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루
눈과 귀가 사방에 열려 외
차들은 도로에 갇혀 꼼짝을 않는다
전화벨은 수없이 노래를 부르다 잠잠해진다
잠잠한 시간이 길면 초조한 마음은 경적을 울리고
답가라도 하듯 차들은 여기저기서 빵빵거린다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린다
떨린다는 건 징조다
희뿌연 병동에서
면회를 기다리다 벽에 귀를 걸어둔 당신은 눈을 감는다
벽속에 쟁여 둔 슬픔이 얼룩져 박힐 때
하늘에 구멍은 숭숭 뚫리고
검은 밥상으로 아기새, 날아든다
새가 운다
새가 사람 목소리로 운다
우는 소리에 눈과 귀가 사방에 열린 당신은 백합이었다가 폭우였다가 뼈가 앙상한 반가사유상으로 앉아
올망졸망
바둑돌처럼 앉아 코를 훌쩍이며 우는
미우새
등짝을 후리치며
손톱 달을 꺼내 국수를 민다
손은 깊고
손은 넓어
먼 곳의 사람들도 엄마손은 약손
손을 따라 밤을 휘적거리면
뭉그러진 엄마
속을 휘젓는 것 같아*
가늘고 긴 2월 밤이 툭툭 끊긴다
*신용목 「국자」에서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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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밤이 불타고 있다. 비명을 지르는 순간,
이 도시에서 당신은 사라질지 몰라
까맣게 재가 된 손바닥에 눈이 쌓입니다
눈은 차갑고
눈은 미끄럽고
눈은 날카로워 겨울입니다
심장이 눌어붙어 고개 숙인 사람들
머리 위로 눈이 흩날립니다
거미줄을 타고 오를 수도 없는 바람의 집
한밤을 우리는 잊어야 합니다
눈이 밝아져
귀가 밝아져
비명으로 간 사람, 목소리를 실어 나르면 머리에 꽃을 심어야 할지 몰라
눈을 뭉칩니다
눈을 굴립니다
심야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까지
눈은 차갑고
눈은 뽀송해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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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김성순)|2010년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구지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오늘의 판타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