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과 보은군 경계에 있는 금단산(金丹山 767m)은 주위의 도명산이나 낙영산 등의 유명세에 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우거진 송림과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 가령산과 경계를 긋고있는 유려한 용대천 남쪽에 있어 조망이 빼어나다.
높은 절벽과 송진내 풍기는 노송군락은 청량감을 느끼게 하고, 계류가 맑은 용대천엔 여름철 피서객들도 많다.
옛날 검단(儉丹)이란 중이 살아 검단산(儉丹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금단산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옛날 이 산에는 수령이 부임만 하면 부인을 납치해 가는 금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때 아주 담력이 센 사람이 고을 수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날 밤 수령은 명주실을 아내의 치마 끝에 매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더니 명주실은 검단산 깊은 골짜기 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굴 속에서 아내를 만나 금돼지에게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알아보라고 하였더니 “사슴가죽만 보면 사지가 떨려 꼼짝할 수가 없다”하였다.
수령은 사슴가죽을 들고 “사슴가죽 여기 있다”라고 소리치자 금돼지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뒤 금돼지 새끼를 밴 아내가 낳은 아기가 바로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으로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는 최치원이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신선봉(神仙峰 644)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스토리텔링이 입혀져 있다.
나무꾼이 두 신선이 두는 바둑을 구경하다 집에 돌아오니 100년이란 세월이 흘러 아내는 죽고 없고, 손자 내외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바둑을 두던 두 노인은 검단과 최치원으로,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주봉(周峰 583)은 청주시와 보은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렇다할 특색은 없다.
덕가산(德加山 693)은 괴산만 해도 두 개가 더 있고, 신선봉 또한 괴산을 비롯한 전국에 걸쳐 여럿있다.
날머리인 사담(沙潭)마을은 낙영산이 용 모양으로 마을을 집어삼키는 형국을 하고 있어 공림사 입구에 용이 좋아하는 두꺼비 형상의 바위로 먹이를 만들어 놓고,
더하여 용이 싫어하는 사담(沙潭)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연못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공림사 입구 주유소 앞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청소(靑沼)가 보인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이 길을 지나다가 살구꽃 향기에 끌려 돌에 행풍석(杏風石)이라 새기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안내판의 가이드대로 금단산과 덕가산만 산행한다면 코스가 너무 짧아 신선봉과 주봉을 연결하였다.
그랬더니 아주 그럴싸한 코스가 되었지만 찾는 이가 적어 일부 구간 산길이 거친 게 흠이고, 갈림길에선 독도에 주의를 해야만 한다.
자료마다 봉우리들의 높이가 제각각이고, 일부 구간은 '속리산둘레길' 4구간과 겹친다.
날머리 사담리에는 천년고찰 공림사가 있고, 그 뒤로 이름난 도명산과 낙영산 가령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코스: 원평교 200m-절개지-주봉-독도주의지점-철조망안부-임도-넝쿨지대-신선봉-금단산-c코스-금단고개-덕가산갈림길-덕가산(U턴)-사담교(10km,5시간)

산행궤적 <클릭시 원본크기>

10km를 5시간 조금 넘게 걸렸는데 꼴찌였다.

고도표

원평교를 건너 200여m 더 진행하다...

우측 포장임도 입구에 차를 멈췄다.

도로 표지판엔 '운암계원로'

2~30여m 위 절개지...

출입금지 현수막이 붙은 지점이 들머리.

뒤돌아본 모습. 우리 버스는 B팀들이 내는 '신월교'로 곧장 진행할 것이다.

입구에 딱 멈추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산길을 오르는 일행들. 걸음이 빠른 사람들은 알바도 빠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번갈아 공생하더니...

좌측으로 산불지대인 듯한 곳, 조망이 열리는 능선에 섰다. 하지만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이 회색 기운은...

안갠가? 미세먼진가?

35분 만에 주봉에 섰다.

이 정상목은 대구 산꾼 '김문암' 님이 다는 것.

희뿌연 개스를 뚫고...

시선은 그저 골짜기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진행방향.

능선 좌측으론 가파르게 골짜기를 이루었으나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다. 산불 지역인가?

돌아본 주봉.

나아갈 방향엔 신선봉인가?

앞서간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정확한 등로를 물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지점으로 곧장 내려간 일행들이 다시 올라오는 모습.

이 길은 좌측 청주시와 우측 보은군의 시계(市界)를 따르는 것으로 출입을 막으려는 목적인 듯 나무더미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다.
그것이 곧 지형지물이 된 것.

산사면인 듯 비스듬히 내려서는 것 같지만 엄연한 시 경계로 능선이다.

이 길은 김정으이 상고머리 스타일.

조금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고, 다시 내려서면...

철조망이 있는 안부. 우측으론 아마도 사유지인 듯.

좌론 빽빽히 숲이 우거져 있지만 우측으론 바리캉으로 싸악 밀은 듯 훤하다.

우측으로 보이는 마을은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잡목을 헤치고, 희미한 족적을 좇아 ...

내려선 안부에서 다시 등업.

바쁠 게 없는 우리들은...

천천히 올라...

무덤 능선에 섰다.

함양 박씨와 광산 김씨의 무덤.

이제부터 덩쿨이 우거진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능선으로 이어진 길은 식생이 육신을 감아 붙잡는 덩쿨나무 군락.

앞서간 사람들의 뒤를 좇으면 그나마 수월하지만 눈밭에 러셀을 하듯 선두는 힘이 들 것이다.

넝쿨과 키작은 잡목이 뒤엉킨 능선 길도 얼추 끝이 난다.

허리를 한 번 펴고, 돌아서니 희미한 가운데서도 열리는 조망.

속리산 문장대와 묘봉 능선인 듯.

이제 솔숲이 펼쳐지고, 넝쿨 험로는 끝이 나더니...

금세 막대기 하나 달랑 꼽힌 신선봉 정상에 올라서서 배낭을 풀어 헤쳤다. 시원하게 냉장된 탁음료가 반긴다. 그런 후에 기념사진.

날개 떨어진 이정표의 막대지둥에 매직으로 신선봉(神仙峰)이라는 글자를 자필로 새겼다.

십 년을 넘게 고락을 함께한 실버 나침반이 노후로 인하여 에러를 범한다. 나침반이 방향감각을 잃었으니 어찌하랴?
나중에 알고 봤더니 강력한 자석과 동거를 강요한 나의 무지였다. 무식한 귀신은 부적도 몰라본다 한다던데...

신선봉에선 밧줄을 이용하여 내리막을 내려선 다음...

신선봉길 안내판을 지나니...

산행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

온 산에 추색(秋色)이 만연하여...

새삼 가을을 느낀다.

능선에 드리운 단풍은 그 생명력이 짧아...

키작은 산국(山菊) 한 송이보다 애처러울 것.

이 능선길은 광케이블 매설지역.

무인 산불감시 시설물이 있는 금단산에 닿아...

삼각점을 확인하니 768.2m로서 나의 맵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른 봉우리의 높이도 나의 맵을 따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남동 방향 C코스로 열린 산릉은 속리산 문장대 방향.

살짝 당겨본 모습.

북으로는 조봉산과 낙영산의 산릉도 키큰 나무들 위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충북의 직사각형 검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

다시 시설물을 지나 C코스를 타고...

안부인 금단고개에 내려섰다.

여러 안내판이 서있는 고개는...

속리산 둘레길이 지나가고...

4-9구간을 알리는 안내판이 이정목 아래에 작게 안내되어 있다.

여긴 금단산 고개.

이정표는 속리산 둘레길을 안내하는 것.

우회길이 있었지만 직등을 하여 730.1m봉에 올라...

'J3클럽'의 시그널에 자그마하게 730m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곤 다시 기존 등로에 내려서...

등로 옆 보라색 예쁜 가을꽃을 카메라에 담는다. '산부추'다.

저 마다 제 색깔을 뽐내는 가을산은...

'Y'로에서 우측으로 덕가산을 선택하라 한다. 
왕복 400m 정도의 등로를 천천히 20분이 걸려 다녀와야만 할 것.

덕(德)을 보태는(加) 산이니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더니 옆에 있는 일행이 "이제 덕을 베풀어야 한다"라고 한다.
덕을 쌓지도 못했으니 베풀기는 더더욱 힘들 것.

고도가 뚝 떨어지며 마을길과 들판이 코밑이다.

산길에서 보조를 맞추는 동행자는 언제나 쉽게 친해지는 법.

댓 시간의 산여행이 끝나가는 참이다.

녹슨 컨테이너 부스를 내려서면...

안내판이 있어...


대강 살펴보면 오늘 우리의 B팀들이 진행한 코스.

허연 배를 드러낸 낙영산의 위용은 우리들의 눈길을 끌어 당긴다.

우측으로 사담리마을회관을 지나니...

화장실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오픈하고 있다.

청천면 사담리 경로당.

사담교를 건너기 전 우리 버스를 찾아 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알바한 일행들을 태우러 갔으려니 하였고...

사담교 다리 밑으로 내려가 청소(淸沼)를 둘러보았으나 세종대왕의 흔적을 찾기는 무리.

다리 밑에서 사담교를 올려다 보니 건너 남산이 우뚝하다.

말끔히 새 셔츠를 갈아입고 다리 위로 올라오니 낙영산 공림사 푯말이 서있고...

피서철 지난 용대천에는 을씨년스런 기운만 감돈다.

우리 버스는 사담교 우측 100여m 지점 공터에 자리를 잡고...

뒷풀이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간이화장실이 마련된 공터 한켠에 서있는 비석엔 '사담 자랑비'가 서있다.
-단 풍-
저 년이 아무리 예쁘게 단장을 하고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화냥기를 드러내 보여도 절대로 거들떠 보지 말아라.
저 년은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저 년이 떠난 뒤에는 이내 겨울이 닥칠 것이고 날이면 날마다 너만 외로움에 절어서 술독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외 수>
이 詩가 여성비하라는 시비(是非)로 시끄럽다.
이 년 저 년 해대며 화냥기를 드러낸다 하였으니 그런가?
여성비하라는 시각으로 제단된다면 비하인드가 너무 비약된 건 아닐까?
그러거나말거나 이내 겨울이 닥쳐오면 나만 외로움에 절어 술독에 빠져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