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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 웃으려면...
231015낮 (눅6:20-21)
<20)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아멘
어떤 선생님이 가족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부모의 이름을 묻고 있었습니다. 너의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니? 우리 아버지는 진가진입니다.
선생님은 부모님의 이름을 말할 때는 자를 붙여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 말하라고 했습니다. 예, 아버지의 성함은? 진짜 가짜 진짜입니다.
국수와 칼국수가 싸웠는데, 국수가 엄청나게 얻어 터졌습니다. 국수가 찔찔 짜면서 엄마한테 일렀습니다. 국수엄마가 화가 나서 칼국수 잡으러 갔는데 저기 앞에서 라면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국수엄마가 라면의 멱살을 잡으면서 하는 말 "니 파마하면 내 모를 줄 알았나 이 칼국수야"
웃으시라고 유머로 시작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과 화에 대한 말씀을 선포하시는 내용 중의 일부분입니다. 20-26절까지 예수님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과 화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그 중에 20절과 21절의 말씀만 본문으로 보았습니다.
21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21)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지금 울고 있다할지라도 복 있는 자는 웃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복은 웃는 것입니다.
<우는 자>(마5:4, ‘애통하는 자’)는 <호이 클라이온테스/οι κλαιοντες>인데, 현재분사로 사용되어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나와야 할 뿐 아니라 주 앞에서 죄인인 것을 통회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웃게 해주실 것이고, 위로 받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마5;4,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여기에 웃음은 영적인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리는 것 중에 하나가 웃음입니다. 아이들은 잘 울고 잘 웃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커가면서 웃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의 주름만 자꾸 늘어갑니다. 낙(樂)이 없습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사님 한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요즘 무슨 낙(樂)으로 지내세요? 그래서 제가 요즘 무슨 낙이 있겠어요... 몸이 이렇게 아픈데....(안타까운 표정) 그러면서 제가 한 가지 즐거움이 있다면 설교 준비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지요...요즘은 그래요...목회자에게 설교준비는 늘 부담이지만, 진심이었습니다. 몸은 괴롭지만, 요나서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시는데...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느꼈습니다....이런 것이 영적인 기쁨일 것입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아마도 목사님이 그러시면 설교 듣는 성도들도 그럴 거 같아요..그러더라구요... 아멘이죠^^
사람은 웃을 때 행복해집니다. 인상을 쓰면서 짜증을 내는 사람과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불평과 짜증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분노를 유발하지만 감사와 웃음은 마음을 즐겁게 만듭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많이 웃고, 마음도 더 넓고 깊어져야하고, 더 많이 베풀고 살아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나이가 들수록 웃음도 덜하고, 마음도 더 좁아져서 조그만 일에도 섭섭함이 더하고, 더 인색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인생의 파고가 높고,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인생이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연륜이 더해질수록 더욱 웃고, 마음도 더 넓어지고 깊어져서 더 많이 이해하고, 포용할줄 알고, 더 많이 베풀 줄 아는 모습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웃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웃을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빌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해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항상 웃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기고, 웃으면 건강해 지고, 웃으면 행복해지고, 웃으면 전도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여행하다가 주일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가기 위해 경찰관에게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경찰관은 소상하게 교회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경찰관이 가르쳐 준 대로 차를 운전해 가다 보니 소개받은 교회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경찰관이 왜 가까운 교회를 소개해 주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어쨌든 소개해 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경찰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왜 가까이에 교회도 있는데 멀리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셨어요?” 하고 물으니 그 경찰관은 “사실 저도 그 교회에 대해 잘 모릅니다만 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다른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보다 더 기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것만 해도 이렇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인상을 펴세요. 어디서 싸우다 오신 분처럼 째려보지 마시고 미소를 지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은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시더라구요. 교회 와서 싸우는 사람, 교회까지 와서 인상 쓰는 사람이 제일 바보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미소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전도가 됩니다. 우거지상을 하고 늘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지금 애통해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울고 계십니까?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받으시고, 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눈물이 웃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웃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웃으려면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벧전5:7절입니다.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웃으려면 염려와 근심과 걱정거리를 주님께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역성경->맡겨 버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듯 버리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상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이 많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미소를 잃게 만들고 건강도 병들게 만들 뿐입니다.
마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가는 염려와 근심걱정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얼굴이 근심으로 굳어진 것보다 미소로 환한 얼굴을 원하십니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웃읍시다.
2. 웃으려면 고난 중에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욥1:20-22절입니다.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의 고통과 시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열 명의 자녀가 한순간에 다 죽었습니다. 한 명 죽은 것도 고통이 엄청날 텐데, 10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다 잃었으니 그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엄청난 재산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이었지만 망하려고 하니깐 한 순간에 망했습니다. 몸은 피부병으로 인해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육신적인 고통이 찾아 왔고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는 말을 하고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욥은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했습니다.
또한 욥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욥23:9-10절입니다.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말씀은 지금은 내가 왜 이런 시련을 당하는 지 알 수 없고, 내가 그렇게 몸부림치고 기도를 해도 주님께서는 지금은 아무런 응답을 해주시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 같은 축복의 삶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욥이 고난을 잘 이기고 시험을 잘 마쳤을 때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은 예전에 누렸던 복보다 배가 더 컸습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는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남편 욥에게 저주를 퍼붓고 집을 나갔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사모님은 암으로 고생을 많이 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병문안 온 권사님 앞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가 왜 암에 걸리느냐?” 권사님이 이런 말을 듣고는 실족할 뻔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도 말 한마디라도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 한마디가 은혜가 되기도 하고 시험에 들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죽을 때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나고, 웃으며 죽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기껏 평생 목회하고 죽을 때 죽음이 두려워 이를 갈고, 얼굴이 시커멓게 인상 쓰며 죽는다면 평생 목회가 도루묵 되는 것이며, 내 죽음을 보는 이들에게 무슨 은혜가 되고 전도가 되겠습니까? 죽을 때도 평안하고 웃으며 천사처럼 얼굴이 빛나야 보는 이들이 “아, 천국이 있는가보다. 예수 믿으면 죽을 때도 저렇게 행복하구나, 나도 예수 믿어야 겠구나” 생각하지 않을까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도, 죽음을 통해서도 은혜를 끼쳐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욥처럼, 고난 가운데서도 예배하고, 찬송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처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라고 외치며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웃으려면 남이 잘 못 될 때 울어야 합니다.
겔25:2-8절입니다.
<2-3)인자야 암몬 족속을 향하여 그들을 쳐서 예언하라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를 더럽힐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무할 때에 네가 그것을 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4)그러므로 내가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붙이리니 그들이 네 가운데 진을 치며 네 가운데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실과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찌라 5)내가 랍바로 약대의 우리를 만들며 암몬 족속의 땅으로 양무리의 눕는 곳을 삼은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6)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며 마음을 다하여 멸시하며 즐거워하였나니 7)그런즉 내가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붙여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 끊어 버리며 너를 열국 중에서 패망케 하여 멸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 말씀은 암몬족속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압,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 등 계속 하나님께서 심판하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나라들을 멸망시키는 이유 중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할 때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시109:17-18절 볼까요.
<17)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18)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남을 저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하되 물같이 들어오고, 뼈 속까지 그 저주가 스며든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오는 복도 달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5:43-44절입니다.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속에 원수를 두고 저주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원수를 두고 저주하는 사람은 웃을 수가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원망 심으면 원망을 낳고, 저주를 심으면 저주를 낳고, 웃음을 심으면 웃음을 거둡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웃으려면, 남이 잘못 될 때 손뼉치고, 웃고, 비난하는 자가 아니라 남이 잘 못될 때, 안타까워하고, 울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에게 웃음을 주실 것입니다.
롬12:15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990년 영화, 닥터 코르자크의 한 장면>
1942년 8월 5일. 나치가 폴란드의 작은 마을의 고아원을 찾아옵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들은 고함쳤지요. 유대인 아이들을 끌어다가 가스실로 데려가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이 아이들도 독일 나찌가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넣어 죽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코르자크 선생님이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선생님이 같이 있으면 안 무섭지?”, “네 선생님이 같이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코르자크 선생님은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트럭에 올라탑니다. 나찌가 당신은 유대인도 아닌데 왜 가려고 하느냐? 말립니다. 이때 코르자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학생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어떻게 이 아이들만 죽음으로 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코르자크 선생님은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가 유대인 어린이 190명과 함께 가스실에 들어가 그 아이들이 죽음당할 때 두려워하지 않게 그들을 끌어안고 함께 죽었습니다.
나찌에 학살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예루살렘 야드바쉠 박물관에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두 팔로 껴안고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에게 하나님은 웃음을 주실 것입니다.
4. 웃으려면 듣고 말하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잠25:11절과 18:20절을 보겠습니다.
<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우리 속담에...“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들어라”말이 있죠.
우리에게 기쁨이 사라지고 웃음이 사라지는 이유는 잘못된 말을 들으면 그렇게 됩니다. 두루두루 다니면서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을 들으면 마음에 괴로움이 찾아오고 웃음이 사라집니다. 마귀가 노리는 방법입니다.
깡패나 귀신의 말을 듣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에 잘 따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따르면 따를수록 불행해지고 빨리 망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마귀의 속삭임에 더 귀 기울이면 결과는 기쁨은 사라지고, 불행과 파멸뿐입니다.
듣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에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새가 우리 머리위로 날아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새가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얘기들, 안 좋은 얘기들, 잘못된 말들을 듣지 않는 것이 제일 좋지만, 들었으면 그것이 내 마음에 자리 잡기 전에 바로 날려 버려야 합니다. 더러운 곳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안함이 없습니다.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누구의 말을 듣느냐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좋은 말만, 좋은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곧 잘 말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김창옥씨가 강연을 하는데, 잠깐 들어보니...남자들이 살면서 부인이 제일 싫을 때가 말을 해도 꼭 기분 나쁘게 할 때래요.. 그럴 때는 같이 살기 싫다네요...
행복디자이너 최윤희라는 사람이 “웃고 살면 인생 대박이지만, 징징 짜면 인생 쪽박이예요”라는 말을 했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다음 강연 장소로 급히 이동하기 위해 강연 전에 미리 콜택시를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강연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택시기사는 기다리는 동안 짜증이 쌓여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자는 식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잔뜩 화가 난 기사 아저씨에게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와 날린 한마디 “내 평생 나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준 남자는 기사님이 처음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화를 내려던 기사 아저씬 오히려 붕뜬 기분이 되었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휘바람까지 불며 그녀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답니다. 사람은 진심으로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마음을 즐겁게 해줍니다. 우리를 웃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웃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웃으려면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남이 잘 못 될 때 박수치는 자가 아니라 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듣고 말하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 말씀대로 여러분의 삶이 웃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웃음이 있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