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향토사연구회는 매년 새해가 되면 향토사연구회 1세대로 불리는 현곡 이유수 선생(1926~2007)의 묘소를 찾는다. 선생은 1986년 1월에 회원 11명으로 울산의 대표적인 향토사연구단체를 창립한 중심인물이시다. 그는 향토사학자로서 울산에 실로 대단한 업적을 많이 남겨셨다. 특히 1986년 『울산지명사』를 출간하여 울산 지역의 방대한 고유 지명 2400여 개를 일일이 해독하여 향토사 연구에 길잡이가 되도록 하신 분이다. 묘소 참배는 80 순을 훨쩍 넘기신 양명학 전 울산대교수와 서진길 전 울산예총회장이 참배하여 더욱 의미가 깊었다. 묘소 참배를 마치고 구충당 이의립선생이 유황을 발견한 경주 만호봉을 약속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곧바로 ‘달천철장’ 으로 향했다.
‘달천’은 울산 북구의 달천동 지명이며 ‘철장’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던 곳을 말한다. 달천동과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이 유적은 원래 이름인 ‘달내’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곳을 기념물로 지정되기 전까지 향토사연구회 이상도 회장님의 노고가 많았음에 숙연함을 금할 수 없었다. 달천철장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채광작업이 이루어진 오랜 역사가 있는 광산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조사된 사례가 드문 채광 흔적이 확인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는 곧바로 달천철장의 최초 발견자 구충당 이의립선생(1621~1694)의 묘소를 찾았다. 구충당 선생은 조선 중기사람이며 울주군 두서면에서 출생하였다. 특히 효종 때 북벌정책을 추진되면서 군사력 강화를 위해 각종 무기 제작 시 필요한 철을 전국적으로 구하면서 달천철장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또 화약을 만드는 재료인 유황광산도 발견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1673년(현종14)숙천도호부사에 제수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묘소 앞에는 넓은 댐이 숲사이로 펼쳐져 있고 가파른 바위 끝에 청수암이란 절이 보인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 풍경에 즐거워하시리라. 하지만 그 절은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이미 스님들 모두 떠나고 없다고 한다. 지켜주지 못하고 떠나는 스님들 마음도 오죽했으랴. 그래도 저물어 가는 산사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풍경소리와 함께 자연과 어울려 세월을 보내 있는 절은 이제 신들의 공간인 듯하다. 그 옆으로 첨단 과학의 산물, 고속열차가 시속 250km의 속도로 굉음과 함께 10분 간격으로 달리고 있었다. 신이 있다면 시대의 변함에 구충당 선생의 생각이 궁금해 졌다.
첫댓글좋은 역사와 향토사 언제나 선배님의 글은 심금을 울립니다.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들이 옛날 호랭이 담배 피우던 얘기처럼 이렇게 구수할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좋은 역사탐방 하고 갑니다. 늘 응원합니다. 이젠 우수를 지나 봄 처녀 오시는 길목을 찿아 가볼까 합니다. 늘 건행하십시오.
첫댓글 좋은 역사와 향토사
언제나 선배님의 글은 심금을 울립니다.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들이 옛날 호랭이 담배 피우던 얘기처럼 이렇게 구수할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좋은 역사탐방 하고 갑니다. 늘 응원합니다. 이젠 우수를 지나 봄 처녀 오시는 길목을 찿아 가볼까 합니다.
늘 건행하십시오.
식견이 풍부한 후배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니 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