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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0의 발견
아라비아 숫자와 영(0)의 발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상용 숫자)는 사실은 인도에서 발명된 것이다. 즉 1, 2, 3, 4, 5, 6, 7, 8, 9의 아홉 개의 숫자와 0이란 기호는 1400∼1500년 전에 인도에서 발명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숫자를 로마 숫자라고 잘못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로마 숫자는 따로 지금도 남아 있다.
이미 학교에서 배운 바와 같이 9까지의 숫자와 0이란 기호를 써서 어떤 큰 숫자도 아주 간단하게 또 쉽게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이 숫자가 유럽에 알려진 이후 셈이나 수의 기록이 아주 편리하게 되었고 그 후 유럽의 수학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숫자를 발명한 사람의 이름도, 시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지,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숫자는 처음 인도에서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1에서 9까지 아홉 개의 숫자와 0을 써서 10이 될 때마다 한자리씩 올려가는 것을 생각해 낸 일은 인류의 역사상 매우 대단한 발명이었다. 요즈음은 이 숫자들을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이가 한 달도 채 못 되어 모두 외워 버리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양 여기기가 쉽다.
그러나 이 숫자 덕분에 인도 사람들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은 물론 이자 계산이라든가, 제곱근, 세제곱근을 구하는 등 복잡한 셈까지도 거뜬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도 사람들이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수 천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에도 미처 할 수 없었던 고도의 산수, 대수 계산에 익숙해진 것은 오직 이 숫자의 발명 때문이었다.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를 나타내려면 복잡한 방법이 필요하다. 0의 발견이 아무리 간단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도 이것이 문명의 발달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인도에서 발명된 숫자는 곧 아라비아로 전해졌으며 그 후 유럽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아라비아에서 건너온 숫자라는 뜻으로 유럽 사람들은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도-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무튼, 아라비아 숫자와 0은 인도에서 최초로 창조되어 서양으로 전파되어 꽃을 피운 것이다.
인도에서 이만큼 수학이 발달해 있었으므로, 그 후에도 연구를 계속했다면 인류에게 큰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발달을 멈추고 만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인도 수학이 계속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는 승려나 왕족들만 수학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시의 형식으로 남겨 놓기 일쑤 였는데 시는 수학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옮길 수 없고, 의미가 애매 모호하게 되기 쉬웠던 때문이다..
신비로운 수 0
현대 수학에서 0은 두 가지의 기능을 갖고 있다. 첫째로 52와 502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숫자의 위치가 자릿수를 의미하는 이런 표기법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고 있다.기원전 바빌로니아 인들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0의 사용을 권장하였고 그리스인들이 이것을 도입하여 지금과 비슷하게 생긴 기호(동그라미)를 정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0이라는 수에 더욱 깊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너무도 심오하여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뒤에야 인도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힌두의 수학자들은 0이 숫자들을 구별하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유한 수임을 간파한 것이다. 1과 2가 고유한 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0 역시 엄연한 수로서 존재한다. 즉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시킬 수 없었던 무(無)의 개념은 0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적인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0의 등장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는 '별볼일없는' 사건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0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0을 가리켜 '규칙에서 벗어난 수'라고 하였다. 나눗셈을 할 때,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누면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점은 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결되었다. 인도 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한대' 라는 개념과 연결시켰고 7세기 학자 브라마굽타는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눈 몫'을 무한대의 수학적 정의로 사용하였다.
'0의 발견' 고대 빈 자리 나타내는 수… 6세기 말 '하나의 수'로 인정
'0의 발견'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인류 문명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숫자 0의 발견은 언제일까.'0'은 빈 자리를 나타내는 수로 아무 것도 없음, 시작점, 양수와 음수의 기준점을 의미할 때 주로 쓰인다.'0의 발견'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 문자를 해석해보면 0에 해당되는 기호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 기호는 수를 표기할 때 비게 되는 자리를 채우는 기호였다.
아라비아 숫자가 유래된 인도에서도 처음에는 역시 '1 2'처럼 어떤 단위에 해당하는 숫자가 없으면 그 칸을 비워 놓고 표현을 했다.그러다 6세기 초 빈 칸을 없애고, 대신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들의 언어에 있었던 슈냐(sunya)라는 말에 해당하는 작은 동그라미(●이나 ○)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그동안 0은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기호였지만 6세기 말에는 0이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0보다 작은 수인 음수1), 0, 0보다 큰 수인 양수 2)로 수를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게 된 다. 하지만 0이 수로써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어떤 수에 0을 더하면 어떤 수 자신이 되고,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항상 0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때부터 0은 수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0의 발견'을 접한 네티즌들은 "'0의 발견' 처음에는 빈자리를 나타냈구나", "'0의 발견' 인류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네", "'0의 발견'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 새삼 생각해본다", "'0의 발견' 수로써 인정받은 것이 6세기라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0의 발견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가장 먼저 얻은 수학적 지식은 태양을 본 뜬 원일 것이다. 태양으로서 원은 남성적인 힘을 뜻하지만, 영혼이나 마음, 대지를 둘러싸는 바다로서의 원은 어머니와 같은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중심이 있는 원은 완전한 주기, 둥근 고리의 완전함,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의 해결을 뜻하며 태양을 상징한다. 따라서 중심축이 있는 바퀴 역시태양과 같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둥근 원을 닮은 숫자 0이 있다. 태양과 바퀴, 그리고 숫자 0은 인간의 사유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 개의 원이다. 그렇다면, 숫자 0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수학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비어있는 자릿수를 표시하기 위한기호 0
요즘 ‘인도수학’이라 하면 베다수학을 많이 떠올리지만 인도수학은 베다수학 뿐만 아니라 세계 수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수학에서는 1부터 9까지 아홉 개의 서로 다른 숫자와 특별한 기호인 0을 사용했고 각 숫자가 놓이는 자리에 따라 나타내는 값이 다른 특별한 방식으로 수를 표현했다.
약 2000년 전 인도에서는 수평 또는 수직으로 적당한 개수의 선을 그어 수를 표시했다. 이후 마른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에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점차 필기하는 모양이 변했다. 예를 들어 2와 3은 처음에 각각 두 개와 세 개의 획으로 표시됐는데 옮겨 적거나 빨리 쓰면서
숫자가 지금과 같이 쓰이지 않았던 과거에는 동서양 모두 주판을 이용해 계산했다. 이 고대 주판에서 만약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도의 서기로 추정되는 한사람이 처음으로 우리가 수를 표기하는 것과 비슷한 표기법을 고안했다. 그는 주판에서 조약돌 수를 나타내기 위해 특별한 표시를 했다. 오늘날 우리가 비어있는 자릿수를 표시하기 위해 0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그는 주판의 비어있는 열을 나타내기 위해 점을 사용했다. 따라서 22는
수를 계산할 때 편리한 숫자, 0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국에서는 주판의 서로 다른 열에 조약돌이 같은 개수만큼 있어도 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기호를 사용했다. 따라서 그들은 주판의 각 열에 있는 조약돌 수를 적거나 암산하기 전에 각 열에 대한 덧셈과 곱셈을 설명한 표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오직 9개의 서로 다른 기호로 각 열에 조약돌 개수를 표기하고 비어 있는 열은 0으로 나타내 계산에도 용이했다. 사실 0은 수를 셀 때가 아니라 수를 쓰고 계산할 때 필요한 숫자이다.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다른 고대의 여러 숫자들을 제치고 오늘날 거의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이유가 바로 다양한 수를 쓰고 계산 할 때 편리하기 때문이다.
0을 발견하기 위해선 공백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 ‘공백’이나 ‘부재’를 의미하는 ‘슈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인도의 삶과 문화에서 종교 및 신화적 사고의 핵심적 내용을 구성하고 있었다. 본래 슈나는 공백, 하늘, 공기, 공간의 의미를 지녔으며 나아가 창조되지 않은 것, 존재하지 않는 것, 형상화되지 않은 것, 사유되지 않은 것, 부재, 없음 등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도 학자들은 슈나를 수의 요소로서 ‘없음’을 표현하는데, 수학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십진법에서 슈나는 그것이 놓인 자릿수에 숫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냈다.
위대한 발명품, 인도-아라비아 숫자
‘없음’을 나타내는 기호는 인도-아라비아 숫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마야 인들은 조개껍데기 모양의 기호를 만들어 0을 표시했고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들은 수판의 빈 공간을 표시하기 위해 비스듬한 모양의 쐐기문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고대의 0 표시는 인도-아라비아 숫자처럼 수로 생각되기보다 단순히 빈자리의 의미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 수학자들은 어떤 계산의 결과로 0이 나오면 비스듬한 모양의 쐐기문자를 쓴 것이 아니라 ‘다 떨어졌다’는 말로 ‘없음’을 표현했다.
0을 포함해 모두 10개의 기호를 사용한 인도의 기수법은 11세기경 아라비아 인들에 의해 스페인에 전해졌다. 1부터 9까지 숫자와 0을 사용하는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럽에서는 반발이 심했다. 유럽 사람들의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성격도 한 몫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해 분수를 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인도의 기수법은 유럽에 널리 퍼지지 못했다.
‘눈금 새기기’에서 출발한 수에 대한 인식은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인도-아라비아 숫자에 이르렀다.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서 이를 사용하면서 수학과 과학은 큰 발전을 이뤘다. 오늘날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으며 거의 유일한 세계 공통의 ‘언어’로 통용되고 있다.
숫자 0의 발견
오늘은 0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0은 무한히 많은 수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열 개의 아라비아 숫자 중 첫째 숫자이다. 0은 모든 수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찾은 수이고, 동시에 늦게 발전된 수이다. 0이란 없다는 개념이고 그러나 0의 위력은 대단하다. 만일 0이란 숫자가 없다면 234와 2340과 2034와 2304를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그런데 고대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조차 0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오래전 미국에서 모처럼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할 때였다. 길 옆 허름한 햄버거 가게를 지나다 ‘햄버거 2,000,000,000,000개 이상 제공’이라는 간판을 보게 됐다. 간판에 새겨진 숫자들은 작은 못으로 고정돼 있었다. ‘얼마나 될까’ 호기심이 생겨 차를 멈추고 그 수를 세기 시작했다. 0은 모두 12개나 되었고 그 수는 자그만치 2조나 됐다. 그때였다. 세찬 바람이 불더니 간판에 새겨져 있는 0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0 하나 없어진 것이 얼마나 많은 햄버거를 없앤 것일까? 궁금해졌다. 2조에서 0이 하나 빠졌으니 햄버거는 2천억 개가 된다. 놀랍게도 그 많은 0가운데 단지 0하나가 사라진 것인데 햄버거는 무려 1조 8천억 개의 햄버거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0이 가진 대단한 위력을 다시금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운 숫자 0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식탁 위에 있는 사과 2개를 모두 먹어버리고 나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처럼 2-2=0이고 이때의 0은 무(無)를 의미한다. 정말 0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0이란 숫자가 발견되기 전(약 1500년 전)에는 200이나 202 같은 숫자를 표현할 때 0의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빠진 자리 값을 표시했다. 숫자 202는 2 2, 2002는 2 2로 썼던 것이다. 하지만 이 체계로는 숫자를 잘못 읽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날 0이란 숫자가 없다면 200을 0없이 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글로 이백이라고 쓰거나, 이집트 문자로 100을 나타내는 그림을 두 번 그리면 될 것이다.
수학 문장으로는 2×5×2×5×2나 199+1, 299-99 등으로 0이 없이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다면 나무가지를 모아 정(正)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숫자가 커질 경우에는 시간이나 종이, 노력 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렇듯 1에서 9까지의 숫자만으로 큰 수를 나타내려면 복잡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결국 0이 있었기 때문에 위치에 의한 수 표현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셈이나 수의 기록도 편리해진 것이다. “없는 것을 숫자로 0이라 하자. 값이 없는 자리를 0으로 하자.” 이처럼 간단하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발상이 수학의 발전을 가져온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0의 발견은 머릿속 에서나 상상했던 수를 현실세계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수학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는 숫자, 또는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숫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양의 정수(자연수)와 음의 정수의 중간적인 자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먼저 52와 502를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숫자의 위치가 자릿수를 의미하는 이런 표기법에서 0은 '비어 있는 자리'를 나타내고 있다.
기원전 바빌로니아 인들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0의 사용을 권장하였고 그리스인들이 이것을 도입하여 지금과 비슷하게 생긴 기호(동그라미)를 정착시킨 것이다. 그러나 0이라는 수에 더욱 깊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너무도 심오하여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뒤에야 인도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힌두의 수학자들은 0이 숫자들을 구별하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유한 수임을 간파한 것이다. 1과 2가 고유한 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0 역시 엄연한 수로서 존재한다. 즉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시킬 수 없었던 무(無)의 개념은 0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적인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0의 등장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사건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0이 갖고 있는 깊은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0을 가리켜 규칙에서 벗어난 수라고 하였다. 나눗셈을 할 때,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누면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난점은 6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결되었다. 인도 수학자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한대라는 개념과 연결시켰고 7세기 학자 브라마굽타는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눈 몫을 무한대의 수학적 정의로 사용하였다.
숫자 0의 비밀
로켓이 발사되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순간, 어머니의 경고가 시작되는 순간. 수는 거꾸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3,2,1,0
여기에는 물건의 개수를 셀 때와는 다른 수가 들어있습니다. 바로 0입니다. 중요한 사건 전에는 늘 0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는 다른 수들이 탄생하고도 수 만년이 지나서야 발명되었습니다.
수의 탄생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고대 유적지. 고고학자 카를 압솔롬은 발굴도중 10cm가량 되는 늑대뼈를 발견합니다. 여기에는 55개의 작은 눈금들이 5개 단위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늑대뼈는 수에 대한 기록입니다.
2만 년 전의 원시인들은 뼈에 눈금을 그어 진짜 사물과 일대일로 비교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사물이 본래보다 부족한지 많은지 알 수 있었죠. 5개 단위로 눈금을 그은 까닭은 손가락이 5개이기 때문입니다. 셈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손가락과 발가락을 사용해야했죠. 그래서 5개 단위로 묶어세기(fiving)는 여러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임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만약에 손가락이 6개였다면 묶어 세기의 단위는 5가 아니라 6이 되었겠죠.
바빌로니아인들이 수를 세는 방법
오늘날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바빌로니아 지역 사람들은 60진법을 사용했습니다. 문명의 발생지이자 고대수학의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는 가장 훌륭한 수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단 2개의 기호로 모든 수를 나타낼 수 있었죠. 그들이 단 2개의 기호로 눈부신 수학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치 값(Placevalue)'과 '플레이스 홀더(placeholder)'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위치 값과 플레이스 홀더만 사용한다면 그 어떤 큰 수라도 나타낼 수 있죠.
‘위치 값’이란 위치에 따라 그 수의 값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203의 2와 23의 2는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다릅니다. 203의 2는 200을 23의 2는 20을 나타내죠. ‘플레이스 홀더’는 203과 23을 구분해주는 0과 같은 기호를 의미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산가지를 놓을 때 2와 3사이에 빈칸을 두거나 획의 방향을 다르게 하는 식으로 203을 표현했고, 바빌로니아에서는 쐐기를 비스듬하게 찍음으로써 2와 3사이에 플레이스 홀더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에서 사용하는 플레이스 홀더는 0이죠.
이때 0은 수(numbers)가 아닙니다. 203과 23을 구별하기 위한 기호(digit)일 뿐이죠.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0이라는 수가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과가 3개 있을 때 우리는 “사과가 3개 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가 없을 때 “사과가 0개 있어”라고 말하기는 힘들죠. 그냥 “사과가 없어”라고 말하면 되니까요. 0은 필요하지 않았고, 0 없이도 인류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수많은 언어로 수를 셌지만 없음을 세는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스의 우주를 파괴한 수 0
고대의 수학자는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숫자 사이에 있는 기호 0’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없음을 나타내는 수 0’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러나 0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0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수였습니다. 그들은 0을 혐오했고 두려워했습니다. 0은 공허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공허와 혼돈에서 우주가 탄생했다고 믿었고, 언젠가는 공허와 혼돈이 우주를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0은 세상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밤하늘에 사로잡힌 그리스 천문학자들은 바빌로니아의 60진법이 천문학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의 60진법을 이용해 하늘을 계산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계산이 끝나면 결과 값을 0이 없는 그리스식의 숫자로 바꾸어버렸습니다. 0은 그 정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받아들인 천문학자들은 더욱 그러했겠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은 무한과 진공을 거부했습니다. 0은 진공, 빈 공간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나타내서도 안 되는 것이었죠. 따라서 그들은 플레이스 홀더로서의 0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거부하는 것은 곧 신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의 수 0
BC4세기, 인도에 알렉산더왕의 군대가 도착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수 체계는 이 침략을 통해 인도에 전해졌습니다. 플레이스 홀더로서의 0도 이때 전해졌죠. 인도인들에게는 무를 거부해야할 이유가 없었으니 인도의 기수법은 곧 바빌로니아 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인도의 수학자들은 바빌로니아아의 60진법을 자신들이 사용하던 10진법으로 변형해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수법을 통해 주판을 사용하지 않고도 빠르게 사칙연산을 할 수 있었죠. 인도의 수학자와 철학자들은 자리기호로서의 0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서 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우주관과 종교 때문에 0을 거부했지만 인도에서는 우주관과 종교 때문에 0을 적극적으로 포용했습니다.
무(無)는 힌두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입니다. 힌두교의 우주는 창조와 파괴가 한데 뒤섞여 무한히 펼쳐집니다. 그 우주는 무에서 탄생했습니다. 인도인들은 우주의 근원인 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힌두교 최고의 신이자, 우주를 창조한 시바(Shiva)는 궁극의 무였죠. 인도인들은 신과 가까워지기 위해 무를 추구했습니다.
"1/0에 어떤 수를 더하든 빼든 아무런 변화도 없다. 영원불멸한 무한한 신에게 어떤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스카라 (BhaskaraAD1114-1185)
악마라 불린 교황
프랑스 오리야크 수도원의 학생, 제르베르(946-1003)는 스페인에서 수학과 아라비아 학문을 배웠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번역가들은 아라비아 서적을 번역하는데 열을 올렸는데, 그 중에는 인도-아라비아 숫자에 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제르베르는 이 새로운 숫자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훗날 교황이 되어 실베스테르 2세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죠.
중세 서양에서는 기독교 수도승만이 수학을 공부했습니다. 기도 시간과 교회를 운영할 돈을 관리하기 위해서였죠. 그들은 이를 위해 주판(셈판 countingboard)을 사용했습니다. 제르베르는 아라비아 수를 이용해 주판을 개량합니다. 우선 사용하는 돌의 개수를 줄이기 위해 아라비아수가 쓰인 돌을 이용했습니다. 제르베르의 주판 계산법은 창의적이고 유용했지만 로마숫자와 로마의 수 체계에 익숙한 수도승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죠. 제르베르의 주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이는 제르베르 자신이었습니다.
제르베르는 주판을 이용해 매우 빠른 계산을 선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악마와 계약했다는 풍설에 평생을 시달립니다. 1648년 교황청에서는 악마들이 아직도 제르베르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제르베르가 0의 사용을 주장했다면 정말로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제르베르의 인도-아라비아 수에는 0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상인의 결정, 주판파 VS 산술파
15세기 이탈리아 상인들은 오늘날의 부모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식의 교육문제입니다. 자식들을 훌륭한 상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수학교육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당시에는 주판계산과 인도-아라비아 수를 이용한 필산계산이 공존했습니다. 주판을 이용하는 이들은 주로 성직자들이었고, 필산을 이용하는 이들은 상인과 은행가였죠. 이들은 각각 주판가(abacist)와 필산가(algorist)로 불렸습니다. 주판계산을 가르치는 학교와 필산계산을 가르치는 학교도 따로 있었습니다. 둘은 경쟁관계였죠.
주판파와 필산파는 누구의 계산이 우월한지 가리기 위한 대결을 벌이고는 했습니다. 많은 경우 주판파가 승리했죠. 주판을 놓는 법이 필산보다 어렵긴 하지만, 숙달된 주판가는 수를 매우 빠르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듣자마자 답을 말하기도 했죠.
그러나 역사는 필산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필산은 무리수, 소수점 계산에 강점을 보입니다. 주판보다 정확하고 빠른 계산이 가능했죠. 르네상스의 수학은 점점 복잡한 계산을 요구했기에 수학자들은 주판을 버리고 새로운 숫자를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필산이 살아남은 또 다른 이유는 쉽기 때문입니다. 필산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1,2,3,4,5,6,7,8,9 그리고 0. 이 숫자들을 이용하면 누구나 사칙연산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계산을 위해 주판가의 대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심오하고도 중대한 개념은 너무 단순해 보여 그것의 진정한 장점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계산을 쉽게 해주는 바로 그 단순성과 편리함 덕분에 산술은 가장 탁월하고 유용한 발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Lapla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