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 최승자
많은 사람들이 흘러갔다.
욕망과 욕망의 찌꺼기인 슬픔을 등에 얹고
그들은 나의 창가를 스쳐 흘러갔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무를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 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그래, 끊임없이 나를 호출하는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피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구덩이에 내가 함몰된다 하더라도
나는 만져보고 싶었다,
운명이여.
그러나 또한 나는 끊임없이 문을 닫아걸었고
귀와 눈을 닫아걸었다
나는 철저한 조건반사의 기계가 되어
아침엔 밥을 부르고
저녁엔 잠을 쑤셔넣었다.
궁창의 빈터에서 거대한 허무의 기계를 가동시키는
하늘의 키잡이 늙은 니힐리스트여,
당신인가 나인가
누가 먼저 지칠 것인가
(물론 나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을 창조했다는 것까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그 전화선의 마지막 끝에 동굴같은
썩은 늪 같은 당신의 구공이 걸려 있었다.
어느날 그곳으로부터 죽음은
결정적으로 나를 호명할 것이고
나는 거기에 결정적으로 응답하리라.
타들어 가는 내 운명의 도화선이
당신의 썩은 구공 안에서 폭발하리라.
삼십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완성하기 위하여.
늙은 니힐리스트, 당신은 피묻은 너털웃음을 한 번 날리고
그 노후의 몸으로 또다시 고요히
허무의 기계를 돌리기 시작하리라.
몇 천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