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등기
1992년 교회 개척하며 전세금과 직장 퇴직금으로 세웠다.
성도들의 주택 마련 전에는 내 집을 구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소유의 삶을 그리며 나섰다.
10년 세월에 예배당 건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샀다.
이자 감당하기 버거운 빚을 떠안았다.
3층 사택은 세입자가 세 번 바뀐 후에 올라갔다.
콘크리트 지붕이라 계절 따라 덥고 손끝이 얼얼할 정도였다.
태양광을 세워 부담 없는 전력에 과분한 삶이었다.
2014년 12월, 동생 집에서 어머니를 모셔 왔다.
해 질 녘!
보훈처에 무주택 국가 유공자 특별 공급 아파트 신청서를 냈다.
분양 아파트가 뜨면 안내 문자가 왔다.
구비 서류 들고 모델 하우스로 자주 뛰었다.
긴 줄에 몸은 퍼졌고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요원한 일로 여겨 손을 내리며 재물 얻을 능이 없음을 알았다.
아홉 달 만에 고부 갈등을 겪으며 눈물로 삶을 썼다.
여느 가을, 쫓기듯 돌고개 근처 상하방을 얻어 어머니가 나가셨다.
주인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 돈에 얽혀 모진 세월 애간장이 녹았다.
별세 4개월 전, 원금 90% 돌려받은 건 기적이었다.
‘어떻게 모은 돈이라고..’ 잔금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시대 흐름에 인터넷 청약 홈이 떴다.
안방에서 청약하고 결과를 봤다.
현장 접수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였다.
24평형 고집하다 지쳤다.
실수요자가 몰려 어려웠다.
기다림조차 낭비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32평에 손을 댔다.
2019년 2월 월산동 유보라 아파트를 가슴에 품었다.
반도건설의 월산 1구역 주택재개발정비 사업 일환이었다.
시내 접근성이 좋았다.
돌고개 전철역과 양동 시장이 5분 거리였다.
계약금이 문제였는데 아내가 해결사로 나섰다.
중도금은 신한은행이 대납해 천만다행이었다.
잔금 1억 원은 전세금으로 메꿨다.
좋은 기별에 목사님들이 한턱내라고 일어섰다.
억지 춘향으로 끌려가 백양사역 앞 한우 식당에서 주머니를 털었다.
2021년 9월 889세대 입주!
어머니와 이모가 23층에서 내렸다.
무등산이 걸어올 정도로 뷰가 괜찮았다.
꿈같은 보금자리에서 선친이 떠올랐다.
1990년 4월 광명 하안 아파트 입주 한 달 전에 떠나신 게 아쉬웠다.
멍울진 가슴에 대출 끼고 어머니만큼은 유보라로 모시고 싶었다.
혼자라는 부담에 손을 저어 어머니 명의 등기를 냈다.
전세금 받아 어머니 격에 맞는 새 임대 아파트에 살림을 차렸다.
세입자 관리와 세금도 만만치 않았다.
2년 후 전세 하락에 3천만 원을 토했다.
두 번째 세입자는 계약을 파기시켰다.
하지만 선납금을 전부 돌려줬다.
생전에 내게 등기 이전을 원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상속세 3천만 원 감당할 수 없어 심해로 가라앉은 잠수부 같았다.
하지만 등을 덜어 내는 고래의 날을 기다렸다.
막상 어머니가 떠나자 기력이 약해 이전 문제에 옹이 졌다.
가끔 멍 때리다 하루 보내고 남은 힘으로 치약을 짰다.
등기소를 찾아 구비서류만 챙겼다.
엄두가 나지 않아 방치해 뒀다.
6개월 이내 이전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붙었다.
정신 차려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에 누님과 동생들 인감을 받았다.
일본 동생은 오래전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영주권자라 인감 발급이 어려웠다.
기본 서류도 여권 사본, 전화번호, 위임장, 도장을 요했다.
동생에게 톡으로 받아 내밀자 민원실 창구 직원이 해 줬다.
힘이 실렸다. 불가한 인감 발급은 위임자를 세웠다.
자필로 위임장 작성하여 대사관 인준 절차를 밟게 만들었다.
재외국민 등록부 등본, 주민표.. 현지 서류는 번역문을 첨부시켰다.
번역이 빛났다.
번역자의 신분증 사본도 넘겼다.
일본 서류기 17일 만에 도착하여 가슴을 쓸었다.
이웃이라 쉽게 건널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다리며 별생각이 다 들었다.
휴가 내서 동분서주해 어렵게 땐 서류가 분실된 줄 알았다.
톡 사진으로 먼저 받아 법무 사무장의 조율을 거쳤다.
37통의 서류를 묶어 사무실로 갔다.
사무장이 한 장씩 넘기다 백부 제적등본을 요구했다.
왜? 필요한지 물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기에 상속자였다.
서구청 민원 분실로 뛰어가 두툼한 제적을 받았다.
선순위 유공자로 인정되어 발급비가 무료였다.
서류 넘기고 취득세, 교육세, 법무사 비용 포함 5백만 원을 보냈다.
일주일 후 등기 완료 전화가 왔다.
가을 노회 참석하는 몸이 가뿐하였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고마워 알렸다.
무엇으로 답례할까? 고민이 앞섰다.
진도 목양 교회 건축 후원 상자인 김, 오징어 부각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취향이 어떠하든 40만 원어치를 다섯으로 나눴다.
영어 주소, 성명, 전번이 필요한 일본 동생에게 보냈다.
‘오빠! 보내신 선물 도착했어요.
집에 없을 때 와서 내일 받을 것 같아요.
애써 보내신 것 감사하게 먹을 게요. 항상 건강하세요.’
‘빨리 갔네.
새벽에 검색했더니 통관 절차 중이라 곧 도착하겠다 싶었어.
김부각, 오징어 부각! 별거 아니지만 고향 생각하며 간식으로 먹으라고..
사용한 목도장 넣었어.
기념으로 보관하면 좋겠네.
건강 챙기고 평안함 누리며 행복하길 기도할게.
여러모로 힘써 준 결과라 고마울 뿐이네..’
누님도‘보내준 택배 잘 받았네.
동생 목사님! 앞으로 아름답고 복된 삶 이어가길 바라네.’
‘그래 누님 고맙네!’
저들의 낙락장송이 되려고 다짐했다.
이튿날 법무사 발송 봉투를 열었다.
광주지방법원 등기국 서류였다.
1가구 1주택 상속 취득세 2% 경감이 컸다.
소유권 이전(24년 5월 14일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 소유자가 눈에 띄었다.
세입자에게 알렸더니 ‘큰일 치르셨네요!’ 한마디였다.
2024. 10. 19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첫댓글 고생하셨네요. 축하합니다. 남은 삶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정을 쏱을 일만 남았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매주 글 올리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답글은
처음인 듯 합니다
성원에 힘입어
주님 기뻐하신 일에
불 태우고 싶습니다
늘 강건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