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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트럭 운행은 기대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사고나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경찰에게 걸려 벌금 딱지를 받을 수도 있고 운이 좋다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만나거나 기적적으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그 문제들은 집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곳,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도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므로 믿는 것은 자신뿐, 홀로 해결 해나가야만 한다. 이미 수많은 문제를 경험한 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고난이 있으면 극복도 있듯 닥쳐오는 문제를 극복하고 무사히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이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히치하이커 윌슨
Hitchhiker Wilson
(단편 200자 원고지 147장)
“휴스턴, 문제가 발생했다!"
(“Houston, we've had a problem here”)
영화 아폴로 13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세상에 문제가 한둘이겠는가? 세계는 이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문제로 차고 넘친다.
하나뿐인 초록별 지구의 생태자원의 고갈과 파괴, 인종과 문화 종교의 차이에 따른 갈등과 혐오등 거창한 문제만 아니라 북미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들의 삶 또한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 닥쳐오는 문제들로 고난과 극복에 시달린다. 매일 보는 교통사고 현장이나 극한을 오가는 변덕스럽고 험악한 날씨에 맨몸으로 견디고, 바람, 비, 눈, 모래의 공격에도 하루하루 버티며 산다. 매일 시간에 쫓겨 초행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가 하면, 경찰은 하이에나처럼 호시탐탐 트럭을 노리고 업체는 바가지 씌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회사의 디스패처까지도 트럭 운전사에게 골탕을 먹이며 즐거워한다. 날마다 새로운 모험이 닥치고 화물, 사람, 자동차, 트럭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제의 불씨를 안고 있다. 뿐인가? 사슴, 곰, 너구리, 늑대, 갈매기, 고양이, 새, 박쥐, 나비, 땅벌 그리고 개까지도 우리에게 갈등과 애증의 시련을 던져 준다. 텍사스에서 유난히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위의 아폴로 문장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겪게 되는 문제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수도 있고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으로 엮어진 인연일 수도 있다.
이번 텍사스로 가는 운행은 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장거리인 만큼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했다. ‘드라이버! 문제가 발생했다!’ 이 말이 나오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트럭 드라이버의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게 되어있다.
댈러스, 오스틴, 샌안토니오를 지나 남쪽 끝 멕시코 국경 도시 라레도에 도착할 때부터 불안했다.
리오그란데 강을 사이에 두고 세계제일의 범죄율을 기록하고 있는 후아레스와 접한 엘파소가 마약 밀수의 도시라고 하면 라레도는 세계제일의 트럭 물류 도시다. 무려 하루 10,000대의 트럭이 국경도시 라레도를 통과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의 영향으로 멕시코, 미국, 캐나다와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육로물동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물류 도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부터 텍사스 라레도까지 무려 3,496킬로미터를 달려온 나도 그중의 하나다. 국경수비대의 불시 검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 트럭을 세워야 했으며, 박쥐 떼를 만나고, 물이 말라버린 강을 건너고,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에 처참하게 짓밟힌 아마딜로를 목격하고 앙상한 잡목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선인장군락 사이로 트럭을 달려 라레도에 도착했다.
화물은 멕시코의 공장으로 가지만, 나의 임무는 멕시코의 통관대행회사에 서류와 트레일러를 인계해주는 것으로 끝난다. 나도 멕시코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멕시코의 운전사가 트레일러를 인수하여 끌고 간다. 같은 방법으로 멕시코에서 온 화물은 트레일러에 봉인 된 채 넘겨 받아 캐나다까지 탈없이 가는 것이 나의 임무다.
라레도는 미국은 물론 멕시코 캐나다 트럭이 집결하는 트럭 타운으로 트럭 휴게소는 수백 대의 트럭들로 항상 바쁘다. 휴게소는 주유소와 편의점 식당이 있어 트럭뿐 아니라 여행객 캠핑카들로 가득 넘쳐 붐빈다.
나는 라레도가 싫다. 도로에 파인 구덩이, 좁은 도로, 회사 야드마저도 트럭이 들어오고 나가기에 너무나 비좁고 불편하다. 도시를 온통 뒤덮인 트럭들로 인한 교통 체증, 뜨거운 태양과 찌는 더위, 이런저런 이유로 짜증을 더한다. 라레도는 트럭에 의한 트럭의 도시로 너무나도 급격하게 발전하는 바람에 도시계획이 미처 따르지 못했다. 트럭 운행의 증가에 맞추어 차선을 늘리지만, 공사가 완성될 때는 이미 증가한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다시 차선을 늘리는 공사를 반복한다. 새 건물을 짓지만 정작 트럭이 주차할 공간은 없다. 월마트의 경우 새로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럭 주차장이 없다. 그러나 운전사들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월마트에 간다. 월마트는 경비를 두어 트럭을 막고 트럭은 쉬지 않고 계속 들어오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그래도 뜨거운 태양은 사람을 느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더위는 여유로움을 제공한다. 멕시코에서 화물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쇼핑하고 저녁에는 운전사와 어울려 뷔페를 즐기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뜨거운 오후에 즐기는 낮잠은 내게 최고의 기분을 선사한다. 트럭 문을 활짝 열고 침대에 누우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자연의 무더위를 즐길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보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축 늘어지고 졸음이 쏟아진다.
삐삐삐, 위성 호출기에서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가슴으로 떨어져 흘러내렸다. 멕시코에서 트레일러가 도착했으니 출동하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게 될까? 가슴이 설렌다.
목적지는 캐나다 캘거리, 화물은 건축용 알루미늄 자재, 건너야 할 국경은 몬태나주 스위트그라스, 또다시 트럭 운전으로 대륙 횡단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출발은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트러블은 가는 길목마다 지뢰처럼 널려 있다.
장거리 트럭 운행은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사고가 아니라도 하이웨이에서 고장이 나거나 경찰에게 걸려 벌금 딱지를 받을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거나 새로운 길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기적적으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집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곳,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낯선 도시,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일어난다. 믿는 것은 오직 자신뿐, 홀로 해결 해나가야만 한다. 이미 수많은 문제를 경험한 나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고난이 있으면 극복도 있듯 기대했든 또는 기대하지 않았든 끊임없이 닥쳐오는 문제를 극복하고 무사히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이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서류와 송장을 받아 확인하고 야드에서 트레일러를 찾아 연결한 다음 꼼꼼히 출발 전 검사를 마치고 트럭 휴게소로 향했다.
텍사스, 오클라호마, 콜로라도, 와이오밍, 몬태나를 거쳐 캐나다 국경을 통과하여 앨버타주 캘거리까지 3600킬로미터를 나흘 동안 달려야 하는 여정의 출발은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는 일부터 시작이다. 아메리카 최고의 맛이라고 자랑하는 파일럿 트럭 휴게소의 커피를 대형 텀블러에 가득 담아오는 것은 기본이다.
트럭 스탑은 트럭커들이 연료 넣고 샤워 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자연현상도 해결하고 밤에 주차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북미의 트럭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파일럿, 플라잉제이, 트래블 아메리카, 러브스, 페트로 등이 북미지역에 대형 체인으로 트럭 스탑이라는 말보다 트래블 플라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여행하는 일반 승용차나 RV라고 하는 캠핑카들을 트럭 휴게소에 끌기 위한 상술적인 용어이다. 그래서인지 승용차나 캠핑카들이 트럭 휴게소를 이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300대의 트럭이 주차하는 공간 옆에 줄지어 서 있는 십여 대의 캠핑카들을 바라보면서 어느덧 초여름, 바야흐로 캠핑 시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 역시 이번 휴가에 가족 캠핑을 떠날 계획이지만 아직 장소를 정하지 못했다. 알래스카에 가고 싶고 그랜드 캐년, 옐로우 나이프, 키웨스트에도 가고 싶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연료탱크 양쪽을 가득 채우고 앞 유리창에 죽은 벌레의 흔적까지 깨끗하게 닦아 낸 다음, 가까스로 빈 곳을 찾아 주차했다. 뜨거운 열기에 후끈하게 달아오른 후드에서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 하이웨이에서 부딪힌 수많은 벌레가 엔진 틈 사이에 낀 채 열기에 익어가고 있다.
출발하기 전에 엑스 라쥐 커피를 사러 가는 것은 이제 습관처럼 되었다. 반도 못 마시고 식은 커피가 되어버리는데도 왠지 커피가 없으면 불안하다. 장거리 운전 중에 졸음이 올까 봐 미리 준비하던 것이 이제는 커피 중독이 되었다. 때로는 다음 날 아침에 식은 커피를 마시기도 하는데 그 싸늘한 커피 맛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강하다. 나도 이제 이력이 붙은 아메리칸 트럭커가 됐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가면서 드라이버 휴게실의 시원한 에어컨을 기대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중간쯤 갔을 때 트럭들 사이에서 괴생명체가 불쑥 나타났다. 나를 보더니 꼬리를 살랑거린다. 몰골은 초라하고 털은 지저분한 신원이 불확실한 개가 앞을 가로 막는다. 목에 개 줄이 없는 걸로 봐서 주인 없는 떠돌이 개로 보였다. 나는 개를 피해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나는 개를 싫어한다. 절대 남의 개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겠지만,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끄럽게 짖어대는 사나운 짐승에 불과하며 잔디에 깔린 똥의 주범이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순해요!’ ‘착한 개’ ‘가족 같아요!’ 라고 하지만 모두 개 주인의 말이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다.
북미에서는 핏불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얼마 전에도 어린이가 물려 죽은 사건도 있었다. 때문에 핏불은 입마개를 해야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법으로 만들었다. 설령 물지는 않더라도 벼룩이나 병균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털이라도 묻을까 봐 싫다. 더구나 훈련되지 않은 개라면 절대 접근하지 않는다.
트럭 운전사들 사이에 괴담처럼 전해지는 ‘블랙 독’이라는 존재가 있다. 말 그대로 검은 개는 하이웨이 운전 중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즉시 사라져 버린다. 블랙 독은 사고의 원인으로 자주 지목되는데 검은 그림자가 하이웨이를 건너거나 옆으로 스치는 단순한 착시현상이거나 하이웨이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본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냥 사고의 핑계이거나 믿거나 말거나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이웨이 위에 지나가는 블랙 독은 존재한다. 나도 운전 중에 여러 번 목격했다.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개는 블랙 독이 아니다. 중간 크기의 잡종견으로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다. 진한 갈색의 털이 매우 지저분했다.
‘짜식, 볼품없이 생긴 꼬락서니로 나에게 꼬리를 치다니…….’
나는 옆으로 돌아서 트럭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트럭 운전사 휴게실에서 우연히 동료 아드리안을 만났다. TV룸에서 왕좌의 게임 드라마를 보고 있던 그는 운전 시간이 초과 되어 36시간의 리셋타임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는 다달이 내는 주택대출금 때문에 팀 드라이버 파트너와 함께 죽기 살기로 운행하고 있다고 자랑인지 불평인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루마니아에서 빈손으로 온 그가 주택까지 마련하였다니 북미에서 트럭운전도 할 만한 직업으로 추천해도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떠든 수다에 개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드리안과 헤어지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며 주차장으로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지린내가 풍겼다. 세워둔 트럭 앞에 도착한 나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다 말고 그만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개, 바로 그 볼품없이 생긴 그 똥색의 개가 내 트럭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더니 엉거주춤 일어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번에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중개 정도 되는데 무슨 품종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알려진 애완용은 아니고 약간 진돗개를 닮았는데 꼬락서니가 영 거지꼴이다. 전체적으로 똥개 전형적인 누런색 털에 검은 털이 섞여 있고 몸은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바짝 말라 비참할 정도로 가련했다. 등을 웅크리며 꼬리는 내려 거의 가랑이 사이로 말려들어가 있고, 두 귀는 바짝 누어 머리에 붙어 있다. 나에게 최대한 애처롭게 보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림없이 주인에게서 버려진 유기견일 가능성이 크다. 그냥 가까운 동네에서 놀러 나온 개일 수도 있고 길 잃은 개 일 수도 있다. 유일하게 눈에 띄는 것은 마치 텍사스의 개라는 것을 인증이라도 하듯 파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파란 스카프 외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초라하고 지저분한 개다.
개는 내 트럭 문 앞에 길을 가로막고 있다.
‘트럭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설마 물지는 않을까?’ 나는 개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이봐요, 혹시 이 개 아는 개요?”
그는 고개를 가로 흔들어 보이고 그대로 지나갔다. 나는 개를 피하여 천천히 옆걸음질로 조수석으로 가서 트럭 문을 열고 올라탔다.
자, 이제는 문제없다. 나는 트럭 안에 있고 개는 밖에 있으니까. 나는 창문을 내리고 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뭘 원하는 거냐?”
개는 계속 나를 바라보며 꼬리만을 흔들었다. 왠지 측은해 보였다. 우선 초라한 몰골이 그렇고 털 색깔도 우중충하고 더구나 꼬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도 처량하다. 그러나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 간절하게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에 묘하게 끌렸다.
"배고프냐? 뭐 좀 줄까?"
나는 냉장고에서 빵을 꺼내 한쪽을 떼어 바닥에 던져 주었다. 개는 한걸음 뒷걸음치며 힐끗 보더니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았다. 먹지 않고 나를 빤히 올려 보았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그럼 뭐야? 이제 나는 가야 하거든 캘거리까지는 무지하게 멀어, 꼬박 4일을 달려야 한다고…. 그러니까 안녕! 빠이빠이! 너도 네 갈 길을 가라. 오케이?”
그때 마침 주유소 직원이 옆을 지나가기에 그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혹시, 저 개 주인을 알아요?”
“아니, 그 개 며칠 전부터 왔다 갔다 하는데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어.”
그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가버렸다. 정말로 버려진 개인지도 모른다. 트럭 운전사 중에는 개를 데리고 다니다가 병들거나 다치거나 하면 그냥 길가에다 버리고 가 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저수지의 개들 같은 놈들……. 가끔 고속도로에서 떠돌다가 차에 치여 죽은 개들이 눈에 띄는데 동네 개가 차에 치여 죽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버려진 개들이 죽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인간에 의해 버려지는 애완동물은 수는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오죽하면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되지 않는 개를 도살처분을 할까.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이 개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개를 버리는 인간들이 더 나쁜 놈들이다. 예쁘고 귀엽다고 새끼를 데려와서 똥 싸고 물고 사료비에 병원비에 감당이 어려우면 슬그머니 길에다 버리는 무책임하고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인간들……,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는 자존감 없는 부류들!
나는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에어브레이크 버튼을 누르고 라이트를 켜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서서히 떼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문 아래 있던 개가 보이지 않았다. 엔진 소리에 놀라 도망갔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없다. 나는 트럭을 전진하려다 얼른 브레이크를 밟았다.
‘혹시……, 혹시 이 미친놈의 개가 트럭 밑으로 간 게 아닐까?’
주인 없는 개라도 재수 없이 내 트럭에 치이면 골치 아프다. 아무래도 확인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차 브레이크를 하고 문을 열고 나와 트럭 밑을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없다.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역시 보이지 않는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다 하고 다시 트럭을 한 바퀴 돌아 문 쪽으로 왔다. 계단을 한 발 올라서다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멈추었다.
“어! 너?”
바로 그 개는 어느 틈에 트럭에 올라갔는지 조수석에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너…! 거기서 뭐 해? 당장 나오지 못해?”
확인하러 내려갈 때 차 문을 열어두고 간 게 바로 실수였다. 나는 얼른 돌아서 조수석 쪽의 문을 열고 다시 소리쳤다.
“나와! 당장 나오지 못해?”
이번에는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침대칸 쪽으로 숨어버렸다. 참으로 난감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운행은 출발도 하기 전이 문제가 발생했다.
‘드라이버! 문제가 발생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괴생명체가 탑승했다. 어쩌면 좋은가?’
잡아서 끌어내자니 더러워 만지기 싫고, 혹시 물을까 겁도 나고, 몽둥이로 쫓아내자니 잔인한 일 같고, 동물 학대죄로 고발당할까 두렵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트럭에 올라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 문을 열어 두었지만 개는 구석에서 배를 바닥에 깔고 가만히 엎드려서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 직감적으로 내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개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럭 안에 버티고 앉아 있는 저 뻔뻔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괘씸했다.
고함을 질러보고 살살 달래도 보았지만 나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썹을 이리저리 씰룩거리다 가증스러운 혀를 내밀어 발을 핥고 쓰다듬는 척 능청을 부렸다. 아예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위에 턱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저 뻔뻔스럽고 괘씸한 녀석을 어떻게 한다!
갈 길이 멀어 즉시 출발해야 하는데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해결하거나 극복하면 된다. 우선 정신을 가다듬고 상황을 정리해 판단하기로 했다.
일단, 개 주인은 여기 트럭 휴게소에 없다. 직원에 의하면 며칠째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 떠돌이 개일 수도 있다. 집에서 도망 나왔거나버려진 개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내가 데리고 가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일단 가자. 가다 보면 무슨 수가 있겠지.’
시동을 걸고 서서히 트럭을 운전했다. 트럭 휴게소를 나가면서도 계속 옆 거울로 뒤를 봤다. 금방이라도 누가 쫓아오면서 ‘개 도둑!’ 소리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터스테이트 35번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이때까지 뒤에 납작 엎드려있던 개가 슬그머니 나와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좋아, 당분간 너를 태워주마! 하지만 다음 정차할 때까지다. 다음에서 너는 내리는 거다. 알았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트럭 운전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어도 오늘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은 처음이다. 내가 원치 않는 히치하이커를 태우다니…. 그것도 정체불명의 주인 없는 개를….
누런색 바탕에 검은 털이 나 있고 하얀 털이 약간 섞인 잡종견인데다 꼬리를 내리고 귀를 뒤로 눕히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드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이 개를 데리고 길가에 서 있으면 많은 사람이 동전을 던져 줄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규정상 배우자 외에는 동승자를 허락하지 않는다. 허락하지 않은 동승은 규정 위반으로 해고의 사유가 된다. 개도 허락하지 않은 동승자로 취급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운전하면서도 자꾸만 개를 바라보았다. 볼수록 궁금증이 커졌다.
'도대체, 어떤 개일까? 주인은 있는 걸까…? 목에 맨 파란색 스카프를 보면 반드시 누군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홀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을까? 하필이면 왜 내 트럭에 올라타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개 같으면 왔다 갔다 하거나 최소한 움직이기라도 할 텐데, 이놈은 마치 굳어버린 석고상 같이 앉은 자세로 앞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제는 제법 귀도 쫑긋하게 세우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앞발은 쭉 뻗어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있다. 어떻게 보면 진지하게 보이고, 또 어찌 보면 바보 같기도 하지만 그 처음 봤던 불쌍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 국경수비대 검문소를 통과하고 세 시간을 달려 어느덧 샌안토니오를 지났다. 라레도에서 이미 충분한 휴식을 했기에 피곤하지 않았다. 하루에 1000 킬로미터씩 운전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운전해야 한다. 10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서쪽으로 향하여 한참을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개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으응! 왜 그래?”
“뭐야? 내리고 싶냐? 잘 됐다. 당장 내려주지….”
“아니면, 으응 알겠다. 너 마려운 거지? 오줌 아니면 똥…. 똥! 안 돼!”
“너! 내 트럭 안에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에 너 제삿날이 되는 줄 알아! 안 돼!”
아무리 급해도 절대 하이웨이에서 멈출 수는 없다. 난 위급상황이 아니면 절대 트럭을 고속도로 갓길에 세우지 않는다. 다행히도 바로 트럭스탑 휴게소 간판이 보였다.
“어휴, 다행이다! 너 억세게 운이 좋은 놈이다.”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문부터 열어 주었다. 개는 쏜살같이 튀어나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정말 급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정작 볼일은 보지 않고 구석구석 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내 주차된 차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트럭을 주차하고 화장실로 향하다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무단 탑승한 괴생명체와 영원히 결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나는 트럭과 개가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보며 망설였다.
인연이란 필연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으며 실타래같이 엉키고 꼬이며 수천 년을 이어가는 인연도 있다. 모든 인연은 운명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개와 인연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도 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후, 트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 개가 안 보이기를 바랐다. 어디로 가버렸으면 시원하지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보이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도 한 듯 그 개는 어김없이 내 트럭 문 앞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그 초라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어디를 얼마나 빠르게 달려갔다 왔는지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가쁜 숨을 헐떡거렸다.
‘어쩐다? 다시 태우고 가나 그냥 가나?’
이번엔 이대로 두고 나만 떠나면 그만이다. 더 골치 아픈 이유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다. 그러나 그 불쌍한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문을 열고 말았다. 이왕 여기까지 한번 태우고 왔는데 조금 더 태우고 간들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오케이 타라! 그렇지만 다음 정차까지만이다. 그때는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는 거다. 알았지?”
단단히 엄포를 놓고 문을 열어주었다. 개는 계단을 훌쩍 뛰어올라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웨이에 들어서자 그놈은 다시 조수석에 의젓하게 자리 잡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당연히 자기 자리였던 것처럼……. 그리고 불쌍하게 짓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전방만 주시했다. 별 이상한 녀석이다. 처음에 받았던 처량한 인상에서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좀 기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텍사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언제나 따뜻한 태양이 내리쬐고 바람은 시원하고 잘 닦여진 도로는 드라이브의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다. 나를 즐겁게 한다. 텍사스의 도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히스패닉계 멕시칸이다. 뜨거운 한낮에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려운데 그들은 묵묵히 일하거나 쓰레기를 줍는다. 이 미국 땅에 멕시칸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텍사스주는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검문소를 만들어 놓고 국경 순찰대가 수시로 순찰하고 감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경순찰대에는 멕시칸 경찰이 많다.
오늘밤은 텍사스 정션에서 잘 계획이다. 내일은 콜로라도 덴버, 모레는 와이오밍을 지나 몬태나에서 자고, 그다음 날에는 스위트그라스에서 국경을 넘어 ‘까마귀 둥지길’로 캐나다 캘거리에 갈 것이다.
캐나다는 하이웨이 이름이 독특하고 자연 친화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까마귀 둥지길, 사슴 발자국 길, 활의 강, 흑곰 발바닥 길, 노란 머리의 길.’
그냥 따라 읽으면 한편의 시가 된다. 아름답지 않은가?
자연경관이라면 와이오밍과 몬태나도 절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아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서부 영화에서 인디언과 전투를 벌이는 거칠고 황량한 벌판, ‘제 3세계와의 조우’에서 초대형 외계 우주선이 내려와 인류와 최초로 조우한 곳은 바로 데블스타워이고 그리고 플라이 낚시의 절정을 보여준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몬태나의 강에서 촬영했다. 영화 ‘2012’에서는 세계종말이 몬태나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화산폭발로 시작됐다. 이처럼 산맥과 평야가 이루는 거친 들판은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연상되는 경관으로 전혀 낯설지 않다. 훗날 은퇴하여 자연을 즐기면서 살고 싶을 때는 와이오밍이나 몬태나의 강가에 살고 싶다. 대부분 지역은 그냥 거친 언덕과 바위 지층에는 깊지 않은 흙이 마치 껍질처럼 덮여 있어서 나무가 깊게 자랄 수 없어 잡풀들만 무성하지만 계곡으로 가면 그 경치는 달라진다. 나무와 강물 그리고 언덕이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롱혼이라는 엉덩이가 하얀 사슴들이 무리 지어 놀고 멀리 버펄로 떼가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옐로스톤은 미국에서 첫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유황 냄새로 가득 찬 간헐천이 끓어오르고 시간마다 수십 미터 분수처럼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는 화산지역으로 아직도 버펄로, 곰, 사슴, 늑대들이 서식한다. 따라서 미국 전역에서 캠퍼들이 몰리는 곳으로 나 역시 가족 캠핑으로 꼭 가고 싶은 곳으로 꼽고 있다.
개는 마치 석상처럼 꼼짝 않고 앉아만 있었다. 여기저기 설쳐 대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좀 심심했다.
“인마, 너 이름이나 있냐? 솔직하게 대답해 봐, 너는 무전 여행하는 떠돌이 개지? 도망친 강아지 맞지?”
“......”
“대답 해 봐, 주인이 너를 때리더냐? 왜 너는 내가 이야기하는데 쳐다보지도 않냐?”
“......”
“트럭 처음 타보냐? 그렇게 앞만 보게!”
대꾸는커녕 미동도 없이 망부석처럼 그대로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녀석이 신기했다. 내가 운전하면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하기는 처음이었다. 트럭운전을 하면 말할 상대가 없으니 며칠을 말 한마디도 못 한 채 그저 운전만 하는 고독한 수행자였는데 이번 운행은 심심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앞만 보고 있는 개한테 말을 하다 보니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라는 톰 행크스가 주연 영화가 생각났다.
“너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 봤니? 안 봤어? 네 주인은 영화도 안 보더냐?”
“......”
“그 영화에서 말이야, 톰 행크스가 택배 수송기를 조종하고 가다 태평양 바다 위로 추락한단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무인도에 살아남지만 구조되지 못하고 몇 년을 그 무인도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보내게 되지. 지금 나처럼 대화상대가 없어 고독하고 외로워진 그는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윌슨 Wilson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같이 놀고 다투고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거든…. 지금 내가 너한테 이야기하는 게 꼭 그 톰 행크스하고 윌슨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나는 이야기하고 너는 대답 없이 앞만 보고. 똑같지 않냐?”
“......”
“몇 년이 흘러 톰 행크스는 마침내 뗏목을 만들어 섬을 탈출하게 되는데, 그는 윌슨을 데리고 간다. 그러나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나 윌슨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 톰 행크스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윌슨을 구하기 위해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들었단다. 어때? 정말 감동적이지? 그렇지?”
“.......”
“그러나 윌슨은 저 멀리 파도에 실려 떠내려가 버리고 톰은 목이 터져라 그 이름을 부르짖는 거야. 윌슨! 윌~슨! 위~일 슨! 하고 말이야. 마치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잃은 것처럼…….”
“어때? 너 이해할 수 있니? 트럭 운전사들은 그 고독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지….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나도 너를 윌슨이라고 부르고 싶어. 어차피 나는 네 이름도 모르잖니? 어때? 윌슨! 윌~슨! 위~일 스~은! 괜찮지? 윌슨! 대답 안 해도 좋아. 어차피 윌슨은 말이 없으니까. 대답 안 해도 좋은데 내가 얘기할 때는 나 좀 쳐다봐라! 윌슨, 응?”
“......”
지독한 녀석, 태워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이름도 지어 주었는데 감사할 줄 모르고 염치도 없는 놈, 윌슨! 뻔뻔스러운 히치하이커!
텍사스 아마릴로 트럭 휴게소에서 나는 편의점에 다녀왔다.
“짜잔~ 윌슨, 이게 뭐게?”
트럭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깡통을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윌슨은 그 깡통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역시 먹는 거 앞에서는 너도 별수 없이 개로구나!”
앞만 보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더니 먹을 것을 준다니까 뻘떡 일어나다니….
“아무리 집 없는 떠돌이 개지만 밥그릇은 있어야지. 기다려!”
나는 내가 마이크로 오븐용으로 쓰던 플라스틱 그릇을 꺼내 쓱쓱 문질러 닦은 후 깡통을 따 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먹어~ 치킨이다! 먹어라…. 너도 대체 얼마나 굶었냐? 자 이걸 먹고 오늘은 여기서 자는 거다.”
이상하게 윌슨은 계속 꼬리를 흔들면서 밥그릇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으응? 왜 안 먹느냐? 싫어? 네가 좋아하는 게 아니야? 이 자식 얻어먹는 주제에 뭘 가리냐? 어서 먹어!”
윌슨은 계속 개밥을 앞에 두고 천연스럽게 바라보고 있어서 다른 개밥을 사 왔는지 염려되었다.
“먹기 싫으면 관두든가!”
나는 화가 나서 좀 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먹어! Eat!”
마지막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비로소 먹기 시작했다. 한국말로 먹으라고 할 때는 가만히 있더니 영어로 Eat! 하니까 먹는다.
“어? 이놈 봐라! 너 보통 개가 아니구나! 학교 좀 다녀본 강아지구나? 훈련 좀 받았나 본데!”
보기에 꾀죄죄하게 생겨서 우습게 봤는데 이 행동 하나로 윌슨이 다시 보였다. 한 그릇을 비워내고 바닥까지 싹싹 핥았다.
“자식 배가 엄청 고팠구먼! 자 하나 더 먹어라!”
나는 깡통 하나마저 더 까서 주고 새삼스레 보기보다 영특하게 보였다.
“너 때문에 내일 쇼핑가야 하겠다. 하지만 무슨 개밥이 그렇게 비싸냐? 내가 먹는 참치는 1달러인데 개가 먹는 깡통 하나도 1달러나 되냐? 나는 너를 데리고 있을 능력이 안 된다. 내게 딸린 식구가 있다는 말이야. 큰 아이 대학등록비 대기도 버거워 어깨가 무겁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바로 울프, 늑대다. 늑대 중에서도 배고픈 늑대, 바로 헝그리 울프다. 늑대라니까 네 사촌쯤으로 생각하나 본데 그 앞에 ‘헝그리’가 있잖니? 배고픈 늑대! 고로 너도 나랑 함께 있으면 헝그리 독 Hungry Dog 즉 배고픈 개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포기하고 네 갈 길 가라! 새 주인 찾아가라! 내 말 잘 알아들었냐?”
일반적으로 개 주인은 강아지 티를 벗을 때쯤 개 훈련소에 보낸다. 그곳에서 우리가 흔히 하는 재주 앉아, 서, 가만히 앉아있어, 둥글어 봐 등에서부터, 테니스공 또는 막대기 주워오기, 프리스비 놀이도 가르치지만, 진짜는 바로 대소변을 가리는 방법부터 먹는 법을 가르친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철저하게 훈련하는 것이다. 주인이 먹을 것을 주고 기다리게 한다. 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다. 남이 아무리 맛있는 것을 주어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절대 먹지 않는다. 또 함부로 짖지 않게 하고, 주인이 아무리 반가워해도 팔을 벌리지 않으면 뛰어오르지 않는다. 고급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 달려들면 옷이 앞발톱에 긁혀 옷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 밖에도 많다. 함께 산책할 때 개 줄에 발이 엉키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거나, 걸을 때 주인보다 한 발 뒤에서 따라가도록 하고, 용무가 급할 때 주인에게 의사를 표하는 법 등등을 가르쳐서 개 훈련소를 갔다 온 개는 아주 훌륭한 친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개가 영리하거나 사고력이나 분별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훈련은 개의 본능을 이용할 뿐이다. 철저하게 먹이를 이용해서 반복적인 훈련의 결과이다.
잠깐 개의 본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자기의 개가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시선에서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보기 때문이다. 개는 두려움이나 배고픔 등 기본적인 감정을 느낄 뿐 죄책감, 복수심, 배려심 등 복잡한 감정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개에게 명령하는 것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앞의 위험을 보지 못한 채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다.
애완용 개는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사냥을 할 줄 모른다. 사나운 들개들도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이유는 함께 사냥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완견은 인간에게 잘 보이고 옆에 가까이 있으므로 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 개의 관점에서 주인은 주거와 식량을 해결해 주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수천 년 동안 개와 인류와의 관계로 이어져 왔다. 우리는 가끔 반려견에 관하여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듣는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 주인을 구하는 용감한 개, 영화 대본을 읽기라도 한 듯이 연기를 잘하는 개 등 이것들은 꾸며진 이야기들이며 우리가 그렇게 해석하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렇지 사실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자.
첫 번째 이야기 - 물에 빠진 주인을 구한 용감한 개.
주인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이 용감한 개는 물에 뛰어들어 주인의 목숨을 구한다. 주인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사실이나 이 개는 자신의 판단 때문에 물로 뛰어든 것이 아니다.
개의 관점에서 개의 생각을 들여다보자.
개의 생각: 주인이 물에 뛰어들어 놀자고 한다. 가뜩이나 날씨도 추워서 수영하기도 싫은데, 그 먹을 수도 없는 막대기를 물 한가운데에 내 던지는 것을 10번도 넘게 시켰다. 맛있는 닭고기 생각에 할 수 없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숨도 차고 물에 젖은 냄새도 싫다. 일부러 주인 옆에 가서 너도 좀 젖어보라 하는 마음으로 세차게 몸을 흔들어 물을 털었다.
슬그머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바쁜 척하고 있는데 주인이 물 한가운데에서 소리치며 나를 부른다. 안 들어가고 물가에 그냥 있는데 자꾸 들어오라고 손을 흔든다. 양팔을 흔들며 자꾸 들어오라고 한다. 내가 만약 깡통을 딸 줄 안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을 텐데, 매일 꼬리를 흔들지 않아도 될 텐데. 요즘 맛있는 것은 모두 깡통으로 돼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개들에 깡통을 딸 수 있는 손을 안 만들어 준 조물주가 원망스럽다.
할 수 없이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주인에게 헤엄쳐갔다.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들었다. 그런데 내 마음도 모르는 주인이 갑자기 내 목을 잡더니 놓아주지를 않는다. 이거 물귀신 놀이를 하자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허우적거리다 입속으로 콧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물 몇 모금 먹고 나니 이거 죽을 맛이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버둥거렸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주인은 물귀신처럼 내 목에 매달려 놓아주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하여 허우적거렸다. 아이쿠, 이제 나 죽는다. 젖 먹던 힘까지 있는 대로 죽을힘을 다하여 헤엄쳐 겨우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제야 주인이 목을 놓아주었다. 다시는 이런 물귀신 놀이는 하지 말아야겠다. 기운이 빠지고 지쳐서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데, 주인이 미안했던지 껴안고 뽀뽀하고 쓰다듬고 난리다. 그래 알았어! 다음부터는 이런 심한 장난하지 마라. 나도 죽을 뻔 했다. 미안한 줄 알았으면 이따 맛있는 닭고기 깡통 하나만 따줘!
두 번째 이야기-화재에서 주인을 구한 개.
모두가 조용하게 잠든 밤, 전기합선으로 집에 불이 났다. 주인은 불이 난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타죽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영리한 개는 주인의 위험을 알아채고 잠든 주인을 올라타고 핥고 흔들어 깨워서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주인의 목숨을 구한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 이야기 역시 주인을 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자,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개의 생각: 편안하게 누워 자고 있는데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저녁에 산책 나갔다가 목줄에 끌려 다니기만 해 목이 아파서 꼼짝도 하기 싫었지만 냄새가 너무 고약해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조물주는 어찌하여 내 코를 예민하게 만들어 주셨을까? 짜증난다. 피곤한 몸을 끌고 냄새를 따라갔다.
주인이 잠 안 자고 딴 짓하고 있나 가 보았는데 침대에 엎어져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도대체 무슨 냄새지? 가끔 부엌 쪽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한데….
냄새를 따라가 보니 세탁실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 누가 세탁실에서 요리를 하나? 부엌에서 나는 냄새는 구수한데 이 냄새는 숨이 탁 막힐 정도로 메스껍다. 뭔가 이상하다. 세탁실 문에 가까이 가보니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냄새가 너무 지독하고 뜨거워서 싫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독한 냄새 속에서도 쿨쿨 잠만 잘 잘까?
이거 어떡하나? 에이, 밖으로 나가야겠다. 어? 문이 잠겼네! 창문도 닫혀 있고, 어떡하지? 주인을 깨워서 문 좀 열어달라고 할까? 안 돼! 얼마 전에도 심심해서 곤히 자는 주인한테 놀아달라고 깨웠다가 한 대 얻어맞았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개구멍 하나쯤 있어야 한다. 냄새는 점점 심해지고 뜨거운 열기로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할 수 없다! 맞아 죽어도 주인한테 가서 문 좀 열어 달라고 해야겠다. 견딜 수가 없다.
주인 침대로 올라갔다. 아직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얼굴을 핥고 발로 건드리고 했는데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목청껏 짖어대고 펄쩍펄쩍 뛰었더니 그제야 눈을 부스스 뜨며 일어났다. 또 때릴까 봐 얼른 문 쪽으로 숨었다. 주인이 뒤따라 쫓아온다. 걸음아 날 살리라고 문을 사정없이 앞발로 긁어댔다. 그런데 오늘은 안 때리고 문을 열어준다. 이상하다. 마당에서 바라보니 집에 불길이 솟는다. 누가 집을 요리하고 있는가보다. 활활 타는 불구경은 역시 재미있다. 봐라! 동네 사람들도 모두 나와서 구경한다.
주인들은 가끔 이해하기 힘들다. 옛날에 깨웠다고 걷어차더니 오늘은 쓰다듬고 안아준다. 사람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별종이다.
세 번째 이야기 -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충성스러운 개.
실제로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이야기다. 개가 주인하고 길을 건너다 그만 교통사고로 주인이 죽고 만다. 그 후 개는 그 주인을 잊지 못하여 매일 그곳에 와서 한참을 앉아있다 가곤 한다. 신문과 언론에 주인을 잊지 못하는 충성스러운 개라고 대서 특필됐다.
또 개의 생각을 알아보자.
개의 생각: 주인과 함께 바쁜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건너편에서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해 오는 차가 나타났다. 나는 운동신경이 예민해서 피할 수 있었는데 우리 주인은 그만 피하지 못하고 차에 치여 버리고 말았다. 큰일 났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몰려온 사람들 틈에서 서성거렸다.
조금 있다가 구급차가 주인을 태우고 가버렸다. 더 큰일 났다. 이제부터 누가 밥을 주나? 걱정이다. 사거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있는데 옆에 풀빵 파는 아저씨가 풀빵 하나 던져주었다.
아마 내 모습이 처량했나 보다. 그런데 그 풀빵 맛이 기가 막힌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꿀맛이다. 혹시 하나 더 줄까 기다려 봤는데 안 준다. 할 수 없지. 내일 다시 와 봐야지. 나는 매일같이 풀빵을 얻어먹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가서 처량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풀빵 아저씨는 매일 한 개씩 만 준다. 언젠가는 손님이 떨어뜨린 풀빵도 먹는 재수 좋은 날도 있었다. 이 풀빵 아저씨가 주인이면 좋겠다.
그럼 매일 맛있는 풀빵을 먹을 수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웬 사람들이 몰려와서 나를 사진 찍고 쓰다듬고 난리다.
충성이 뭔지 모르지만 나는 그 풀빵이 먹고 싶다. 풀빵이나 좀 많이 주라.
이것은 실화이다. 실제 개는 풀빵 장수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자 그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개는 동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그저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개 주인들은 자기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꾸며서 이런 이야기들을 덧붙이기를 좋아한다. 개의 이런 본성을 이용해서 우리 인간에게 편리하고 유리하게 훈련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윌슨이 잘 훈련받은 개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윌슨이 대견스러웠다. 단지 훈련사가 스스로 목욕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불만이다. 더러운 냄새, 지저분한 털이 싫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윌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윌슨과 나 사이에 신체적인 접촉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부드러운 털 위로 윌슨의 따뜻한 체온이 손으로 전해왔다. 인간과 개 사이에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교감이 있다.
텍사스를 벗어나 오클라호마주를 지나 아름다운 콜로라도에 들어서면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풍력 발전하는 거대한 윈드 터빈이 숲을 이루고 있다.
돈키호테가 그의 애마를 몰고 산초와 함께 전투를 벌인 것이 풍차였듯이 나 울프는 트럭을 몰고 윌슨과 함께 하얗고 거대한 날개 윈드 터빈 사이로 돌진한다. 이곳은 라디오 전파조차 닿지 않는 대평원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 평원이 끝나는 곳에서 대륙의 척추 로키산맥이 시작된다.
벌써 3일째 북북서를 향하여 운전했다. 때로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가족이 바로 그런 것이다. 다만 항상 있으므로 그 존재의 소중함을 잊고 무관심하거나 작은 불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말이 없는 윌슨이라도 옆 좌석에 앉아있으니 위안을 받는다.
나는 주절주절 이야기해도 윌슨은 듣는 둥 마는 둥 조수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고 있다
“윌슨, 너 뭐 할 줄 아니? 훈련받았으면 재주 좀 피워봐라!”
“한번 해 보자! 스탠드 업!”
윌슨이 의자에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띠고 일어섰다. 신기한 녀석이다.
싯 다운! 업! 롤 오버! 턴 어라운드! 점프! 스테이! 레프트! 라이트!
신기하게도 윌슨은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햐! 이놈 정말 대단한데…. 주인이 단단히 교육을 제대로 했구나! 또 뭐가 있을까? 아쉽게도 아는 명령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휴게소에 정차하면 공놀이나 프리스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윌슨이 새삼스럽게 대견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의 행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항상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가서 볼일을 보며 몸을 흔들어 털어 내는 일도 안에서 하지 않고 밖에서 한다. 이렇게 잘 훈련된 개라면 그냥 키워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트럭 운전하는 동안 친구삼아 데리고 다녀도 좋겠다.
처음 보았던 초라하고 지저분한 인상은 사라지고 점점 예뻐 보였다. 윌슨은 마치 내 개라도 된 양 의젓했다. 그런데 윌슨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트럭에 동승하고 나서 나에게 꼬리를 흔들지도 않았고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언제나 조수석에 버티고 앉아 전방을 주시했다. 아무래도 보통 개는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짓거리를 보면 이상한 면이 있는 놈이다. 윌슨은 답답했는지 조금 열어놓은 창문으로 코를 내밀어 킁킁거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가끔 몸을 일으켜 세워 좌우로 흔들거리며 끙끙거리면 볼일을 보겠다 의미였다. 트럭 휴게소에 세워 내려주면 윌슨은 정신없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온다.
어느덧 콜로라도 덴버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는 가수 존 덴버도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살았다. 로키산맥의 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덴버 시내 빌딩 너머로 아스라이 보인다. 대평원에서 바라보면 톱날처럼 솟은 산들이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다가갈수록 점점 커져 마침내 거대한 산맥에 다다른다. 산인지 구름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가 산의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만년설로 덮인 봉우리들이 웅장한 자태로 버티고 있다.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첩첩 산들이 마치 거대한 장벽을 이루듯 가로막혀 있고 높은 산봉우리에는 하얀 만년설은 감히 넘지 못할 위엄을 자랑한다.
서부개척시대에 동부해안의 뉴욕이나 보스턴에 도착한 개척자들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서쪽으로 왜건을 끌고 가다 저 웅장한 로키산맥을 앞에 두고 여기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히 저 험준한 산맥을 보고서도 넘을 용기가 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여기에 살면 저 산봉우리를 하나씩 정복하고 싶다. 바로 이 덴버의 트럭 휴게소에 트럭을 세우고 길 건너 슈퍼마켓을 다녀왔다. 나를 위해 과일과 빵을 사고 윌슨을 위해 개 사료까지 샀다. 쇼핑을 마치고 트럭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아줌마가 트럭 앞에 서 있다. 아줌마는 트럭 옆에 앉아 있는 윌슨에게 뭔가 말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내게 물었다.
“당신 개입니까?”
순간 멈칫했다. 혹시라도 이 개를 아는 사람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나랑 같이.....”
나는 말을 흐리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개를 좋아해요. 전에 개를 키웠어요.”
하면서 윌슨에게 손짓한다. 윌슨은 처음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꼬리를 내리고 살살 옆으로만 갈 뿐 다가서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렇게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서양 아줌마가 말도 걸어오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아주 탄탄하게 생겼다.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줌마! 원하면 이 개를 가져가세요!”
“정말로?”
“예, 그럼요. 이 사료도 함께 드릴게요.”
나는 개 사료가 든 봉지를 들어 보였다. 아줌마는 관심 있는 듯이 한참 윌슨을 살펴 바라보더니 돌아서며 말했다.
“사양합니다. 안녕!”
그리고는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나는 윌슨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 바보야! 그럴 땐 좀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가서 아양도 좀 부리고 그래야지. 그렇게 지저분한 주제에 꼬리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머저리같이 행동하면 누가 널 데려가겠느냐? 새 주인 만나면 떠돌이 생활 청산하고 잘 먹고 잘 잘 수 있잖아. 이 거지 같은 놈아! “
트럭에 타고서도 나는 계속 나무랐다.
“네가 좀 깨끗하고 귀여움 떨고 그래 봐 내가 우리 집에 데려다 키운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딸이 생일 때마다 강아지 사달라고 조르는데, 만일 너를 데려갔다가는 우리 딸아이가 기겁해서 도망가겠다. 너 마지막으로 목욕은 언제 했니?”
그렇다. 딸이 생일 때마다 강아지 사 달라고 떼를 써서 매년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한번은 잘 아는 분에게 부탁해서 그 집 강아지 초롱이, 요크 테리어를 사흘 동안 빌려와서 놀게 해주며 달랜 적도 있다. 나는 개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윌슨처럼 말썽부리지 않고 말도 잘 듣고, 키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은 거지꼴을 하고 있어서 더러워 보일 뿐, 가만히 살펴보면 윌슨도 제법 잘생긴 개다. 며칠 사이에 정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데려다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다. 어쩌면 이것이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내일은 캐나다로 건너가야 하는데 어떻게 국경을 통과해야 할지 걱정이다. 윌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여권이야 필요 없겠지만 예방접종이나 뭐 그런 서류는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 문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비록 떠돌이 개일지라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혹시라도 세관원이 개에 관해 질문하면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내 개라고 거짓말을 하였다가 탄로 나면 어떻게 될까? 회사에 알려지면 해고통지를 받는 걸까?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게 최상의 방법인데 그러면 아마 윌슨은 유기견 보호소 Dog pound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윌슨, 너 유기견 보호소가 뭔지 알아? 너처럼 떠돌아다니는 개를 잡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두어 놓는 곳이야. 거기서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있게 되는데 네 지저분한 꼬락서니를 보면 거기서 평생 살다가 죽게 될 거야. 왜냐고? 아무도 너를 안 데려갈 것이 뻔 하니까. 알아들었냐? 알아? 몰라? 이 답답한 놈아!”
사실 걱정이 된다. 그냥 불법으로 몰래 데리고 국경을 건너기도 겁나고, 사실대로 이야기해서 동물보호소로 가게 하는 것도 불쌍하고 어쩐다?
북아메리카를 횡단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고 해결해 나가는 데 익숙해졌어도 이렇게 갈등하는 시간은 여전히 괴롭다. 그냥 그렇게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별다른 뾰족한 묘안이 생각나지 않는다. 방법이 있다면 국경 바로 전에 개를 내려주고 나만 먼저 국경을 통과한 후 기다려 보는 것이다. 윌슨이 걸어서 국경을 지나 나에게 오면 인연이려니 생각하고 딸에게 데려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넘어 오지 않는다면 잠시 스쳤던 인연으로 생각하고 이별하는 것이다. 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너는 대륙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로 견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4일째, 어느덧 와이오밍의 고원지대를 통과한다. 이제 몬태나만 거치면 캐나다 앨버타주로 들어가게 된다. 25번과 90번 하이웨이가 만나는 지역에서 오른쪽으로 큰 뿔 산맥(Big Horn Mountain)이 보이고 그 너머가 바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이고 그 아래는 티톤 국립공원이다. 빅혼 마운틴의 한가운데 솟아오른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마치 소의 뿔처럼 우뚝 솟아 있어서 그 산의 이름은 리틀 빅혼이다. ‘작은 큰 뿔’이라는 뜻인데 큰 뿔이 작으면 얼마나 작고, 작은 뿔이 크면 또 얼마나 클까? 이곳을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윌슨 이야기 하나 해 줄게! 몬태나를 호령하던 인디언 부족에 빅혼 Big Horn이라고 불리는 용감한 추장이 있었다. 추장은 릴리꽂이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여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바로 리틀 빅 혼 Little Big Horn이다. 리틀 빅 혼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은 윌슨이었다.”
갑자기 윌슨이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응 왜 그래? 또 마려워? 조금 전에 휴게소에서 쉬었잖아,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그냥 참아라. 여기는 내가 정차하려던 곳이 아니야.”
바로 앞에 트럭 휴게소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바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갈라지는 길 입구이고 몬태나주 관광 안내소가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이때쯤이면 관광과 캠핑으로 오가는 차들이 붐비기 때문에 아주 혼잡한 곳이다. 열두 개의 주유 펌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펌프마다 이중 삼중으로 대기하고 있는 차들 때문에 일단 트럭을 몰고 들어가면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윌슨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의자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창밖으로 코를 내밀었다 다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고 끙끙거리고…. 좀 심하게 행동했다. 아무래도 잠시 쉬어 가는 편이 좋을 듯했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서서히 속력을 낮추어 고속도로에서 벗어났다. 역시 우려했던 대로 휴게소 입구 훨씬 전부터 트럭 승용차 캠핑카 차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서 있었다. 주유하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관광 안내센터에 가기 위해, 또는 나처럼 강아지 볼일 보기 위해 가는 차들이겠지.
“조금만 기다려, 일단 트럭을 주차할 곳부터 찾아야지.”
의자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끙끙거리는 윌슨을 타이르며 주차장을 두 바퀴 돌고 나서야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막 빠져나가는 트럭을 발견하고 기다렸다가 겨우 주차했다. 문을 열어주자마자 윌슨은 즉시 뛰어내렸다. 뭘 잘못 먹었나 생각하면서 나는 휴게소 빌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도 채 안 가서 나는 개 짖는 소리에 돌아섰다.
윌슨이 짖는다!? 윌슨이 미친 듯이 짖어대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주차한 차들 사이를 지나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번도 짖어본 적이 없는 윌슨이었다. 항상 힘없이 살살 기기만 했던 윌슨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짖어대는 것이다. 나는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아 불안했다. 나의 시선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뛰어가는 윌슨을 쫓아 따라갔다. 윌슨은 주차장을 지나고 주유소를 지나 큰길 쪽으로 달려갔다. 윌슨이 도망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윌슨이 왜 그러지? 하는 의아해하면서도 너무 뜻밖의 일이고 워낙 빠르게 달려갔기 때문에 감히 쫓아갈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큰길로 빠져나가고 있는 흰색 캠핑카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윌슨이 계속 흰색 캠핑카를 따라가면 짖어대자 캠핑카가 멈춰 섰다. 그러더니 캠핑카 문이 열리고 조그만 사내아이가 내렸다. 다음 순간은 나의 숨을 멈추게 할 만큼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꼬마는 내리자마자 달려드는 윌슨을 부둥켜안고 바닥에 함께 뒹구는 것이었다. 한순간 윌슨이 어린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했다. 멀리서 나는 소리였지만 나의 귓전에 확실하게 들렸다.
“와드! 와드! 너 돌아왔구나! 어디 갔었어?”
“와드!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엄마! 아빠! 빨리 나와 봐! 와드가 돌아왔어!”
그리고는 개와 소년은 서로 얼싸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윌슨은 계속 소년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곧이어 엄마와 아빠도 캠핑카에서 나왔다.
“이거 믿을 수가 없어!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남자가 소리쳤다. 이어서 높은 높은음의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건 기적이야! 우리는 이 개를 텍사스에서 잃어버렸는데….”
“아무렴, 기적이고말고.”
소년과 엄마, 아빠, 그리고 윌슨 아니 와드는 한참동안이나 서로 얼싸안고 기적 같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잠시 후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멀리 사람들 사이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내가 그들의 눈에 보일 리가 없다. 나는 그냥 넋 잃은 사람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소년, 엄마, 아버지 그리고 윌슨까지 모두 태운 하얀색의 캠핑카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큰길로 나갔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나도 모르게 몇 걸음 따라가며 팔을 내저었다.
"윌슨!"
"윌슨은 내 개인데"
"윌슨…."
중얼거리듯 외쳤으나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캠핑카는 신호등 앞에 잠시 섰다가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회전해서 언덕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쁜 놈!’
한참 만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뻔뻔스런 개 윌슨! 아니 와드는 배신자!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다니? 집에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네 가족을 다시 만나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가 버리나? 어쩌면 그렇게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다니 나쁜 새끼! 태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얘기해주고…. 난 뭐냐?’
지난 나흘 동안 윌슨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생전 처음 만난 나에게 꼬리를 흔들던 초라한 개, 허락도 없이 내 트럭에 올라탄 무례한 개.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던 나무토막 같은 개, 쉴 때마다 어디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이상한 개, 좋은 인연으로 맺고 싶었는데 배신으로 뒤통수를 친 나쁜 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 윌슨. 뻔뻔스러운 히치하이커 윌슨!
서운함을 분노로 표출했다. 혼자 돌아서는 내 발길은 한없이 무거웠다. 다시 트럭을 운전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윌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꾸만 텅 빈 조수석 의자를 보게 되고, 혹시나 흰색 캠핑카가 보일까? 돌아보게 되고, 어디선가 윌슨이 달려 나올 것만 같았다. 문제의 주인이 없어져서 시원해야 할 텐데 내 마음은 어딘가 허전함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털어버리고자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캐나다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힘껏 외쳤다.
‘올해 작은 딸 생일에 예쁜 강아지 한 마리 사주자! 저 뻔뻔스럽고 괘씸한 윌슨보다 더 영리한 진돗개를 사자!’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남아 있다.
텍사스 라레도의 트럭 스탑 휴게소에서 그 많은 트럭 중에 윌슨은 내 트럭을 의도적으로 올라탔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이상하다. 윌슨은 내가 어디로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탄 것일까? 그러면 어떻게 내가 주인이 간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에필로그
2년이 지난 여름날,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캠핑을 떠났다. 물론 우리 집 귀염둥이 에드가도 함께 갔다. 에드가는 포메라니안 종으로 조그만 강아지다. 당연히 개 훈련소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모범생이다. 우리 가족은 ‘빨강머리 앤’의 고향 캐빈디쉬 주립공원에 텐트를 쳤고 바닷가에서 직접 캐온 조개를 굽고 있었다. 해 질 무렵이라 어스름하게 어두워졌을 때 모닥불 앞에서 앉아 에드가와 놀고 있던 작은 딸의 다급한 외침 소리에 돌아보니 늑대 한 마리가 우리 쪽을 향하여 지켜보고 있는 것이 불빛에 보였다. 모두 놀라서 경직된 상태로 잠시 긴장이 흘렀다. 나는 요리하고 있던 집게를 무기 삼아 겁에 질린 딸들을 뒤로 보내고 앞으로 나섰다. 이때 어둠 저편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와드! "
"와~드! "
그러자 늑대는 한참을 그대로 서서 우리를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갈색 털을 가진 늑대의 목에 파란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 입에서 가볍게 신음이 터졌다.
‘윌슨!’
그날 밤 텐트 안에서 두 딸은 나의 친구 윌슨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빠, 아까 그 개가 정말 윌슨이었을까요?"
"글쎄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어. 만약 윌슨이었다면 친구에게 인사하러 온 거겠지."
인간과 개는 일만 오천 년 동안 서로 교감을 주고받았다. 개와 인간은 서로 불안한 존재이다. 서로 다른 존재임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 인간과 개는 비로소 최고의 친구가 된다.
히치하이커 윌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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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의 행동 묘사 글을 읽는데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 하다.
"조수석 문을 열어 두었지만 개는 구석에서 배를 바닥에 깔고 가만히 엎드려서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면 직감적으로 내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개도 알고 있다.
고함을 질러보고 살살 달래도 보았지만 나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썹을 이리저리 씰룩거리다 가증스러운 혀를 내밀어 발을 핥고 쓰다듬는 척 능청을 부렸다.
아예 나의 존재를 무시하며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그 위에 턱을 포개고 눈을 감았다.
.......
이놈은 마치 굳어버린 석고상 같이 앉은 자세로 앞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제는 제법 귀도 쫑긋하게 세우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앞발은 쭉 뻗어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있다."
⊙개의 본능과 인간의 편리한 해석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네이 ㅎ
⊙아무튼 학교 좀 다녀본 강아지 덕분에 대륙 종단을 함께 하네 ㅎㅎㅎ
상상은 무성의 깊은 사고력에서 나오는 거이라 인정.
사실 나는 개와 친하지 못한데 개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이라 생각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