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있어 권위란 말은 거리감이 생기는 말이고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용어입니다. 대체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권위라 하면 권위주의부터 먼저 떠오를 정도입니다. 어떤 면에서 권위가 그만큼 상대적으로 높고 힘있고 특별하게 선입견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권위라는 것은 이 사회가 존재하는 구심점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권위는 사회공동체가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하는 법적 권세고 또한 이미 세워져 있고 존재해 있는 모두에게 인정되는 능력이나 우위적인 상태도 됩니다. 그러니까 권위는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가 구축되어 가는데 필연적인 룰이고 질서이고 자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위가 역행되는 시대>
모든 권위가 권위주의로 전락되거나 평등만 앞세워 필요한 권위마져 권위주의로 몰아 질서나 도리의 위계가 무너져 버린 시대입니다. 예를 들면 가부장제도를 고리짝 같은 권위주의로만 몰아 가장이 없는 가정으로 전락 혼란스럽고 각자의 본분과 도리가 없는 하숙집같이 되었고 그들이 사회나가 어른도 모르고 윗사람도 없는 멋대로의 사람들로 양성되는 가정이 된 것 입니다. 또한 학교에는 가르치는 스승의 권위도 실추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을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안되고 교양은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사회 흐름을 보면 자유, 해방, 평등, 인권을 앞세우고 기존 사회의 중심적 권위를 깨버리려는 의도나 문화가 점점 짙어지면서 권위주의를 타파한다면서 진정한 권위까지 실추시키려는, 그렇게 해서 권위가 없는 방종이나 무질서한 위아래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이상주의자들이 도처에서 교육하고 운동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건물에는 그 건물을 세워주고 받쳐주는 기둥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권위입니다. 그런데 그 권위가 없어도 된다는 자유 방종의 무리들이 더 우위적으로 많아 짐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질서로 만드신 기본적인 권위가 있는데 그것이 점점 무시되고 무너지는 요즘 시대입니다.
<현대 교회의 권위상태>
교회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고 그가 말씀의 법으로 세우신 모든 질서와 순리의 교통이 교회권위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들을 보면 감히 사람들이 그 권위를 거스르고 무너뜨리려고 하고 역행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자기 권위로 이용 권세를 가지려는 권위주의자들도 많습니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을 왜 아버지라 하느냐 하나님 어머니라 해야 한다고 멋대로 주장하는 자들도 있고... 요새 평신도 교회라고 하면서 교회에는 목사직분이나 그 역할이 필요 없고 다 평등한 평신도요 또한 평신도는 누구든지 설교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평신도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물론 권위주의로 목회하는 자들로 인해 상처를 입거나 실망한 경우가 많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에 있는 사도성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주님의 교회로서 모습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회 권위주의자들>
일반적 개념에서 권위주의자는 권위를 권세나 권력자체를 가지려는 것과 또한 그 권위 자체에 의혹을 품거나 반항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모독이고 죄악이라고 하는 주장이나 그 실제를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교권주의자들이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보면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으려 했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며 무거운 짐만 지게 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외형적으로 자신들을 인정받는 모습으로 꾸미는데 힘썼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받는 것을 좋아 했다고 (마 23:1,7) 예수께서 지적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높은 자리를 원했고 그 자리에 앉아 높임 받고 대우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권세를 이용하며 자기들의 권세로 삼고 그 영광과 섬김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 권위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자기 권세로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 자리에 앉아 군림했던 권위자가 있었는데 그자는 바로 교황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자리에 앉아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보면 개신교에도 삯꾼이나 거짓된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 저들의 자리나 권세를 높이고 복종을 요구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자기 권세인양 큰소리치며 교회서 더 나가 교단이나 교계에서 교권을 잡고 군림하려 합니다. 미가 3:5절에보면, "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고 말씀 했습니다. 거짓되고 삯군된 자들의 권세적 횡포가 잘 나타나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이런 자들로 인해 교회에 내려진 진정한 말씀의 권위는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을 이용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권세만 난무하는게 현재 교계의 실체입니다.
<자신들의 진정한 권위를 몰랐던 제자들의 경우>
마태복음 20:26-28에 보면 세베데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를 동원시켜 예수께 나와 주의 나라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의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방의 대인이나 집권자들이 사람을 임의대로 주관하고 저희에게 권세를 부린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너희중에는 즉 구원받은 교회로 실현된 하나님 앞에서는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라를 유대주의적 개념에서 메시야를 통한 회복된 이상적인 유대나라로 여긴 것입니다. 거기에는 권세를 부리는 그런 권위의 자리가 있는 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보면 교회에 계층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모세의 자리에 앉으려 하고 인간적 섬김을 받으려 하고 장로도 내가 교회 장로인데 하고 권위를 부리려 합니다. 대체적으로 대형교회일수록 목회자들이 카리스마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가능한한 하나님의 권세를 적절히 자기 권세로 잘 이용합니다. 자신들은 아주 특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권세를 부여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특별히 크게 받아 가진 자 처럼 권세를 당당히 부립니다. 교인들이 꼼짝 못하고 굴복합니다. 마구 하대해도 쩔쩔 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에 있는 진정한 권위>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 분이 메시야 왕국인 교회에서 영원하신 통치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입니다. 모두가 그분께 경배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의 통치에 순종해야 합니다. 때문에 교회된 자들은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요 그 분을 높이고 섬기는 일이 신앙생활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삶입니다. 여기에 교회된 우리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를 이긴 그리스도의 권세가 교회의 권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권위는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게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고백 이후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고 말씀하셨고 또한 요한일서 5:4-5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하심에 보듯이 교회의 권위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렇게 교회된 모든 성도가 가지는 그리스도의 몸된 영광과 세상과 사망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됨을 가지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된 권세가 믿음을 통해 모두에게 있고 또한 주의 교회가 그 권세로 굳게 서 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13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한 자녇힌 권세를 함께가진 교회된 성도 모두는 계층이나 계급적 구별이 없습니다. 로마서 10:12절을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했고, 골로새서3:11에도 보면 "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교회안에 주의 종들에게 주신 사도적 권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복음의 권위입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세우고 나타내는 데 있는 있습니다. 마태복음10:1~7을 참조해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권능을 주셨다 했습니다.그것은 귀신을 쫒아 냄과 병과 약함을 회복 시키며 죽은자를 살리는 권능 이였는데 그것은 오직 천국복음의 권능의 역사를 통한 권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안에 사역적으로 주어진 권위는 복음이 제대로 증거되고 바르게 가르쳐지는 중심의 권위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2:20)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안에 사도성을 가진 목회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권세를 직접 부여받은 자처럼 마구 복을 남발하고 저주도 하고 맹종을 요구하고 높임이나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웜을 주고 구원을 살게 하는 복음의 능력에 사로 잡혀 성령에 의해 제대로 쓰임받을 때만 진정한 사역적 권위가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 라는 고백처럼 우리도진리의 파수자가 될때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머리되신 권세를 세우며 그안에서 함께 교회의 권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복음되게 하고 진리가 진리되게 하는 권위가 교회에 없다면 교회는 그리스도로 거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은 권위자가 되려 말고 오직 진리의 복음만을 정직히 증거하며 가르치고 지키는 데만 중심하고 앞장서야 합니니다. 그것이 교회안에 주신 진리가 기둥과 터가되는 진정한 권위인 것입니다.
말씀이 교회구원을 이루는 진리로 세워지는 권위를 어떤 상태에서도 끝까지 지키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진정한 권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