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가을
1998년 10월 16일
상운 페교는 몇 개월 전 그대로였다. 저금 떨어져 있어 고요한 정적감이 물든 단풍나무가
커다란 은행나무와 함께 가을 성채를 이루고 있었다.
둑 앞에는 황금 들판이 자리하고 있었고 왼쪽 마을 뒤편 야트막한 산 사이로
삼각형으로 물구나무선 푸른 바다가 보였다. 건물 사이의 바람이 아닌 완전히 방목된 가을 바람이
햇살 사이로 곡선을 그리며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미주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제야 살 것 같아.
그렇게 기분이 좋아.
응, 날아갈 것 같아. 승우 씬?
나도 좋아.
봐, 내려오길 잘했지.
그래.
승우는 안에서 빗장만 질러 놓은 교문을 열고 차를 천천히 몰아 교사 뒷편에 세웠다.
차에는 필요한 생필품과 턴테이블, CD박스 책 옷가방과 냉장고에 들어가야 할 품품들이
뒷좌석과 트렁크에 가득 실려 있었다. 물론 정란이가 승우에게 준 여러개의 의료 박스들도.
세 개의 열쇠가 달린 뭉치는 경희 선배의 말대로 상수리 나무 밑 섬돌 아래 놓여 있었다.
관사 현관 열쇠와 기숙사 열쇠, 도자기실 열쇠였다. 승우는 열쇠를 미주에게 자랑스레 흔들어 보였다.
어떡할까?
우리 그냥 기숙사 써, 보일러 난방도 괜찮고 작은 부엌도 딸려 있잖아.
가스레인지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전화도 연결해서 쓸 수 있고 아무 문제 없잖아?
그럴까?
그래, 나중에 필요한 게 있으면 관사에 있는 것을 빌려다 쓰지 뭐.
그러면 물건 옮기고 정리하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미주 너는 학교를 돌아봐, 돌아온 관리인처럼 말이야.
그래도 방 청소는 내가 할게. 같이 정리하면 빠르잖아.
뱃속의 우리 공주님 모시고 있는 게 너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얼마 안 걸릴 테니까 산책 하듯이 천천히 돌아봐,
정 그러시다면 흠, 우물물 맛부터 점검해 볼까?
좋으실 대로!
승우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 기숙사 안으로 물건을 나르기 시작했다.
미주는 깊이가 열 길 정도 되는 우물에 나무 두레박을 던져 넣었다.
맑은 수면 위에 자신의 얼굴이 부서져 일렁였다. 병색이 도는 해쓱한 얼굴이었다.
볼살이 빠져서 광대뼈가 조금 드러나 있었다.
미주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직도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다.
화장을 한다면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말라깽이 아가씨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웃음이 흰 치아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청량한 우물물은 위를 세척해 주는 느낌이었다.
폐교가 되기 전 인근 마을의 어린 학생들이 달라붙었을,
체육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시멘트에 타일을 붙인 수돗가로 뛰어가기보다는
틀림없이 이 우물로 뛰어왔을 터였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한 물이 우러나 고인
이 우물 때문에 이곳이 그렇게 그리웠던가 싶었다.
미주는 주머니에 있는 조그만 물병에 든 생수를 쏟아 버리고 우물물을 채웠다.
이제는 하루에 적어도 한 번씩 동통이 왔다. 통증의 시작은 위가 있는 복부에서 시작되지만
순식간에 바깥으로 튀어나와 온몸을 무너뜨리는 위력이 있었다.
미주는 주머니에 언제나 강력한 진통제와 물병을 넣고 다녔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믿고 몸 속에 자리잡아 한 발 한 발 미주에게,
아빠인 승우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걸어오는 아기를 위해서였다.
정란아! 진통제를 장기 복용해도 아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을까? 통증이 심해지면 진통제로도 안 된다면?
그럼 그럴 땐 모르핀을 맞는다던데 아기에게 괜찮을까? 난 그게 제일 걱정돼.
물론 태아에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 그렇지만 진통제와 모르핀이 받드시 아기를
비정상 상태로 빠뜨린다는 학계의 정식 보고는 아직 없어.
단지 쓰는 것보다는 안 쓰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 하다는 거지. 하지만 네 경우엔 이렇게 생각해야 돼.
약이나 모르핀이 필요한데도 안 먹고 주사도 안 맞으며 네가 극악한 동통을 참아 낸다면
동통은 약물보다 태아에게 휠씬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거야. 심한 경우에는 출산 후의 문제가 아니라
즉시 유산될 수도 있거든, 임산후기에는 사산을 염려해야 하고 넌 그걸 제일 조심해야 돼.
내가 승우 씨한테 연습을 시켜 놓았거든 승우 씨 이제 링거나 주사도 잘 다뤄.
그러니까 넌 남편과 괜찮은 남자 간호사와 같이 그곳에 내려간 거야.
그리고 너희 둘만으로는 상황이 힘들겠다 싶으면 즉시 현대병원으로 가,
차를 타면 30분 정도니까 서울의 교통 체증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곳에 가서 박민식 내과 전문의를 찾아. 이미 내가 여러 번 부탁했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전부 다 알아서 해 줄 거야.
승우 씨한테 그 사람 핸드폰하고 집 전화 번호도 알려 줘거든,
만약 야간 응급실에 가야 될 경우 닥터 박에게 연락을 먼저 하고 떠나는 게 좋아.
집이 병원 근처라서 기다려 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승우 씨를 믿긴 하지만 내가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넌 잘 모를 거다.
아무튼 연락하면 전화받는 즉시 네게로 달려갈게.
그리고 산달이 3월이거든 최소한 1월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고 생각해.
그 병원 시설도 좋긴 하지만 네 경우에는 출산 때 최고의 시설과 전문가들이 달라 붙어야 해.
그래서 2월부터는 우리 병원에 한달 정도 입원해야 돼.
아기를 무사히 낳고 싶다면 그것만은 내 말을 꼭 들어줘야 돼.
정란의 애기가 귓바퀴에서 쟁쟁거리는 듯했다. 미주는 교사 뒤편으로 난 흙길을 걸었다.
화장실과 창고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화단, 측우기와 온도계,
습도계를 달아 놓은 비둘기장 같은 흰 관측대를 지났다. 둥근 연잎이 퍼져 있는 자그마한 연못 둘레에
여러 종의 단풍나무가 있었고 그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황금빛으로 붙타는 나무는 셀 수 없이 많은 잎을 달고 우람하게 서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곱게 햇빛에서 노란 빛깔만을 뽑아 잎에 물들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은행나무를 보면 편지가 쓰고 싶었던 10대 초반의 시절이 떠올라 미주는 가슴이 뭉클했다.
바닥은 떨어진 노란 은행잎으로 가득한 둥근 원을 그리고 있었다.
황금의 나뭇잎을 밟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무도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승우와 같이 여기서 춤을 춰 봐야지. 탱고, 자이브. 살사 댄스, 지르박까지 그런 건 좀 힘들 테지?
기획 실장의 취미가 스포츠댄스였기 때문에 미주는 간단한 스텝정도는 익혀 두었다.
턴테이블을 연못 옆 바위 위에 놓아두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알 파치노와
그 여인처럼 승우와 멋진 춤을 춰야지. 후후후, 배가 더 불러 온다면 블루스를 추는 것조차
영 맛이 안 날 것 같은데. 이 몸으로 겨우 출 수 있는 춤은 그의 품에 안겨 발을 가볍게
이리저리 뗐다 붙였다 하는 블루스 뿐일 텐데 말이야.
어쨌든 은행나뭇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이곳에서 승우랑 블루스를 춰 볼 거야.
미주는 담백한 미소를 머금으며 걸었다.
농구대와 자그한 축구 골대, 높다란 태극기 깃봉 사이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구마 굽는 통을 바로 세워놓고 위에 연통을 단 시설도 곁에 있었다.
고구마 통 같은 시설은 인형을 주로 굽는 초벌통이었다.
뒤에 있는 창고 안에 재어 놓은 통나무를 팬 장작들은 가마 불에 쓰이고
흙인형을 굽는 데는 왕겨가 쓰인다고 했다. 왕겨 자루가 5, 60여 개나 쌓여 있고
불을 붙이는 법도 지난번에 웬만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미주는 승우와 같이 인형을 만들고 접시를 만들어 말려서 꼭 한번 구워 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주황색보다 더 발간 초벌 인형들과 접시를 초벌통에서 건져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미주는 뱃속에 있는 딸에게 줄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랬다.
자 엄마랑 같이 그네 타러가자!
한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미주는 그네로 가서 앉았다.
아주 조금만 몸을 흔들고 발로 땅을 지쳐 그네를 움직였다.
어때? 기분이 좋지? 널 캥거루 새끼처럼 배 바깥주머니에 넣고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만 우리 딸 얼굴이 너무너무 보고 싶거든 캥거루 어미는 얼마나 좋을까.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것이 엄마 배 주머니에 기어 들어가서
그 안에 달린 젖을 먹고 커다랗게 자라나니까...........
그때 아기가 발로 차는 것이 느껴졌다.
너도 그러고 싶다고?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렴 이 아름다운 세상이 너를 맞이하기 위해
아직 단장을 덜했거든. 하지만 태아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미주는 헉,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호흡이 정지되었다.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덮치는 놈이었다.
그 놈의 통증이 위를 꽉 움켜잡은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관자놀이에서부터 등줄기까지 좍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위 부위를 싸잡으며 가쁜 숨을 몰아 쉬던 미주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알약 세 개를 이에 황급히 털어 넣고 물병 꼭지를 열어 거푸 물을 마셨다. 야윈 볼이 푸르르 떨렸다.
여러 번 맞닥뜨렸지만 매번 섬뜩했다. 분명히 공포였다.
자기 몸안에서 자신을 노리는 음흉한 살인자의 검은 눈빛 같은 마치 모체를 숙주로 해서 자라는
또 하나의 약한 힘이 자신의 몸을 부지불식간에 헤집어 완전한 장악을 가늠하는 듯한.
놀랍게도 계속해서 움직이던 태아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마치 사나운 짐승 떼가 돌아 다니는 초원의 수풀속에서 숨어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숨
도 쉬지 않는 제젤 새끼처럼 태아는 미주가 느끼는 확연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는 듯했다.
통증은 그물망 같은 촉수를 뻗어 내려가다가 검고 끈적거리며 날카로운 껍질을 가진
삿갓조개가 황급히 웅크러들 듯 잦아들었다. 미주는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쌌다.
엄마.........무서워...........엄마.........어딨어, 하는 태아의 두려움이 파들거리며
얇은 배 살갗 바깥으로 전해는 듯했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미안........미안해 아가야! 너는 어두운 둥지 속에 혼자 놓아둔 날지 못하는 새끼 새처럼 불안하고 무섭겠지?
너의 주변에 나쁘고 무서운 것들이 돌아다니게 만들다니!
정말 이 엄마가 무책임하고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구나.
엄마가 네가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는데
그러나 엄마는 너무 커서 네가 있는 곳까지 들어갈 수가 없단다.
하지만 아가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렴, 엄마랑 너는 한몸이야.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나쁜 것들과 싸워야 해 엄마는.........이 엄마는........
네가 얼마나 먼길을 돌아 엄마에게 와 주었는지 너무나 잘 안단다.
넌 은하수와 카시오페이아 자리보다 더 먼곳에서 너 혼자 엄마를 보기 위해 찾아왔어.
부디 그 용기를 잃지 말거라. 엄마가 널 항상 지켜보고 너와 함께 할 테니까.
그 사악한 것들이 네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엄마가 언제나 깨어 있어서 널 지킬 테니까.
아가야. 넌 더 이상 불안해 하지도 말고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야 한단다. 그
게 네 일인 거야. 엄마가 널 지켜 줄게. 엄마가 약속하마.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몹쓸 그 어둠의 손에서 지켜 내겠다고,
미주의 말을 알아듣는 듯 아기는 조심스럽게 뱃속에서 움직였다.
마치 네.......네.......하고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래 우리 아가 착하지! 절대로 겁먹지 말고 잘 자고 잘 먹어야 해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지겠지만
엄마는 너를 목숨과 바꿀 만큼 사랑한다는 걸 명심하고 너도 힘을 내길 바란다.
알겠니? 너무나 소중한 사랑하는 아가야!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태아도 뱃속에서 불던 검은 바람이 멎었다는 듯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아주 평온하게 움직이며 놀았다.
미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미주는 남편 승우에게 가려고 했지만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다시 그네 위에 살그머니 주저앉았다.
거꾸로 있는 태아의 발 바로 위 어디엔가 잠복해 있으면서 세력을 퍼뜨리고 있을
이 놈들은 확실히 독성이 강한 이빨을 가진 놈들이었다.
암세포가 갈퀴나 발톱 모양으로 변하여 내장 기관을 한 번 찍은 후유증으로 인해
진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숨 고르기를 하면서 미주는 그네 줄을 양손으로 잡고
몸 속의 건강한 세포가 건네주는 힘을 모으고 있었다.
교실 일곱 칸의 일자형 건물. 정갈한 흰색 페인트 칠이 된 건물은 언뜻 기차같이도 보였다.
하늘을 나는 은하철도 999 처럼, 영화 나는 교실 처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제일 먼저 눈뜨는 사람이 깨기 직전에 살그머니 그곳 그 자리에 내려 앉은 것 같은.
미주는 평온한 몸과 마음을 되찾았다. 미주는 바다 반대편에 있는 서산 쪽으로 지는 노을 빛이
운동장 가득 내리고 쌓이는 것을 보았다. 서산은 굳이 일어나 돌아보지 않아도
덤프트럭으로 꽃잎을 가득 싣고 와 부려 놓은 것처럼 붉을 것이다.
그 빛의 꽃잎이 바람에 이곳까지 날려 와 텅빈 운동장이며 유리창마다 쌓이고 달라붙고 있는 것이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고요와 적막감이 푸르게 푸르게 학교 담장을 경계로 거대해지는 느낌이었다.
운동장은 거인의 앞치마처럼 풍성하게 펼쳐져 바람을 담고 어둠을 꺼내 방목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곳에 그토록 오고 싶어했을까? 혹시 내가 초등학교시절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어서
누군가가 날 다시 이곳으로 오게 했을까. 내가 빠뜨린 것,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혹시 잊은 것은 없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 기억들이 빈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삶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고통도 없었고 몰랐던 그 시산, 친구들과 해가 질때까지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공기 놀이, 땅 따먹기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날은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고
사내애들과 같이 말타기 놀이를 했던 것도 아련하게 기억났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어깨 뒤로 늘어뜨리고 텅 빈 어슴푸레한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여자 아이,
반장도 했고 사내애들이랑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던 여자아이.
엄마 아버지가 교사라 공부는 1등이 당연하다고 친구들이 말했던 아이.
그 아이가 텅 빈 운동장을 깔깔깔 웃어대며 혼자 뛰어다니고 있었다.
미주야! 저녁 준비까지 다 했어.
벌써?
그래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와.
승우가 은행나무 옆으로 내려서며 미주를 향해 소리쳤다. 승우는 미주를 향해 걸어왔다.
우주를 가로질러, 저 먼 시원의 어떤 곳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찾아온 기사처럼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승우는 걸어오고 있었다. 승우의 뒤에 선 은행나무는 거대한 그림자 나무가 되어
양 귀와 가지 끝에 장식으로 반짝이는 별 귀고리와 머리핀을 벌써 꽂은 듯 영롱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삽시간에 어두워지고 삽시간에 푸르러지고 삽시간에 초롱초롱 빛이 나는 것들,
승우가 손을 잡아 주자 미주는 걸음을 멈추고 운동장과 흰 건물과 하늘에 뜬 황금 달과 주먹처럼
소 눈망울처럼 굵어지기 시작하는 별무리를 올려다보고 다시 운동장과 교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 여긴 우리 둘만의 세계야.
고요와 외로움과 쓸쓸함이 깃들여 우리가 서로를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별 같은 세계.
내가 왜 여길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이제는 확연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첫댓글 소설 문장이 시를 읽는것 처럼 아름다움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 옵니다...물안개님 감사합니다
잘봤읍니다~
미주가 아기를 위해서 힘든것을 잘 참고 견디네요...바로 저것이 어머니의 모습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