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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당 정운벽
포덕63년(1922) 출생
서울지부 고문
"한울님 조화는
정말이지 놀랍지요"
내가 참 어렸을 적부터도 집안이 아주 대가족이었어요.
열 내 다섯 식구였어요.
오빠가 세 분 계시고 동생이 둘이 있고, 6남매 중 내가 가운데죠.
내가 딸로는 큰딸이고 넷째죠.
근데 어머님 아버님 다 계시고 오라버니 댁 다 계시고
남이 보기에 는 부러워할 만한 가정에서 컸어요.
그러고 열다섯 살 때에 옹진교당을 지었거든요.
그 옹진교당 지을 적에 8월 추석날 어머니가 교당 짓는 식사를 전부 담당하시고 하시기 때문에
도움이 될까 해서 옹진읍으로 이사왔지요.
그래가지고 옹진교당 그 터에서 살다가 제가 열여덟 되던 해
양력 사월 초하릇날 결혼식을 했거든요. 독실한 천도교 집안 둘째 자제분하고.
그래서 옹진교당에서 서울교당으로 왔지요.
어려운 가정이니까 사는 게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항상 신앙생활을 잊지 않고
그런 마음으로 여지껏 살아왔어요.
그러다가 열아홉 살 때 살림을 시작했지요.
셋방살이를 했는 데 7원이 방세였고, 장 들여 놓고 두 식구가 사는 거예요.
친정 에는 집이 일곱채는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 가지고 챙피하더라구요. 하찮은 집에서 사는 게.
그러다가 돈암동 63번지로 세간을 났는데, 그 집이서 5년을 살았 어요.
그런데 집주인이 나보다 십 위인 스물아홉인데 ,
아무렇게나 큰 가정이어서 그런지 욕을 그렇게 잘 해요
그래서 그 욕을 들으면 밥을 먹다가 밥손갈이 저절로 놔지고 그랬는데,
아들 보고 너무 부끄러운 욕을 해서,
내가 그 엄마 보고 욕을 그대로 했어요. 엄마가 더 나쁘다고.
엄마로서 그런 욕을 할 수가 있 냐고 막 야단을 쳤어요.
그랬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다시는 그 욕을 안 하더라구요.
자기도 창피한 걸 알아서 한 달쯤 지나서 왜 욕을 안 하느냐고 그랬더니,
너무 자기 입에 그런 욕을 담은게 챙피해서 못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또 그렇게 부부싸움을 해요. 막 맞고 억울해서 울고 그래요.
그런 걸 내가 물었죠.
왜 그렇게 싸움을 하느냐 이러구 저러구 하는데 싸움을 안 할 수 있느냐.
그 사람은 화가 났지만 이쪽에 선 화가 안 난 쪽이 아니냐.
가만히 듣고 전부 다 해도 가만히 있다가
그 사람 기분 좋을 적에 다 얘기를 해라
그러면 자기 잘못을 알 게 아니냐.
그러고나서는 당최 한 번도 안 싸우는거야.
그거야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어떻게 그러느냐 해서 그 사람 생활을 깨끗이 고쳐 놨어요.
바느질도 그 사람 하는 건 얼마나 설은지 몰라요
그래서 내가 요렇게 하면 좋겠네요 했더니
나는 여지껏 남의 말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길래 가만히 있었지요
그 이가 애기를 배 가지고 애기를 낳게 돼서
내가 애기옷하고 엄마옷을 한 벌 해드릴게요 하고 꿰매서 줬더니
얼마나 몸에 맞고 이쁜지 정말로 그 사람 바느질 습관이 깨끗이 고쳐져 없어졌어요.
정말로 그 사람은 나를 참 햇빛 같이 잘 비쳐줘서 자기가 득이 다니고 그랬는데,
지금은 종적을 모르네요. 그렇게 셋방살이는 끝이 났죠.
나는 천덕사은으로 여지껏 살아왔어요.
피난 갔다 와서도 재 봉틀을 하나 사가지고 일을 하는데
하루에 담요 두 장이면 코트두 장이 나오거든요.
그러면 코트 두 개씩을 해서 하루에 삼 만원 씩을 벌었어요.
아니 재봉틀을 사올 적에 낀 바늘을 5, 6 개월을 그 하나 가지고
두꺼운 걸 다 꿰맺어도 부러지지가 않 았어요.
그런데 그 때가 재봉틀 바늘을 살 수가 없는 때에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정말로 한울님 감화죠.
그래서 10월 달 에 재봉틀을 샀는데 4월 달에 재봉틀 바늘을 너무 오래 썼으니까
한 쌈 사오라구 했는데 바로 바늘이 부러져서 갈아끼웠는 데,
한 쌈 가지고 한 달도 못 썼어요.
그게 다 천덕사은이었어요.
누가 뭐랬어도 천덕사은으로 사는 사람이란 걸 자신을 하고 살지요.
우리 막내딸을 낳고 어떻게 해서 복막이 됐어요.
그냥 배가 이렇게 물이 차고 이래 가지고
그 때 복막 든 사람 중에 산 사람이 나 하난가 봐.
그 때 택시도 안 타고 걸어가는데
저 애기 엄 마는 애기 나러 가나 부다 하더라구.
의사가 천도교인이었어 요.
의술로는 백 사람이나 천 사람이나 나같은 사람은 산 사람 이 없대요.
그런데 꼭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나를 보내놓고 한 삽십 분씩 기도를 한다 그래요 의사가.
그렇 게 했는데 인제 눈도 못 뜰 정도였어요.
너무나 병이 깊어서 그런데 한 일주일 잠을 몰라요.
병은 점점 악화가 되는 건지 나는 모르죠.
그냥 잠자는 약을 넣었으니까 잠을 좀 자라고 해서
네, 하고 와 가지고는 택시를 타고 왔는데,
그저 낫게 해 달라고 심고를 하고 약을 먹고 자려고 하니까
꺼벅 일어나서 한울님께 천명을 빌어야지,
하면서 막 강령이 돼요
우리 맏동서님이 옆에서 주무시면서 일어나서
아픈 사람인데 진정해야지 하더라구요
그런데 막 강령이 되면서 그냥 천명을 달라고 신사영기 아심정 무궁조화 금일지
그 주문을 한울에 닿을 만큼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사람이
그렇게 큰소리로 주문을 외면서 천명을 달라고 한 거예요.
칠월 열사흔 날. 내가 서른여덟 살 밤두시 경이죠 .
그러고나서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이젠 살았다예요 너무너무 좋고
의사 선생님한테 너무너무 고맙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거예요.
***
내가 죽을 사람 두 사람을 구했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집내 양반 돌아가고 100일이 됐는데
비가 많이 와 가지고 집을 둘러싼 큰 축대가 한꺼번에 다 무너졌어요 ·
그런 걸 큰 차 열 한차를 가지고 축대를 둘러싸어요
그렇게 집 수리를 싹하고 담을 쌓고 울타리를 하고 세를 주자 했는데,
이사 오는 날 보니 까요,
환자가 있어요 정신병 환자가.
9년을 앓았다는데 송장이에요.
거지 중에 그런 거지도 없고 바지도 10개는 입고
10개가 다 안들어가니까 가위로 쭉쭉 잘라서 다리만 끼고
우리 문앞에 양회자루 깔고 큰 대 자로 늘어졌어요
저런 환자가 왔으니 어쩌나 했는데, 예수를 믿는다 그래요.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고 새벽 한 시나 두 시쯤 잠을 자려고 하면요,
새벽 네 시쯤 예배당 간다고 현관으로 나가는데
유리 문을 들부시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집안이 온통 난리예요
잠이 들만 하면 그 난리를 하는데 그 엄마가, 날 보고 기도를 해 달래요.
자기 아들 낫게 그래서 내가 젊은 사람이 빨리 나아야죠.
그냥 그러고 종교도 같지 않고 그러니까 말았어요.
그런데 자꾸만 기도를 해 달라고 하면서 예배당을 안 나가요.
아침 네 시 반이면 나갔다 들어와서는
기독교 큰 무리들을 다 끌고와서
찬송하고 목사까지 끌고와서 시끄럽게 그렇게 했는 데,
그러더니 천도교를 믿겠다고 그래요
내가 일 때문에 시일식에 못 가고 열한 시에 청수를 떠다 혼자 놓고 혼자 시일식을 보려고 했더니
와서 사일식에 참석을 한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천도교를 믿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시작을 한 날이 12월 4일이에요.
그래서 그 방을 들어가 봤더니
사람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상관도 안 하고 다 죽은 송장이에요 .
발부터 이렇게 만져 보니까
닭다리 튀겨놓은 거 모냥 뺏뺏하고 꼬집어 뜯어도 몰라요.
혈맥이 다 그쳤어요. 피도 안 돌고 그런데 내가 인제 심고를 하고
천도교를 믿는다니까는 환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청수를 모시고 한 시간씩 아침 다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저녁 아홉시부터 열 시까지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아이들하고 했는데,
그냥 청수물에 밥튀기가 하나 가득이에요.
그 사람하고 한 이백 일 동안 청수를 모셨는데,
이백 일 동안 한결같이 첫날처럼 밥튀기가 하나 가득이에요
정말 못 마실 정도로 먹기는 다 먹었지만.
내 눈에만 그런가 봤더니, 우리 딸이 그래요
청수 물에 웬 밥 튀기가 그렇게 하나 가득이냐고. 아이들의 눈에도 그랬어요.
그래 한 일주일 동안 주문을 외고 바른 손을 붙잡고 주문을 외웠는데,
일주일이 되니까요 혈맥이 광광 다 돌고요
얼굴이 이렇게 찌그러 들었었는데 사방으로 확 퍼지더라구요.
이제 살아난 거예요.
첫 달에는 옷을 맞게 입었으면 하고 일주일 동안 기도를 하니까
아주 그냥 티셔츠에 즈봉 하나 입고 깨끗하게 나 하라는 대로 해요.
그 다음에 더러운 걸 9년이나 10년이나 됐으니
오죽 씻는 걸 모르고 더럽습니까.
그래서 더러운 걸 알기를 한 일주일 하니까
그냥 세수하고 머리 감고 발 닦고 하루 종일 며칠을 그렇게 해요.
그러고 인사하는 거 한번 한번씩 한 백일 하니까 완전하게 병이 났어요.
나가서 돌아댕기지 않게 심고를 했더니 안 돌아댕기고.
한 번은 그 할머니가 아주머니가 일하는 데 들어가서
같이 좀 주문도 읽고 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요
한 번 들어와서 그 사람은 앉아 있는 거 모르니까
나 일하는 데 들어와서 아랫목에 탁 드러누워요.
그래서 내가 주문을 계속 큰소리로 읽지마는 다시 우리방에 들어오지 않기를 심고를 드리고
자꾸 주문을 외웠더니,
그 환자가 아유 편안하게 잘 잤다 이러면서 나가면서
다시 이 방에 안 들어올게 그러고 나가요
내가 말하는 대로 그냥 통 하는 거야.
그렇게 해 가지고 12월 4일부터 시작해서 봄이 됐는 데요,
정말 내가 그 환자를 죽을 걸 살렸다고 생각해요.
***
또 내 질녀 하나가 우리 동생의 외딸인데,
정신환자가 돼 가지고 제 에미도 때리고 미쳐 가지고 벌거벗고 나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야단이 났어요.
내가 그렇게 환자를 고친 일 이 있는데 병원에 입원을 시키자고 할 수가 없어서
내가 화악산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요.
어두워져서 화악산에 올라가는데
그냥 나 있는 데는 대낮같이 밝아요.
너무너무 밝아서 풀속에 반짝반짝 모래비늘이 보일 정도로.
어떻게 이렇게 밝은가 했는데 하늘에서 그냥 퍼부어 요. 퍼붓는 게 보여죠.
우리 있는 데만 환해요.
수도원까지 다 가도록 환하게 갔어요.
가는 길에 묘도 있고 소나무들도 있지 않습니까.
언덕이 조금 있는 데까지 왔는데
밤 12시가 조금 지나 딱 올라섰는데,
화악산에서 나오신 분들이 어서 오시라고 손을 내미는데
캄캄한 게 사람이 옆에 있는지 손을 잡는지 모를 정도로 깜깜해요.
그런데 내가 그 환자가 왜 병이 났는지를 모르잖아요.
정말 주문을 읽고 한울님께 허의경이 똑바른 정신 갖게 해 달라고 주문을 읽는데
주문 하나하나 읽으면서도 허의경이 똑바른 정신 갖게 해 달라는 게 세세하게 끼워져요
나무에 눈 생기듯이.
그러면서 주문을 읽는데 얼마만큼 주문을 읽었는지
내 앞에 큰 바위가 있는데 주문을 읽어가지고 바위가 잘게 부스러지는 주문을 읽었어요.
근데 허의경이 살려놓고 넌 죽어도 되느냐고 큰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또 왜 그 환자가 병이 생긴 걸 몰랐는데 아는 즉시 내가 까무러쳤어요
수도원 안에서는 너무너무 남 보기에 챙피해 가지고
숨도 못 쉬고 까무러 친 몸으로 폭포수까지 그냥 간 거예요.
내가 까무러쳐 갖고
한 네 시간 동안을 그냥 그렇게 애를 쓰며 주문을 외면서 그랬지만은
돌아와서 보니까 환자는 상긋이 웃는 얼굴이에요.
살아났어요. 그렇게.
지금은 그 질녀가 결혼을 해서 아들 둘을 낳았어요.
큰 아이 는 중학교 1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그렇게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언젠가 가 봤더니
나한테 와서 코를 박고서 모시 적삼을 짝 쥐고서
얼굴을 떼지를 않고 그렇게 박고 있는 것을
거반 한 시간이나 애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두고 내가 왔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얘가 나한테 절을 또 하고 또 하고….
아이 가 그렇게 나한테 절을 해요
제 애비가 그러는데, 아이가 착하다고 그래요.
아이가 지금 험한 세상에 멀짱한 것들도
애들 내 버리고 이혼을 하고 그 야단을 치는데,
그 네 식구가 살고 있으니 정말로 감사하고 감사해서 .
내가 제대로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그러는데 이제 교회 좀 나오게 하려고 마음을 먹는데
아직도 내가 못 움직입니다.
***
내가 언젠가 음력 정월 초하룻 날 금곡을 갔잖아요.
용담에 가서 하룻밤 자고 금곡을 가야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시간이 안 되겠더라고.
여기까지 와서 대신사 동상을 참배를 해야지. 여기까지 왔다가 어떻게 참배를 안 하나,
그럼 나 혼자라도 가야지, 해서
대신사 동상에 가서 심고를 드리는데, 어떻게 대낮 같이 밝은지.
정월 초하루 새벽 다섯 시 쯤이면 얼마나 캄캄한 밤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낮같이 밝아요.
대신사 동상을 보고 심고를 드리고 막 돌아서는데
새카만 물체가, 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사람이 아냐.
내가 다 헤어질 때 까지 눈을 한 번도 안 땠어요. 꼭 사람이에요.
이렇게 보따리 하나 들고 수건 눌러쓴 것 모양 발은 나하고 똑같이 움직이는데,
그 문에서부터 수도원 밑 개천까지 한 발 한 발 건너는게 나하 고 꼭 일 미터 사이죠.
계속 보는데 새카매요
흰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나하고 체격도 똑같애.
그런데 숲속으로 들어가는 거 보니까 사람은 아니야.
아주 밝은 데도 새까만 게 흰점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데,
용담정 올라가는 데 한참 올라가잖아
그 길은 달밤같이 흰한데 용담정 들어가서 수련 할려고 하니
옆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한 밤이야.
그런데도 요거 만큼도 무서운 생각이 없고.
내 마음에 그저 사람인가 보다 했는데
호랑인지 뭔지.
호랑이가 있어서 마루에 뭐 갔다 놓으면 다 뽑아간다고 그러더라구.
그래서 그런 동물하고 같이 걸어봤어요.
나하고 딱 일자로 서 가지고 한 발 한 발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저게 뭐였나. 사람은 아닌데 하는 생각도 안 해 보고,
호랑이가 화악산에도 있다는 소리를 들어봤는데,
언제든지 청수도 내가 뜨러갔는데도 하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걸 몰랐어요.
내가 무서움을 굉장히 타는 사람이었어요 . 그런데도 무서운 걸몰랐어요.
***
우리가 정말 한울님 생각은 정말로 잠시도 잊지 않고 하는 것이
그게 정말 사람의 자식된 도리야.
내가 잘한다는 것은 거는 생각지 못해요.
잘 하지 못하는 것으로 항상 생각은 되지마는 그래도 항상 정한 마음으로,
우리가 선열들이 목숨 바쳐 우리 나라 동학혁명을 봐도 그렇고 삼일운동을 봐도 그렇고,
귀한 목숨들을 잃으면서 얼마나 그렇게 했습니까.
지금에 와서 천도 교가 나서서 포덕을 하고
천도교를 살려서 창생을 건질 힘들을 가져야 될 때가 아니왔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가네요.
제가 집에서는 한 마디 말도 안 합니다
너희들 우리 신앙 잘 하자 하는 말이 어째 안 해지는지 몰라요.
해 주기만을 바라니 이거야 말로 내가 답답한 거지 .
정말로 신앙생활은 정성껏 해 야 되는데.
지금 괴질 괴질 하지요. 앞으로 괴질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러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한울님이 살려줄 그럴 힘을 가져야 된다구.
경전에 보면은 그 괴질을 얼마나 걱정을 하셨어요
한울이 살려줘야 살아. 다 쓰러지면 어떡해.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야 되니까.
신기하게도 나는 독감이 두 번 걸려 가지고 매 번 한울님 감응으로 나았어요.
한 번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못 하고 드러 누워 있었는데,
한울님 감화로 이 질병을 깨끗이 낫게 해 달라고
한 그 순간에 깨끗이 나았어요. .
정말 말로는 할 수 없이 신기한 거지. 그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라
한울님 감화는 그렇게 무서운 거야.
그런데 금방 손님이 와서 음식을 해서 손님 대접을 하고.
그 무서운 병을 앓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정성을 다 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지요.
한울님은 그렇게 살펴주는데 우리가 한울님 생각을 안 하니까 그게 걱정이야.
암만 잘났다구 떠들어대도 한울님이 살려줘야 살아.
그래서 나는 혼자 웃고 그저 암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쯤이야,
내가 그렇게 여지껏 고생하면서 살았다 하는 말을 내 입에는 담고 싶지 않아요.
나같이 살려면 살지도 말아야겠 지.
그런 정도로 내가 병이 나서 밥 한 술못 먹어도 드러눕지를 못 했어요 .
내가 일을 해야 우리 식구 피가 돌아가잖아.
정말로 포덕이 잘 돼서
우리 천도교가 창생을 건지는 그러한 천도교가 되고 국교가 되고
정말 그런 세상이 되야 될 텐데
왜 여지껏 정신들을 못 차리는지 몰라
백성들이 정말로 나라사랑을 한다면은
지금 그렇게 하는 게 나라사랑인지 모르겠어.
외세가 너무 심해가지고 나는 다 봤잖아요.
우리 성, 우리 말, 나라만 뺏긴 게 아니라 정신까지 뺏긴 걸
세상에 자기 성을 그대로 못 가지고 있고,
어머니 아버지 소리를 못 하고 그랬는데.
이 제 정신 차려야 되는데
쌀에 팥 섞이듯이 그래도 제정신 가진 사람들이 남아있는데
우리 또래 다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 될런지.
너무나 참, 그 사람들조차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려.
내 살림 내가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나는 더 잘 하고 잘못한 사람을 우리 이렇게 서로서로 풀어가는 생활들을 해야 하는데
자꾸 꼬집 어서 너무너무 안타까워
나는 초학도 못 나온 사람이고 무식한 사람이야,
내가 그러나 내가 한문은 잘 모르더라도
무식한 천도교를 믿으면서 지나갔지요 .
기쁘게 지나가는 거죠
■ 구술일 포덕 145년(2004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