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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비평, 어떻게 하는가
수필비평의 분석과 평가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감히 말하건데, 현대문학이론에 대한 이해는 ‘세계’를 읽어내는 데 다양한 패러다임을 익히는 일에 다름 아니다. 소위 ‘발상의 전환’이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패러다임들은 다른 종류의 ‘맹목’이 보지 못하는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통찰의 이면에 맹목을 생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모든 이론은 ‘총체적’ 정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국부적’ 정당성만은 갖는다. 한마디로 말해 ‘모든 것을 정확히 읽어내는 창’은 없다. 이론들은 저마다 맹목과 통찰의 이면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폴 드망의 주장처럼 때로 맹목과 통찰은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 오민석(시인, 문학평론가),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중에서
■ 올바른 작품 분석법
엘리엇 -비평은 세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작품에 대해 정확하고도 올바르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것을 다시 통합하는 일이며,
셋째는 이렇게 한 결과 그 작품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일이다.
■ 분석의 구체적 방법
-수필의 특성은 잘 갖추고 있는가
-수필의 특성과 특질/ [문학적인 경쾌함과 함축미] [산뜻하면서도 우아한 문학적 기품] [진솔한 자기 고백 [자유로운 형식미] [풍요로운 감성과 상념의 절제된 표현][잔잔한 듯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친밀함][독창성과 개성미]
-주제가 분명한가, 또한 그 주제와 내용은 서로 부합되는가.
-문장의 표현이나 표현방법, 문장의 길이 등이 수필의 특성과 잘 부합되는가.
또 이때의 문장이 주제와 잘 맞는가. 문장에 쓰인 단어는 그 문장에 적합한 것이 며, 문학성이 담겨 있는가.
-수필로서의 멋과 위트, 유머와 해학성은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가. 또 수필을 읽 는 재미가 많은가, 그렇지 못한가.
-착상과 독창적 표현이 뛰어난가.
-가식이나 허위가 담겨져 있는가, 진솔한가.
-자기과시나 자만심이 차 있지는 않은가, 목적의식이 담겨 있지 않은가.
-수필 작품으로서 감동과 여운은 어느 정도 큰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쉬운 글로 쓰여져 있는가.
■ 비평의 현실
수필문학의 이론적 접근이 미흡하다. 올바른 비평의 존재 의의-작품의 해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재강조함으로써 전달 용이, 정확하게 보조하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작가의 나르시스적인 교만이나 편파적인 편견을 조정 재고함으로써 보편적이고 항구적인 결과에 이르도록 조언함이 마땅하다. 매슈 아놀드는 그릇된 비평의 종류로, 열광과 찬양의 평가, 감사와 동감의 평가, 앞뒤가 상충하는 평가, 시기와 질투의 평가를 들었다. 매슈 아놀드는 좋은 비평가가 되려면, 위대한 상상력과 감상력을 가지고, 작가와 ‘내면적 일치’를 느끼고 사색해야 한다고 하며, 순수한 주관이 순수한 객관이다. 비평에서의 상식과 중용을 중시하였다.
수필문학에서의 비평은 작가의 창작활동 돕기 차원, 문학으로서의 수필 재단 정도, 서구이론의 추종, 억지 대입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들 수 있는 수필 비평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1) 비평 관점 제시 미진 2) 비평태도의 문제 3) 비평 내용의 문제를 든다. 1)의 문제는 에이브람즈-비평의 좌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예술가, 작품, 그리고 우주, 청중이라는 네 가지 뼈대로 재단비평을 하기보다 인상비평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선행연구의 부족
작품과 직접 관계없는 문학 일반론 전개도 문제다. 2)의 문제는 칭찬일변도의 비평적 태도, 작가 나름의 고뇌를 발견하는 데 치중한다는 점이다. 3)의 문제는 작품 해설식 비평, 대상 작품의 나열, 단편적인 작품 해설, 가치평가 회피 등이다. 비평은 제2의 창작이다. 1) 감상 2) 입법 3) 지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Ⅱ. 비평의 기능: 해석과 판단
일반적으로 비평이라 하면 결점을 찾아내어 비난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비평하다(criticize)라는 말의 어원은 판별하다 또는 선별하다라는 의미이다. 판별하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다. ‘비평하다’라고 하면 대상물의 가치 판별을 말한다. 따라서 예술비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은 가치 판정 즉 평가이다. 가치 평가는 작품이 미적으로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하려는 본능도 있다. 따라서 문학 작품을 읽고 관심과 태도를 표명하는 행위가 바로 비평적 행위이다. 우리가 수필을 읽으면 독자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와 없다, 또는 잘 쓴 글이다. 시시하다, 등의 태도를 보인다. 비평은 바로 독서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다. 독서 행위가 시작인 것이다.
태도의 표명에는 ‘왜’라는 질문이 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이 따른다. 이렇게 질문함으로 시작한다. 대답에는 독자로서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가, 그리고 분석하고, 판단한 것이 내용이 된다. 그렇다면 비평의 기능은 해석과 판단이 되고, 비평하는 일은 평가적 활동이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야 하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처럼 비평에는 ‘지적 독서’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동민과 권대근의 비평이론을 중심으로 김미숙의 수필평론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 비평적 행위가 있는가?
1. 비평가는 독자를 위해서 의미의 내용을 진술해야 한다. 평가와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용을 언어나 문서로 나타내야 함으로 평가는 또 하나의 언어 행위이다. 비평가가 의미를 해석할 때는 해석의 기준이 되는 ‘예술적’이라든지, ‘미적’이라고 하는 것의 개념 정의가 분명해야 한다. 개념은 비평의 핵심이 된다. 문학 비평도 말할 필요도 없이 미학이나 문예학의 이론들이 규준이 되어야 한다. 예로서 작가의 행위가 비도덕적이라는 판단 때문에 작품 자체를 나쁘게 평가하는 것은 비평의 오류이다. 작가의 비도덕성과 작품의 의미를 미적 혹은 예술적 개념으로 해석하여야만이 비평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수필 읽기에서 자주 만나는 문제가 작가 = 화자 = 주인공이라는 도식으로 작가의 인격을 거론하는 일이 종종 있다. 가치 판단에서 작품과 작가를 구분하여야 한다. 수필 속에서 역사적 자아와 서술적 자아 그리고 서정적 자아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독서를 좀 더 근본적인 이유로 따진다면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유해하지 않는 오락으로서 즐기기를 하는 것이지만 세련된 태도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글을 읽고 작품의 가치를 따지는 일은 다분히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2. 비평가는 작품의 가치를 해명해야 한다. 비평은 가설적인 개념을 근거로 함으로 수정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왜냐면 비평의 근거가 되는 가설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독자의 입장에서 평가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면 가치는 증가하고, 그렇지 않으면 평가 가치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3. 우리가 작품을 평가할 때는 지적 접근을 하여야 한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작품의 평가는 작가에는 자극이 되고 일반 독자에게는 작품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교육적 효과도 있다. 우리 수필의 문제점으로 비평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비평을 할 때는 학문적 원리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수필 비평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전문 비평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소위 수필 대가라는 원로 수필가들이 비평을 담당하고 잇는 것의 우리 수필계의 현실이다. 비평가가 아닌 원로 수필가가 하고 있는 수필 비평은 거의가 감상 비평이다.
문학은 단순히 정보 전달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고 감동을 주는 예술 행위이다. 감동적 언술을 구사함으로 독자가 감상을 하도록 한다. 감상은 작품을 이해하고, 즐긴다는 뜻이다. 감상은 작품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총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낀다. 감상은 작가가 체험한 세계를 독자의 입장에서 체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상은 논리적인 분석이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체험한 미적인 경험을 함께 이해하고 감동하는 문학의 기능에 충실하게 따르는 행위이다.
4. 비평이란 감상의 단계를 거치고 난 뒤에 평가에 이르러야 한다. 감상주의 비평은 독자의 주관주의 감상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가에 이르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로 수필가들이 하고 있는 감상 비평은 극히 주관적인 감정에 의존함으로 적절한 원칙에 의하여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러므로 수필 비평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오류를 저지르므로 유해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감상은 작품을 직관에 의하여 전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비평은 부분적인 요소들을 분석하여 전체 가치를 추론해 낸다. 비평가는 부분을 분석할 때도 전체라는 맥락에서 고려해야 한다. 수필을 예로 들면 단락들은 상호 관련성을 지니면서 전체를 형성한다. 비평을 전체와 연관시키지 않고 세부 사항만 지루하게 나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평이란 궁극적으로 전체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5. 작품을 분석하고 판단할 때는 반드시 가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비전문가인 사람들에 의한 감상 비평이 비난 받는 이유는 작품마다 판단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의 평가에 관한 비어즐리의 주장을 들어보자. 문학에는 일반적으로 인식적 가치와 미적 가치가 있다. 문학에서는 미적 가치보다는 인식적 가치를 좀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식적 가치와 미적 가치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고, 이 둘은 전체로서 통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감동을 주는 동시에 의미도 담고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문학 작품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함으로 독자에게 새로운 것에 관심을 유도하여 깨닫게 한다. 깨달음을 통하여 흥미롭고 가치 있는 진실을 의식하게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의미가 있는 반성을 함으로 정서적이고, 도덕적인 식별력을 길러 준다. 결과로서 독자는 자신의 현실을 연장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한다.
수필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면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이때의 감동은 주관적이다. 내가 감동을 받았다 하여 다른 사람도 감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경험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반응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글을 읽고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 하였더라도 미리 정해져 있는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도 있다. 이런 경우도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평가할 때는 주관적인 관점을 벗어날 수 없지만 보편성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문학 작품을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잣대로 삼는 원칙은 진실성의 문제, 효용성의 문제, 독창성의 문제, 그리고 통일성의 문제를 꼽는다. 특히 수필에서 진실성이란 가장 중요할뿐더러 대표적인 명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진실의 기분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는 평가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다.
▮ 평가의 기준이 있는가?
(1) 진실성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독자가 체험으로 습득한 진실의 개념이 수필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이상적인 가치만을 잣대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진실이라는 잣대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이상적인 가치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진실 속에는 추한 면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적으로 아름답다는 것과 진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미를 추구하는 수필에서 추를 진실로 표현하였을 때의 평가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하는 문제가 대두할 수 있다는 뜻이다.
(2)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문학 작품의 효용성이란 바로 쾌락과 교훈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감동을 느꼈을 때는 독자들은 재미있다고 말한다. 독서를 하고 감동을 받게 되면 독자는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3) 독창성은 작가만이 지니는 특징적인 요소가 된다. 독창성은 개성적이고, 창조성이며, 다른 작가와 변별성이 된다. 작품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필 읽기에서 이 사람의 작품이나, 저 사람의 작품이나 구분이 안 될 때는 독창성으로 평가할 수 없다.
(4) 하나로 통합되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주는 것은 주제이다. 단어 선택에서, 문장 구성에서, 단락으로 조직하는 데서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조응이 있어야 한다. 수필이 비교적 짧은 글인데도 산만하여 의미가 해석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이 아니다. 통일성을 따지고, 주제를 따지고, 단락의 구조를 따지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비평도 창작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창작이기는 하지만 예술 일반의 창작에 비하여 보다 이성적이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엄격히 따진다면 작가의 표현 양식이 아니라 독자의 수용 양식이다. 공급자의 양식이 아니고 소비자의 양식인 것이다. 즉 작가로서 창작의 개념보다는 독자로서 독서의 개념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양식적으로 본다면 근대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소비자인 독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면서도, 불편하게 여긴다. 작가는 작품 비평에 적의를 나타내기도 하는 이유이다.
문학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는 수도 없이 많다. 그 잣대는 비평가마다 다를 수 있다. 비평가에 따라서 한 작품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게 나오는 것도 다반사이다. 수필을 비평하는 나의 원칙은 주관성과 객관성을 혼용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요소란 말할 것도 없이 미적 가치이다. 쾌를 주는, 즉 읽기에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수필의 정의에 충실하였는가를 따진다. 수필의 작법 이론에 의하여 쓰여졌는가도 살펴본다. 우선 수필 작법 이론을 훑어보고, 지금까지 학자들이 내린 수필의 정의를 예로서 살펴보자.
수필의 소재로서 작가가 경험하였거나 상상하였던 것으로서 작가와 관련이 있는 것이 대상이 된다. 작가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주제가 되면서, 주제의 표현에 적합한 소재들을 골라 낸다. 소재들을 재미있고, 주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배열한다. 그리고는 언어로 표현한다. 이것이 수필의 작법이다.
▮그렇다면 수필의 정의를 제대로 내리고 바람직한 비평방법을 택하고 있는가?
. 수필 이론가들이 주장한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는 자아의 표현이다. 둘째는 수필은 미를 추구한다.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자아의 표현이다, 라고 하면 자아가 중심어가 된다. 자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아는 한 인간의 개성적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개성을 가진 한 인간의 총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이 갖고 있는 선과 악의 모든 측면을 포함한다.
중국 미학의 문예론에서 품격론(品格論)을 주장한다. 품격은 바로 인격을 말하기 때문에 글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라는 주장에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아는 인격을 말하지 않는다. 자아를 인격과 동일시해버리면 자아는 인격이라는 도덕성 뒤로 소외되어 버리므로 수필에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필의 정의에 어긋나게 된다. 인격의 표현이라고 하면 도덕적인 인간만이 그려질 뿐이다.
둘째로 ‘수필은 미를 추구한다’라는 언설도 살펴보자. 미학에서 말하는 미적 경험 즉 미란 바로 쾌를 말한다. 작품을 읽고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을 말한다. 더욱이 무관심적 쾌라고 하면 미학의 중심 이론이 되어 있다. 감성적으로 쾌감을 느낀다는 뜻이 된다. 지금은 인식에서 오는 지적 만족감도 쾌의 일종으로 본다. 수필을 읽고 무언가 지적 향수를 함으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미의 추구라는 이론에 어긋나지 않는다.
수필의 개념 정의에서 말하는 ‘자아’란 한 인간의 개성적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지,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품격론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적이고, 개성적이랄 수 있는 내면의 고백은 사라져버린다. 사회가치에 순응하는 도덕적 인간만이 표현 대상이 된다. 자아가 개성을 가진 한 인간의 총체성이라고 할 때 인격을 내세우는 수필에 표현되지 않는다. 왜냐면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품격 내지 인격만을 표현한다면 수필에서 진실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수필에서 미를 추구한다고 할 때도 미적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쾌(快)를 말하는 것이다. 작품을 읽고 즐거움(快)을 느낀다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더욱이 무관심적 쾌가 미학의 중심의 이론이 되어 있다. 감성을 건드려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성적 인식에서 오는 지적 만족감도 쾌의 일종으로 인정하고 있다. 수필을 읽고 감동을 하였든, 지적 향수를 함으로 만족감을 느껴야 한다. 서양에서는 미를 眞과 결부시켜 사실성을 강조하였고, 동양에서는 善과 결부시켜 도덕성을 강조한 전통이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미를 진, 선과는 완전히 분리시켜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한다.
우리의 수필의 전통에도 진실성과 해학성을 강조한다. 미를 추구하기 위해서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추도 미학에서 수용하는 것이 오늘의 추세이다. 해학성에는 추의 요소도 다분히 섞여 있다. 동양의 미학에서는 미와 추 대신에 아(雅)와 속(俗)으로 나눈다. 아와 속은 끊임없이 상호 침투함으로 오늘에 와서는 분류 자체가 애매해진 것도 많다. 아와 속으로 평가하는 전통적인 평가 방법으로는 가치 판단이 오류를 저지를 수도 많다.
수필의 문법은 과거형으로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어느 시기에 경험하였던 사실을 기억으로 저장해 둔다. 사후 경험이 작용하여 과거의 경험을 기억에서 불러내는 회상의 방법을 사용한다. 경험 - 기억 - 회상이라는 과정에는 작가의 심리 기전이 작용한다. 작가 = 화자 = 주인공이라는 등식에 의하여 수필에서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여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회고하는 것과 과거의 경험을 해석함으로 수필로 형상화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수필은 자아을 드러내기 위하여 내면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하여야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억압해 두었던 자신의 내면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미학에서 말하는 추나 속의 범주에 속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수필의 개념과 작법을 살펴봄으로 비평의 방법론을 모색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은 자아의 표현이다.’라는 명제를 따른다면 수필 비평에서도 ‘자아’는 중심어가 된다. 수필의 비평이 자아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자아의 형성은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심리적인 관점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자아 형성에 관여하는 사회적 배경은 결국에는 개인의 심리 영역으로 수렴되므로, 수필 비평은 ‘심리 비평적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4. 바람직한 수필비평 방법
(1) 심리 비평적 방법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행동은 심리 작용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심리 영역은 의식, 전의식, 무의식의 층위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에 무의식은 심리적인 방해 작용으로 의식 세계로 떠올릴 수 없는 심층 심리의 영역을 형성한다. 우리가 내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배경이나 삶의 배경은 심리적인 억압 작용으로 무의식화 된다. 수필 쓰기에서는 억압된 기억은 거의 글로 표현하지 않는다. 표현하더라도 은유나 환유의 방법으로 아주 모호하게 표현한다. 수필의 비평에서 은유나 환유에 덮여 있는 내면을 의식 세계로 떠오르게 하여 자기 성찰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비평의 역할이다. 내면 속에 숨어 있는 기억들은 부끄러운 경험이 대부분이어서 숨기고 싶어 함으로 미학의 개념에서는 추에 속하는 것이 많다.
심리 비평의 약점은 평자가 작가와 동일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감정적인 동조나 거부를 함으로 합리적인 비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비평의 본령에서 벗어나서 감정적으로 접근함으로 가치평가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심리 비평의 대상이 작가이냐, 작품 속의 인물이냐, 또는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심리적인 영향이냐를 나누어서 분석할 수 있다. 수필은 장르의 속성상 작중 인물의 분석이 바로 작가의 분석이 된다.
비어즐리의 말을 다시 빌려 와서 비평의 일반적인 기능을 생각해보자. 단순히 작가의 심리 분석으로 끝내버려서는 안 된다. 심리 분석을 통하여 새로움을 깨닫게 하고, 가치 있는 진실을 의식하게 하여 독자가 자신의 삶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새로움을 깨닫고, 가치있는 진실을 의식한다.’는 것은 작가나 독자가 자기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수필은 문학에 속함으로 예술 분야의 다른 장르와 비교하여 인식적 가치를 더 높이 산다. 다른 말로 ‘의미로 미를 구축한다.’라는 말에 해당된다. 짧은 글에서 의미를 담아내려는 강박관념으로 글의 전면에 작가의 생경한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나오는 수가 많다. 이것은 수필쓰기에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수필 비평에서 가공되지 않는 작가의 목소리를 수필이 담고 있는 의미로 해석하여 비평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작가는 보여주기만을 해야 하고,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평자는 보여주는 것을 해석함으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지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말하면서 의미는 이야기 속에 숨겨 둔다. 비평가는 숨겨둔 의미를 찾아서 가치 평가를 한다.
수필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 상투적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수필의 속성은 고백적이고, 자조적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수필 비평에 심리 비평의 방법을 사용하자는 것은 인간 내면의 탐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총체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작품의 구조가 통일성을 갖고 주제로 통합되어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작법과 관련이 있다.
비단 수필 비평만이 아니고 비평 전반에 걸쳐서 오늘 날에 문제로 떠오른 것은 ‘독자 없는 글쓰기’라는 것이다. 수필 비평을 거의 읽지 않는다. 더욱이 비평이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비평문도 깊이 있는 내용을 담기보다는 가벼운 글쓰기로 일관하거나, 칭찬 일변도의 주례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수필집의 서평은 결혼식 때 울리는 팡파레나 같다는 혹평도 한다.
(2) 세계에 대한 해석
수필비평의 기본은 나와 나를 위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세계란 사물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건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라고 하는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해석은 해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설혹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그 해석된 내용이 구체적 형체를 갖추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한편의 글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형상화이다. 그런데 형상화란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구체적 사물이라도 그것을 감각적으로 강화시킬 경우에도 적용되는 개념이다.
문학적 성취는 첫째 참신한 소재, 둘째 참신한 해석, 셋째 참신한 표현, 즉 형상화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이 글에서는 소재 선택을 제외한, 해석과 형상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그것이 수필의 예술성 실현에 어떻게 기여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형상성 외 수필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해석은 우선 참신하고 개성적이어야 한다. 예술적 감동은 바로 그 참신한 발상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선배나 동료작가가 해석한 의미와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모방이거나 표절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성적인 시각이란 "낯설게 하기"라는 슈클로프스키적 시각을 의미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낯설게 하기"라는 말은 '낯설게 보기'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낯설게 하기"란 개념 속에는 대상에 대한 '비일상적 시각', '뒤집어 보기', '현미경적 시각'이란 항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낯설게 보기"가 해석의 영역에 속한다면 "낯설게 하기"는 표현의 영역에 속한다. 낯설게 봐야 낯설게 할 수 있다.
문학비평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비평 활동의 핵심적인 목표는 작품의 가치를 밝혀내는 일이다. 즉 문학작품이 잘 된 작품이냐 아니냐를 가린다. 비평가가 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비평가 개인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의 요구나 유행에 따라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란 개인의 취향에 의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항상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일찍이 칸트는 이러한 문제에 착안하여 여기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줌으로써 비평의 길을 열어주었다.
(1) 비평을 할 때는 학문적 원리를 지향해야 한다.
소위 수필 대가라는 이유로 수필을 학문적 잣대로 비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비평가가 아닌 원로 수필가가 하고 있는 수필 비평은 거의가 감상 비평이다. 문학은 단순히 정보 전달의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고 감동을 주는 예술 행위이다. 감동적 언술을 구사함으로 독자가 감상을 하도록 한다. 감상은 작품을 이해하고, 즐긴다는 뜻이다. 감상은 작품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총체적으로, 직관적으로 느낀다. 감상은 작가가 체험한 세계를 독자의 입장에서 체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감상은 논리적인 분석이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체험한 미적인 경험을 함께 이해하고 감동하는 문학의 기능에 충실하게 따르는 행위이다. 따라서 비평의 지향점이 문학적 성취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문학적 가치에 머무르게 된다.
(2) 먼저 문학적 성취를 판단하려면, 문학적 취향을 가져야 한다. 칸트에 의하면 예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논의 또는 평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그의 미학적 또는 심미적 취향은 극과 극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객관적인 성격을 띤 주관적인 것이다. 우리는 비록 어떤 주어진 경우에 있어서 주관과 객관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지만 칸트가 제시한 ‘미학적 취향’은 제시된 예술작품의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어떤 공통된 그리고 정당한 기준이 존재 가능하다는 가정 위에 성립한다. 이와 같은 가정 위에서 모든 예술 작품의 가치평가는 가능하다고 하겠다.
경주에 있는 석굴암의 불상을 보고도 아무런 감동을 못 느낀다든가, 그것을 보고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 사람을 놓고, 그것도 모두 취향의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은 관용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삶의 가치 또는 인간성의 포기인 것이다. 동해에 서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을 보고, 또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보고도 어떤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누드는 다 같다고 해서 르느아르가 그린 누드와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오는 것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도 분명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된 것에 공감하고 동의해야만 한다는 이 의무도 아닌 의무를 칸트는 ‘심미적 의무’라고 불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의무를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성실히 수행해야만 할 것이다.
(3)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의 평가 기준은 문학이론서에서는 4가지로 잡는다. 1. 형상성, 2. 참신성, 3. 함축성, 4. 탄력성이다. 그러나 미에 대한 미학적 감상의 길은 통일된 내용, 그것을 더욱 복잡하고 함으로써, 더욱 완전하게 알아차리도록 하고, 독자를 감동의 고지로 이끌어내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4 가지로는 불충분하다. 여기에 5. 통일성, 6. 가치성 등 두 가지 정도를 더 첨가하면 좋겠다. 자기가 겪은 체험을 수필로 표현할 때는 수필도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의 공통적 속성인 형상성, 참신성, 함축성, 탄력성에 더하여 통일성, 가치성 등의 요소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먼저 형상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해석이 구체적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 읽기라면 형상화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구체적 사물을 더 감각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하나의 문학작품이 성공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이 형상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수필의 예술성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방법론에 부딪히면 뜬구름잡기 식이 되는 것은 바로 이 형상화 과정이 무엇인지, 또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오는지 깊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석만 있고 형상화가 없으면 관념적인 글이 되고 말지만 해석과 형상화가 함께 어우러지면 감동이 배가 된다. 잘된 작품은 모두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따라서 해석과 형상화는 문학 작품이 갖추어야 하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하겠다.
쉽게 말해서 형상성은 '산'이나 '옷차림'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의 모습이 '어떠하냐'라는 물음에 대하여 '이러저러하다'고 대답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형상화는 사물의 모습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느낌 등을 감각적으로 가능한 한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대상을 파악하게 하는 방식이다. 주로 사물에 대한 공감에 역점을 둔 것으로 심미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방식이다. "구체성"의 문제와 바로 직결된다.
참신성이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해석하며, 그 대상조차도 새로운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참신한 표현을 쓴다는 것은, 남이 쓰지 않던 말을 새로이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쓰던 말도 남들이 쓰지 않던 뜻이나 용법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표현은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되므로 곧 개성적인 표현이 된다. 논술에서는 창의성의 속성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심층성, 다각성, 참신성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깊이 있게 다각도로 봐야 참신한 발상이 나오고 그 참신한 발상이 참신한 문장을 낳는다. 참신성은 작가만이 지니는 특징적인 요소가 된다. 참신성은 개성적이고, 창조성이며, 다른 작가와 변별성을 가지는 요소가 된다. 작품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일탈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필 읽기에서 이 사람의 작품이나, 저 사람의 작품이나 구분이 안 될 때는 독창성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로만 쓰지 않고 그 언어를 통해 연상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지시적인 표현보다는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포성을 지닌 함축적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이는 적은 말로도 많은 뜻을 갖게 해준다. 함축성에 소홀하게 되면, 넋두리나 푸념이 되기 쉽다. 문학 작품은 결국 감정의 절제가 중요하다. 자기가 흥분하면 안 된다. 그래서 느낌표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정서란 결국 감정을 보수하고 변형한 정신적 반응의 2차적 표현이다. 흥분하면 정서가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이 나온다.
고무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탄력성을 지니고 있듯이 글도 변화를 통해서 탄력을 지닐 수 있다. 늘 대하는 일상적인 글보다는 탄력이 있는 글이 읽는 사람의 흥미를 더해 주고, 나아가 의미를 새롭게 해 준다. 수필에 탄력성을 주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생략과 확장으로 글에 일정한 리듬을 주는 것이다. 문장의 길이를 짧게 하고 길게 하고, 종결어미를 다양하게 한다든지, 시제에 변화를 준다든지, 시점에 변화를 주는 것이 전부 탄력성에 해당한다. 탄력성이 없는 글은 단조롭고 건조해진다.
통일성은 결국 모든 작품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인데, 사실 이 작품이 수필인가 잡문인가를 구별하는 첫 번째 준거가 통일성이다. 수필은 주제 중심의 글이다. 자신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되지만 간접적으로 주제가 형상화되어야 한다. 적어도 고급 독자라면 한 편의 글을 읽고 이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를 추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필을 전개하면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것이다. 주제 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경험들을 어디에 배치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수필은 전체적으로 하나로 통합되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주는 것은 주제이다. 단어 선택에서, 문장 구성에서, 단락으로 조직하는 데서 주제를 돋보이게 하는 조응이 있어야 한다. 수필이 비교적 짧은 글인데도 산만하여 의미가 해석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이 아니다. 통일성을 따지고, 주제를 따지고, 단락의 구조를 따지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다.
가치성이란 과연 이 글이 독자에게 의미있는 가치를 주는가이다. 문학 작품은 결국 독자를 이끌어야 한다.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것이 마음을 움직일까. 어떤 내용이 독자를 감동시킬까. 자기 자랑이나 하고 아내나 남편 자식 자랑이나 하고, 계산된 목적이나 상업성, 아주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면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읽을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글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의 개념 정의 중 '인식'과 관계하고 있다. 지친 현대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가는 '나'보다 '우리'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남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글감에 손을 대어야 한다.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못 보는 것들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III.
비평에서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판결하듯이 재단하여 가치 판정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수필은 짧고, 가벼운 글쓰기이므로 서양의 에세이를 읽듯이 해석하고, 소개하는 해석적 비평도 필요는 하지만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다. 비평은 독자의 읽기를 도와주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는 이론도 있다. 이것도 독자 나름의 읽기의 방법을 있는데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평론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작품을 자기 나름으로 읽기를 한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평론은 작품의 가치판단이 아닌 평론가에 의한 재창조라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평론가라는 특정 독자의 읽기이므로 이것은 평론가의 새로운 글쓰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평론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 수필 비평은 우리 수필에 맞는 비평의 방법론을 찾아서 독자가 있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 작가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형상화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참신성, 함축성, 탄력성, 통일성, 가치성을 구현함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을 수필을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다시 말하자면 문학의 성취도는 문학적 취향을 가진 작가가 참신한 소재와 그에 대한 참신한 해석 그리고 그 해석한 내용을 어떻게 참신하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경우 비록 소재가 참신하지 않더라도 그 해석이 참신하면 반은 성공한 작품이다. 거기에 표현, 즉 형상화가 이루어졌다면 성공은 보장된 셈이다. 이렇게 하나의 작품은 세계에 대한 개성적 해석과 형상화를 통해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수필의 예술성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목표다. 해석에서 형상화까지의 과정은 그 가운데 하나의 통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비평은 문학적 가치를 논하는 차원과 다르다.
훌륭한 비평가는 모름지기 작품의 복잡성과 그것이 독자에게 가져오는 힘을 보통사람보다 더 강력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지적으로 우수하여야 하며, 본능적으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재능도 갖추어야 한다.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만 하고 기술도 터득해야만 한다. 비평가는 훌륭한 작품을 보면 거기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괴상한 정열도 타고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도덕적으로 대단히 용기 있고 또 정직한 사람이어야 한다. 문학적 취향, 문학적 가치, 그리고 문학적 성취를 구분할 줄 알고, 감상비평이 아닌 분석비평을 해야 한다. 해석에서 형상화까지를 필요충분조건으로 해서 다른 부수적인 요소를 고려한 수필의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리 본격수필비평가들은 위의 6가지 요소가 충족되는지 점검해 보고, 주어진 글이 좋은 글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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