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받들어 모시고 사는 일의 힘듦을 알았을까
그 오래 참고 견딤의 작은 위로일까
봉천동에서 행운동으로 동 이름이 바뀐
처자식이 사는 집에 와 하룻밤을 묵는다
집장수가 똑같은 구조의 집을
네다섯 채 후다닥 지은 탓인지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운
계단은 항상 침침하고 지저분하지만
오늘은 비 내리는 가을밤이라서 그런지
최신식 원룸들이 포위하듯 들어서서 그런지
풍상에 시달린 붉은 벽돌집이 가막소 한가지고
착 가라앉은 품이 열두대문 큰집 외딴 행랑 같다
빗소리를 껴안고 든 잠이 모처럼 다디단데
빗소리에 살풋 잠이 엷어진 새벽에
어디 개 짖는 소리 들렸더라
희미하게 닭 우는 소리도 들리더라
잠자리 벗어나면 큰길 건너 원당시장 푸줏간으로 가리라
삼겹살 두어 근 끊고 상추 깻잎 사고
휴일이라 늦잠 자려는 자식놈들 두들겨 깨워
고기 구워 아귀아귀 먹으리라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하늘 가까워 그만큼 가파른 비탈길 내려가며
마주할 것이다
지난밤 비에 말갛게 씻간 관악(冠岳)을
그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햇빛에
깨끗하게 빗나는 이마를
이 또한 작은 행운이라 생각느니
전세 사는 이 집이 하찮은 우거는 아니라고
위리안치 누옥 같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버릴 것이다
반(半)가족이 살아 '한가족 빌라'라는 이름에는
미안해할지라도
[중얼거리는 천사들],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