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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보유국 | 핵 미보유국 | 비핵화국 | 세계비핵화 |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 가능 (NPT, 핵금지) | 불가 | 불가 | 불가 |
타국의 핵공격위협 | 핵 방어 가능 | 핵우산 이용 | (숨긴 핵으로) 핵방어 가능 | 필요 없음. |
타국의 재래식공격 | 핵사용 가능 (NPT, 핵금지) | 핵우산 이용불가 | 재래식 방어 | 재래식 방어 |
핵 우산 | 동맹국에 제공 | 동맹국에 구걸 | 필요 없음 | 필요 없음 |
패권주의 | 패권으로 지배 | 패권에 피지배 | 불가 | 불가 |
이 차이는 세계질서의 새 변화를 의미한다. 비핵화국은 핵을 몰래 보유할 수는 있어도 핵이 있다고 남을 위협하거나 남에게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패권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핵화국은 핵은 없어도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타국의 핵공격 시에는 언제 (숨긴)핵으로 보복할지 모른다는 암묵적 핵방어 능력이 있다. 따라서 비핵화국에 대해서는 핵보유국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비핵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할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에 (숨긴)핵으로 핵방어를 하느냐 않느냐는 무의미한 질문이 된다. 앞으로 이 세계는 핵우산 같은 패권놀음도 없어지고 패권국가의 갑질도 사라질 것이다. 북한이 한 비핵화약속은 북한은 이웃나라나 지역에 대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 핵이 없던 옛날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핵보유국들,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도 사실은 공표를 안 했다뿐이지 사실은 이미 비핵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어느 나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북미공동성명에 명시된 쌍방의 의무사항은 비대칭적이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의무조항인 ‘비핵화를 향한 노력’이라고 애매하게 표현된 노력만 하기로 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한반도의 공고한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북한과의 공동노력,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지지 등,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대변환을 약속하고 있다. 트럼프대통령이 구두로 확인해준 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비가역적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언급만 겨우 북미 사이의 비대칭관계를 가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언급은 매우 모순적 발언이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려면 미국도 동시에 북미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수립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한다. 미국이 그때까지도 경제제재를 계속한다면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될 리 없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다그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유엔제재의 해제를 비가역적 비핵화의 완료와 연계시키기를 고수한다면 단계적 접근보다는 일괄해결을 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평소 요구해온 경제제재의 해제, 주한미군의 철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같은 사안에 관해 일체 언급을 않는 것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의 천재로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정상회담의 열띤 분위기에 미리부터 찬물을 끼얹게 될 것임을 알고 자제하고 있음을 눈치 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북미정상회담은 무슨 협상을 하는 회담이 아니었다. 협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번은 정상회담의 날짜부터 먼저 정해놓고 시작되었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top-down) 형식이다. 양쪽 정상이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된 회담이다. 그 결과가 한반도비핵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이 결의한 공동의 약속과 공동의 원칙을 선언한 공동성명이었다. 그럼에도 이란이 경고했듯이, 미국이 공동성명에서 입 발린 약속만 늘어놓고 뒤돌아서서는 전혀 실천을 않는 일도 생길 수 있을까?
그런 우려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몰라서 생긴 것이다. 북한은 신년 초에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앞으로는 핵·미사일시험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 대신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태평양을 무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마다 미국이 전개하는 핵전략자산(핵전투기)의 동원에 대항하여 북한도 핵전략자산인 핵·미사일을 동원해 같이 태평양 위에서 군사훈련을 하겠다는 것이다. 괌을 비롯한 태평양을 무대로 군사훈련을 전개하면 미국은 그때마다 북한이 군사훈련이란 핑계로 불시에 미국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동안 북한은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내내 유지해야만 했다. 특히 농촌인력이 집중되어야 하는 시기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집중되니까 농촌일손부족이 늘 심각했다. 북한도 이제 태평양 위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간다면, 태평양을 오가는 해상무역이 1년 내내 전면 통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도 이제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비용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불어나게 된다는 것을 트럼프는 이미 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금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군사적 대립관계의 해소가 트럼프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북한과의 직접대화의 통로가 다 막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미국의 대화요청을 거부했고 미국이 대북적대행위부터 먼저 중단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신년 초 남북대화가 재개될 기미가 보이자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였다. 우리를 축복한다는 말까지 했다. 금년 2월에 있게 될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우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문재인대통령이 남북대화 시에 북미대화를 중재할 기회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북미관계를 이대로 둔 채로는 남북관계를 한 걸음도 진척시킬 수 없다.’는 남측특사의 간곡한 권유에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언들 못 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재가 없었다면 아마도 금년 4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 북한은 태평양상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벌렸을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란이 경고한 대로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입으로만 달콤한 약속을 하고 뒤돌아서서 나 몰라라 한다면 북미관계를 2018년 1월 이전으로 되돌리는 어리석은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끝날 때까지 북한의 언론보도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일체의 언급을 자제한 이유도 아마도 미국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또 할지 모른다고 불신한 때문으로 보인다.
4. 단계적 접근? 일괄해결?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향후에도 여러 차례 예고되어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결정하기보다는 동결 대 동결, 혹은 쌍방동결의 동시적 실천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미국은 미리 자기의 역할과 책임을 찾아 1단계조치로 한미합동군사훈련부터 중단했다. 그러나 남한 언론은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이미 북한이 양해한 적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진해서 미리 중단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부터가 사실은 정신이 나간 소리이다. 세상의 어느 나라가 군사훈련을 적대국으로부터 양해를 얻어가며 하는가? 미국이 언제부터 북한의 양해를 받아가며 군사훈련을 하든가 안 하든가 했나? 그런 얘기는 북미관계가 금년 초부터 근본적으로 뒤바뀌었음을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원래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시험발사의 중단>과 맞교환하자고 2015년 1월과 2016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의해 제시됐다가 미국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장소를 괌 부근 해상으로 옮기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미국은 태도를 바꾸어 북미대화를 요청했다. 이때 북한은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해야 북미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이제는 미국이 자진해서 한미합동군사훈련도 먼저 중단할 뿐 아니라 대북비판이나 대북이미지의 희화화도 삼가하고 미국인들의 대북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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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미국의 대북적대행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대북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것은 군사적 대북위협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적대행위를 전부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미소냉전시기에 미소 두 나라가 서로 평화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으로는 적대관계를 견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북미관계에서 서로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면 확성기방송, 삐라살포, 인권공세, 북한에 관한 가짜뉴스, 영상물이나 출판물을 이용한 반북선전활동, 국제무대에서의 왕따 놀이 같은 적대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요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합동군사훈련만 자진해서 중단했을 뿐 아니라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도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북미정상 사이의 핫라인도 미국이 먼저 자진해서 제공했고, 북한의 인권유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유엔인권위원회로부터도 미국을 탈퇴시켰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지도자를 추켜세우고 있고 북한지도자에 대한 북한인민들의 경배태도를 미국도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추켜세웠다.
노동신문이 보도한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의 최종목적지를 미국은 20%의 한반도비핵화에 두고 있다. 비핵화가 20%에만 이르면 되돌아가기 어려운 임계점에 왔다고 보고 유엔경제제재의 해제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그 반대급부로 약속하였다. 북한의 최종목적지는 다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더하여 미국의 대북적대행위의 중단이다. 왜 CVID에 대한 요구를 꺼내지 않을까? 북한도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CVID요구를 거부한 적 없다. 다만, CVID를 요구하려면 미국도 거기에 상응해서 CVIG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꾸했을 뿐이다.
CVID는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의 보유핵무기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핵능력까지 제거하는 것이다. 지하 곳곳에 숨겨놓은 핵무기를 일일이 찾아 제거해야할 뿐 아니라 핵관련 기술자와 과학자도 국외로 다 내보내어야 한다. 미국은 이 모든 과정을 사찰단을 파견해 일일이 검증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CVID는 상대방의 내장 속까지 다 꺼내어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요구라면, CVIG는 상대방의 머리와 가슴까지 확고하게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요구이다. 북한이 핵을 어디다 숨겨놓았는지, 나중에 핵을 다시 만들지 않을지를 미국이 검증해야하듯이 북한도 미국의 정신과 마음을 체계적으로 검증할 권리가 있다. 언제 어떻게 미국이 뒤통수를 칠지 모르므로 그들의 책자, SNS, 문화적 및 예술적 표현에서까지 아시아나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반북감정을 지닌 사람이 국가의 중요정책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차단하고 검증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친북감정을 갖고 있어도 또 언제 어떻게 반북으로 바뀔지 모르지 않은가, 그것을 방지할 대책도 북한의 마음에 쏙 들도록 미국이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인가 싱가포르회담 직전까지도 북한의 CVID 약속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했던 폼페이오가 싱가포르회담 이후에는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 속에 이미 CVID가 다 들어있다고 연막을 쳤다.
5. 단계적 접근의 함정
노동신문이 밝힌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에 대해 미국도 나름의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을 찾아가고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트럼프는 ‘20%만 비핵화를 완료하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불가역적 임계지점’이라고 보고 유엔경제제재의 해제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약속했다. 이에 대해 폼페오 장관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미국본토에 대한 북한의 타격능력 제거’, 즉 ICBM의 폐기, 핵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장의 폐쇄, 미사일 엔진시험장의 폐쇄가 모두 불가역적 비핵화 조치에 해당한다고 정의했다. SLBM이나 중단거리 미사일은 아예 비핵화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아래 표는 미국이 밝힌 단계적 조치를 정리해본 것이다.
북한이 할 일 | 미국이 할 일 |
(1단계)
태평양 핵·미사일 군사훈련 취소(③) 한반도비핵화 계획서 제출(④) 비핵화 착수(⑥) | (2018)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①) 반북선전, 반북켐패인 중단(②) 종전선언, 평화협정, 불가침조약(⑤) |
(2단계)
비핵화 20% 완료 및 상호검증(⑧) | (2018-9)
경제제재 해제, 주한미군철수(⑦) |
북한이 할 일 | 미, 러, 중, 영, 프가 할 일 |
(3단계)
한반도비핵화 100% 완료(⑩) | (2019- )
한반도 연방제통일(⑨) 세계비핵화 100% 완료(⑩) |
한반도비핵화의 제1단계는 북한이 비핵화에 착수하기위한 준비단계이다. 먼저 미국의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된다(①과 ②). 북한도 이에 호응하여 같은 식으로 대미적대행위를 중단한다(③). 이 두 가지는 이미 실행에 옮긴 조치들이다. 제1단계의 남은 일정은 미국 쪽 얘기로는 북한이 먼저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실행계획서를 제출하면(④), 미국은 그것을 점검한 뒤 후속조치에 착수한다. 후속조치란 ‘현재의 한반도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협정,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⑤)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한반도비핵화에 착수할(⑥) 필요충분조건이 다 갖추어진다.
그러나 어쩌면 북한이 비핵화계획서를 미국에 제출해 타국의 결제를 받으려고는 하지 않을지 모른다. 비핵화의 방법과 속도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고 미흡한 점을 남들이 지적해주면 우리가 알아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그들의 의견을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답하면 미국도 사실은 어쩔 도리가 없다. 미국이 계획서의 내용에 대해 끝까지 수긍하지 못한다고 버티면 북미관계는 파국에 이른다. 북미 두 나라가 다시 적대관계로 되돌아가면 끔찍스런 태평양 위에서의 핵·미사일 군사훈련을 미국이 목도해야 하므로 그런 사태를 정녕 피하고 싶으면 미국은 북한이 제시한 비핵화방식과 일정에 대해 아무 말 않고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과정에 장애물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속조치인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⑤) 과정에 전쟁의 직접적 당사자의 한 축인 유엔을 여기에 개입시켜 북한의 비핵화계획서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 미국이 하고 싶은 얘기를 그들의 입을 빌려 대신 반영하는 것이다. 비핵화의 제1단계가 한동안 혼돈에 빠지게 된다.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면 언제라도 북미관계가 2018년 1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버리기 때문에 정말 아쉬운 쪽은 오히려 미국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유엔과의 입씨름 때문에 미국과 적대관계를 회복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북한은 여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너희는 떠들어라,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간다.”고 한반도비핵화를 다그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유엔안보리이사국은 둘로 갈라진다.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킬 나라와 구태여 그럴 필요나 이유가 없는 나라로 갈린다. 유엔의 기능이 마비된다. 제1단계를 미완으로 남겨둔 채로 제2단계로 바로 넘어간다. 유엔과는 상관없이 북한이 비핵화과정에 착수하는 것이다.
진짜 함정은 제2단계의 마지막에 불거진다. 트럼프는 북한이 20%의 비핵화만 완료하면 남북이 상호검증을 하고 상호검증이 끝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주한미군을 진짜 철수할 마음이 있다면 주한미군의 부대내부를 구태여 북한에서 파견한 사찰단에게 일일이 보여줄 필요 없이 본국으로 미리 철수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을 철수할 생각이 없다면 북한에서 파견된 사찰단의 검증을 기꺼이 받으면서 자기도 장거리 핵미사일을 북한이 정말로 폐기시켰는지 검증하고 싶을 것이다. 사찰을 받음으로써 국가적 자존심이 훼손되는 것보다는 장거리 핵미사일의 폐기에 관한 1급 정보를 얻는 것을 더 가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쯤 북한은 제1단계에서 건너뛴 ‘종전선언, 평화협정, 불가침조약(⑤)’을 상호검증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면 미국도 상호검증에 들어가기 위해 유엔을 설득해서 ‘정전선언, 평화협정, 불가침조약의 체결’을 주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북한은 장거리 핵미사일을 끝까지 폐기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이 이미 폐기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바로 그 순간, 마음을 바꾸어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핵미사일만 없으면 북한이 태평양 위에서 군사훈련을 해도 크게 위협되지 않으니까 미국은 안심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미 폐기했다고 스스로 공표한 장거리 핵미사일을 어디서 갑자기 끄집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을 끄집어내는 순간 북한이 주도하는 한반도비핵화의 가치와 진정성은 매몰되어 버리고 세계비핵화의 대의는 그것으로 물 건너 가버린다. 이것이 단계론적 한반도비핵화과정의 함정이다. 주한미군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철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제해본 것이다.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핑계거리는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남한주민의 다수가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원하고 있다고 우기면 북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번에 트럼프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한반도비핵화의 20%완료와 동시에 맞교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남한 내부의 핵무기와 핵시설만 철거하고 미 지상군을 남겨두는 것은 남한지역 비핵화의 20%에 불과하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완전한 비가역적인 남한지역의 100% 비핵화로 볼 수 있다. 북한의 ICBM폐기가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비가역적으로 해소하는 20%의 비핵화라고 평가하면서 트럼프는 20% 대 100%의 비대칭적 맞교환을 제안했다. 그러나 장거리핵미사일이 제거된 것을 확인한 뒤에는 남한주민의 대다수가 주한미군철수를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 남한지역 비핵화의 100%에 해당하는 주한미군의 철수는 북한지역 비핵화의 100%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100% 대 100%의 등가교환을 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주한미군이 철수하려다말고 이미 핵무장을 100% 해제한 북한을 향해 돌아서서 총부리를 다시 겨누면? 그러니 북한은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는 무기한 연기하며 버틸 수밖에 없다.
6. 세계비핵화로의 길
북한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북한의 목표는 100%의 완전한 비핵화에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완전한 철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를 무기한 연기하며 버티기보다는 주한미군철수문제를 건너뛴 채 비핵화과정의 제2단계를 조속히 끝마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아직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한반도비핵화과정의 장애로 되지는 않는다. 미국의 요구에 맞추어 단계별 수순만 아래 표와 같이 재조정해서 전진하는 것이다.
북한이 할 일 | 미국이 할 일 |
(1단계)
태평양 핵·미사일 군사훈련 취소(③) 한반도비핵화 계획서 제출(④) 비핵화 착수(⑥) | (2018)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①) 반북선전, 반북켐패인 중단(②) 유엔안보리 한반도비핵화 계획서 논란(⑤) |
(2단계)
비핵화 20% 완료 및 상호검증(⑧) | (2018-9)
종전선언, 평화협정, 불가침조약 체결(⑦) 경제제재 해제(⑨), 주한미군철수 거부(⑩) |
북한이 할 일 | 미, 러, 중, 영, 프가 할 일 |
(3단계)
한반도 연방제통일의 포기(⑪) 한반도비핵화 100% 완료(⑫) | (2019- )
최후의 심판/세계비핵화100% 완료(⑬) |
주한미군철수문제를 건너뛰면 그 다음의 수순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이미 다른 핵보유국들은 사실상 비핵화의 문턱에 거의 다 왔다. 그들은 핵무기가 있어도 타국에 대해 핵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며, 패권국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핵을 없애겠다고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만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만 핵우산을 제공하여 그것을 근거로 패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세계비핵화과정에 이미 들어섰으면 미국 외에는 다른 나라를 향해 핵위협을 할 나라도 없다. 그런데 핵 없는 나라들이 구태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갈 이유가 있겠는가? 미국의 패권은 절로 무너진다. 핵우산이 불필요해지고 핵보유국으로서의 패권도 무너지면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겨진들 미국에게 무슨 이점이 있을까? 아래 표는 맨 앞에서 제시한 핵보유국, 핵미보유국, 비핵화국의 비교를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비교해 본 것이다. 맨 아래 줄부터 읽어나가자.
| 유일한 핵 보유국 | 핵 미보유국 | 비핵화국 | 세계비핵화 |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 가능 | 불가 | 불가 | 불가 |
타국의 핵공격위협 | 그럴 일 없음 | 그럴 일 없음 | 그럴 일 없음 | 그럴 일 없음. |
타국의 재래식공격 | 반(反)테러전쟁 | 재래식 방어 | 재래식 방어 | 재래식 방어 |
핵 우산 | 무용지물 | 필요 없음 | 필요 없음 | 필요 없음 |
패권주의 | 불가 | 불가 | 불가 | 불가 |
우선 패권주의의 몰락이다. 미국 외에는 핵공격을 할 나라가 없으니까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 없고,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 없으니 미국의 패권적 지배도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제 싸움이 일어난다면 미국 외에는 전부 재래식 무기로만 싸울 것인데 핵을 가진 미국과 재래식 무기로 싸울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자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이 테러전이다. 테러전쟁에는 대응 방법이 마땅히 없다. 테러와 반(反)테러 사이의 전쟁방법은 날로 지능화되고 현대화되고 있고 아직도 미국은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365일 쉴 틈 없이 이어가고 있다.
미국 외에는 어느 나라도 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비핵화국도 함부로 핵공격 위협은 받지 않는다. 어딘가 숨긴 핵이 있을 것 같은 가능성 때문이다. 핵공격 위협에 노출된 나라는 처음부터 핵을 보유한 적이 없는 나라뿐이다. 형식상으로는 핵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비핵화국과 핵미보유국이 모두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핵공격 위협에 노출되는가 안 되는가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세계비핵화는 불문율에 의해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와 같다. 누가 총기를 몰래 갖고 있다가 강도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총기를 난사해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었느냐만 문제가 되고 총기사용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불문율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금기를 깨트리고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같은 원리에 의해 비록 세계비핵화의 문턱에 들어섰더라도 유독 미국만 끝까지 핵을 가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에서 유독 혼자 총기를 공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혼자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깡패노릇을 한다면 같은 깡패노릇이라도 더 주목을 받고 더 나쁜 사람으로 지탄을 받는다. 그것이 쌓이면 결국엔 주변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다. 같은 원리로 세계비핵화흐름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만 남으면 정말로 미국을 불로 다스릴 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남한이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미국을 불로 다스릴 때 한국도 유감스럽지만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민초들이 다 같이 일어나 판문점선언의 이행에 만세를 부르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구원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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