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조세이 탄광 유골 발굴 약속 없이,
민간에서 인양한 유골 4점만 DNA 감정?
- 한일 정상회담 관련 -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안동에서 19일 안동에서 한일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 현안을 논의했지만,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빈손 외교나 다름없다.
이날 양국은 ▲중동 상황에서 비롯된 공급망과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동북아·한반도 정세에 따른 안보 한일·한미일 협력 등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고 협력을 강화해 가기로 했다. 또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세이 탄광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해 DNA 감정의 구체적 절차와 방법에 합의했다.
다카이치 총리와의 양자 회담은 지난해 11월부터 네 번째 만남이며, 앞서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와의 세 차례 정상회담을 포함,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벌써 일곱 차례 만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동발표문에서 “오늘 회담을 포함해 저와 다카이치 총리님은 지난 7개월 동안 무려 네 차례나 함께 했다.”며 “이는 양국의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필요할 때 만나 소통하는 셔틀 외교가 완전히 정착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
가까운 이웃 한일 정상에 자주 만나고 소통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일 간 양국이 외교적 갈등 사태로 치닫던 원인과 배경을 감안하면, ‘셔틀 외교’에만 마냥 자족할 일 인지 의문이다. 특히, 일본이 이행해야 할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은 피한 채 ‘셔틀 외교’만 강조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셔틀 외교'를 본격 강조하고 나선 것은 사실 윤석열 정부였다. 앞서 아베 정권은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구실삼아 적반하장 격으로 한국 반도체의 핵심 소재 부품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 보복을 단행함으로써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이에 윤석열 정권은 악화된 한일 관계의 조기 복원이 필요하다면서, 엉뚱하게도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역사 정의를 뒤엎었다. 결국 일본이 치워야 할 오물을 한국이 치우겠다고 나서면서부터 한일 간 소위 ‘셔틀 외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근본 원인이었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윤석열이 강조한 ‘셔틀 외교’만 반복하고 있을 상황인가?
한국이 셔틀 외교를 강조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침략적 본성을 여전히 감추지 않고 있다. 정부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카이치 정권은 중의원 선거 압승을 기세로 평화헌법 개정을 공언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공동 언론 발표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핵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북한 대응에 대해 한일, 한미일이 긴밀히 연계해 북핵 문제 등에 대응해 나갈 것을 재확인했다”며, “이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위한 지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라고 언급한 점도 주목할 일이다. 한국이 예민한 문제를 스스로 피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서의 전환 및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전략적 의도를 끊임없이 관철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취임 이래 일본 총리와 일곱 차례 만남을 가졌지만,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빈손’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조세이 탄광에서 수몰된 183명 중 일본 민간단체에 의해 발굴된 유해 4점에 대해 DNA 감정 절차에 합의했다는 것인데, 일곱 차례 셔틀 외교치곤 공허한 결과다.
앞서 강제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해 승소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원초적으로 부정하면서 배상 명령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셔틀 외교가 완전히 정착되는’ 사이, 과거사 문제는 어떤 진전이 있었는가? 일본 피고 기업과 일본 정부가 이행해야 할 법적 책임 이행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그동안 제대로 언급이나 해 왔던 것인가?
조세이탄광 문제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사안은 DNA 감정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조세이 탄광 해저에는 1942년 사고 발생 이후 183명(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의 희생자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데, 나머지 유해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일본정부가 유해 발굴을 회피하자 보다 못한 일본 시민단체가 잠수사를 동원해 수중 수색에 나서 그동안 두 개 골 1점을 포함해 4점을 인양했는데, 애초 유골 인양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가? DNA 감정 이외에 84년 동안 수장된 유골은 여전히 방치할 셈인가?
유골 발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약속은 빠진 채, 민간단체가 수습한 유골 4점에 대해 기껏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과연 인도주의인가? 부끄러움도 없이 민간단체가 수습한 유골 4점에 대해 기껏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선심 쓰듯 인도주의 조치로 포장하고 나설 일인가?
2026년 5월 20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