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 산책(17)
제 1 장 신랑의 죽음으로 산 여자(10)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거나 우리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상의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창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동의를 구하거나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피조물은 철저하게 창조주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면 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마치 드라마를 찍는 감독과 배우(탤런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 언약이라는 대하 드라마를 연출하는 감독이십니다.
감독이 드라마를 찍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합니다. 배우에서부터 모든 셋트까지 다 준비합니다. 감독은 배우를 선정할 때 인물이나 지식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고 그 역할을 가장 잘 소화하여 낼 배우를 캐스팅합니다. 창조주가 그런 배우를 창조해서 그 배역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외모에서부터 성격까지 드라마의 배역에 가장 잘 맞는 배우를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에서 이를 잘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 역할을 하도록 창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1:4~7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인간적인 의미에서 “아~ 슬프다!”라고 하면서 더러운 팔자라고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바른 소리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슬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배역이 정해지면 감독은 그 배역을 통하여서 그려내고자 하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역을 맡은 배우들에게 지시합니다. 배우들의 몸짓 발짓 하나에서부터 얼굴, 표정과 감정 하나하나까지 다 섬세하게 지시합니다. 시나리오에는 배우들의 대사 에서부터 옷이나 행동이나 감정이 다 적혀 있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라는 식의 모든 주문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는 감독의 작품이지 배우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독은 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상황이나 장소나 소품 하나까지도 다 준비하는 것입니다. 배우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드라마 속에선 배우의 생각은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입니다.
배우는 각자 맡은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됩니다. 그리고 감독이 드라마를 즉흥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고 미리 짜진 시나리오대로 찍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창세 전 언약을 그려내는 데 필요해서 만들어진 배우들입니다. 각자 맡은 배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된 그 시나리오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드라마를 찍는 배우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찍는 창세 전 언약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애드립은 일절 허용하지 않습니다. 애드립은 배우가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드라마에서는 배우가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혼자서 다 알아서 하십니다. 이 세상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창세 전 언약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보지 못해서 버벅거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차디찬 감 옥에서 눈이 열려서 이 시나리오를 본 것입니다. 그 시나리오를 하나님 비밀의 경륜이라고 합니다. 이 비밀의 경륜을 본, 사도 바울은 한평생 이 비밀의 경륜을 위해서 결단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입니다. 눈이 열려야 시나리오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어린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아버지께로 받아서 인봉을 하나씩 하나씩 떼십니다. 그러자 말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말들이 뛰니 이 세상에서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일어나고, 전쟁도 일어나고, 기근도 일어나고, 전염병들도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혼란이 닥치고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이 모두는 문자적인 의미도 있지만, 그 속에 영적인 것도 담겨 있습니다. 이로 보아 작금에 일어난 모든 자연재앙이 어린양이 인봉을 떼어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인간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우주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한 성경을 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나 사고는 모두가 어린양의 손에서 비롯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배우의 인생을 감독이 조정하듯이 우리 인생도 하나님이 조정하십니다.
한 개인의 태어나고 죽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에서 기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 아래서 태어나게 하시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게 하시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자식은 몇 명을 낳고, 무슨 직업으로 어떤 일을 하다가 어떻게 죽는지 하나님 경륜 안에 다 정해져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인생길이 어디에서 어디까지는 어떤 동무들과 길을 가고, 몇 살 때는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일을 하고, 몇 살 때는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나서 어디로 가는지 정해져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고, 대학생이 되어서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장년이 되어서 회사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고, 늙어서 경로당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 적용하면 율법 아래서 만나 교제하는 사람이 있고, 이단에 빠진 사람이 있고, 이단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도 있고, 복음 안에서 만나 교제하는 사람이 있고, 복음 안에서도 각양의 동무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짐도 모두가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 오늘 죽고 못 살 것 같은 친구도 내일이면 헤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만나고 헤어짐을 그리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동무가 아니라도 다른 길동무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감사하십시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