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느긋해도 탈이 나는가?
힘들게 달려온 길인데 간발의 차이로 9시 출발 교동도行을 놓치고 만다.
그럴 줄 알았으며 염창역에서 3000번 급행을 타는 건데,
88번을 타느라고 오는 동안 3000번 급행이 3대나 앞서가지 않았는가?
누구를 탓해도 소용이 없다. 인터넷을 덜컥 믿고 시간을 계산한 자신의 잘못이 먼저 아닌가?
9시 30분 출발이 9시로 바뀐 것을 모르고 늦장을 부린 것이 원인이다.
애라 모르겠다. 1시간 30분 동안 풍물시장을 둘러보며 강화도를 차분하게 눈에 담아두며 될 일이다.
5년도 전 교동대교가 연결되기 전에는
강화도 창후리에서 철부선을 타고 교동도 월선포로 들어온 것에 비하며 훨씬 편해진 세상이 아닌가?.
염려했던 출입증도 없이 해병대 병사 한 사람이 올라와 휙 하니 살피는 것으로
민간인 출입 통제구역도 쉽게 통과가 되니 오히려 걱정한 자신이 머쓱해진다.
월선포 종점까지 가려다 대룡시장에서 먼저 내려 분위기를 살펴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다며 새로운 시작이 아닌가? 가보는 거지 뭐!
멀리 빈장산을 바라보며 교동서로를 따라 강화나들길 10코스를 거꾸로 거슬러 간다.
평일이라 평화자전거길을 달리는 이도 보이지 않는다.
교동도는 고려 무신정권이 39년 항몽전쟁을 버텨내고자
강화도의 문 앞에서 저렇게 쌀 생산에 갯벌마저 무너져 내린지 오래인데~~~
갯벌이 변하여 옥토가 되어버린 교동도의 충적평야는 너무나 널찍하고,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머르메 가는 길은 대북방송으로 기러기 떼 만큼이나 소란스럽다.
김해평야가 야금야금 이더니 김포평야는 더 야금야금 아파트가 들어서며 무너져 가고 있는데,
김제평야만 마지못해 용케 버텨내며 지평선 축제를 한다고 야단들이니 이게 말이 되는가?
곧장 뻗은 길에서 갈래길만이라도 안내표시를 잘 해야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먼 곳에 생색을 내느라 사람을 종종 헷갈리게 만든다.
마침 어슬렁거리는 동네 아줌마를 만나지 않았으며 자전길로 한참 가다가 앗차 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오늘도 친절한 양갑리 아줌마 덕분에 알바를 하지 않고
교동서로를 비켜서 난정저수지나 죽산포구가 아닌 빈장산(濱長山)쪽으로 제대로 찾아간다.
3Km남짓 걸었으니 이제 남은 길은 14Km정도니
그렇게 부지런을 떨지 않더라도 대룡시장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길을 가고 있다.
<멀리 빈장산을 바라보며>
<돌아본 빈장산 원경>
가까이서 바라보는 빈장산(102.5m)은 낮으막한 언덕빼기다.
그런대도 내리막을 떠밀려서 간다고 밀쳇고개로 불리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건 이곳에서는 봉우리가 두 개라서 겹재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물가에 길게 늘어선 모양새를 보고 빈장산이라 이름을 얻지 않았을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선은 고갯마루에서 쉬고 볼 일이다. 선택은 자유니까~~~
언덕이던 山이던 오르막이 있으며 내리막이 있을 테지만,
쉽게 죽산포로 가기 위해 고갯마루에서 이정표를 무시하고 임도를 따라 간다.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만사를 제켜두고 집밖까지 나와 친절하게 죽산포 가는 길을 일러준다.
결국 빈장산 자락을 돌지 않아 시간을 또 번 셈이다.
<돌아본 수로제방>
<강화도 마니산 방면>
저 멀리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이 칭얼거리며 다가온다. 그래도 이제는 눈으로만 반겨야 한다.
가기도 힘들고 용을 쓴다고 인생살이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테니까~~~
무엇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분수를 알아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망둥어가 뛰어본들 그 자리고, 밴댕이 소갈머리는 타고난 체질인데 새삼 무엇을 누구를 탓하랴!
수정산(100m) 오르막을 걱정했는데, 해안 철책선(?)에 막혀 옆으로 비켜간다.
그냥 교동 서로를 따라 친절한 동네 아줌마가 일러준 대로 난정초교를 거쳐 난정저수지로 향한다.
힘들게 수정산을 넘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돌아본 수정산은 말이 없고>
<난정저수지 풍광>
농투성이가 주인이던 시절도 있었다. 갯벌을 막아 쌀농사가 잘 되면 모두가 배부를 줄 알았다.
그래서 방조제를 쌓아 갯벌을 門前沃畓인 옥토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쌀을 먹는 이가 점점 줄더니 쌀을 주식으로 하는 세대가 30%가 채 안 되는 세상이다.
다들 농촌을 버리고 서울로 서울로 향하더니 이 모양 이 꼴이 아닌가? 어찌 해야 좋을까?
막판까지 몰려온 민심이 끝 간곳을 모르고 무조건 삿대질이다. 어쩌자는 것인가?
양보도 배려도 없이 소리만 지르며 장땡이라도 잡은 듯이 설쳐 된다. 믿는 데라도 있는 것일까?
저 산골짜기 양지바른 언덕빼기에서는 허리 굽은 노부부가 소달구지 쟁기질에 하루해가 힘든데~~
오늘도 혼밥에 혼쭐나며 편의점 도시락을 즐겨 찾는 저들은 과연 누가 만든 족속인가?
이제는 왕족의 귀양지도 옛말이고,
연산군이 임금 자리마저 빼앗기고 치미는 울화통을 부글부글 끓이다가 지 분을 지가 못 참아
요절 아닌 요절로 인생을 마감한 곳이 아니던가?
북녘 땅이 바로 지척으로 보이는 저 곳에서
어느 미친 젊은이가 지 분을 지가 못 삭여 씩씩거리다가 틈만 나며 분탕질을 하고 있다.
오늘도 길가는 길손을 붙들고 길을 묻는 택배 아저씨를 어찌하며 좋을까?
길손도 길을 몰라 헷갈리며 가고 있는데~~~
기러기 대장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한 녀석이라도 더 챙겨보자고
줄지어 나는 연습에 똥줄이 타서 미친 듯이 날개 짓을 하며 이리 날고 저리 날며
길을 찾느라 늘 외로운지도 모른다.
보면 가고 싶고 보이지 않으며 더 보고 싶은 묘한 심리가 허둥대는 곳
그곳이 바로 북녘 땅이 지척에 보이는 교동도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