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
97년초 문화부대회인가? 나는 "공공부" 부서로 종로구청 족구단으로 출전했다.
기차박수와 피날레로 유명한 "논산족구단" 그리고 '뛰어가위차기'의 대명사 정청식의 화려한 발차기를 보고 흉내 내다 꼬리뼈를 다치고 이후 현재의 넘어차기 즉 오버헤드킥을 내 몸에 맞게 6개월간을 연습한 적이 있다.
일반2부 부서로 출전한 류재영의 신진자동차학원?!~ 그렇게 우리는 얼굴만 익힌채 지나가는 사람처럼 스쳐갔다.. 이후에 둘만의 악연이 인연인지? 인연이 악연이 됐는지?..
신문에 심판강습회 광고가 올라와서 심판교육을 신청했는데 또 다시 만난 류재영 빛나리 아저씨~
사무처장 겸 강사인 박** 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질문 있는데요?" "저는 85년도 공군에서 심판활동하고 심판인데 인정 안되나요?"
"안됩니다 이곳은 사회이고 사회단체 대한족구협회 입니다"
"넵?!~~"
"아까 족구는 대한민국 민속구기라고 하던데 맞나요?"
"맞습니다 우리나라가 종주국입니다."
이렇게 심판의 길로 접어 들었다.
97"가을 "한강사랑족구대회" 왠지 나는 예전의 경력이 인정이 되었는지? 부심으로 류처장은 선심으로 그때의 선심 깃발은 빠빠박 소리가 날 정도로 대단했다. 현재의 선심 깃발 운용의 표본이 된것으로 본다. 그렇게 내가 주심이 되면 나를 받춰줄 부심으로~~ 흠~ 믿을만한 심판이 류재영 밖에는 없었다.
98년도 협회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심판부장으로 명받았다.
'잉~~ 심판보는게 더 좋은데~~"
심판부장은 매번 쌈 말리러 다니는 중재자였다.
그러다 보니 멱살잡히는것은 부지기수, 옷은 찟기고, 아주 난장판 개판이 따로 없었다.
그 이유는 각지방마다 규칙이 달랐다.
뭔 놈의 규칙이 지방마다 다른가? 규칙도 통일이 안되었는데 전국대회?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리하여 본인 혼자서라도 규칙을 알리기 위하여 강원도(11개 시,군), 제주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김포, 수원, 청주, 제천, 영월을 중앙심판이 지방대회 때마다 최초로 사비를 들여 원정을 다녔다. 그래도 외지에서 초청왔다고 협회의 규칙대로 모두 따라 주었다.
2000년도 협회에 먹구름이 몰려온것 같다. 당시 처장 사직과 그리고 김경진 처장이 들어오고 처장보조 겸 보필자로 거액연봉 제의를 받고 "사업&심판부장"으로 종로구청에서 협회로 이직을 하였다.
결국 한푼도 못 받았지만' 속았다' 이런 씨불'
그리고 그해 4월 또 다시 김경진처장이 사직........나는 머 사업부장에서 땜빵처장으로...........
이것이 인생을 바꿀줄이야.........
그냥 사업부장으로 예산받아 대회만 운영하면 되는데, 처장이 되는 순간 예산확보의 책임이 수반되기 때문이다......에휴 봄날은 갔다....
처장으로써 심판부장 추천이 가장 큰 부분이 있어 믿을만한 류재영을 심판부장으로 천거를 하였다.. 정말 잘해 주었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호흡이 딱딱 맞았다. 그냥 숨소리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마도 족구판에 뛰어 들고 가장 즐겁고 재밌고 내 인생을 걸었지만 후회없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2006년도 까지 족구방송과 예산확보 그리고 협회 보증금을 월세500만에서 전세금5,000만원으로~~~
나는 모든 것을 믿었기에 "그 누가 의심되는 조언이 들어와도 이간질 시키지 말라"라고 일언지하에 짜르고 족구의 앞의 일만 밀어 붙혔다.
그런데 내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꿔버린 사건이 발생 한다..
.
.
.
ㅎㅎ
.
.
지나간 세월은 소설이고 한편의 드라마일 뿐!~
전 이제 족구정치판을 접었기에 소설식으로 그냥 씁니다.
즐거웠던 족구판(사람, 보람)이 많았기에...
..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