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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의 윤리와 문학적인 삶
⸻ ‘대한민국예술원’ 사태에 대한 제언
고 봉 준 (문학평론가)
1.
해마다 이맘때면 노벨문학상이 화젯거리가 된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문학상이므로 매스컴은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상(賞)이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흔히 사람들은 ‘상’은 뛰어난 작품에 수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게다가 그것은 우리가 선뜻 ‘작가’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2015년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의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다. “훌륭한 미국 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6년 수상자인 밥 딜런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문인이 아니다. 이는 Literature 개념에 대한 서양인들의 이해가 우리와 달라서 생기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노벨문학상이 ‘작품’의 성취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을 잘 쓴다는 이유만으로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물음을 던진다.
나는 종종 ‘문학적 삶’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한다. ‘문학’과 ‘삶’이라는 별개의 항들을 접속부사로 연결한 ‘문학과 삶’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관통하여 둘이면서 하나로 존재하는 ‘문학적 삶’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말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초현실주의의 의미가 이 불가능성을 실험한 데 있다. 초현실주의는 ‘삶’과 ‘예술’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려는 실험이었다. ‘문학적 삶’, 등단을 하기 전에 나는 저 표현을 꽤 좋아했다. 순수한 독자였을 때, 오로지 읽기만으로 문학을 동경하던 그때, 나는 문학인들이 세속적 인간들보다는 조금 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그럴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느 순간 그래야 한다는 믿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세속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고귀한 영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면 ‘덜 세속적’이라고 말해도 좋다. 물론 이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기에 환상에 가까웠지만, 세속적 가치가 아닌 ‘글’과 ‘책’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필시 그의 삶도 글만큼이나 투명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믿었다. 문학의 힘이 언제나 ‘언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때로는 시대에 맞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 그 태도에서 나오기도 한다고 말이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내게 독재 권력에 저항하다 체포․구금되는 작가들은 그런 존재로 각인되었다. 고문과 투옥 같은 엄청난 일들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이란…….
하지만 등단 이후 경험한 문단은 상상 속의 풍경과 많이 달랐다. ‘문학’과 ‘저항’이라는 단어를 연결하는 일이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였으므로, 문학 역시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했던 시기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진영론이 해체되어 생긴 공백은 또 다른 진영론, 즉 부족주의로 채워졌고, 문학계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일들이 문학의 이름으로 행해지곤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문학상’이었다. 내가 등단할 무렵에는 문학상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수상작품집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그 시절에는 주요 문학상의 심사과정이 일간지나 문예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문학상의 문학이라는 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장치 가운데 하나이다.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고 수상하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학상에 같은 기준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문학적 성취를 기억하고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이므로 그것은 문학에 관심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독자,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 문인들에게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은 뛰어난 문학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식된다. 문학은 객관화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심사의 과정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문학상의 선정 과정까지 공개하면서 공정성을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문학상 관련 자료들을 찾다가 이상한 일들을 발견했다. 불과 하루 전에 팽팽하게 대립하던 심사위원들이 갑자기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결정했다는 식의 일이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몇 사람의 평론가들과 반년간 비평전문지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창간호의 지면 전체를 ‘문학상’에 관한 논의로 채웠다. 이른바 문학장, 그리고 문단 제도에 대한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잡지가 출간되자 상황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변 사람들, 특히 일부 문학인들은 ‘문학상’에 대한 비판을 헤게모니 싸움, 또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마침내는 세대론적 권력투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오늘날에는 젊은 문학인들이 문학의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이면 문단 안팎에서 일정한 호응을 얻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문학인들의 대부분이 그런 논쟁은 문학의 ‘본령’이 아니라고 비판하거나 침묵으로 외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평의 역할은 작품이 지닌 미학적 가치와 장점을 발견해내는 일, 독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의 비밀을 들려주는 정치(精緻)한 분석으로 한정되었다. 억압된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되돌아온다고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비평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고, 언제부턴가 문학계의 제도와 관행을 비판하는 일들이 촉망받는 젊은 비평가들이 주도해야 할 일의 일부가 되었다.
2.
지난 여름 소설가 이기호가 ‘대한민국예술원(이하 예술원)’의 쇄신과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는 격월간 문학지 《악스트(Axt)》(7·8월호)에 발표한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도래할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안(문학분과를 중심으로)」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예술원’의 문제를 제기했고, 곧이어 ‘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 성명서에는 문인을 포함하여 1,000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이 성명서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동료 문인들에게 보낸 글에서 그는 ‘문학’ 분야, 특히 청년예술가(젊은 문학인)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딱히 눈에 띄는 역할도 하지 않는 ‘예술원’이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받고 있고, 예산의 대부분을 ‘예술원’ 회원인 원로문인들의 ‘정액수당’으로 지급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특수예우기관’의 성격을 지닌 ‘예술원’의 회원선발, 운영방식 등 14가지 사항에 대해 상세한 비판을 제시했다.(이기호가 작성한 글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기호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대한민국예술원>이라는 곳에 대해 잘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예술원’의 성격이나 운영방식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원’은 1952년 8월에 제정된 ‘문화보호법’에 근거하여 1954년에 설립되었다. ‘문화보호법’의 취지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과학자와 예술가의 지위를 향상시킴으로써 민족문화의 창조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문화인’ 등록제를 시행하고 기관을 만들어 막대한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의 취지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이 법의 제정과 예술원 선거(1954.3)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선거 과정에서 문화인 일부가 배제됨으로써 급기야 전후 문단의 재편으로 이어진 것ㅇ다. 알다시피 1950년대 한국문학의 주류는 이승만 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해나간 이른바 우익문인들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이헌구 등처럼 문학보다는 출판, 언론 등 이른바 반공주의의 최전선에서 냉전문화정치를 수행했다. 그런데 정부가 ‘예술원’ 선거를 직선제로 시행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문화인’의 범위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반공주의의 깃발 아래 함께 싸운 지난날의 동지들이었지만, 당시 문화계는 이질적인 성격의 단체들이 연합하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이러한 내부의 이질성은 선거 국면에서는 중요한 요인이었는데, 정부가 ‘문화인등록령’을 시행함으로써 언론출판인들이 배제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선거 결과 김동리, 박종화, 염상섭, 조연현, 유치환, 서정주, 김말봉이 예술원 제일류(문학) 분야 회원으로 결정되자 이 사태에 대한 반대측의 항의가 잇따랐다. 김광섭, 이헌구 등이 강력하게 항의했고, 그에 대해 김동리, 조연현 등이 반론을 펼침으로써 사실상 전후 문단이 양분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한국문학가협회는 이헌구, 모윤숙 등을 불순분자로 간주하여 제명했고, 이들은 뜻을 같이하는 문학인들을 규합하여 ‘자유문학자협회(1955)’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예술원’이 반공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다지 아름답지도 문학적이지도 않은 기구일지언정 그동안 ‘예술원’이 나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굳이 비판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사실 한국에서 ‘기원’을 따져 물으면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문인단체는 멀쩡할까. 문제는 이름이 꽤 알려진 중견 소설가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대한민국예술원>이라는 곳에 대해 잘 몰랐”라고 고백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약했었다는 것, 과거 동료 및 선후배 문학인들이 문학·예술의 자유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면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울 때에도 선배·동료로서 또는 원로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아름답지 않은 과거일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는 예술원 회원을 비난하거나 그들의 문학을 폄훼·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신입 회원을 심사하고, 기존 회원 2/3의 찬성표를 받아야 입회가 가능하도록 규칙을 정하고, 매달 180만 원의 수당과 경비, 창작지원금을 수령하는 등 운영 주체의 역할을 했다면 ‘예술원’을 개혁하는 일과 예술원 회원들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일이 분리될 수는 없을 듯하다.
3.
‘예술원’ 문제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문학 ‘제도’에 대한 비판은 제도의 중심에 있는 사람, 즉 영향력 있는 유명인의 목소리가 아니면 좀처럼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제도’에 대한 주변인들의 비판은 언론을 통해 목소리가 증폭되지 않으면 흠집 내기 정도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내가 ‘예술원’ 문제를 지적하는 최초의 인물도 아니고, 한 소설가가 진심으로 쓴 글보다 잘 쓰기도 어렵고, 모두가 비판하고 있는 마당에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 ‘문학적 삶’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8월 한국작가회의는 ‘대한민국예술원 혁신을 위한 우리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에는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이 국민들과 작가들 대다수가 존경하는 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라는 표현이 들어있다. 이기호 소설가가 말하지 않은 것(혹은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을 한국작가회의가 대신 지적한 것이다. 예술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므로 작품의 경향이나 평가 주체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일정한 합의의 범위(common sense) 같은 것은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이 범위에 포함된 작가나 작품이 문학 분야의 대표성을 지닌 것으로 선정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학장(場)에 속한 상당수는 현재 ‘예술원’ 문학 분야의 회원 모두가 저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예술원’ 회원가입을 둘러싼 잡음도 없지 않다. 소설가 이순원이 ‘대한민국예술원을 폐지하라’에 썼듯이 ‘로비’를 둘러싼 추문, 이를테면 ‘문학상’이 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등의 각종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예술가랍시고 누군가에게 예우와 우대를 받을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 없습니다. 그건 저만의 어떤 윤리적 감각이 아니고요, 제 또래 작가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염치’ 같은 것입니다. 따로 밥벌이가 있으면 국가 지원금은 신청하지 않는 것, 그게 제가 배운 문학입니다. 대한민국예술원을 보면서 제가 느낀 부끄러움은 아마 거기에서 왔을 겁니다.”
나는 ‘예술원’ 문제를 대표성이나 ‘로비’ 같은 부조리한 관행의 문제와는 다른 층위에서 접근하고 싶다. 내 주장의 핵심은 예술원 회원을 포함한 문학계의 원로, 아니 ‘부장급․과장급’ 문인들 모두가 ‘문학’을 생산된 작품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고 ‘문학적인 삶’을 살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인용은 이기호가 동료 문인들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 내가 말하는 ‘문학적인 삶’이 이기호의 ‘염치’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염치’라는 말에는 내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의 상당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작가가 누구보다 세상을 치열하게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문학도 사람의 일이므로 돈, 출세, 성공 같은 현실적인 욕망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그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고 문학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또한 작가들은 권력이나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타인들의 삶과 세상의 불합리한 문제들에 관심을 표명하는 존재들이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세계와 대결하며 살아간다. 만일 한 사회가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면 그것은 그의 성취만이 아니라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인정일 것이다.
물론 문학의 출발점은 작품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든 작품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은 작가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체현하고 있는 의미나 이념이 작가의 그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작가의 욕망과는 별개로 작품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작품이 작가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오롯이 반영한 단순한 복제물이 아니지만, 작가가 세상과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감각이나 생각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작품도 드물다. 나는 작가들의 글쓰기,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한 개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작가에게 성인군자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문학이 도덕적 이상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글쓰기 행위, 그리고 자신이 고민하면서 써온 것들을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 일상적 세계에서 조금이나마 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쓴 글과 자신의 삶이 서로를 배신하지 않도록, 일정한 어긋남은 현실이라는 중력으로 인해 불가피하겠지만, 그럼에도 그 어긋남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외면하면 문학을 삶을 떠난 맹목이 되기 쉽다. 나는 우리 문학계에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소위 문학의 자율성이라는 테제가 그 맹목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술원’ 사태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불합리한 제도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술원’은 각 분야의 원로들이 포진된 예술계의 유일무이한 조직이다. 그런데 그 조직의 면면을 확인한 후배 작가가 ‘존경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그리고 그것이 특정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모든 분야에는 ‘원로’의 몫이 있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이루어낸 성과에서 비롯된 ‘권리’라고 해도 좋고, 한 분야의 대표성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라고 해도 좋다. 사회적으로는 근대화 이데올로기, 예술에서는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것’은 무가치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 세계에서 오래된 것, 낡은 것, 지나간 것은 버려져 마땅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무의식 탓에 현대인들에게 뒤처진다는 것은 곧 공포가 되었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저 논리가 쉽사리 통용되지 않는다. ‘만년의 양식’이라는 말처럼 예술에는 분명 ‘원로’의 몫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몫’이 단순한 몫(benefit)으로 받아들여질 때, 결국 문학은 금전적 이익이나 높은 지위 같은 세속적 가치의 추구를 가려주는 포장지로 전락하고 만다. 거듭 말하지만 ‘원로’는 높은 지위나 성공적 삶에 부여되는 명칭이 아니다.
다시 한 작가가 경험한 ‘부끄러움’ 이야기로 돌아오자. ‘예술원’ 문제를 지적한 이기호의 글을 읽고 떠올린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예술원’ 회원들이 까마득한 후배 문인들도 체득하고 있는 ‘염치’, 이른바 불문율에 무심한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공적 지원에서 가급적 젊은 문학인들을 배려하는 것, 그리하여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작가들은 가급적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음으로써 수혜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후배 작가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 등으로 요약되는 불문율조차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후배 작가들이 믿고 따를 어른으로서의 ‘원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만년의 양식’을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원로’라면 모름지기 삶을 포함한 그의 문학 전체가 후배 작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힘써야 마땅하며, 바로 그럴 때 후배 작가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젊은 문학인들이 고(故) 황현산 평론가에 대해 각별한 애정과 존경을 표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하는 존재에 대한 존경이란 비단 그가 쓴 글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원로’에게만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시간은 늘 많은 것을 잊게 만들지만, 이것은 ‘부장급․과장급’ 문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태도이다.
4.
이 글에는 ‘파레시아(Parrhesia)’라는 제목이 주어졌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마지막 강의(1981~84)에서 이 개념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진실의 용기’ 내지 ‘진실 말하기’로 번역한다. 푸코는 이 개념에 권력의 예속화에 맞서는 ‘비판’의 회복, 침묵하지 않는 진실의 공표, 그리고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실천 같은 후기의 문제의식을 모두 담았다. 푸코는 예속화하는 권력-작용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으로 새로운 미학적․윤리적 행동을 제시하려고 했고, 파레시아는 이 권력-작용과의 관계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도발적으로 말하는 공적인 발화방식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파레시아는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도발적인 직언으로 통용되지만, 예술과 삶의 연속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비판이나 저항과 다르다.
서양 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는 지금까지 인식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반면 푸코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진리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의 철학으로 재해석했다. ‘안다’라는 것이 참/거짓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실천의 관점에서 가꾸어 나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정에서 자신을 돌보는 일(즉 가장 훌륭하고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돌보는 일)보다 자신에게 속한 어떤 것을 돌보는 일을 앞세우지 않았음을 계속 강변했다. 푸코의 이 자기 인식이 ‘너 자신을 돌보라!’라는 자기 배려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철학에서 자기 인식은 자기 배려라는 일반적인 범주의 한 형식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처럼 서양 철학의 역사를 ‘파레시아’의 계보로 재해석함으로써 권력-작용에 의한 예속화에 반(反)하는 자율적·주체적 삶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푸코는 언젠가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대상들에만 연관되고 개인이나 삶에 연관되지 않는 어떤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예술은 예술가인 전문가들을 통해 특수화되거나 시행된 어떤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삶이 하나의 예술작품일 수는 없을까?등잔이나 집은 예술의 대상이 되는데, 왜 우리의 삶은 예술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가?
어떤 이들은 “왜 우리의 삶은 예술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푸코의 항변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근대적 에피스테메의 문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푸코가, 그리하여 근대 이후 ‘예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가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푸코의 이러한 생각을 가리켜 ‘실존의 미학’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예술로서의 삶’이란 현재적 삶을 보존·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속화하는 권력의 주체화에 맞서 그것과는 다른 삶을 창안하는 문제이다. 자신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 푸코에게 그것은 ‘예술’의 일종이었고,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예술’에 가장 근접한 것이었다. 앞에서 나는 글을 쓰는 일, 즉 글을 쓰는 행위의 산물로 생산된 작품과는 다른 것인 글쓰기 행위를 예술의 일부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그것이 푸코의 ‘파레시아’를 원용한 것임을 숨기지는 않겠다. 그런데 푸코는 ‘파레시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일과 직업 가운데 유독 글쓰기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들 - 문학인 - 은 그 행위 자체가 이미-항상 예속화하는 권력-작용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의 몸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이미 그것 자체가 탈주의 한 방식이며,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권력의 예속화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삶(일상) 또한 해방적이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예술가의 삶이 전면적으로 혁명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문학이 유독 ‘억압’에 예민한 것은 그것이 바로 현대문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제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억압’에 맞서는 방식이 글쓰기로 한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이런 이유에서 작가들의 삶(일상)은 권력의 예속화·주체화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현실 질서를 추종하려는 세인(世人)들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이기호의 글에 등장하는 젊은 작가들을 배려하는 선배 작가들의 행동 역시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반(反)예속화의 한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들의 공동체가 과연 그 정도로 고상한 결사체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문학의 출발점이 반(反)예속화에의 욕망, 억압에 맞서 자유를 상상하려는 몸짓임은 알고 있다. 이 저항은 비단 젊은 작가들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예술가, 모든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늘 아침 우연히 한 시인이 일간지에 기고한 짧은 산문을 읽었다. 시인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듣게 되는 다양한 소음들 -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등 - 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음은 시끄러운 소리이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감내할 수 있는데, 유독 오토바이가 내는 ‘소음’에는 적응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시인은 왜 오토바이가 저렇게 굉음을 내면서 질주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독촉, 급함 때문임을 깨달았다고 쓰고 있다. 이 경험 이후 그 시인이 오토바이 소리를 기꺼이 감내하게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처럼 정확한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법. 시인의 저 생각의 흐름을 성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경험 이후 그가 우연히 듣는 오토바이 소음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으리라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그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질주하는 오토바이가 내는 굉음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나’임을 깨달은 이후에도 그 원인을 오직 ‘나’의 바깥에서만 찾는 일이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다면, 그때 우리는 그런 사람이 쓴 ‘작품’을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평가하게 될까? 소박해 보이지만, 푸코가 ‘파레시아’라는 낯선 개념으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각에 따라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이 우리를 예속화하는 권력-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의 실천이라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근대 이후 문학하는 사람들이 시종일관 견지해온 것이며, 20세기 이후 인류가 ‘문학’이나 ‘예술’의 이름으로 실행해온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닌 존재들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예술원’ 사태를 다시 살펴보자. 이기호가 말했듯이 그동안 작가들 가운데 안정적인 직업이나 일정한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후배 작가들이 국가 지원금을 받도록 하기 위해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아 왔다. 이러한 ‘염치’의 윤리는 약육강식, 또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이치와는 조금 다른 것이며, 나는 그것이 문학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라고 믿는다. ‘믿는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은 사실이나 당위가 아니라 순전히 ‘믿음’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글뿐만 아니라 삶도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때의 ‘문학적’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쓴 글들, 쓰고 있는 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작가’가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인 이유는 그가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수락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이 세운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선정적인 문구로 도배된 신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예술원 회원들이 담합을 통해 회원을 선출하고 예산을 자신들의 예술 활동에 한정된 지원금 등으로 사용해왔다면 이는 문학인이 지켜야 할 ‘염치’의 윤리를 위반한 것이므로 회원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 올바른 처신일 듯하다. 나는 문학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세상을 구원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훌륭한 문학이 존재한다면 그 몰락의 속도가 조금은 늦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뿐이다. 이 재난의 시대에 작가는 재난이 요구하는 예속적 주체가 되기를 기꺼이 거부한 존재이며, 그들의 삶과 글쓰기 모두는 그 예속에 대한 저항이다. 이것을 망각하는 순간 작가는 결국 ‘개인’이라는 이름의 주식회사가 되고 만다. (❋)
⸻계간 《문학들》 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