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J.D. 셀린저 / 공경희 / 민음사
아들이 물어본다.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2015년 2월 남긴 독서 노트의 마지막 줄은 이렇게 적혀있다.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 내내 그토록 좋아했던 과목, 화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플루트를 전공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건네기도 했고 본인도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비춘 적이 있기는 하지만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전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가 하셨던 방법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버지의 방식을 소화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가끔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 먼저다. 그 발판 위에서 좋아하는 것을 해라.
이런 식의 말을 간혹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온갖 세상의 어려움을 뚫고 살아온 경험으로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필요한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란 나는 나의 버전으로 아버지의 말을 전하곤 했었다.
공대에서 화학을 기반으로 한 전공으로 선택한 후,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나 보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이들의 생활에 간섭(?)을 꽤 많이 했다. 적어도 나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첫 입학식과 최종학교 졸업식에만 함께 하시겠다는 각오(?)를 하신 것처럼 자식들의 학교생활에는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던 부모님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그러나 지금은 안다.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이곳의 학교생활이 궁금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선택하는 것과 성적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이 그러셨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제발 그냥 졸업장 따는 수준으로 공부할 수는 없느냐고. 공부가 힘들다고, 재미가 없다고, 지난 학기도 노력해 보았다고. 한국인의 학벌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며 협박도 해보았다. 하지 않아야 할 말도 했다. 시간을 두고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점수에서 가장 안전한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고, 2학년 2학기에 권총을 두 개 차고 너무나 당연하게 자랑하듯 입대했으며, 회사 설명회에 다녀왔다는 친구가 건네준 입사지원서를 받아 들고 한 번 적어본 지원서로 직장이 정해졌다. 반면에 동생은 나름 인생의 굴곡이 있다. 그 동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형은 철이를 이해할 수 없어."
'절대'라는 말을 함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사실, 나는 세상에 나를 맞춰보고 그 속에 나를 밀어 넣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뿐이다. 그냥 로봇 팔에 나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적당한 곳에 나는 나를 놓아버렸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상관없다. 그냥 내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으니까.
이곳으로 이사 와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살펴보면서 나도 여기서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니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적어도 그때 이 세계를 표면적으로 살펴볼 때 내가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정해진 세상은 아닌 것 같아서 좋게 보였다. 그러나 내 아이는 결국 정해진 길로 몰렸고 그것이 싫다는 의견을 여러 각도로 알렸음에도 나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옆집 아이가 그 길을 선택할 때는 멋있어 보이겠지만 내 아이의 선택에는 가슴 깊이 동의할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 아이도 우리도 인정한다. 적어도 머리로는 그렇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혹시 여친이 생기고 결혼을 고려할 때 상대가 대학 졸업장을 원하지는 않을지. 상대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부모님이 그것을 원하면 어쩌지? 라는 염려를 떨치지는 못하고 있다. 가정을 꾸미더라도 그게 뭐라고, 아들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아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그 모든 것이 아들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그게 마음이 걸린다.
아이들에게 간혹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꼭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아니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볼 때 참 좋다. 아이의 행동이 튈 때 아이에게 부럽다고 말한다. 아이는 웃는다.
"참 좋다."
이제 홀든에게 조금 가까이 갔다고 할 수 있을까. 홀든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 그냥 내 기준으로 해석해 볼 수 있으나 그건 내 해석일 뿐, 바른 해는 아닐 것이다. 홀든의 입장에서도 자기 행동의 원인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내가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는지. 지금, 이 나이에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홀든에게 할 수 있는 충고란 당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충고라니! 내가 했던 행동들도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고 나서도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정신과 의사가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의사도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그 길이라는 것도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길이라기보다는 학교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나 자세를 말하는 것이겠다.
결국 참 조력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은 듣는 것이다. 듣지 않는 자는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부모라고 자식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들어 주는 것, 내면의 세계에서 홀든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들을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가 어떤 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곳이 그에게 맞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지, 그가 뭔가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 행동해서 나타난 결과는 아닐 것이다.
듣고 돌아보자 나를, 그리고 내가 속한 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