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부에는
자신에게 금지된 것에 이끌리는
강한 욕구가 있다.
허지만 대부분은
이성과 사회질서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 등등에 의하여
내부의 열망의 느낌들을
스스로 잠재우기도
애써 무시해버리기도 하며
그렇게 그렇게
사회의 순리를 거스르려 하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비교적 가슴에
붉은 주홍색의 'A' ( adultery ) 자가 새겨지지도,
타인의 질시를 받지도 않고
고개를 들고 떳떳하게 삶을 살다 가고 싶어한다.
그게 본성이기도..
인간의 양면성인
금지된 것에 자꾸 이끌리는 속성과
고개 들고 떳떳하게 살다가고 싶은 속성.
이 두가지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그리고
미래에까지도 끊임없는 갈등과 상충과 격돌을 할,
인간사의 최대의 이슈거리이다
원래 '주홍글씨'의 원작소설은
1850년에 청교도적 의식이 철저했던 미국에서
나다니엘 호손에 의해 쓰여지고 발표된,
금지된 간통사건에 대한 인간 내부의 갈등과 심리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묘사한 소설이다.
중학교때 언니방 책상 책꽂이에서 몰래 빼
밤이 깊도록 심취해서 읽었던 기억.
하지만,
그 소설과는 전혀 상관도 없고
맥락도 달리 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유독
'주홍글씨' 로 했던 제작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소설 주홍글씨에는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목사 딤즈데일,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질서를 붕괴시키는
― 마치 법이란 그것을 깨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
다른 남자의 아내,
대담한 헤스터가 등장한다.
이 둘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결코 하나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한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에 서로 이끌렸을 가능성도 크다.
본래 인간은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욕구와
세상의 질서를 파괴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는 의식이
팽팽히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
두사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일어났을 이 소설의 주제는
인간의 내면에 꼭꼭 숨겨진 상반된 두가지의 속성을
여러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비추고
심층적으로 파헤친
인간 본성에 관한 복잡한 비밀을 풀어쓴
심리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영화 '주홍글씨' 의 제목으로 채택되어진 게 아닐까.
헤스터는 용감한 여자다.
딤즈데일과의 정사에서 얻어진 결과인 '펄'을 과감히 낳고
스스로 단상위로 올라가 자신의 가슴에
주홍색의 A 자를 달고
그러면서도 결코
목사 딤즈데일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오로지 혼자 그 죄책을 다 감당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기실, 헤스터보다 열배 더 괴로운 사람은
당연 딤즈데일이라는 것을 헤스터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악마의 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 어미를 힘들게 하던 '펄' 이라는 존재를 껴안고도
사회봉사등으로 자신의 치욕스런 나머지 생을
비교적 모범적으로 잘 이끌어갈 성숙함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외부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침묵의 깊은 밤,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스스로의 죄성을 묻는 자책의 소리인 것이다.
어쩜, 헤스터는 홀가분했는지도 모른다.
외부와 내부의 모습이 일치한 자신의 삶에 대해.
그러나
불쌍한 건 딤즈데일이다.
철저히 외부와 내부가 물과 기름처럼 차단된 그의 이중성.
비단 헤스터의 남편인 칠링워드의
집요하고 계획적인 복수의 칼날때문만은 아니다.
의사 칠링워드의 심리적 복수는
단지 이미 존재하는 딤즈데일의 죄성을
가볍게 톡톡 건드려주기만 하는 정도의 미미한 자극이었는지도...
문제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지옥 속으로 자꾸 썩어져 기어들어가는 자아를 보는 일이다.
결국
딤즈데일은 생의 마지막 설교를 하는 단상에서
헤스터와 펄을 양쪽에 나란히 세워놓고
자신의 생의 '부정' 과 '간음' 을 공표하며
단상 아래 모여든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파헤쳐
가슴 한가운데 선명히 새겨진 주홍의 'A' 자를 보여주고는,
스스로 그 자리에서 스러져 죽어가게 되는 종말을 맞이한다.
죽기 직전의 딤즈데일이야말로
그의 기나긴 한평생 중에서 최고도로
개운하고 가벼운 존재의 확인을 맛보았을 것이다.
생을 살아가면서
개개인들이 맞아들이는 삶의 형태들은
어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거의 비슷한 상황들을
맞이하는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영화 '주홍글씨' 의 기훈 ( 한석규 분 )은
마치 딤즈데일같은 유형의 인간이다.
사회의 질서를 파괴시키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깊어져가는
금지된 것들에의 열망을 과감히 뿌리치지도 못한다.
수연 ( 기훈의 아내 )이 '이혼하자' 했을 때
과감히 이혼할 용기도 없었고
가희 ( 이은주 분 )가 '사랑해' 라고 수도 없이 내뱉었을 때
용감하게 그녀를 선택하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숨어서만 비밀리에 그녀를 사랑하고픈...
금지된 것들에의 욕망도 선뜻 떨쳐내버리지를 못한 인간이다.
여기저기에 다 걸쳐놓은 어정쩡한 상태의 인간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도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그에 비해 차라리
가희는 비윤리적이고 죄성 그득한 퇴폐적인 인간이면서도
적어도 기훈보다 나은 것은..
자신의 숨겨진 죄성이
결국은 죽음으로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자책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마치 선뜻 주홍글씨를 가슴에 내건 헤스터의 용기가
가희 내부에 숨어있는 것이다.
결국 수연과의 관계에 대한 누설이나
물귀신처럼 기훈을 끌고 들어가
함께 죽음으로 몰고 가려는 행위등이 가희의
그런 투명성과 대담성을 증명해주는 행위다.
그러나, 기훈..
최후의 순간까지도 적극적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영화의 종반에는
가희처럼 차라리 숨가쁘게 죽어지는 축복조차도 얻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살아지는
기나긴 형벌을 받게 된다.
어쩜 죽을 때까지
딤즈데일의 고통 못지 않은 환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며
남편의 온갖 구박이란 구박은 다 받았지만,
( 어디서.. 보자는 영화마다 죄다 이 모냥이냐,
사상이 의심스럽다. 게다가 이 영화, 왜 그리 피가 많이 나오냐,
정사 장면은 또 왜 그리 많이 나오는 거며
정사를 하면 했지, 꼭 그렇게 적나라하게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냐...
정말 당신의 영화 선택 수준이 몹시 의심스럽다.. 는 둥..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악평을 다 들었다. ㅠㅠ )
어쨌거나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게..
적당한 반전 ( 좀 억지 반전이긴 하지만.. ) 도 즐기며..
나름대로 잘 즐겼고만..
확실히 남편과 나의
영화 취향은 정반대인 것을 새삼 뼈저리게 실감하는 하루였다.
지금 흐르는 음악은
지하 재즈카페에서 보컬로 노래부르는
가희 ( 이은주 분 ) 의 'Only When I Sleep' 이라는 노래이다.
밋밋하고 뻔한 스토리를 싫어하는
나같은 취향의 님들이라면
주말 심야에 한번쯤
푹 빠져서 감상해봄직한 영화라고..
쭈뼛거리며 감히 주저리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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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석규가 참 괜찮은 배우라 생각했는데 ... 요번의 영화는 왜 출연했는지 모르겠네요 . 아무래도 돈이 될 만한 영화라 판단했으리라 보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심모라는 영화제작자의 말을 들어보면 한심하기가 그지 없는 일입니다 ..., 한석규 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