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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몸의 나른함과 권태로움을 해소시키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음식을 절제하고, 또한 수행의 도우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우善友와 법담法談을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윳따의 「불의 경」(S46:53)에서 이르길, 마음이 침체되었을 때에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인자(칠각지) 가운데서 택법각지, 정진각지, 희각지의 세 각지를 닦아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들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과 말과 생각(마음)의 산만함입니다. 몸의 산만함이란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각종 잡기와 놀이를 즐겨 잠시도 편안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의 산만함이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남과 이야기하기를 즐겨 무익한 담론이나 세간의 화제로 떠드는 것을 말합니다.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 일례입니다.
생각의 산만함이란 인식과 감정이 통제되지 않아서 갖가지 세상사에 대해 닥치는 대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산만하고 흐트러진 사람은 술 취한 코끼리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아서 통제가 안 됩니다. 바람에 출렁거리는 물결처럼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마음이 동요되면 마음은 대상에 고요하게 머물지 못합니다.
간화선을 집대성한 대혜 종고(1089~1163년) 선사가 화두에 강력한 의정疑情을 일으켜야 혼침과 들뜸이라는 두 가지 선병禪病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마음이 화두를 물샐틈없이 들고 있을 때 이 두 가지 장애가 극복되어 선정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마음부수의 일어남을 초기불교에서는 사띠(sati, 正念)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늘 불안정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합니다. 거기에 자주 지혜롭지 못하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면 아직 생겨나지 않는 들뜸과 회한을 불러일으키고, 이미 일어난 들뜸과 회한을 늘리고 드세게 만드는 자양분이 됩니다.
후회(회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산만한 뒤에 생기는 후회가 그 하나이고, 나쁜 짓을 행한 사람이 그 죄업을 뉘우치고 질책하는 것이 그 둘입니다. 행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행한 것을 두고 후회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의심’은 불佛·법法·승僧 삼보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밖에 계율, 윤회와 12연기에 대한 의심도 있습니다. 한 통의 흙탕물을 휘저어 어두운 곳에 두었다면 아무리 눈 밝은 사람이라도 거기 비친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듯이 수행자의 마음이 의심에 쌓여 짓눌려 있다면 그는 이미 일어난 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의심으로 덮이면 선정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고, 선정의 마음을 얻을 수가 없다면 통찰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불법의 핵심으로 능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초발심 수행자가 자신의 견해에 따라 수행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많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난 별로 명상과 인연이 없나봐, 벌써 몇 년이나 공부를 했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했어, 난 아직 법을 보지 못했어.”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자기 기분을 쫓아 수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수행에 대한 의심은 생각이나 이론으로, 또는 사량분별이나 토론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그 자신이 몸소 수행을 통해 의심이라는 번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학인의 입장에서 오로지 들숨과 날숨만을 사띠(sati)해서 실제로 선정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된다면, 사마타의 계발은 불가능하므로 오로지 아나빠나사띠 수행으로 삼매를 개발하겠다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한편 ‘니밋따’ 명상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삼매는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믿음[盲信]은 지나친 기쁨을 불러오고, 그것은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수행자의 마음은 기쁨에 가득 찬 흥분으로 혼란스럽게 되어서 ‘니밋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도한 믿음이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혜는 분명하지 않게 되고, 나머지 정진과 삼매의 기능 또한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도한 정진은 마음이 ‘니밋따’에 고요히 집중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소나 꼴리워사’ 존자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 분은 앙굿따라의 「소나 경」(A6:55)의 주인공입니다.
출가하여 세존으로부터 명상주제를 받아 왕사성 근처의 숲에 머물면서 공부를 했으나, 다른 성스러운 제자들과 같이 취착을 없애고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자 출가수행을 단념하고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짓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존께서 이 사실을 신통력으로 보시고 소나 존자 앞에 나타나서 그가 전에 재가자였을 때 류트[彈琴]의 활줄, 즉 거문고타기에 능숙했던 경험을 끄집어내서 류트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느슨한 경우에 그대의 류트의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