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로마에서도 나의 일을 증언하여 하리라!(행23:1-23)
갈등
1. 김교신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우찌무라 간조(내촌감삼)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찌무라는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며 성서중심의 무교회주의를 주창했어요. 김교신은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지리학과 박물학 교사로 활동하며 무교회주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조직화 된 교회 없이도 신앙을 실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잡지 '성서조선'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며, 어려운 시기에도 신앙을 지키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김교신 선생님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시대 속에서 작은 배 한 척으로 믿음의 항해를 이어간 분이었습니다.
김교신의 삶은 거대한 압박 속에서도 잔잔한 물결처럼 신앙의 본질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선각자들이 각 시대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매우 선각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로마의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해주면서 바울이 유대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허락했지만, 역시 역반응이 나타났어요.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시민임을 알고,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여 산헤드린 공회(당시 최고 권력기관)를 소집했습니다. 바울이 공회에서 1절,“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사람들에게 바울을 치라고 명하자 바울은 3절,“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대제사장을 호위한 사람들이 바울에게 네가 대제사장을 욕하느냐고 물었어요. 바울은 5절,“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으니라 하더라.”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며, 자신이 율법을 지키는 자임을 출22:28을 인용하며 밝혔습니다. 참 바른 자세입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며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스운 사람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순간 지혜를 발휘했어요. 주변을 보니 절반은 사두개인이고 나머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6절,“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바울은 사두개인들의 약점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가문의 후예로 대대로 특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세상이 천국인 그들은 내세나 부활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유일한 신학적 갈등의 소재는 이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이 문제를 거론하자, 바리새인들이 바울을 두둔하고 나섰어요.
3. 양파 사이에 큰 분쟁이 생기자 천부장은 이 모임을 파하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영내로 들어갔습니다. 바울이 공회 앞에 선 모습은 마치 사나운 폭풍우 속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의 뿌리는 하나님께 깊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 날 밤에 11절,“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이때 바울에게 임하셔서 로마에서의 사명을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4. 다음 날 유대인들의 마음은 천부장의 중재와 달리 더욱 거세졌습니다. 12-13절,“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맹세는 독을 품은 뱀이 먹이를 노리듯 은밀하고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심장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 증오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종교가 있습니까?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유대교인들이 40여 명이나 되었어요. 유대교가 예수님을 죽이면서 당당하게 사람을 살리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종교가 된 듯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앞에서-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바울을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모의를 했습니다. 15절,“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허더니.”로마의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해주는 상황 속에서도 유대교인들은 어떤 불법을 범하더라도 바울을 죽이는 목적을 이루겠다고 결단했어요. 천부장이 바울을 이송할 때 매복해 있다가 암살을 하겠다는 이 정보를 마침 바울의 생질이 들었습니다. 바울의 조카는 이 사실을 지체하지 않고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5. 바울의 조카는 폭풍 속에서도 촛불을 지키는 듯한 용기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의 한 걸음이 바울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백부장을 청하여 조카를 천부장에게로 보냈습니다. 백부장은,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고 데리고 가기를 청했다고 그대로 전했어요. 천부장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따로 바울의 조카를 불러,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의 조카는 20-21절,“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 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나이다 하니.”하나님께서 아직 바울을 사용하시기 위해 그가 죽도록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도 조카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후에 즉각 조치하여 천부장이 로마 시민인 자기를 보호해 주기를 청했어요.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간수장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고 고스란히 매를 맞았던 바울이 이곳에서는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천부장에게 로마 시민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천부장도 이 일을 쉽게 여기지 않고 처리했습니다. 바울의 조카에게는 이 사실을 내게 알렸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로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5. 천부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참 놀라운 일을 단독으로 처리했습니다. 23절,“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에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군지휘관이 군병들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수부대원 일부를 은밀한 작전에 투입하는 것이야 별문제가 없었지만, 천부장은 자기 휘하 군대의 절반을 바울을 벨릭스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에까지 안전하게 이송하도록 심야에-삼시, 새벽 3시에서 6시-은밀하게 작전 지시를 내렸어요. 천부장은 왜 바울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이처럼 자신이 평생 공들여온 로마 장교로서 출세의 대로를 내걸었을까요?
실마리
6.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모든 인생은 내가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의 뜻에 인생들이 얼마나 순종하며 사는가가 문제입니다. 바울의 인생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와 후가 크게 다른 것에 여기에 차이가 있어요.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서기관으로서 출세가도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기를 바랐고 그 일을 이뤘습니다. 사람이 얻은 이 놀라운 기회를 스스로 내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았어요.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삶을 금으로 빛나는 왕관 대신 복음이라는 수건으로 교체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는 성경을 복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복음은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따라가는 자만이 영생을 얻고 인생의 가치-보람-의미를 누립니다. 바울의 인생 변화는 이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보화와 같은 복음을 발견하고, 세상 모든 기득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만 전도했습니다. 그는 1-3차 세계 전도 여행을 마치고 그가 전도하여 세운 교회들이 전해주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구제헌금을 전달하기까기 했습니다.
7.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는 교회사에서는 빛났지만, 과거 동료였던 유대교인들과는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복음과 유대교는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사이였고요. 바울이 1-3차 세계 전도 현장에는 늘 유대교인들과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유대교의 본산지인 예루살렘에 들어오면서, 그는 스스로의 힘-자력으로는 유대인들의 위협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었고,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한 천부장이 보호를 해준다고 해도 역부족이었어요. 그 때에 바울에게 소망의 메시지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의 일-복음을 증언하여야 하리라.
세상이 아무리 사도 바울을 위협하고 죽이려고 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로마에서 복음 전도를 다하기까지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이 친히 하신 예언적 선포였어요.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위해서 사람들을 움직이십니다. 고레스나 아닥스다, 아하수에로 황제를 움직이셨던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해 로마의 천부장을 움직이셨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복음 전도자가 되기 어려웠듯이 천부장도 바울을 위해 시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지만, 천부장은 돈을 많이 주고 로마 시민이 된 직업 장교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일신상을 고려하지 않고 바울을 위해서 모험을 걸었습니다.
8. 천부장은 로마 장교로서 자신의 입지를 잃을 위험을 무릅쓰며 바울을 보호했습니다. 마치 전쟁터의 사령관이 목숨을 걸고 마지막 병사를 구출하려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이해불가입니다. 세속주의자-기복주의자-성공주의자들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시고 통치하십니다. 악인이 마음도 불신자나 타종교인의 마음도 움직이세요. 천부장의 일이 대표적입니다. 천부장은 먼저 이성적인 인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하는 자로서 로마 시민을 보호하려는 선 자세를 잊지 않았습니다. 역사에는 때로 이런 상식을 갖춘 인물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바울을 위하는 그의 자세를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봅니다.
복음 제시
9.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는 것처럼, 황량한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그 복음이 오늘도 우리를 살리고, 우리가 선 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합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병든 심신을 치료하기도 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복음은 이런 능력 외에도 복음 전도자를 세우며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이 일을 가장 충성되게 감당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사도 바울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기질도 사용하시는데, 바울이 갖고 있던 장점을 100%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점이 주후 57년 경으로 본다면, 바울이 회심 후 복음 전도에 올인한 것은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바울은 그의 인생 오리엔테이션-방향이 바로 정해지자 그 길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어요. 베드로와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특히 유대교와 혼합주의자들-을 용납하지도 않았습니다.(갈라디아서) 바울의 인생은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았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복음의 빛이 밝혀졌고, 어둠은 물러갔습니다.
기대
10.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전환이 너무 소중해요. 인생의 가치관이 변하는 터닝포인트-전환점입니다.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마치 겨울의 긴 밤이 끝나고,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처럼 인생을 완전히 바꿉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되는 이 때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고비마다 다리를 놓아주십니다. 성경은 바울만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전해줍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은 왜 나를 위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조금 성숙해지며 제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할게요!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시는 삶을 체험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결단해 나가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