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이야기 - 정끝별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처럼 시작된다
비긋는 늦여름 저녁 식탁에 놓일 숟가락 개수를 결정해야 해, 그게 라스트신이거든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며 으깨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야 고소해지고 거품을 잘 거둬낼수록 순해진다 매 순간의 물과 불 앞에선 묵묵한 캐릭터가 필요해
오랜 짠물은 너의 단맛을 끌어올려준다 몽글한 웅얼거림과 뜨거운 울먹임이 뒤섞여 엉겼다가 무명 보자기에 걸러지면서 단단해지는 이 플롯을 구원이라 할까 벌 아니면 꿈이라 할까
담담한 눈빛과 덤덤한 낯빛으로 맞이하는 밥상에서 만만찮은 희망으로 만만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콩밭 매는 마음과 콩밭에 간 마음을 쓸어 담아 써 내려가야 갈 너의 한밤이 희고 깊다
밤새 이야기는 그렇게 쏟아지고 불려져 아침의 너는 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ㅡ시집 『모래는 뭐래』(창비, 2023) *********************************************************************************************************** 두부는 콩을 불린다음 갈아서 단백질 덩어리로 만든 다음에 여러 식재료로 활용합니다 요즘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합니다만, 예전에는 한 집안의 기술로 이어져 여러 날 먹을 것이 되었습니다 과정과 절차가 비교적 복잡하기도 하고, 시간도 오래 결렸으므로 누구나 쉽게 익히기 어려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입을 대다보니 구설이 이어집니다 물과 불 앞에서는 늘 묵묵한 기다림과 성찰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거름을 주지 않는 거친 땅에서 콩은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콩밭 매는 아낙네는 비지땀을 흘리고, 게으른 농부도 마음을 콩밭에 둡니다 모든 생산 활동의 끝은 식탁에 놓을 숟가락 개수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나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하루살이는 되지 않아야 할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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