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4월 어느 날 이야기다.
오전 국어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내 옆을 지나가다가 내 얼굴을 한참 뜯어보더니 불쑥 말했다.
"야, 너 이거 한번 읽어 봐!" 나는 그걸 읽을 수 없어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자가 섞인 기미독립선언문이었다.
吳等은 慈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自由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짜리몽땅하고 되바라진 (실례) 선생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야 인마, 이것도 못 읽어, 엉? 니 임마 그래갖꼬 대학 가끼가? 너가부지가 보내준다 카더나?
인마, 시간 아깝다.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와!"
수업이 끝나고 바짝 얼어서 선생님 뒤를 따라서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 앞에 서니 우리 담임인 표동종 선생이
저놈이 뭘 잘못해서 걸렸나 싶어 가까이 다가왔다. 국어 선생과 뭐라고 주고 받았다.
그러자 국어 선생이 말했다. "야 임마, 나가!"
표동종 선생이 정재관 선생한테 "절마 아파서 장기결석하다가 오늘 처음 학교 나왔어요" 했던 것이다.
그날 나는 3학년 학급편성으로 3학년 4반이 된 후 40여 일만에 처음으로 등교했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늑막염을 앓아 장기결석을 했다. 아버지도, 의사도 주변에서는 모두 한 해 꿇어라고 했다.
법적으로는 며칠만 더 결석했으면 진급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죽어도 한 해 밑에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기 싫었다.
안 그래도 공부도 못하던 총중에 40여 일을 꾸어먹고 학교에 나오니 뭣 하나 따라갈 수 없었다.
오후에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이 또 내 옆을 지나가다가 내 얼굴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또 시켰다.
"이 것 읽어 봐!"
그때 영어 교과서가 아마 " Modern English"이지 싶다. 선생님이 읽어라는 대목은 이런 내용이었다.
가을이 되면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V자를 그리며 푸른 창공을 날아갑니다.
거기에 있는 Autummn을 나는 '아우텀'이라고 발음했다. 그러자 당장 벼락이 떨어졌다.
선생님은 내 뒷통수를 떠밀어 이마를 책상에 대고 '쿵, 쿵, 쿵' 세 번이나 내리찧었다.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 했다. 선생님은 '송문 종합영어'로 유명하신 송성문이었다.
'피다 그제'의 정재관 선생과 송성문 선생은 어찌 그리 장기결석하다 처음 아온 놈을
한 눈에 알아봤을까? 우리는 참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다.
그때 고금석 선생 마고 11회, 정재관 13회, 표동종 15회, 이끼 也, 허존 16회 였다.
첫댓글 송성문, 정재관 다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