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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17절/거룩을 위해 싸우라.
1. 값싼 은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기독교
"값싼 은혜는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이며, 죄 용서, 위로, 주의만찬입니다. 교회의 무진장한 창고에서 생각도 없이 끝도 없이 경박한 손으로 털어내는 은혜입니다. 가격도, 비용도 들지 않는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 없이 베푸는 침례요, 죄의 고백 없이 참여하는 주의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입니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값비싼 은혜는 끊임없이 찾아야 할 복음이며, 기도해야 할 은사이며, 두드려야 할 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은혜가 우리를 제자의 길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죄를 저주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죄인을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에게도 값비싼 대가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에 아들의 생명을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용한 것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의 한 부분입니다. 이런 값싼 은혜가 도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면죄부를 발행하고, 구원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진지하게 읽어보아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조금만 정직하게 귀를 기울여 보아도 이런 값싼 은혜가 말하는 복음을 들어 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이유는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거룩함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생명같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주님은 그것을 아버지께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거룩이 그저 교회만 다니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거룩이 없이는 우리는 주님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히 12:14). 전혀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앙은 무가치한 신앙입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면류관이 없는 무익한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내 신앙에 대하여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가? 영생을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며, 거룩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도대체 거룩은 어떻게 내 삶에서 이루어져 왔는가?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실 때, 구원이 우리의 행위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들으셔야 합니다.
2. 신앙생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싸움(딤전 6:12; 딤후 2:3; 엡 6:11~13;)
성경은 성도의 신앙생활을 쉽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싸움(딤전 6:12; 딤후 2:3; 엡 6:11~13), 경주(갈 5:7; 히 12:1), 농사(약 5:7~8)에 비유하곤 합니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 싸우듯, 경주에서 1등을 하려고 달리듯, 농사에서 큰 수확을 얻기 위해서 땀 흘리고 인내하며 수고하듯, 신앙생활은 이런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물론 이런 말을 우리가 전혀 들어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차이가 여기에 있는가 하면, 이것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 구원의 진정성을 확인해 주는 문제, 즉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닌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고전 9:27). 이 싸움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싸움이라고 할 때 그것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말입니다. 왜냐하면 싸움을 해야 하는 분명한 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적을 구분하면 육신과 세상과 마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각각에 맞서 싸우지 않고서 거룩은 얻어지지 않으며, 구원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A. 육신(고전9:27; 롬 7:23~24; 갈 5:24; 골 3:5)
우리는 먼저 육신과 싸워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말은 운동선수가 자신을 훈련시킨다는 말입니다. 그 훈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절제가 요구됩니다. 사도는 신앙생활은 자기 육신의 욕구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복종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구원과 직결된 문제로 이해합니다. 로마서 7장 23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묘사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것은 성도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싸움에 대한 묘사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는 영적 전쟁이 믿는 사람의 마음 안에서 늘 일어나고 있고, 성도는 이 싸움을 싸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육신과 싸운다는 말은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탐심과 같은 죄된 욕구들과의 싸움이라고 갈라디아서 5장 24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것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입니다(골 3:5). 땅에 있는 지체란 음란, 부정, 사욕(정욕), 악한 정욕(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 원하는 것은 다 가지려는 탐심 곧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이 육신과의 싸움입니다.
B. 세상(약 4:4; 요일 2:15; 갈 6:14; 롬 12:2)
두 번째로 세상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서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며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잔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사를 가늠하는, 영원한 운명을 가늠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이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바울 사도와 함께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C. 마귀(벧전 5:8; 약 4:7; 엡 4:27)
마지막으로 성도가 싸울 대적은 최고의 원수 옛 뱀 곧 마귀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경고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피한다고 말합니다. 피하지 말고 싸우라는 말이지요. 에베소서 4장 27절에서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마귀를 의식하고 틈을 주지 않고 살아갑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고 살고 계십니까? 싸움을 하지 않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싸움의 현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포로가 된 것입니다. 싸움을 무시하고 사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는 무너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믿음의 싸움을 싸운 사람들(히 11)
성경은 이렇게 믿음의 싸움을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히브리서 11장에 모아서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가 쓰여질 무렵,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이 큰 싸움이었고, 때로는 옥에 갇히고 소유를 빼앗기고 비방과 환난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히브리서를 썼습니다(히 10:32~39). 히브리서 11장의 많은 믿음의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고, 성도가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큰 싸움을 감당하는 것이며, 여러분도 믿음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대단한 믿음의 영웅들을 보십시오 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이 이런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그들이 믿음의 싸움을 싸웠고 승리했듯이 여러분도 그 동일한 믿음으로 이 싸움을 이길 것입니다. 하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믿음의 영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는 말입니다. 여기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특별히 두 가지 차원에서 이 믿음의 싸움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A. 인내의 싸움(6,39)
첫째는 이 싸움은 인내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알고 나아갑니다(히 11:6). 이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뿐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인내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집니다. 인내하는 믿음이 바로 구원 얻는 믿음입니다. 그 인내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에 얻을 것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죽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이 다 그랬습니다. 39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약속(증거)은 받았으나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은 보지 못했다(약속된 것)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한 것입니다(히 11:1). 믿음은 인내의 싸움이며, 이것이 거룩을 위한 싸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B. 버림으로써 얻는 싸움(6,24~26,35~38)
둘째로 이 믿음의 싸움은 버림으로써 얻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은 그 상을 바라보고 대가를 지불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것이지만 그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기에 그렇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입니다. 그는 애굽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왕자)이라 칭함을 받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이 마지막에 하나님께 상을 얻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히 11:24~25).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모를 받는 것이 세상에서 누리는 금은보화보다 더 큰 재물임을 알고 그것을 바라본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입니다(히 11:26). 모세만이 아닙니다. 35절 하반절을 보면 믿음 때문에 심한 고문을 받았지만 믿음을 배반하고 풀려나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것은 더 나은 부활의 영광을 그들이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앞선 믿음의 선배들은 조롱, 채찍질, 결박, 옥에 갇히는 시련, 돌로 침, 심지어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하는 일, 칼에 의한 죽음, 온갖 궁핍과 환난, 학대를 받았지만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히 11:36~37). 이들은 실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입니다(히 11:38). 이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입니다. 이들이 싸운 것이 바로 믿음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버림으로써 얻는 싸움입니다. 무엇을 얻습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상주심입니다. 영생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 6:12)."
4. 경고: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왜 성경이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싸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합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부르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를 입고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가하게 들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도 줍니다. 주님께서 친히 주신 경고의 말씀인데,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눅 17:32). 주님은 주님 재림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녀는 천사들에게 이끌려 남편과 두 딸과 함께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할 때, 천사들이 한 말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는 말을 흘려들은 것입니다(창 19:17).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무서운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녀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녀는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미련을 두어 멸망한 사람을 대표하는 여인입니다. 롯의 아내는 신자였던 남편을 두었고 남편의 삼촌인 아브라함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모든 종교적 특권을 누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은혜의 수단과 기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 에워 쌓여 살아간다는 것이 그녀에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 좋은 교회를 다녔다는 것, 믿음에 신실한 친구를 두었다는 것이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아무리 복음의 말씀을 많이 들었고 배웠다고 할지라도 내가 성령을 받지 못하고 그 복음의 진리로 거듭나지 못했다면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무익한 것입니다. 롯의 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았다는 말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죄악의 핵심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종교적 환경 속에서 평생 살았으나 세상을 평생 사랑했기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에게 없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롯의 아내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몸은 비록 소돔과 고모라에게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소돔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그곳에 머물러 있기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면 뒤엣것을 잃어버리고 앞엣 것을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뒤엣것이 생각남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오늘날처럼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필요한 때가 있을까요? 그녀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다만 세상을 사랑했던 것뿐입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요한게시록 3장 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만일 여러분의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 세상이라면,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 여러분의 소망의 근거로 삼는 위험한 일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허용하고 있는 작은 죄, 은밀한 죄악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은 죄들이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5. 거룩을 위해 싸우십시오(눅 13:24)
성경은 일관되게 믿음의 싸움을 말씀하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거룩을 위한 싸움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3장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힘쓰라'는 단어는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할 때 '싸우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싸우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 젖 먹은 힘까지 동원해서 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이 '싸움'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싸움의 중요성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는 두려운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힘쓰고 애쓰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즉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 사람이 구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이 구원의 문제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롯의 사위들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성경이 롯의 사위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을까요? 성령님께서 우리의 유익과 경계를 위해서 기록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이제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들은 사위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창 19:14).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 일입니까?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참된 말씀은 유익을 주지 못했고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6. 싸움의 승리는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달려있다(요 16:33).
이 말씀을 들으신 여러분은 이제 내가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겠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의 본질이 영적인 싸움이기에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들이 경험해 보았을 실패와 자괴감은 여러분을 순진하게 새로운 흥분으로 이끌지 않을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것이 믿음의 싸움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우리가 이 싸움을 감당하는데 주어진 무기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참되신 하나님, 진리이신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면 그것을 수천 년이 걸려도, 천대가 지나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성품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요16:33).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다 받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가장 영광스러운 면모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바로 이 사실을 알고 붙잡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고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편에 계시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영원하고도 궁극적이며 참된 성공이 결코 우리가 당하는 어떤 일에 의해서도 꺾여질 수 없고 실패할 수 없다는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군사로 깨어 죄를 대적하게 하고, 모든 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 안에서만 우리는 죄에 대한 깊은 각성을 하게 되고 믿음과 소망은 더 강력해지며 거룩을 향한 열망과 소원이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로부터 시작해서 더 큰 은혜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실 때 혹시 여러분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지는 않았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그 집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여 흔적도 없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거룩을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우시며, 대가를 지불해 오셨습니까? 여러분은 은혜 안에서 자라가고 있음을 느껴왔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함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까?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계십니까? 베드로 사도가 말씀한 대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왔습니까(벧후 3:18)? 신앙생활을 내적인 평안을 얻는 것, 스트레스를 이기는 정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에서 심판을 받을 인생이 변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싸움을 요구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그리고 영생을 취하십시오.” 거룩을 위해 싸우십시오. 값싼 은혜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아무 대가를 지불함도 없고, 아무런 싸움도 없는 주일날 교회 한 번만 나오면 되는 값싼 거짓된 기독교 안에서 여러분의 영원한 위로를 발견하지 마십시오. 그저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섬기기만 하면 여러분 안에 거룩이 이루어진다는 헛된 거짓에 속지 마십시오. 거룩을 위해 싸우십시오. 진짜 믿음의 싸움을 싸우십시오. 여러분 안에 거룩한 열망을 품으십시오.
한국 CCC(대학생선교회)를 세우신 김준곤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 표정 속에, 핏속에, 꿈속에, 무의식 속에, 죽음 속에 예수의 향기를 풍기고 싶다." 이것이 거룩의 열망입니다. 은혜는 거룩한 열망을 성도의 마음에 창조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복음의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십자가의 진리를 알면 알수록 이 거룩한 열망은 신자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이 은혜의 능력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객관적 승리를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의 능력으로 배양된 거룩의 열망이 신자로 하여금 거룩을 위해서 싸우는 지치지 않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성도의 심령 안에는 이 마음, 이 거룩한 열망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마음과 거룩한 열망이 우리를 삼키게 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