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A급은 준재벌급 사모님도 고객" 업자 만나기, 첩보전 방불
허름한 외양의 가게에서 카탈로그만 놓고 '장사'
1000만원 진품 80만원에
오전 11~12시가 피크타임지난 5일 서울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앞
. '짝퉁' 파는 업자인 일명 '대사 부인'에게 전화가 왔다.
"해밀턴에서 쭉 내려와 버거킹 앞으로 와요. 거기서 만납시다."
잠시 기다리자 다시 벨이 울린다.
"길 반대쪽으로 와요. 5분 안에 도착 못하면 거래 끝난 걸로 합시다."
이태원에서 일명 '특A급 짝퉁'을 파는 A씨와의 만남은 동네를 서너 바퀴 돈 뒤에야 가능했다.
단속반을 피하기 위한 시간 끌기였다.
대사 부인은 물론 준재벌급 사모님을 대상으로 물건을 납품(?)해 '이태원 대사 부인'으로 불리는 그를 수소문 끝에 접촉했다.
최근 1~2년 새 이태원 '짝퉁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으로 상당수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10개가 넘는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명품 업체들도 자체 단속반을 가동하며 감시하고 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 사이에 단속을 피하는 노하우까지 쌓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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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이태원동 한‘짝퉁’가게에 고객이 들어서고 있다. 이 가게 외에도 골목 곳곳에 명품을 모방해 만든‘짝퉁’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첩보작전 뺨치는 짝퉁 거래
'대사 부인'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계절이 지난 의류를 파는 쪽방 매장.
일본어로 된 명품 카탈로그 하나와 전화기 한 대가 있었다.
"에르메스랑 루이비통은 우리 집이 대한민국 1등이야.
한달 동안 주문만 100팀이 넘어.
한달씩 기다려야 받지만 다들 2~3개씩 해."
'대사 부인'의 자랑에 기자가 크게 웃으며 "루이비통 신제품은 안 파느냐.
인터넷엔 출시 날짜랑 동시에 쫙 깔렸던데"라고 물었더니
"조용히 못해? 밖에 목소리 나가면 안 되는 거 몰라?"라며 윽박질렀다.
"그런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야. B급도 안 되는 거지. 인기 있고 시장성 있다고 판단돼야 만들거든."
그가 내놓은 '에르메스 켈리'의 가격은 80만원.
물론 1000만원이 넘는 제품이지만, 가짜를 80만원씩이나 주고 사는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
여기에 몇십만원만 더 주면 루이비통, 구찌, 페라가모 등 진품을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진품 있는 사람들은 가짜 한두개 있어도 떳떳하더라고. 내가 16년 동안 이 장사했지만 불평하는 사람 못 봤어."
가게를 나와 걸었다.
"가방 찾아요?"라는 호객꾼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한 호객꾼에게 "왜 거리가 한산하냐"고 물었더니 "당신 바보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3~4시에 온 걸 보니 초짜네. 점심 뒤엔 반드시 단속 뜨지. 우린 연락책이 있어서 금방 알거든."
오전 11시에서 12시가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고 했다.
'연예인 전문'이라는 한 판매상은 "너무 명품 냄새가 나거나 전문직 종사자 같은 여성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단속반은 대부분 남자이지만, 여성 명품 영업직원들이 단속반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 앞 배달에 발레 파킹까지
그들은 허름한 운동복 가게나 의류가게에서 손님을 받았고 "물건 보자"고 매달리면 20~30분을 기다리게 한 뒤
인근 창고에서 물건을 가져왔다. '
수차례 현장 조사를 했다'는 명품 업체 직원은 "서로 신뢰가 구축되면 물건이 있는 곳까지 안내하는 경우도 있다"며 "
최근엔 이태원 근처 주택이나 아파트에 물건을 두고 있어 이태원 상가를 다 뒤져봐도 허탕치기 일쑤"라고 말했다.
'프라다' 전문이라는 다른 판매상은 "일단 고객이 되면 집 앞까지 배달해주거나
물건 보러올 때 발레 파킹까지 서비스해주는 업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인 '발렌시아가'와 '지방시'는 라벨이 안 달린 채로 진열해놓아 길거리에 전시해도 안 잡힌다.
요즘 인기 급상승 중인 '토리버치'와 '마르니' '빅터&롤프'는 경찰들에게 익숙지 않은 브랜드라서 잡히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이비통, 고야드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사장들은 한국 짝퉁시장을 특별 주시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샤넬은 감찰반을 두고 수시로 현장 확인을 하고 있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판매상들의 수법이 워낙 교묘해져 브랜드마다 경찰 등과 공조해
불법을 뿌리 뽑기 위한 묘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