”떠돌아다닌다.
자유와 사랑과 평등도 다 죽었고,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와 약속도 다 파괴되었고, 이제까지의 인간들이 다 죽었다.“너와 나의 거리가 서둘러 단속되고/ 마스크 쓴 봄이/ 소독약을 피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서면,“바깥 풍경에 합류하지 못한 화분 하나/ 신발을 신고 싶어/ 현관 쪽을 기웃”거린다. 간밤에 기침으로 지새운 낮달, 마스크 쓴 봄, 바깥 풍경에 합류하지 못한 화분 하나는 인간이 아닌 좀비들이며, 이 좀비들의 뒤척임과 그 안타까움을 알아차린 달력이“결빙의 마음 추슬러/ 반 뼘씩 향기를 운반”한다. 머나먼 남쪽, 그“남쪽을 수혈하는 바람이/ 지느러미 늘여 화한 길을 내고 있다.”
달력은 자연의 의사이며, 그래도 이 달력같은 자연의 의사가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유행병 코로나가 퇴치되고,“지느러미 늘여 화한 길”, 즉, 아득하고 따뜻한 남쪽나라가 다가오게 된 것이다. 요컨대 좀비들이 좀비들의 탈을 벗고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 자유와 사랑과 평등, 그리고 인류의 영광과 행복을 노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아우슈비츠와 스탈린 체제의 수용소 군도라고 할 수가 있다. 살 권리보다는 죽을 권리가 더 필요할 때, 마치 황금알을 낳은 퇴계退鷄처럼, 자본가와 의료인들에게 인질로 잡혀 사육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과 딸들도 몰라보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혼수상태인 이 노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시대적 사명이자 의무가 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 즉, 자연의 죽음을 봉쇄한 자본가들에게 내린 하늘의 형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인간의 죽을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고, 다 산 노인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며 돈을 버는 반인륜적인 자본가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죽고 싶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 즉, 하루바삐 인간수명제와 더욱더 아름다운 존엄사를 실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