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의 석양: I. 물.돌.바람의 노래
최병효
I. 물, 돌, 바람의 노래
2008.5, 이십 수년간의 해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국내에 영구 정착하였는데,
마침 그 무렵 은퇴 후 자전거로 전국을 돌다가 제주도 풍광에 반해 서귀포에 정착한 “외돌개 게스트하우스” 촌장 덕분에
2010년경 부터 거의 해마다 제주도를 찾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자전거로 5박6일간 제주도 환상環狀자전거 도로를 일주하였기에
이번 9월 중순에는 오랜만에 한라산에도 올라갈 겸 와인 다섯 병만 짊어진 채 빈 몸으로 갔다.
9.9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애월읍 중산간 지역에 넓게 자리잡은 웅지승마센타(8만평)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승마 프로그람을 운영중인 지인의 호의로 여러 마리의 말을 잠깐씩 타 볼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매년 몇 번씩이라도 말을 타다가 지난 10여 년 간은 겁이 나서 삼가 했었는데
그간 스키와 바이킹으로 균형감각도 어느 정도 단련된 지라 용기를 내 본 것이다.
네팔, 영국, 폴란드, 뉴질랜드에 살 때는 그룹을 지어 숲과 강과 들판과 산 등성으로 자주 hacking(말을 빌려 야외로 나감)을 즐겼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겸임대사를 맡고 있던 아이슬랜드에서 한 겨울 눈 속에 Fjord라고도 불리는
키는 작으나 강인한 Viking horse를 타 본 것이었다.
walk, trot, canter, gallop의 4단계 속도에 추가하여 trot과 canter의 중간에
네발이 모두 땅에 닿는 느낌을 주는 특이한 발걸음gait이 Fjord종의 특징으로 고급 세단을 탄 느낌이었다.
제주 말도 약간의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웅지승마장에서 21.9.9
그날 승마 후에는 오랜 만에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어 점심 후 한림읍 남쪽 조용하고 자그마한 판포 해변에서
수영을 해 보았다. 에메랄드 색 바닷물 아래로 하얀 모래가 투명하게 비쳐 보여 snorkling장비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았다. 20여 년 전 하와이 섬의 Hanauma Bay에서 처음 snorkling을 해봤는데
완만한 모래 사장이 이어지는 바다 속이 물 반 고기 반이었다. 헤엄치다가 커다란 거북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그 후 하와이에 다시 갈 기회가 있어 다시 그곳을 찾아 물고기들과 노는 재미를 가졌다.
태국에 살 때는 Phuket의 Phi Phi섬에서 배를 타고 나가 snorkling을 했는데
깊고 투명한 물 속에서 여러 종류의 수초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좀 더 깊은 곳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수초들을 볼 수 있겠지만 이제 그러한 기회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게도 많은 것을 체념하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이 들어 하는 취미생활을 노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가 따라 주지 않으니
여러 가지를 모두 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저녁에는 한라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Napa의 Clos du Val과 흙돼지 바베큐를 즐기니
가히 즐거운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협재 아래, 한경면 판포 해변 21.9.9
Hanauma Bay, Hawaii
9.10에는 오전에는 비가 내렸다.
당초 야외 승마를 생각하였으나 날씨 관계로 실내 arena에서 잠시 말 등에 오른 후,
재일교포 이타미 준 (伊丹潤 1937-2011, 한국명 庾東龍 유동룡) 이 2001년 설계했다는 포도호텔에 가서 점심을 하였다.
객실이 26개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호텔이나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도 좋고
자연 속에 묻힌 듯 자연의 일부가 된 단층 건물이 고상하였다.
포도호텔과 핀크스 골프코스 클럽하우스(1998), 수 백 평씩의 정원을 가진 수 십여 채의 고급 주택,
수.풍.석水風石과 두 손 미술관 등 4개의 미술관(2006), 방주 교회(2009), 그리고 온천탕과 식당 등을 포함한
아름다운 건물을 아우르는 Biotopia단지를 이타미 준이 총괄 설계했다고 해서 수 십 만평에 달하는 그곳을 둘러 보았다.
이타미 준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것이다.” 라며
장소와 사람이 교감하는 풍토건축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는 “이타미 준 뮤지엄”이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 그의 딸인 건축가 유이화)에 의해 착공되어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내년 3월 준공된다니 기대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지인 집에서 St.Emillion과 바베큐를 즐기니 역시 좋은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포도호텔 21.9.10
Bitopia정원 21.9.10
물 미술관에서- Bitopia, 21.9.10
9.11에는 아침 일찍 영실로 갔다. 한라산 분화구 남쪽의 웅장하며 기묘한 크라운을 볼 수 있는
광활한 고원지대인 1,750m의 윗세오름을 거쳐 돈내코로 내려가는 14km의 등산로를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쯤 돈내코 등산코스가 처음 개방된 해에 돈내코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내려갔었는데
이제 그 역순으로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8시에 영실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홀로 산길에 나섰다.
평일이어서 인지 등산객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1,250m에서 시작되는 코스인데
윗세오름까지는 6km정도를 완만히 오르고 쉬어가며 3시간 정도에 올랐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슬픈 전설이 깃든 영실 오른쪽 산의 오백장군 바위는 매번 볼 때마다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靈室)’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여기에는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五百羅漢) 또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부른다. 이곳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지독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죽 맛이 여느 때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맨 막내 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막내는 어머니가 희생된 죽을 먹어 치운 형들과는 더 이상 못살겠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외쳐 부르며,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 전설이다.)최병효
I. 물, 돌, 바람의 노래
2008.5, 이십 수년간의 해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국내에 영구 정착하였는데,
마침 그 무렵 은퇴 후 자전거로 전국을 돌다가 제주도 풍광에 반해 서귀포에 정착한 “외돌개 게스트하우스” 촌장 덕분에
2010년경 부터 거의 해마다 제주도를 찾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자전거로 5박6일간 제주도 환상環狀자전거 도로를 일주하였기에
이번 9월 중순에는 오랜만에 한라산에도 올라갈 겸 와인 다섯 병만 짊어진 채 빈 몸으로 갔다.
9.9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애월읍 중산간 지역에 넓게 자리잡은 웅지승마센타(8만평)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승마 프로그람을 운영중인 지인의 호의로 여러 마리의 말을 잠깐씩 타 볼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매년 몇 번씩이라도 말을 타다가 지난 10여 년 간은 겁이 나서 삼가 했었는데
그간 스키와 바이킹으로 균형감각도 어느 정도 단련된 지라 용기를 내 본 것이다.
네팔, 영국, 폴란드, 뉴질랜드에 살 때는 그룹을 지어 숲과 강과 들판과 산 등성으로 자주 hacking(말을 빌려 야외로 나감)을 즐겼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겸임대사를 맡고 있던 아이슬랜드에서 한 겨울 눈 속에 Fjord라고도 불리는
키는 작으나 강인한 Viking horse를 타 본 것이었다.
walk, trot, canter, gallop의 4단계 속도에 추가하여 trot과 canter의 중간에
네발이 모두 땅에 닿는 느낌을 주는 특이한 발걸음gait이 Fjord종의 특징으로 고급 세단을 탄 느낌이었다.
제주 말도 약간의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웅지승마장에서 21.9.9
그날 승마 후에는 오랜 만에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어 점심 후 한림읍 남쪽 조용하고 자그마한 판포 해변에서
수영을 해 보았다. 에메랄드 색 바닷물 아래로 하얀 모래가 투명하게 비쳐 보여 snorkling장비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았다. 20여 년 전 하와이 섬의 Hanauma Bay에서 처음 snorkling을 해봤는데
완만한 모래 사장이 이어지는 바다 속이 물 반 고기 반이었다. 헤엄치다가 커다란 거북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그 후 하와이에 다시 갈 기회가 있어 다시 그곳을 찾아 물고기들과 노는 재미를 가졌다.
태국에 살 때는 Phuket의 Phi Phi섬에서 배를 타고 나가 snorkling을 했는데
깊고 투명한 물 속에서 여러 종류의 수초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좀 더 깊은 곳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수초들을 볼 수 있겠지만 이제 그러한 기회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게도 많은 것을 체념하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이 들어 하는 취미생활을 노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가 따라 주지 않으니
여러 가지를 모두 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저녁에는 한라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Napa의 Clos du Val과 흙돼지 바베큐를 즐기니
가히 즐거운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협재 아래, 한경면 판포 해변 21.9.9
Hanauma Bay, Hawaii
9.10에는 오전에는 비가 내렸다.
당초 야외 승마를 생각하였으나 날씨 관계로 실내 arena에서 잠시 말 등에 오른 후,
재일교포 이타미 준 (伊丹潤 1937-2011, 한국명 庾東龍 유동룡) 이 2001년 설계했다는 포도호텔에 가서 점심을 하였다.
객실이 26개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호텔이나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도 좋고
자연 속에 묻힌 듯 자연의 일부가 된 단층 건물이 고상하였다.
포도호텔과 핀크스 골프코스 클럽하우스(1998), 수 백 평씩의 정원을 가진 수 십여 채의 고급 주택,
수.풍.석水風石과 두 손 미술관 등 4개의 미술관(2006), 방주 교회(2009), 그리고 온천탕과 식당 등을 포함한
아름다운 건물을 아우르는 Biotopia단지를 이타미 준이 총괄 설계했다고 해서 수 십 만평에 달하는 그곳을 둘러 보았다.
이타미 준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것이다.” 라며
장소와 사람이 교감하는 풍토건축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는 “이타미 준 뮤지엄”이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 그의 딸인 건축가 유이화)에 의해 착공되어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내년 3월 준공된다니 기대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지인 집에서 St.Emillion과 바베큐를 즐기니 역시 좋은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포도호텔 21.9.10
Bitopia정원 21.9.10
물 미술관에서- Bitopia, 21.9.10
9.11에는 아침 일찍 영실로 갔다. 한라산 분화구 남쪽의 웅장하며 기묘한 크라운을 볼 수 있는
광활한 고원지대인 1,750m의 윗세오름을 거쳐 돈내코로 내려가는 14km의 등산로를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쯤 돈내코 등산코스가 처음 개방된 해에 돈내코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내려갔었는데
이제 그 역순으로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8시에 영실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홀로 산길에 나섰다.
평일이어서 인지 등산객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1,250m에서 시작되는 코스인데
윗세오름까지는 6km정도를 완만히 오르고 쉬어가며 3시간 정도에 올랐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슬픈 전설이 깃든 영실 오른쪽 산의 오백장군 바위는 매번 볼 때마다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靈室)’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여기에는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五百羅漢) 또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부른다. 이곳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지독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죽 맛이 여느 때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맨 막내 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막내는 어머니가 희생된 죽을 먹어 치운 형들과는 더 이상 못살겠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외쳐 부르며,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 전설이다.)
I. 물, 돌, 바람의 노래
2008.5, 이십 수년간의 해외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국내에 영구 정착하였는데,
마침 그 무렵 은퇴 후 자전거로 전국을 돌다가 제주도 풍광에 반해 서귀포에 정착한 “외돌개 게스트하우스” 촌장 덕분에
2010년경 부터 거의 해마다 제주도를 찾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자전거로 5박6일간 제주도 환상環狀자전거 도로를 일주하였기에
이번 9월 중순에는 오랜만에 한라산에도 올라갈 겸 와인 다섯 병만 짊어진 채 빈 몸으로 갔다.
9.9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바로 애월읍 중산간 지역에 넓게 자리잡은 웅지승마센타(8만평)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승마 프로그람을 운영중인 지인의 호의로 여러 마리의 말을 잠깐씩 타 볼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매년 몇 번씩이라도 말을 타다가 지난 10여 년 간은 겁이 나서 삼가 했었는데
그간 스키와 바이킹으로 균형감각도 어느 정도 단련된 지라 용기를 내 본 것이다.
네팔, 영국, 폴란드, 뉴질랜드에 살 때는 그룹을 지어 숲과 강과 들판과 산 등성으로 자주 hacking(말을 빌려 야외로 나감)을 즐겼다.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겸임대사를 맡고 있던 아이슬랜드에서 한 겨울 눈 속에 Fjord라고도 불리는
키는 작으나 강인한 Viking horse를 타 본 것이었다.
walk, trot, canter, gallop의 4단계 속도에 추가하여 trot과 canter의 중간에
네발이 모두 땅에 닿는 느낌을 주는 특이한 발걸음gait이 Fjord종의 특징으로 고급 세단을 탄 느낌이었다.
제주 말도 약간의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짧은 시간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웅지승마장에서 21.9.9
그날 승마 후에는 오랜 만에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어 점심 후 한림읍 남쪽 조용하고 자그마한 판포 해변에서
수영을 해 보았다. 에메랄드 색 바닷물 아래로 하얀 모래가 투명하게 비쳐 보여 snorkling장비가 있다면
더욱 즐거울 것 같았다. 20여 년 전 하와이 섬의 Hanauma Bay에서 처음 snorkling을 해봤는데
완만한 모래 사장이 이어지는 바다 속이 물 반 고기 반이었다. 헤엄치다가 커다란 거북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그 후 하와이에 다시 갈 기회가 있어 다시 그곳을 찾아 물고기들과 노는 재미를 가졌다.
태국에 살 때는 Phuket의 Phi Phi섬에서 배를 타고 나가 snorkling을 했는데
깊고 투명한 물 속에서 여러 종류의 수초와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좀 더 깊은 곳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수초들을 볼 수 있겠지만 이제 그러한 기회를 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게도 많은 것을 체념하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에 집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나이 들어 하는 취미생활을 노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신체가 따라 주지 않으니
여러 가지를 모두 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저녁에는 한라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Napa의 Clos du Val과 흙돼지 바베큐를 즐기니
가히 즐거운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협재 아래, 한경면 판포 해변 21.9.9
Hanauma Bay, Hawaii
9.10에는 오전에는 비가 내렸다.
당초 야외 승마를 생각하였으나 날씨 관계로 실내 arena에서 잠시 말 등에 오른 후,
재일교포 이타미 준 (伊丹潤 1937-2011, 한국명 庾東龍 유동룡) 이 2001년 설계했다는 포도호텔에 가서 점심을 하였다.
객실이 26개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호텔이나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도 좋고
자연 속에 묻힌 듯 자연의 일부가 된 단층 건물이 고상하였다.
포도호텔과 핀크스 골프코스 클럽하우스(1998), 수 백 평씩의 정원을 가진 수 십여 채의 고급 주택,
수.풍.석水風石과 두 손 미술관 등 4개의 미술관(2006), 방주 교회(2009), 그리고 온천탕과 식당 등을 포함한
아름다운 건물을 아우르는 Biotopia단지를 이타미 준이 총괄 설계했다고 해서 수 십 만평에 달하는 그곳을 둘러 보았다.
이타미 준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것이다.” 라며
장소와 사람이 교감하는 풍토건축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는 “이타미 준 뮤지엄”이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 그의 딸인 건축가 유이화)에 의해 착공되어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내년 3월 준공된다니 기대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지인 집에서 St.Emillion과 바베큐를 즐기니 역시 좋은 하루였다고 할 만 하였다.
포도호텔 21.9.10
Bitopia정원 21.9.10
물 미술관에서- Bitopia, 21.9.10
9.11에는 아침 일찍 영실로 갔다. 한라산 분화구 남쪽의 웅장하며 기묘한 크라운을 볼 수 있는
광활한 고원지대인 1,750m의 윗세오름을 거쳐 돈내코로 내려가는 14km의 등산로를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쯤 돈내코 등산코스가 처음 개방된 해에 돈내코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내려갔었는데
이제 그 역순으로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8시에 영실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홀로 산길에 나섰다.
평일이어서 인지 등산객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1,250m에서 시작되는 코스인데
윗세오름까지는 6km정도를 완만히 오르고 쉬어가며 3시간 정도에 올랐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의 슬픈 전설이 깃든 영실 오른쪽 산의 오백장군 바위는 매번 볼 때마다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靈室)’이라는 명승지가 있다. 여기에는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五百羅漢) 또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부른다. 이곳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그런데 지독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죽 맛이 여느 때보다 훨씬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맨 막내 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막내는 어머니가 희생된 죽을 먹어 치운 형들과는 더 이상 못살겠다며, 어머니를 애타게 외쳐 부르며,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부르며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 전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