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ertine은 "방탕자, 난봉꾼, 방탕한, 자유사상의, 자유사상가"를 뜻한다. 고대 로마에서 해방된 노예를 뜻하는 libertinus가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 방종을 일삼았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장 칼뱅(1509~1564)이 가톨릭 교리를 거부해 1533년 파리에서 추방된 후 스위스로 피난을 가 그곳에서 개혁운동을 펴면서, 반대파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말이다.
반대파의 지도자는 제네바의 유력 지도자이자 부호인 아미 페렝이었다. 그는 칼뱅을 제네바로 초청하는 등 처음엔 칼뱅의 적극적인 후원자였으나, 칼뱅의 교권 정치에 반대하면서 결별했다. 칼뱅은 '프로테스탄트의 로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제네바에 신정국가(神政國家, Theocracy)를 건설했다.
칼뱅의 신정국가에선 연극, 오락, 민속축제, 춤 등 온갖 형태의 유희는 금지되었으며, 일요일에 2번, 주중에 3번의 설교에 참석해야만 했다. 이걸 집행하기 위해 '도덕 경찰관'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불시로 주민들의 집을 방문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건 한 달에 한 번 이상 그런 방문을 받아야 했다. 여자들이 옷을 경건하게 입었는지, 허락된 요리 이외의 것을 먹었는지, 기도문을 잘 외우고 있는지, 왜 칼뱅의 설교에 오지 않았는지 등등 모든 게 감시와 탐문의 대상이 되었다.
'제네바의 교황'으로까지 불린 칼뱅은 검열과 탄압으로 지식인들의 입을 봉쇄했고, 거리의 사소한 주먹다툼을 난동으로 몰아 반대파를 붙잡아 고문하고 처형했다. 칼뱅의 예정설(doctrine of predestination)에 반대 발언을 하면 화형에 처해졌다. 술에 취해 칼뱅을 욕한 어떤 출판업자는 불타는 쇠꼬챙이로 혀를 찔린 다음 도시에서 추방되었으며, 칼뱅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칼뱅의 반대파였던 libertine이야말로 자유와 정의의 편이 아닌가.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페랭과의 싸움에서 이긴 칼뱅의 권위에 힘입어 libertine은 18~19세기에 debauchery(방탕)의 이미지까지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a chartered libertine(천하가 다 아는 난봉꾼)'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이런 속담까지 생겨났다. A libertine life is not a life of liberty(방탕한 삶은 자유로운 삶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libertine의 호응 세력도 적지 않았다. 18세기 프랑스에선 libertine novel이라고 하는 소설 장르가 생겨났는데, 이 장르의 3대 특성은 anti-clericalisn(반교권주의), anti-establishment(반체제주의), eroticisn이었다.
libertine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이들은 이탈리아 작가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 프랑스 작가 마르키 드 사드(1740~1814), 영국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 경(1778~1824),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등이다.
자유사상가를 뜻하는 libertine에서 나온 자유분방주의(libertinism)는 도덕률과 도덕적 구속력에서 자유로운 동시에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기질이나 행태를 뜻한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와 그의 사상에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리버틴(libertine)이었는데, 바로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당시 사람들이 홉스를 자유분방한 사람으로 부른 이유는 주로 그가 무신론자이고 국교를 믿지 않고 당시의 일반적인 도덕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홉스는 결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오해되어 경멸적으로 불렸다. 그 시절엔 튀는 자유주의자였던 셈이다.
강준만 / 영어 인문학 1
첫댓글 Thank you 춘수님,
하나의 단어가 갖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