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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임진왜란 전에 있었던 을묘왜변과 가정대왜구가 임진왜란사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
배달민족 추천 1 조회 598 18.07.13 06:33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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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7.13 07:34

    첫댓글 거의 정론에 가까운 이야기 아닌가요? 한국매체가 워낙 역덕요소가 적어서 그렇지... ^^

  • 18.07.13 07:57

    22222222

  • 작성자 18.07.13 15:54

    근데 제가 느끼기에는 별로 저 중요성들에대해 언급들을 안하는 거 같아서요;; 개인감상이라 그럴 수 있지만 ㅋㅋㅋㅋ

  • 18.07.13 17:31

    @배달민족 역사학이 그렇게 쉬운 학문은 아니라서 그런듯 합니다. 사학은 팩트만 나열하는 것이 아닌데, 보통 평민들은 역사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한 팩트 조달원으로만 보거든요. 한글같이 오늘날도 직접적으로 적용되거나,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아닌 한, 역사적인 사실들간의 관계를 잘 따져보려는 경우는 역덕커뮤에서나 가능하죠.
    예를 들어 위 내용과 관련 어느 한 블로그에서는 관련 실록 내용을 와전되게 이해하여 '대포만들자는데 절 가지고 신하들이 태클걸었다. 대포만드는데 종교가지고 왕에게 태클거는 신하들이니 임진왜란때 발렸지 ㅉㅉ'라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더니 인기글로 올라가더군요 ㅋㅋㅋㅋ

  • 작성자 18.07.13 17:45

    @havoc(夏服ㅋ) 딜레마기는 하죠. 뭣보다 명종조는 문정왕후와 윤원형에 의한 정치문란과 그로 인한 임꺽정의 난이 워낙 강하게 인상이 남아서 매체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ㅎㅎ

  • 18.07.13 17:38

    좋은 내용이라서 스크랩 했습니다.

  • 작성자 18.07.13 17:39

    옙 ^^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8.07.14 03:08

    @아이신기오로 훌륭한 답변과 지적 감사합니다~ㅎㅎ ^^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8.07.14 05:16

    @아이신기오로 제가 봤을때는 호종헌이 서포트 한게 매우 크다고 봅니다. 척가군만들때도 지원많이 해줬고 또 기다려 줬거든요(척계광이 절강에 온 게 1555년이고 척가군이 만들어진건 1559년. 그리고 태주대첩이 1561년일이죠) 호종헌이 유도해서 왕직이랑 서해를 각기 죽여버린 것도 한몫했고요(서해1556년 왕직1557년). 호종헌 자체가 1551년 호광순안으로 묘족반란 평정할때 참여하기도 했고, 주환의 실패 이후 명 조정이 인선을 잘 한 거죠.

  • 18.07.17 15:16

    잠 자기 전 대충 끄적이신 내용 이라뇨. 아주 잼나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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