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睡蓮)이 들려주는 삶의 말(문화산책)
연못 위에 수련(睡蓮)이 피어 있다.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초록 잎들과 연분홍 꽃잎은 세상의 소란과는 무관한 얼굴처럼 고요하다. 바람이 스치면 잎은 천천히 흔들리고, 물 위에 비친 하늘도 조용히 일렁인다.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도 어느새 느려진다.
수련이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뜻이 담겨 있다. 잠잘 수(睡), 연꽃 련(蓮). 말 그대로 ‘잠자는 연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수련은 해가 지면 꽃잎을 오므리고 다시 물 위에서 잠든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비치면 조용히 꽃을 연다. 자연은 스스로의 시간을 알고 살아가는데 인간만 유독 그 시간을 잊고 살아간다.
현대인은 늘 깨어 있으려 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움직이며 잠시도 멈추지 못한다. 쉼조차 불안해한다. 그러나 수련은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때로는 꽃잎을 닫고 쉬어가는 시간도 삶의 일부라고.
연못 속 수련잎들은 욕심이 없어 보인다. 서로 더 크게 피어나겠다고 다투지 않는다. 물 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리에서 햇빛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은 늘 비교 속에서 괴로워한다. 누가 더 앞서가는지, 무엇을 더 가졌는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자연은 경쟁보다 조화를 먼저 보여준다.
특히 수련은 진흙 속에서 자란다. 맑은 물속이 아니라 어두운 흙탕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결국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깨달음의 상징으로 여긴다. 더러운 진흙에서도 맑은 꽃을 피워내듯 인간 역시 고통과 번민 속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삶 또한 그렇다. 누구에게나 진흙 같은 시간이 있다. 견디기 힘든 슬픔과 외로움, 마음이 가라앉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다. 상처를 견뎌낸 사람의 눈빛에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요가 담긴다.
수련은 화려하게 피지 않는다. 장미처럼 강한 향기를 내뿜지도 않고, 해바라기처럼 하늘 높이 치솟지도 않는다. 그저 물 위에서 조용히 자기 빛깔로 피어날 뿐이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인간의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잔잔한 품격이 배어난다.
연못은 거울처럼 산과 하늘을 품고 있다. 수련잎 사이로 번져가는 물결을 바라보다 보면 사람의 마음도 저 연못처럼 잔잔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점점 시끄러워지고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만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서 침묵으로 삶의 이치를 들려준다.
오늘도 수련은 조용히 물 위에 떠 있다. 바람이 스치면 흔들리지만 끝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어쩌면 철학이란 거창한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수련처럼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삶의 태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