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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복과 행복나누기
 
 
 
 
 
카페 게시글
♥ 웰빙,여행,문화 ♥ 스크랩 레포츠 2005 고비사막 마라톤 참가기
혜천 추천 0 조회 21 05.12.10 22: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4월 중국 고비사막에서 열린 고비사막 마라톤 대회 참가기 입니다.

 

"SMILE CAN CHANGE THIS WORLD”

 

웃음은 전세계 모든 인종을 가리지 않는 대표적인 공통 언어이다.

특히나 문화, 환경이 다른 외국인들과의 만남 시 밝은 웃음이 주는 의미는 백마디 말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된다.

 

난데없이 달리기 이야기는 안하고 이상한 소리를 하나 생각도 되겠지만, 달리기라는 운동은 자기 만족을 위해 행하는 요소가 강하기에, 남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이라도 평소 몸에 습관화 시키면, 사지(死地)를 넘나드는 힘든 레이스 속에서도 모두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에너지로 승화된다.

 

이번 고비사막 대회에서 또한 아무리 힘든 상황에 빠져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작은 미소 하나가 주변의 분위기를 바꿀 수만 있다면, 나의 작은 노력 하나가 어려움에 빠져있는 상대방에게 커다란 힘을 줄 수 있다면, 평상시 달리기 할 때 표정관리에 신경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웃음을 잃지 않고 미소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을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2005. 4. 24.(일) Stage-1

 

- 거리: 32km

- 고도:

-Start : 1,330m

-End : 2,015m

 

역시 예상했던 대로 고지대에서 시작한 고비사막의 밤은 추웠다.

지난 대회 때 추위에 너무나 고생을 한 경험이 있어 이번 참가자들에게는 동계용품 준비를 철저히 당부했다. 그 때문인지 새벽에 영상 3도까지 내려가는 거의 영하의 날씨였지만 모두가 커다란 어려움은 없었다.

 

2005 고비사막 대회의 한국팀은,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무웅님, 재일교포이신 조경일님, 신장이식을 하신 강영선님, 시각장애인의 대표적 달림이 이용술님, 가장 많이 고생한 도움이 김경수님, 조선일보의 이석우 기자, 홍일점 김효정님 그리고 날날이 유지성으로 구성되었다.

 

대회출발은 캠프에서 2km 떨어진 인근의 마을까지 트럭으로 이동 후 시작을 했다.

중국관리들 특유의 형식적이고 지루한 개회식을 뒤로하고 대회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90명의 선수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출발선에서 뛰쳐나갔다.

지난 대회의 어려운 난이도 영향인지 올해 대회 참가자들의 많은 수는 등산용 스틱 소지자가 많았다. 또한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워킹 연습과 워킹 대회 참가경험을 갖고 있었다. 확실히 이전과 다른 준비들을 했다는게 느껴진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고비사막은 산악코스가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한국 참가자들과 다르게 아무런 대회 참가 경험이 없는 조경일님과 이석우 기자의 초반 페이스가 예상보다 빠르다. 내가 보기에는 약간의 오버페이스 같다. 코스의 성격을 전혀 모를 때에는 초반에 힘을 아껴야 후반의 변화하는 환경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는데 대회 첫날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흘리는 땀의 양은 더욱 늘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만 있는 오늘의 코스는
우리들의 체력을 야금야금 소진시키며 지치게 만들었다. 제일 걱정되는 이석우 기자를 돌보며 두번째 체크포인트까지 갔는데 의외로 선전하는 모습에 오늘의 레이스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넓고, 넓다란 광야를 지나 산을 오르니 눈앞으로 펼쳐진 벌판이 마치 강원도 대관령 같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 멀리 백색의 캠프가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낸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달린 덕분인지 부담스러운 첫날의 일정을 아무런 문제없이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기록에 신경을 안 쓰고 달리는 스타일이지만 이해를 위해서 기록하자면, 첫날 기록은 5시간 47분, 1등과는 3시간의 차이가 났다.

 

2005. 4. 25. Stage -2

 

- 거리: 30km

- 고도:

-Start : 2,015m

-End : 1,080m

 

매일 아침 열리는 레이스 브리핑 시간에 오늘은 여러 번에 걸쳐 크고 작은 개울을 건넌다고 한다. 시기적으로 4월은 산에 있는 눈들이 녹아서 강으로 흘러 드는데 물 온도가 영상 1~2도 정도로 무지하게 차갑다. 많은 수의 개천을 건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또한 계곡을 따라서 내려가다 마지막에는 듄(Dune)지역을 넘는다고 하는데, 모래언덕을 말하는 건지 흙으로 된 언덕들인지 감이 안 잡혔다.

 

이곳 고비사막은 사하라와 다르게 흙으로 된 듄(Dune) 지역이 많은데 단단하면서 쉽게 무너지는게 모래로 구성된 언덕들과 다를 바는 없었다. 이곳에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처음에는 무조건 뛴다. 나의 경우 사진을 찍는 재미로 달리기에 초반에는 선두로 질주한다. 그리고 선두부터 후미까지 열심히 찍고 천천히 유람을 즐긴다.

 

나에게는 이번 대회가 4번째 사막 레이스다.

처음 참가때부터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에 내가 생각하는 사막의 여유를 찾고 보니 남을 도울 수 있는 힘과 레이스 전반에 걸친 자기 관리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가고 있는데 앞쪽에 이용술, 김경수님이 보였다.

아무래도 물을 많이 건너고 바닥이 자갈밭이다 보니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두번째 체크포인트까지는 나도 함께 도우미가 되어 길을 헤쳐나갔다.

좌우로 깍아지는 듯한 수십 미터의 수직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져있는 계곡을 지날 때는 정말로 장관이었다.

 

두번째 체크포인트부터는 길이 좋아져서 이용술, 김경수님을 먼저 보내고 다친 발목을 치료하며 1시간 이상 떨어진 후미의 한국참가자들을 기다렸다.

 

두번째 체크포인트부터는 장경인대 부상이 발생한 이석우 기자와 함께 길을 갔는데, 아무래도 초보자에게 이곳 고비사막은 무리인 것 같다. 진통제를 먹이고 응급처치를 했지만 얼마 가기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기자와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오늘의 마지막 난 코스인 듄(Dune)을 넘기 시작했다.

흙으로 이루어진 듄 이지만 높이가 만만치 않았고, 수많은 언덕이 많은 관계로 경험이 있는 내가 선두에서 길을 찾고 수신호로 뒤쪽에 오는 이기자를 포함한 참가자들에게 길안내를 해주었다. 

 

이기자의 부상 상태가 점점 안 좋아 지기에 듄을 넘는데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몰아치는 모래 폭풍을 뚫고 이석우 기지와 함께 골인을 했다. 오늘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마친 기쁨보다 이석우 기자의 부상이 걱정이다.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기록은 6시간 13분으로 양호했다.

 

 

2005. 4. 26. Stage -3

- 거리: 42km

- 고도:

-Start : 1,080m

-End : 325m

어제 밤은 비를 동반한 폭풍우가 심해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 버릴 뻔 했다.

모두가 텐트의 모퉁이를 잡고 휘청거리는 텐트와 함께 하기를 몇 시간 될 때로 되라는 심정으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스럽게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이기자의 부상만은 점점 악화 상태였다. 결국 이기자는 오늘 레이스를 포기하며 눈물을 삼켰다. 모두에게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었다.

 

사실 지난 이틀간 레이스의 난이도는 예전 대회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 쉽게 느껴졌다.
전 대회에서는 해발 4,000m의 고산을 오르다 보니 추위와 고산증으로 지금까지 겪은 대회 중에서 가장 고통스런운 대회로 남아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레이스 중간에 내가 울었던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유를 부릴 정도로 아직까지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오늘은 처음부터 시작된 내리막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며 절로 노래가 나올 정도로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고도가 낮아지니 본격적으로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될 것 같았다는 불안했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작은 마을과 포도밭을 지나 계곡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 졌다.

절벽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코스였던 것이다.
한 무더기의 참가자들은 조심스럽게 한명, 한명 절벽을 내려가야 했으며, 절벽 아래에는 허벅지까지 잠기는 계곡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음 같이 차가운 계곡물을 헤치며 얼마를 왔을까? 갑자기 코스가 산 쪽으로 연결되더니 수십 미터 낭떠러지 위를 조심스럽게 지나 River Bed(우기에 강으로 변하는 지역)지역을 통과하는 코스로 바뀐다.

River Bed에 있는 체크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그 동안 함께한 홍콩 팀과 헤어져 간만에 혼자서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현지 주민들이 엉뚱한 길을 알려줘 약 4km 정도 코스를 이탈을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손을 잡고 엉뚱한 길로 인도한 녀석을 한번 더 만났다. 하지만 그 녀석은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떠들고 있었다. 생매장을 시켜 버리고 싶었지만 똑 같은 놈이 되기 싫어서 뺨만 몇 번 어루만져주고 왔다.

마을을 지나 사막 지역으로 들어가니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이곳부터는 나침반으로 방위를 확인하며 가야 하는 곳이다. 이번을 대비해서 구입한 Suunto 디지털 나침반이 커다란 힘을 되어주고 있다. 뜨겁고 건조한 고원지역을 통과하다가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던 조경일님을 만났다. 방위를 확인해주고 같이 길을 가니 저 멀리 앞서가던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경일님의 상태를 점검 후 두번째 체크포인트부터는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다.
영상 48도를 넘나드는 찌는듯한 무더위로 수시로 머리에 물을 부었지만 아무도 없는 벌판을 달린다는 건 너무나 상쾌한 일이었다.

세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마지막 골인점까지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코스 중간 몇 시간 만에 만난 그늘 아래서 혼자 중얼거렸다.
난이도 쉽다는 것 다 취소다.


점점 어려워지는 코스와 살인적인 무더위는 이전 대회와는 또 다른 난이도의 어려움을 제공했으며,
어제부터 발생한 탈락자가 오늘은 더욱 늘었다. 오늘 기록은 11시간 13분.

 

 

2005. 4. 27. Stage -4

 

- 거리: 37km

- 고도:

-Start : 325m

-End : 205m

 

Jesse, 오늘은 산을 넘는다는데, 맞니?

Team CB의 리더인 네이튼이 길을 가다 물어본다.

오늘은 Mountain day라 뭐 맞겠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Mountain day.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는 꼭 거쳐가는 관문 중에 하나다. 지난번 대회에서는 마운틴 데이 거의 4,000m를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의 마운틴 데이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김경수님 말대로 죽을 고비를 20번도 넘게 넘겼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코스 설계자인 이안미친놈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제 밤부터는 식지 않은 지열 때문에 추위를 못 느끼며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아니, 자다가 더워서 몇 번이나 일어나 물을 마신 기억이 있다. 깊은 숙면을 못 취하다 보니 아침에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았다.

 

국은 동서 길이가 5,000km를 넘는 거대한 대륙이지만 통치 차원에서 북경시간을 기준으로 시차 없이 모두 동일한 시간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있는 서쪽 고비사막은 아침 8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밤 9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출발 후 언덕을 넘어가는데 좌측으로 태양이 뜨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 삼아 여러 참가자들이 언덕 위에서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언덕아래 첫 번째 마을을 지나 수백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오르니 멀리 투루판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의 산 입구가 시작된다.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 보니 우리가 앞으로 넘어 가야 할 산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데, 나무 하나 없는 회색의 높다란 흙 산들이 괴물처럼 끔찍해 보였다.

 

넘고 넘고 또 넘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한국의 산들도 나무가 없어지면 이곳 고비사막의 흙 산과 똑 같아 지려나 정말로 이상 야릇한 회색의 괴물 모양이다. 이놈의 산들이, 괴물들이 우리를 통채로 잡아먹으려는지 자꾸만 자꾸만 산의 중심부로 끌어 올리고 있다.

첫 번째 산을 넘으니 멀리 정상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

까마득한 산 정상에 뭔가 조형물이 보이는 게 마치 체크포인트 같은 게 있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이 능선 저 능선을 타며 정상을 향해 돌격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헉헉 대며 정상을 올라 체크포인트를 찾으니, 세상에 그곳에는 유정(油井)이 있었다. 어제 코스 후반부에 멀리서 불길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유정(油井)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높은 산 위에 까지 유정(油井)이 있는 모습에는 기가 막혔다.

허탈한 마음에 또다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인디애나 존스의 영화 촬영지 같은 계곡을 계속해서 내려간다. 어떻게 이런 동네가 다 있는지, 기이하다 못해 정말로 고비사막은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갈 길을 점검했는데, 체크포인트가 있는 산 정상부터 공포의 칼 능선이 마치 만리장성 같은 모습으로 구비구비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오로지 산의 색깔만 회색이고 주위는 하얀색으로 빛나는데 마치 바다 위의 섬같이 느껴졌다.

 

2005 고비사막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칼 능선 코스는, 주로 폭이 좁은 곳은 약 30~40cm 이며, 양쪽으로는 수십~백미터 이상의 비탈과 절벽으로 이뤄진 공포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조심 조심 길을 가다가도 가끔 신발에 채인 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참을 가도 계속해서 돌 굴러가는 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이용술님과 김경수님은 이곳을 어떻게 지나갔는지 궁금하고 무지하게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는 죽음의 코스. 어떻게 이런 곳을 대회 코스로 만들었는지 코스 디렉터인 이안이 괴이하게 보인다.

칼 능선을 빠져 나와 평원 지대로 들어오니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온도계를 보니 이미 50도를 넘었다. 일단 사막에서 태양이 뜨기 시작하면 고열의 한증막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평원 지대에서는 중국의 홍팡을 만났는데 이 언니는 얼마 못 가고 일사병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일사병으로 쓰러진 홍팡을 보니 나도 더위를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두 번째 임시 체크포인트에서 약 1시간을 쉬었고, 세 번째 체크포인트에서는 아예 누워서 낮잠을 잤다. 오늘은 더위와 험난한 코스 때문에 뛰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생각 자체를 안 한 것 같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운 게 새로운 힘이 난다. 충전이 끝난 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개구리 뛰듯 마지막 남은 거리를 팔짝 팔짝 뛰어 갔다. 오늘의 기록은 12시간 44분으로 마감했다.

 

 

2005. 4. 28. ~ 29. Stage -5 (long Day)

 

- 거리: 90km

- 고도:

-Start : 205m

-End : 180m

 

드디어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는 Long Day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과 내일에 걸쳐 달려야 할 거리는 90km. 사막에서 90km라 함은 무지막지하게 긴 거리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그것도 영상 50도가 넘는 상황에서 불규칙한 코스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뛰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큰 맘먹고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 자체가 워낙 늦은지라 열심히 달려도 중간이상은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초반의 인디애나 존스 촬영장 같은 계곡을 지나니 뻥 뚫린 평원이 나타났다. 또 다시 미친 듯이 달렸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이하 CP)를 지나서 부터는 비포장과 포장이 뒤섞인 도로를 일직선상으로 달리는 코스다. 날은 더워지면서 열기가 화끈거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로를 가자니 벌써부터 지치는 것 같다.

 

두번째 CP를 지나서 길을 가는데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기온이 40를 넘더니 50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날이 덥고 힘이 들다 보니 이제는 중간에 참가자들끼리 만나도 인사만 나눌 뿐 별다른 수다를 못 떤다.

 

허우적거리며 세번째 CP에 도착하니 사막의 성수콜라를 준다.

이상하리만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사막에서는 콜라에 목을 메고 있는걸 볼 수 있는데 콜라 중독은 국적을 안 가리는 것 같다. 성스러운 콜라를 한방에 들이키고 하늘을 보니 왜 그리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는지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콜라의 충만함 덕분에 다시금 정신을 차려 길을 가는데, 이거이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52도까지는 여유부리며 사진도 찍고 갈수 있었는데, 54도를 넘어서 부터는 정신을 못 차리겠다. 쏟아지는 태양광이 너무나 뜨겁고 달아오르는 열기 속에 어디 숨어야 할 곳이 필요했다. 물도 떨어지고 눈앞이 가물가물하는 와중에 갑자기 전봇대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다 싶어서 그 좁다란 그늘에 머리를 처박고 마지막 남은 물을 전부 머리에 부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왠지 살았다는 느낌이 들며 다시 눈이 맑아졌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길을 가니 얼마 안가 네번째 CP가 나타났다. 일단 목부터 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참가자들이 여기저기 그늘 속에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들을 보고 킥킥 웃었다. 나도 인근에 있는 건물 담벼락 그늘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전의 전봇대와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크기의 그늘에 대 만족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체 참가자 중 20% 정도가 탈락을 했는데, 그 중에 70% 정도가 Stage 5인 Long Day에서 탈락됐다. 같이 오던 일본 에이전트인 야수에도 이번 코스에서 일사병으로 후송됐으며, 나중에 알았지만 홍콩팀인 Team CB의 엔젤과 셀리나도 같은 코스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마냥 있을 수는 없기에 길을 떠났다. 그런데 길 양쪽으로 허연 소금들의 밭이 펼쳐져 있는 것 아닌가. 신기함에 먹어보니 정말 짭짜름한 맛이 느껴졌다. 이곳이 정말로 말로만 듣던 소금 사막인 것이다.

 

소금바다를 감상하며 길을 가다 한 무리의 참가자들과 다시 만났다.

예전 사하라, 고비 멤버인 64살의 일본 참가자 오츠카 아저씨. 이 아저씨는 후쿠오카 출신으로 지금 은퇴 후 마사시 아저씨와 함께 그랜드슬램( 고비, 사하라, 아타카마, 남극 ) 달성을 위해 꾸준한 도전을 하고 있는 재미난 아저씨다. 벌써 내년 초에 열리는 남극 대회까지 참가 신청을 해 논 상태라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의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될 것 같다.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에 태양도 지쳤나?

너무나 순식간에 어둠이 밀려오더니 태양이 힘 한번 못쓰고 한밤중으로 변했다.

이제부터는 헤드랜턴과 나침반에 의존한 길 찾기 게임의 시간이 돌아왔다.

 

얼마를 가자니 어둠 속에 여러 참가자들이 뒤섞여서 우왕자왕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었다. 내가 디지털 나침반이 있다고 안심시키며 방향을 잡은 후 다음 CP까지는 길을 앞장서서 가는 임무를 맡기로 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다섯번째 CP를 지나 여섯번째 CP에 도착을 했다.

앞으로 캠프까지 남은 체크포인트는 3개. 코스 설명서에는 마지막 18km 정도만 Big Dune을 포함한 모래지역이고 나머지는 평지라고 한다. 지금의 몸 상태는 아직까지 특별히 이상부위가 없다. 적절한 휴식과 치료 덕분에 물집으로 고생도 안하고 단지 발톱 3개가 피멍이 들어서 언젠가는 빠질 것 같다는 예상만 있었다.

 

중간 점검 상태가 양호하니 이제 여유가 생겼다.

길을 가야 할지 후미의 한국 참가자들을 기다려야 할지 생각을 하다가 일단 몇 시간만 눈을 붙이고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여섯번째 CP에서는 친구인 홍콩의 데릭이 총괄 담당을 했는데 무전을 통해 날아오는 한국 참가자들의 위치를 수시로 알려주었다. 결국 여섯번째 CP에서는 8시간을 머물며 한국 참가자들이 바로 이전의 CP를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체크포인트 1개 사이를 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아침에 길을 떠나는 건 너무 너무 상쾌하다.

나는 사막에서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갈 때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전화벨도 안 울리고,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남에게 구속 받지 않는 무공해 자유. 물론 저쪽 열대의 편안한 천연 휴양지에서 느끼는 자유와 휴식도 좋다. 하지만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길을 헤쳐나가며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된다.

 

일곱번째 CP와 여덞번째 CP는 중간에 마을을 통과하는 코스로 이뤄졌다.

그 동안 가끔 지나쳐 왔던 마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커다란 도시다. 이곳에도 참가자들이 지나갈 때 동네 어린 아이들이 무리를 이뤄 따라오지만 아프리카 같이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중국이 상대적으로 잘 산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일곱번째 CP에서 중국 자원봉사자인 시웨이가 고생했다며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사줬다. 콜라 2병을 단숨에 들이키니 힘인 막 생긴다. 힘이여 솟아라!

역시 나는 콜라 중독이다. 콜라의 힘으로 여덞번째 CP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여덞번째 CP부터는 방풍림이 없어지며 본격적인 모래 지역으로 바뀌었다.

멀리 거대한 Big Dune들이 높다란 모래산맥을 이루고 있었는데 누렇고 탁한 모래들이 괴물로 보였다. 이미 시간상 태양은 머리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하늘의 태양과 모래로부터 뿜어 나오는 열기는 마치 내가 대장장이의 용광로 한가운데에서 담금질 당하는 있는 쇳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뜨겁고 뜨거운 시간에 모래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내가 예전에 아프리카와 필리핀에 수년간 살며 더위에 적응을 했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걱정이 쓰나미 처럼 밀려왔다.

 

아홉번째 CP에서는 미국의 마이클과 케이시 부부를 만났다.

이전에 미국잡지 러너스월드 잡지 모델 할 때 같이 작업해서 알게 됐는데 한국에 몇 년간 살아서 한국음식도 잘 먹고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을 보면 참으로 순수하며 재미있고 즐겁다. 원래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는데 이번에 둘 다 똑같이 발 물집 부상으로 고전을 하고 있다.

 

열기가 좀 식기를 기달려 먼저 출발을 했다.

이제 마지막 캠프까지는 두개의 커다란 Big Dune을 넘어야 한다. Long Day 막판에 Big Dune을 배치한다는 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만큼 고생스럽기에 강렬한 기억과 만족으로 남을 수 도 있다.

 

역시 모래지역은 황사의 진원지답게 모래폭풍이 심하다.

고글도 방풍용으로 바꿔 착용하고 최대한 능선을 타고 모래언덕을 넘어갔다.

넘고 넘고 넘어도 똑 같은 모래 언덕들.

지칠대로 지쳐서 터벅터벅 모래 언덕을 내려 가는데 다음에 넘을 모래언덕 위에 뭔가 번쩍 거리는게 보였다. 정상에 기어 오르니 그곳에는 중국참가자가 버리고 간 식량 뭉치가 있었다. 그 동안 너무도 먹고 싶었던 소시지, 과자, 초코렛 등등.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수십 미터 높이의 모래언덕 위에 걸터앉아 소시지를 까먹는 짓이란 너무나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신비함이다.

 

몇 시간에 걸친 모래언덕 넘기. 마지막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아래에 백색의 텐트촌이 보인다. 많은 참가자, 스탭들이 나와서 나의 도착에 환호를 보내는 모습들이 보인다. 여유만만, 정상부터 캠프까지 열심히 뛰어 내려간다. 길고 길었던 Long Day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순간, 찍! 오른쪽 발바닥 물집이 터졌다.

롱 데이는 기록이 무의미하지만 36시간 12분으로 마감했다.

 

 

 

2005. 4. 30. Stage -6

 

- 거리: 22km

 

참가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어렵고 힘든 230km를 넘어 왔기에 마지막 남은 거리는 굴러가도 완주할 수 있다는 여유와 완주의 들뜬 행복감, 자부심 등이 얼굴에 가득하다.

 

대회 최종 골인 지점은 위구루 자치주가 자랑하는 Sand Dune National Park 다.

Sand Dune National Park는 모래산맥의 입구라고 하는 곳인데, 그곳부터 시작된 모래산맥이 대륙을 넘고 넘어 몽골 쪽까지 이어진다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떠들었다. 어쨌든 믿거나 말거나다. 기록 순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눠 출발을 했는데 나의 경우 2번째 그룹으로 이무웅님, 이용술님, 김경수님과 함께 출발을 했다.

 

오늘은 특별히 개그맨 신동엽씨가 중간에 합류를 했다.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프로그램에는 이용술님과 김경수님의 도전 이야기가 방영된다. ( 2005년 5월 15일 방영됐음) 그래서 한국과 이곳 고비사막에서 촬영을 목적으로 오늘 새벽에 합류를 한 것이다. 먼 길을 달려와서 피곤할 텐데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위의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걸 보니 역시 연예계의 프로는 달라 보였다.

 

2번째 그룹에서 달리다 보니 내가 선두권에서 달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더욱이 초반의 벌판을 지나 마을로 들어와서는 간만에 온전한 아스팔트를 달리니 신이 나서 무지하게 밟았다. 선두를 추격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스탭 차량이 나타나 코스 이탈을 했다고 알려준다. 기운이 쭉 빠진다. 허탈한 기분으로 다수의 참가자들은 약 3km 정도를 다시 돌아와야 했다.

 

정규 코스에 합류를 했지만 이미 힘이 빠져 버린 상태라 최하위권에서 천천히 길을 갔다.

우측으로는 거대한 모래 언덕들이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개천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이곳부터 다시금 포장된 길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부터는 이제 올해 고비사막 대회의 마지막 달리기라는 생각으로 힘을 모아 달리기 시작했다.

 

많은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 대로에 나가니 골인 지점까지 약 1km의 직선로가 나타났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결승선까지 열심히 달렸다. 얼마 후 저 멀리 붉은색으로 치장한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 지고 있는 결승점. 누군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고 몇몇의 이쁜 언니들이 뛰쳐나오고, 친하게 지내던 참가자들의 반가이 맞아 주는 환한 얼굴들도 보인다.

 

골인과 동시에 가지고 있던 물병을 하늘 높이 날려 보냈다.

그 동안 지고 있던 뭔지 모를 굴래들을 날려 보내는 것 같이 시원함을 느낀다. 이로써 2002년부터 시작된 나의 네번째 사막 레이스가 끝났다. 이제는 9월의 이집트 사하라 사막 대회가 새로이 나를 기다린다. 인간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한계라는 것을 피하기 보다는 부딪혀보고 나의 한계를 알고 싶다. 항상 새로움에 도전하는 나의 도전정신이 살아 있는 한 나는 나를 뛰어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마무리

이번 고비사막 대회는 여러 가지 즐거운 추억들을 남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참가자들이 합심하여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줬고, 방송(MBC TV) 과 신문( 조선일보) 의 유기적인 협조도 이루어졌다.
고비사막 대회의 승자는 모든 참가자들의 것이다.
그 중 특별히 시각장애인 달림이 이용술님과 그림자처럼 도우미 역할을 수행한 김경수님은
한국 사람들만이 아닌 모두의 자랑이었다. 시상식 날 두 분은 특별상을 받았다. 그때 모든 참가자들이 기립하여 몇 분간에 걸쳐 박수와 환호하는 모습은 평생에 두고 잊혀지질 않을 명 장면 중 하나다.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전트 입장으로 외국인들이 한국 참가자들에게 감탄하고 찬사를 보낼 때면 정말로 가슴이 뿌듯하다. 아직까지는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용감하며 유머스러운 한국인들의 모습이 그들의 뇌리에 자리잡을 때 한국의 국제적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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