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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에서 바라 본 한라산 과 철쭉/2009년 6월, 구태화 作]
제주도 어린 시절의 제주도는 이국(異國)으로만 느껴졌었습니다. 제주도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 사람처럼 우리와 어딘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도 하였던 제주도가 제게 특별한 인연이 되고 말았습니다. 군 입대를 하고 경북 예천으로 배속을 받아 옆 사무실의 군대 선배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고향이 제주도 애월읍이라는 것이 제겐 특별함이었으나 저와 닮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을 야근이라는 핑계로 술을 마셨으며 음악은 그런 우리 곁에 늘 함께 있었습니다.
[예천 군 생활 시절 선배와 함께/1979년]
선배가 이야기 하는 제주도의 풍경은 먼 열대나라 이야기 같았으며, 지방마다 서려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전설의 고향을 무색하게 하여 제주도를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의무감 까지 갖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79년 8월 어느 날 휴가를 나가는 저에게 선배는 편지를 한 통 부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8월10일 저녁 6시 까지 종로 3가의 YMCA 다방에 나가면 자기가 펜팔 하는 여대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여자 친구를 한 명 너에게 소개 시켜달라고 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갔던 YMCA 다방에서 저는 평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 후 둘이 같이 외출을 나가면 서울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넷이 만나 많은 시간을 나누곤 했습니다만 선배는 끝내 펜팔 친구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서울로 전속을 간 선배를 만난 것은 작은형이 살던 집 바로 옆 골목에서였습니다. 그렇게 가끔 만나던 선배는 ‘우리는 평생의 인연인 모양이다.’며 잊지 말고 살자고 굳게 약속을 합니다. 제대를 한 선배는 한 동안 연락이 없었으며 결혼을 준비하던 저는 선배의 소식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결혼식을 치르기로 되어 있어 결혼식 하루 전날 처갓집에 간 저의 눈에 전화기 옆의 벽면에 흘려 쓴 전화번호가 들어왔습니다. ‘김 승진 인천 00-0000’ “이거 혹시 저에게 온 전화 아니어요?”라고 묻는 저에게 ‘그렇다.’며 장모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제 저녁에 정신없이 바쁜데 누가 전화를 해서 자네를 찾더니 내일 결혼을 한다고 하니 꼭 전해 달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불러 주었네.” 그렇게 저의 결혼식에서 거의 일 년 만에 선배를 만났으며 신혼여행을 떠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며 우리는 또 헤어졌습니다. “연락이 없어도 우린 또 만날 거야.” 그리고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천지연 폭포에서 선배와 함께/1991년]
수원으로 전속을 와서 근무를 하던 어느 날 옆 사무실의 후배가 허겁지겁 달려옵니다. “제주도의 모슬포 기지에서 전문이 들어오는데 선배님을 찾고 있습니다.” 급하게 달려 가보니 노란 종이에 ‘타다닥’거리며 ‘텔레타이프’ 전문이 인쇄되고 있습니다. ‘저는 김 승진이라고 합니다. 예비군 훈련을 들어왔는데 예천에서 같이 근무하던 김 갑균 후배가 수원에 있다고 해서 연락합니다.’ 그렇게 다시 연락이 된 86년 초여름 어느 날 선배는 불쑥 수원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곤 밤새 많은 이야기와 술과 음악으로 우리는 긴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이른 아침 선배는 전화번호 하나 달랑 내손에 쥐어주고 수원으로 맨 처음 떠나는 전철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또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선배와 헤어지고 그해 늦가을에 나는 또 한 사람의 제주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곽 창권. 그 동기생은 참으로 별난 녀석이었습니다. 불같고 대쪽 같은 성격에 족구라면 환장을 할 정도로 눈에 불을 켜고, 자기가 맡은 일은 몸 상하는 것 개의치 않고 해나갔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우리는 금방 친해 졌으며 힘든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가게를 세 얻어 마련한 동기생의 닭 꼬치구이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술 취한 놈들이 아내에게 추태를 부려 이 짓도 못해먹겠다.’는 친구의 울분을 함께 삭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기생과의 우정도 깊어 갑니다.
[횡성 야유회에서 곽 창권 동기생/1989년]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선배와의 인연을 잠시 묻어 두고 그렇게 동기생과 하나가 되어 지내던 1991년 초여름이었습니다. 공군 모범 용사로 선발이 되어 생각 속으로만 수없이 그려보던 제주도를 처음으로 가 볼 수 있었습니다. 선배를 만났습니다. 3일간 제주도의 밤을 우리는 또 그렇게 많은 음악과 술과 이야기로 보냈습니다. 제주도의 풍경과 함께 또 한 번 놀란 것은 제주도의 문화였습니다. 당시 육지에서는 500원 짜리 동전을 넣으면 반주와 함께 노래를 할 수 있는 ‘가라오케’가 유행이었는데 제주도에는 영상과 반주가 나오는 노래방이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더 놀란 것은 저녁에 만나기로 한 선배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고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선배의 아내는 한 쪽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때라 그런 여자와 결혼을 한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정이 아니라 정말 사랑해서, 내가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했다.’는 선배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기 까지 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어. 큰 꿈을 이루라고 대웅(大雄)이라고 이름을 지었어.’라는 선배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보냈던 수많은 제주도의 기억은 아마 평생 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주항의 까만 밤을 부서뜨리는 하얀 파도와 빨갛게 물든 한라산의 단풍나무 숲 길 등 선배가 안내해주는 제주도 그 어느 곳 하나 신비롭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다음에는 미숙씨와 꼭 함께 오라.’는 선배의 말에 ‘그러마.’ 대답하며 이제는 당연한 듯이 아무 말 없이 우리는 또 헤어졌습니다.
[구 태화 목사 부부와 함께 여미지 식물원에서/1999년]
대전에 있던 태화 친구가 제주도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주도는 내게 역시 ‘인연이 있는 섬인가 보다.’는 생각을 할 즈음 공군 모범용사 부부로 선발되어 아내와 함께 제주 공항에 내린 것은 그 후로 또 8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8년 전 선배가 건넨 명함속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가슴속에 담고 말았습니다. “김 승진씨요? 오래 전에 사고로 돌아 가셨습니다.” ‘그 가족의 소식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직원의 안타까운 목소리 저편으로 “연락이 없어도 우린 꼭 만날 거야.”던 선배의 목소리만이 귓가에 윙윙거립니다.
[한라산 오르는 길/1991년(선배에게 전해 주지 못한 사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배와의 인연을 뒤로 하였지만 선배가 남겨준 제주도와의 인연은 동기생과 태화라는 고향 친구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년 넘게 하나가 되었던 동기생이 갑작스럽게 제대를 하였습니다. 아직 정년이 조금 남았지만 아내의 사업 부도로 인하여 많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대하기 전에 꼭 한 번 내 고향 우도(牛島)를 같이 가자.’고 했던 동기생. 그 동기생로 인해 가슴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거의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만, 동기생은 제대 후에 아내와의 갈등으로 혼자 작은 보따리 하나 싸들고 훌쩍 고향 제주도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태화 친구와 동기생과 우리 미류친구들의 만남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금방 하나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동기생/2009년 11월] 선배의 죽음을 알게 된지 꼭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아니 제주도 사람을 알게 된지 꼭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제주도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의 특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미류나무 친구들의 여행을 통하여, 곽 창권 이라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인하여 멀지만 아주 가까운 우리 모두의 제주도가 되었습니다. 내게 처음으로 제주도 이야기를 해준 그 선배를 비롯하여 10년을 넘게 제주도에 머무르고 있는 태화 친구도, 우도(牛島) 예찬을 늘어놓는 동기생 곽 창권 친구도, 왜 제주도를 입에 달고 살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로 인하여 제주도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합니다.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 제주도, 그리고 그 사람들 모두가 내겐 소중한 인연이며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양구초등학교 53회 동창들의 제주 여행/2009년 11월] 2009. 11. 19. 밤. 갑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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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런 제주도의 추억이 있었구나~~~그 섬은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것 이다~~^^
아예 거기 가서 살까부다...ㅋㅋ
그러렴, 너 보러 또 가게 ... ㅎㅎㅎ
아름다운제주 아름다운 우정이다 ^^
제주도와의 특별했던 인연, 결국 그 소중한 끈이 우리들께도 연결된게얌... ^^* 제주가 네게 소중히 기억되듯 나에게도 제주도는 구목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창권이 친구... 또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잔잔히 현재 진행형의 모습으로 내 맘속에 담아 질게당 .... ♬ 그란디 창권이 얘기로는 네가 족구의 달인이라면 자기는 족구의 神이라카던뎅...? 감히 네가 범접하긴에 아주 높은 위치에 있노라고... 그리고 그 시키 자기보다도 두살 어리다(그래서 우리는 창권이가 양띠인줄 알았는데 네가 멍구 띠였더구만...ㅋㅋㅋ)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씀. 12월 12일 창권이 시간되면 울 송년회에 꼭 모시게나, 보고 싶당, 너보다 더 ....ㅎㅎ
족구?? 그넘은 프로, 난 2류 아마츄어. 그넘은 전국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까지 받은넘이구.. 그려, 내가 개띠니까 그 친구가 너희들 모두 개띤줄 안겨?? 12.12 시간 낸다구 했으니까 영진이가 족구 한게임 주선해 주시오. ㅋㅋ
응 우리를 멍구띠인줄 알았나봥... ㅋㅋㅋ 오험, 족구의 神이 맞구만 ^^* 그럼 낮 시간 족구 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야겠넹...!!
이번에 자네도 제주 여행에 함께 했어야 했는데... 또 한 번 제주 여행을 만들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제주도를 맘껏 마음에 담아 보게나.
어쩌면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인해 더욱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
잘 했엉.... ^^*
경순이 말처럼 아름다운 제주 아름다운 우정 ~~~^^*~
소설같은 이야기다 한편의 장편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어... 군대선배,동기,동창,제주도와 인연이된 사람들이구나.../그렇지 우리 자랄땐 제주도는 이국이었지..제주도 남자들은 모두다 집에서 아이보는, 우리나라 정서하고는 전혀 색다른 그런 문화로 알고 있었고..생긴것도 어딘가 좀 다를것이라고 상상하곤했었구...갑균이가 정확하게 표현한것 같구나...아내를 중매한(인연을 만들어준..) 군대선배라 늘상 생각이 나겠구나 싶네...좋은인연 만들어주고 갔으니 천국에서 잘 계시리라...
답글이 단편소설일세...^^* ㅎ~
슬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