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프루프, 여름밤 [이은규]
열대야, 습도 90퍼센트
사람도 곧 아가미로 숨쉴 때가 오지 않을까 농담을 듣
고 나는 물 먹은 별을 떠올렸고
모든 진화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데 한 동작을 일생
동안 반복한 생활의 달인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슬퍼
졌다
여름 선물을 건네며 너는 해맑게 웃고 신기하지 물에
젖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스톤 페이퍼, 채석장의 버려지는
돌로 만들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모든 종이는 나이테의 기억을 갖고 있는 줄만 알았는
데, 돌의 입자로 만들어진 종이라니 마음이 기우뚱 ― 균형
추가 잠시 움직였다
만약 완전히 물에 젖어버리면 어떡하지 나는 물었고 변
형없이 다시 말리면 복원된다며 너는 흐뭇해했다 변형없
이, 라고 힘주었지만 어쩐지 망설여지고
금방 울 것 같은 물 먹은 별 이제 나도 바위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야 해
고마워
여름밤 욕조에서의 독서
습기에 구애받지 않는 종이라니 구애를 열애로 잘못 읽
는 종족임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물 속의 문장들이 하나둘씩 일렁이는데, 한 번역가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오늘 밤 달이 참 밝다라고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워터프루프, 여름밤
- 무해한 복숭아, 아침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