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단편으로 쓴건디...그때 동호회 인간들 가지고 팬픽..까진 아니지만, 그들의 실제 성격(?)을 약간 인용해서 쓴 거...인데...
뭐...재미없다면...백철보고 지우라고 하던가...뜻 대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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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슬픈 사랑의 조각
오늘도 날씨가 흐리다. 비도 오지 않으면서 흐린 게 벌써 며칠 째다. 어딘가에서 슬픈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이다. 비가 오는 날, 그리고 이렇게 흐린날은 감상에 잠기기 좋은 날이다. 특히 우울했던, 슬펐던 기억들이...어둠이 빛을 삼키려 하는 이런 때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주점에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주점이 무척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건가...아니, 한 명 있다.
항상 거칠고 상상도 못하는 허를 찌르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래서 동방의 여자들이 다 저런가 하는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에즈마가 지금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알코올 98도 최강의 중국술, 빼갈. 그 독한 맛은 한 술 하는 시엔도 몇 잔 못 마시고 쓰러진 경험이 있는, 무서운 술이다. 그런 걸 지금 반병 정도 마시고 잇다. 이번엔 돈 내고 가겠지? 솔직히 말해서, 동방무사들은 이상하게 술값을 외상으로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판매량 중의 1/4이 외상이고, 그 중의 70% 정도가 바로 저들의 외상이다. 하..난 돈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쉽지 않다.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에즈마님, 또 술이에여?"
역시 유리니엘 밖에 없다. 종업원은 유리니엘 하나니까..그녀는 기사이다. 왕실 기사단에 속해있으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서 이런 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텐데. 그런 걸 보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못하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해내는 걸 보면 무척 대견스럽다. 나이도 어린 편이지만 가끔씩 던지는 말 한마디에 뼈가 있는 그녀이다. 그래도 평소엔 자주 웃는 편이고, 무척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끄윽!(헤롱헤롱...)"
결국 대꾸도 못하고 그대로 탁자를 베개삼아 자버렸다. 빼갈이 세긴 센가...
"어떻하죠, 미스트님?"
"...조금 있으면 누가 오겠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에즈마!"
그 소리에 에즈마는 화들짝 깼다.
"끅! 메이냐..끅!"
"또 여기서 술이야?"
에즈마 옆으로 접근하여서 위로하는가 싶더니, 메이는 그 옆의 의자를 자기 앞에 같다 놓고 오른발을 위에 올려놓았다.
"에즈마!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걸 잘 알잖아! 우리게 왜 여기에 왔는데."
에즈마가 보건 안 보건, 듣던 안 듣던 메이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에겐 밝은 미래가 있어. 봐! 저 미래를! 들어봐! 저 희망찬 함성을!!"
그러면서 오른 팔을 쭉 뻗어 한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순간 어디선가 후광이 비추어졌고, 메이의 쇼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동방무사. 결코 좌절이란 없다! 우리에겐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
에즈마를 끌어들이기 위해 잠깐 옆을 돌아보았을 때, 메이는 탁자를 베개삼아 자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였다. 결국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고, 후광도 사라졌다.
"이런..죄송합니다."
갑작스런 당혹감이 정신세계에 영향을 준 듯, 가슴을 움켜지고는 헉헉대면서 에즈마를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정말 빨랐다. 저것이 동방의 무술인가.
"이로써 오늘 일은 끝인가요?"
"그런 것 같네요. 수고했어요. 유리니엘 양."
"수고는요...아! 그리고 내일 모레.."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 일이 끝났단 말에 기분이 좋았다. 문닫고 무얼 할까 생각 중이었다.
"...월급날 맞죠?"
순간 난 모든 생각이 수학적으로 바뀌었다.
"그럼 기대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러고는 나가버렸다. 하야...동방무사들의 외상값 땜에...이번에도 간신히 턱걸이다. 그런데 갑자기 유리니엘이 들어왔다.
"저기..우산 빌려주세요. 지금 비 오거든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차가운 소리, 맑은 빛깔. 비였다.
"우리 집엔 우산이 없는데...그럼 내 로브라도 빌려줄까?"
"정말요? 고마워요, 미스트님"
비는 내리고, 정말 고독한 날씨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을 즐기지만 말이다. 이런 날은 창가 앉아 류트를 연주하는 게 좋겠지? 이런 생각에 난 가게문을 닫고 2층, 내방으로 올라갔다 .별로 많이 쓰진 않아 아직은 낯설지만 그래도 편안했다. 생각보다는 너저분하지만. 이런 날은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가 좋겠지? 얼마 전 옆집 아이템 상점 에데님에게 구입한 증폭기를 찾았다. 원래는 마력증폭기지만, 류트에 달면 일렉기타의 소리를 낼 수 잇다는 것을 알았다. 에데님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증폭기의 종류는 두 개라고 한다. 하나는 마법에 시전되는 마나의 양을 줄여서 그만큼의 마법을 더 쓸 수 있지만, 그 대신 마법의 위력을 낮추는 단점을 지닌 파란색 짧은 수정 막대기. 또 하나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시키면서 위력을 배가시키는, 색깔만 빨간색이고 앞의 것과 같은 모양의 막대기. 이 두 종류가 있다고 하였다. 내가 구입한 것은 파란 막대기였다. 재고정리라는 명목에 원가보다 상당히 싸게 샀다. 빨간 색도 사고 싶었지만, 그것은 위력 탓에 매진이라나. 그리고 그는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
"스태프에 다는 것은 여러 번 보았지만, 류트에 단다고 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난 단지 소리를 증폭시킬 것을 찾았을 뿐인데. 어쨌든 그 파란 반투명의 수정을 류트의 옆면에 달았다. 그리고 현을 켰다.
-지잉
일반 류트의 소리보다는 상당히 커졌다. 마법사에게 주는 영향과는 상관없이-난 마법사가 아니다. 난 바드다.-이건 이 류트의 소리를 크고 높은, 오묘하면서도 강렬한 소리를 내게 해준다. 빨간색이면 아마 베이스 기타의 소리가 나지 않을까 추측을 해보았지만, 직접 해보지는 못하였다. 난 개조된(?) 류트를 들고 창가에 앉아 연주를 했다. 아직 내 귓속에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음악을, 그 노래를,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슬프고 쓸쓸한 느낌의 노래. 나에게 전율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근데 소리가 너무 큰게 아닐까. 설마. 이 정도 소리라면 멀리까진 들리리 않을 거야.
같은 시간. 옆집 케인 에덴덴버의 집.
"헉.."
갑자기 한 남자가 일어났다. 어디선가 징징대는 소리.
"설마...미스트? 이런..미스트한테 증폭기 재고품을 헐값에 파는 게 아닌데..."
"케인 형님. 무슨 문제라도.."
"그릿? 지금 이상한 소리가 자꾸 귀를 건드려서."
"그럼 전 자러 가겠습니다."
그릿이라 불린 사람은 물러갔다.
"흐무흐무...저런 물건인 줄 알았다면, 3배는 더, 아니 원가를 받았어야 했는데..."
철저한 상인 정신의 케인이었다.
한참을 키다가 난 멈추었다. 갑자기 주위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덕에 회색빛 고독감을 느껴야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한 1년전 쯤? 그 날은 나와 그녀의 2000일이었다 그때 내 이름-이름이 없어서 갖다 붙인 거지만-미스트도 아니고, 난 바드도 아니었다. 그때 난 티우라는 이름의, AD 2000년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23살, 그리고 한 사람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그런 남자였다.
"오늘도 이 카페네..."
"좋잖아."
"그리고 지난번 천일 때도 비가 왔었는데, 오늘 또 비 오네."
"비라는 건, 하늘이 소중한 날을 맞은 사람들을 위해 뿌리는 꽃가루래."
"정말?"
"당연하지."
주변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닭살이었지만 우린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이 2000일이니까..."
"여기가 두 번째지."
"푸하하"
그녀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아..그때 네가 나한테 고백한 것을 생각하면 웃겨 가지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좀 민망했지. 항의 들어오고.."
"그래도 그때 처음으로 네가 달라보인거 알아? 그때 내 앞에서 드럼 연주한 거...정말 너무 멋있었어."
실제로 내가 그녀를 좋아한 것은 3000일 정도? 그때, 꽤 어렸을 땐데, 그때 그녀를 보곤 지금까지 좋아하다 1000일 후, 내 친구들과 함께 그녀의 집 앞에서 공연을 하며 그녀에게 고백하는, 덕분에 항의 많이 들어오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쳐다본, 그런 고백을 하였다.
"그 땐, 친구들이 많이 도아줬지."
"어쨌든 지금 너하구 있으니까 너어무 좋다. 그치?"
잠깐 난 카페를 둘러보았다. 천일 전에 내가 그녈 위해 공연한 장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가끔 라이브 공연을 하기 때문에 악기는 항상 갖추어져있었다.
"잠깐만."
난 자리를 일어나 카운터에 가서 악기를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다. 가끔씩 그 자리에 서는 덕에 주인과 안면이 있었고, 그 안면을 이용해 난 허락을 받았다. 혼자서 노래할 땐 어쿠스틱 기타가 좋다. 난 곧 마이크롤 갖다놓고, 기타를 메고 잭을 꽂고 무대에 섰다.
"안녕하세요. 제가 여기서 잠깐 노래를 부르려고 합니다. 오늘이 저와 제 여자친구와 2000일이거든요. 양해 좀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람들은 기념 노래라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꺼이 응해주었고, 난 단 한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정말 행복한 2000일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린 싸우고야 말았다. 싸운 이유는, 그야 말로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커플티 색을 무얼로 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싸우고 말았다. 남들이 보면 한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3일 후. 그녀는 친구들과 MT를 간다고 나를 끌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MT를 일본으로 간다고 하였던가. 덕분에 난 공항구경을 하였다. 근데 그녀 주변의 친구들이 나와 그녀의 행동을 보고는 안심하는 듯 했다. 아마도 주변을 닭으로 만들어버리는 닭살스러운 행동이 얼마 전 싸운 뒤로는 거의 드물어서 그런가. 아직 화해도 못했는데...뭐, 금방 온다니까 갔다가 오면 화해하지, 뭐,
"잘 갔다와"
"으..응.."
아직 서먹서먹한 채, 그저 인사만 하고 난 뒤, 1시간 30분 가량 걸리는 전철에 몸을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도 그랬듯, 난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TV를 틀었다. 그녀가 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게임 CD를 넣고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평소 한 겜 하는 나인데...오늘따라 이상하게 안된다. 왜지...
"..긴급속보입니다."
TV에서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뉴스가 내 귓가를 울렸다. 긴급속보...? 또 건물 하나 무너졌나? 아님 통일이라도?
"오늘 오후 3시 2분 경, 2시에 출발한 일본행 KAL 603편이 대구 상공에서 공중 폭발 후 대구 부근에서 추락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오늘 오후 3시 2분 경...."
폭발이란 말에 난 컴퓨터의 시계를 확인하였다. 3시 54분.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난 몸을 돌려 TV를 응시하였다.
"..여기는 상황실입니다. 지금 군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오후 3시 경 기체의 꼬리날개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나 뒤쪽에 탔던 승객들은 전원 사망하였고, 그 후 기체 추락..."
순간 그 부분에서 정전이 되었다. 뭐야...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한 삼사 초. 누가 장난 쳤나? 어쨌든 다음 이야기를 계속 듣기 위해 난 TV를 틀었다.
"...그 충격으로 탑승자의 대부분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탑승자 명단입니다."
명단에 귀를 기울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익숙한 한 이름을 들었다. 설마..그녀가? 다행이 자막은 지나가지 않았고, 난 다시 확인을 하였다. 틀림없었다. 저 비행기엔 그녀가 타고 있다. 이런...젠장.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상황은 나를 절망 속으로 끌어당기려 만든 조작극 같았다.
"방금 말씀드린 명단은 기내 뒤편에 탑승한 사람들이며, 이들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머지 명단입니다. 일등석에.."
그녀가 탄 비행기는 대구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에 추락하였다고 한다. 기체의 가운데가 그나마 멀쩡히 남아있었고, 소수의 인원이 극적으로 구출되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였다. 그 생존자를 빛내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하였다. 그녀는 사망자 명단에 끼어있었다. 그것도 어이없는, 기체 결함으로 인한 꼬리날개 부근의 폭발로...그녀의 모습을, 그녀의 얼굴조차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내 주변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 그녀에게 고백한 것이, 그녀 앞에서 노래를 한 게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제 그 기억은 파편으로 깨져버리겠지. 절망감에, 깊은 슬픔에 난 몇 날 밤낮을 술에 지배당하였다. 그 몽롱한 기억이 깬 것은 어느 소포가 배달되었을 때였다. 소포 앞에 써있는 그녀의 이름에 난 정신이 깨었고, 방에 들어가 그 소포를 뜯었다. 그 안엔 작은 상자, 그리고 편지가 들어있었다.
[안녕? 나야.
그때 내 고집만 해서 미안. 그때 사과할려구 했었는데...이렇게 하는 게 더 깜짝 놀라겠지?
나, 사실 1달간 교환학생으로 가. 일본으로...그 생각 하니까, 너가 너무 보고싶다...]
편지 중간 중간에 물이 말라붙은 흔적이 있었다. 눈물? 난 계속 읽어나갔다.
[그래도, 한달 뒤면 만날 수 있으니까. 이해해 줄 수 있지? 혹시 보고싶으면, 사진 보낼 테니까, 매일 봐야돼! 나 잊으면...주금이야~ ^ ^
아, 맞다. 편지하고 같이 온게 있지? 그게 뭐냐고? 화해의 뜻으로 보내는 거야. 용서해주겠지?
그럼 20000. 잘 지내~
PS. ! 2 O = 2 = U!!!
PS2. 정말루..사랑해~~]
...바보. 왜 그걸 이제 말해...진작 말했었으면, 지금 이렇게까지 슬프진 않잖아. 잠깐 무언가가 떠올랐다. 소포..그게 있었지. 서둘러 난 소포를 뜯었다. 특유의 누런 포장지를 벗기자 작은 골판지 상자가 나왔다. 뭐지? 난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곰인형이 있었다. 꺼내기 위해 곰인형을 집었을 때였다.
"사랑해~~쩌엉말루~~쪽"
곰인형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것이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며칠동안 난 밥을 입에 대지 못하였다. 눈을 뜨는 것이 곧 고통이었다. 평소에 눈에 익던 풍경이 사라져서 생기는 허전함 이상의 아픔. 영원한 이별...죽음이 이런것일까...슬프다.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죽음을 회피하고 싶은걸까? 다시는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없으니까? 그런데, 왜, 왜! 왜이렇게 울어야 하는거지? 왜이렇게 가슴이 메이는 거지...귓가에 들리는, 천상까지 지키겠다는 사랑노래가 점점 내 귓가에서 멀어져간다. 당장 닥쳐온 오르페오의 처지에 난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오르페오가 되고싶었다. 실수로 그녀를 다시 잃어버리더라도, 한번만, 한번만 더 그녀의 얼굴을 보고싶다...
난 점점 삶에 의욕을 잃었다. 그녀가 내 옆에 없다는 상실감에 나는 매일매일 폐인처럼 멍하니 있었고, 가끔씩 멍한 사람처럼 나돌아다녔다. 우리가 함께 앉았던 카페, 같이 거닐던 거리, 강가...아는 사람을 만나면 위로라도 받지만, 그 위로가 나에겐 더 큰 아픔이 되었다. 아무것도 못해주었다는, 그 자책감 때문에. 그런 생활 속에서, 절망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지새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트렌치 코트 하나 걸치고 길을 나섰다. 연인들이 정답게 지나가는 낙엽쌓인 길을 혼자서 걸어갔다. 하나씩 부서지는 나무의 눈물. 그 눈물을 밟고 있으면 그녀를 만날 것 같다. 저편에서 달려와줄 것 같았다. 하지만 대신 요란한 소리가 달려왔다.
"여기가..어디지?"
"어디긴 어디야. '심판의 장'이지."
옆에 이상한 날개를 단 사람이 대꾸했다.
"심판의 장?"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곳이지."
"!! 농담이겠죠.."
"난 진담인걸?"
"그럼 내가..죽었다는 이야긴가요?"
"에? 너가 죽은 것도 기억 안나?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면서 걷다가 길 가던 폭주족에게 치어서 죽었잖아?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어서 피하지도 못하고, 넘어지면서 머리가 먼저 땅에 닿은 덕에 뇌손상으로 사망했다지, 아마?"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죽었다니...
"제가 죽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죠?"
"저 옆의 거울을 봐. 너가 안보일거야."
설마 하는 마음에 가보았다. 정말로 난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내가 죽었나요? 그럼 은민은, 은민이는 어디에 있죠?"
"은민, 은민이라...아아. 너 애인 말야? 여기를 떠났는데."
"그럼 어디에..."
"몰라. 일단 사람이 죽으면, 그래서 영혼이 되면 심판을 받고, 거기에 따라 무작위로 다른 세계로 떨어지거든. 걔는...판타지 세계로 떨어졌나?"
판타지...
"그럼 거기에 그녀가 있단 말인가요...그럼...저도 그곳에 보내주십시오."
"안돼!"
"왜죠?"
"넌 일단 심판을 받아야 돼."
"그럼 그 심판은 누구한테 받는 건가요?"
"그건 말야...에헴."
잠깐 헛기침을 하고 그 날개 달린 남잔 계속 이야길 이었다.
"위대하고 위대한 천사. 뮤리츠에게 받지."
"그럼 뮤리츠는 어디에 있나요?"
"그건 말야...바로 나야."
"........"
헛기침 한 이유가 있었구나.
"너를 들여다보니까...그렇게 큰 죄는 없어. 그럼 잘해보라고. 판타지 세계에서."
"판타지 세계..뭐라구요?"
내가 반문하려할때 그는 무언가 중얼거렸다. 순간 주변은 환해지고, 내 눈이 보이지 않은 채 그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굿바이~. 잘해봐. 아마 넌 너의 여자친굴 첫눈에 알아볼 꺼야. 만약 그렇게 되지않아도, 인연이라는 게 있으니까, 틀림없이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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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어이! 왜 거기 쓰러져있어?"
머리가 좀 아프다. 내가 지금 무얼 하는지조차 파악이 안된 상황에서, 어디서 남잔지 여잔지 분간되지 않는 목소리가 들렸다.
"으..응?"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거리의 길모퉁이에 난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이 구슬같이 생긴 것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불쌍한 바드여...얼마나 굶었으면 쓰러졌냐?"
내가 바드? 그러고 보니 왼손에 이상한 게 손에 잡혔다. 기타? 오른손엔 지팡이...게다가 머리카락은 눈을 가렸고, 무언가 머리에 씌워진 것 같았다. 옷차림도 웬 망토이고...
"그래도 류트는 꽉 잡고 있네. 일단 첨보는 사람이니까, 재상님께 가자. 가장~~"
이 기타같이 생긴 것이 류트라는 것은 이때 처음 알았다. 그나저나...이 놈은 대체 뭐지?
"넌 누군데?"
"나?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초! 절! 정! 미! 소! 년!"
구슬을 잡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시엔이다. 시엔 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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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지?"
맑은 강가의 투명한 강바닥을 보는 것처럼 화려한, 그러면서도 젓가락만큼이나 소박한, 이 상반된 두 가지의 느낌이 드는 궁성. 그리고 10여계단 위에 앉아있는 카리스마적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 나에게 묻고 있다. 이름이 뭐지...
"이름이 없다고 할까요? 이름 따위는 잊은 지 오래이군요."
"그럼 왜 여기에 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떠보니 여기더군요."
질문은 계속되었다.
"어느 곳에서 왔지?"
"어느 곳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곳도 남아있는 기억의 잔영은 없습니다. 파편의 부스러기 조차 없습니다. 단지, 단 한사람만을 기억할 뿐..."
내 대답을 듣던 그는 갑자기 웃어제꼈다.
"하하하! 역시 바드답군.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있는 것 같으면서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고...일단 자네를 미스트라 부르지. 괜찮겠지?"
"미스트..괜찮군요. 근데 당신은 누구시죠?"
"나말인가? 파니티를 다스리는 재상, 카를 오르페뉴라고 하네. 어쨌든,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제야 난 카를 재상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표정 자체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 고요한 분위기를 내 옆의 시엔이 깨버렸다.
"헤헤헤...재상님. 전요?"
"뭐~"
"얘 데려왔으니까.."
"야, 니 주인한테나 가. 아아. 미안하네. 이쪽은 시엔이라는 광대라네. 막대해도 상관없어. 그리고 때에 따라서..."
갑자기 계단을 내려오더니 그는 발로 시엔의 배를 찼다. 그 바람에 시엔은 내 뒤로 저만치나 나가떨어졌다. 정확한 발놀림에 우선 경악할 따름이었다. 조심해야겠다...
"화풀이용 샌드백도 되니 부담 없이 다뤄도 되네."
여전히 당황하였다. 시엔도 어느 틈에 내 옆으로 다시 왔다. 그때 난 알았다. 시엔은 생활력이 좋구나.
"힝~이번엔 아팠어여!"
"그럼 아프라고 때리지, 회복되라고 때리냐?"
"흥! 주인님한테 갈꼬양~."
그러고는 시엔은 궁성을 나갔다. 대체 저 시엔이라고 하는 광대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외로 맷집이 좋은 것 같았다. 맷집이 좋다...얼마나 세상을 험하게 살었으면...그리고 카를이라는 재상. 하나의 성격에서 나오는 화법인지, 분간이 잘 안갔다. 아직 낯설기만 한 이곳이 여전히 낯설게 보였다.
****
그후로 2개월 뒤. 난 재상님의 부탁으로 이곳 주점을 맡게 되었다. 나의 자유로운 방랑을 전제로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카를 재상님과 그의 약혼녀, 이실리아. 광대 시엔과 지금의 종업원 유리니엘. 옆집 에덴버러 상회의 케인. 그리고 여러 길드 사람들. 그리고 외상매출 1위의 동방길드, 혹은 레이커라 불리우는 집단. 하지만 아직 그녀는 찾지 못하였다.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내 우울한 기분은 물에 물감을 타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 아름다움에 반하다가 혼탁해진 물감의 색을 보듯, 내 기분도 우수에서 고독으로 바뀌었다. 혹시 이 비가 그녀는 아닐까. 혹시 그녀가 내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지금, 정말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다. 그래...내에겐 류트가 있어.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이 잊잖아? 조각난 거울의 반짝임이라도, 그 유리조각은 아름답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노래 한 곡을 류트로 연주하였다. 높게 차 오르는 선율에 난 화려한 고독과 함께 파란 소리라는 것을 들었다. 그 후 정신이 흐려졌고, 기억이 끊겼었음을 다시 태양이 떴을 때야 알아차렸다.
"와~~ 월급날이다~~!"
"하야..."
어쩔 수 없이 월급을 내주었다. 월급날이니까. 그래도 난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왜냐면, 그래야 자유로우니까.
"고맙습니다~~"
언제나 밝은 유리니엘.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유리니엘양. 앞으로 당분간 주점 관리 좀 해주겠나요?"
"예? 무슨 말씀인지.."
놀란 얼굴로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당분간은 여행을 떠날려구요."
"또 방랑이세요?"
"그래야 될 것 같네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역시...바드의 피는 못속이나봐요. 근데...재밌을 것 같은데, 저도 가면 안되나요?"
"죄송하네요. 혼자가는게 편하거든요."
"아. 그러세요? 그럼 잘 다녀오세요."
난 당장 짐을 꾸렸다. 짐이라고 해봐야 얼마 전에 찾은 로브와 류트, 증폭기, 약간의 돈, 약간의 먹을 것, 물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 정도면 나에게 족한 것이다. 유리니엘의 배웅을 맞으며 주점을 나섰다. 어제의 흐린 구름도 나같이 여행을 간 것 같다. 초록빛 대리석으로 치장한 길을 걸어나갔다. 그 앞에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이 길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만 있을듯한 멋진 길이었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정말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길의 끝이 어디라는 것에 그렇게 구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발길닿는 곳이 길이 되는 것. 그 어떤 상황도 여행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방랑일 것이다. 한참 전에 나왔던 주점은 나에게서 벗어난 지 오래고, 그 주점을 감싼 도시도 이미 나에게서 벗어났다.
여행의 길은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다.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그리고 고난의 길도 있다. 하지만 각각의 길은 나에게 많은 혜택을 준다.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길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올라가는 길은 험하지만, 그 끝에 서서 밑을 내려보는 기분은 올라가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끝없이 펼처진 짙은 연두빛 하늘과 파란 하늘. 짙은 초록빛 안개. 간간히 보이는 파란 물줄기과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 내가 느낄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금 이곳에서 느낀다. 바람을 맞으며 내려다 보고 있을 때였다.
-아마 넌 너의 여자친굴 첫눈에 알아볼 꺼야. 만약 그렇게 되지않아도, 인연이라는 게 있으니까, 틀림없이 만날 수 있어.
지금 천사 뮤리츠의 이름이,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왜 떠오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조금씩 산으로 빨려들고, 그 힘 때문에 물감이 번지듯 구름이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옆을 스치며 부는 바람은 쓸쓸한 듯 괜히 내 머리를 치고 간다. 그래도 지금 이 모습이 좋다.
어느덧 달이 뜨고 별이 조금씩 번져나갔다. 내 옆에는 나무가 벽처럼 서있었고, 그 벽 가운데 혼자 드러누울 공간이 나에게 쉬고 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들. 여행자를 위한 야영지인 것 같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지 하는 마음에 자리를 잡고 주변의 나무를 모아 불을 지폈다. 따스함이 살아나면서 밤의 싸늘함을 어느 정도 이길 수 있었다. 난 류트를 꺼내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밖에 나와 불빛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말이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마을에 있을 때보다 눈부시게 흩어져 퍼져 있었다. 달빛이 약해서였을까.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하였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그녀도 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겠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면.
목적도 없는 방랑은 계속되었다. 그냥 계속 숲 속을 걸었다. 아직 남아있는 벌레의 윙윙거리는 귀찮음이 유일한 내 방랑의 방해꾼이다. 조금씩 떨어지는 낙엽들. 바스락 거리는 소리들. 그런 소리도 내가 연주를 하면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역시 난 방랑체질인가. 어젯밤에도 벌써 보름달이 떴다. 꽤 많이 돌아다녔다. 예전에 자주 그녀와 함께 돌아다녔던 추억이 살아났다. 그때 버릇인지, 지금의 파니티 사람들 중에서도 걸음이 빠른 축에 속하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나의 방랑의 원인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숲에 나온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다. 햇빛도 약해지기도 하였지만, 나무의 그늘 덕에 햇빛에 그을릴 일은 없었다. 어쨌든 평화로운 방랑이었다. 숲이라는 공간은 웬지 정감이 간다.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도 유난히 산에서 많았었고, 죽음의 강이 우리를 나누기 전까지 자주 만나던 곳이 가로수가 늘어선 길이었다.
"난 지금, 왜 가는 거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가야한다는 본능이 목적이라면 목적이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꺄악!"
숲 속의 조금 넓은 공터에서 누가 무언가에 둘러 쌓여있다. 뭐지?
"아무도 없어요? 도와주세요!"
일단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달려가며 칼을 빼...맞아. 난 기사가 아니지. 그럼 류트로 싸워야 돼? 좋아. 맨주먹이다! 라고 다짐하고 다가갔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한가운데 웬 엘프 여자가 팔과 다리에 약간의 상처를 입고 간신히 서있는 것 같았고, 그런 그녀를 둘러싸고 잇는 것은 트롤 7여마리였다. 엘프가 빛의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트롤은 어둠의 신에 의해 태어난, 대등하면서도 대립되는 관계여서 일까. 엘프와 트롤간의 사이는 천사와 악마의 그것과도 비슷하였다. 나보고 어쩌라고.
"저기여, 어떻게든 좋으니까 도와주세요!"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엘프가 부탁할 정도면 상당히 급박한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증폭기라도 써서 유인해볼까...증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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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두 증폭기를 동시에 쓰면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미스트님. 아마, 조화가 되지 않을까요? 전 마법사가 아니고 상인이라 잘 모르겠네요."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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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님과 나의 대화가 언뜻 떠올랐다. 달려오는 트롤들을, 안 그래도 약한 체력으로 피해면서 난 증폭기를 찾았다. 나한텐 하나밖에 없는 물건. 이것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것 같은데...일단 트롤들을 막기 위해 난 증폭기는 잠시 잊은 채 류트를 들고 감미로운 노래를 켰다. 매혹의 노래, 내가 맘속에 정한 상대에게 들려주면 이 연주가 끝날 때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나에게 매료되는 노래이다. 하지만 평생 이것만 연주하면서 살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은 그 엘프에게 접근하였다. 계속 연주를 하면서.
"괜찮으세요?"
"예."
힐끗 그 엘프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잠깐 스쳐보고 눈을 돌리려는 순간, 나의 눈은 손목에 집중되었다. 파란색의 막대기가 팔찌처럼 끈에 달려있었다.
"손목의 팔찌, 마력증폭기인가요?"
"예, 그런데 왜..."
"잠깐 빌려주시겠나요?"
잠시 망설이다 엘프는 나에게 팔찌를 풀러 증폭기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트롤들은 여전히 자기네들끼리 좋아서 헤벌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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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같은 증폭기를 2개 사용한다면?"
"그건 대답해 드릴 수 있겠네요. 그렇게 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성능이 증가하죠. 단지, 마법을 사용할 때 능력이 안 된다면 자신의 마나가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걸 동양에서는 주화입마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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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모험이다. 난 2개의 파란색 증폭기를 손에 쥐었다. 제발 무사해야하는데. 아까의 매혹의 연주를 계속 하면서 난 그 엘프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귀를 막으세요."
"예? 뭐라구요?"
"귀를 막으시라구요."
"아. 알겠어요."
연주 때문에 잘 안 들리는 모양이다. 귀를 막은 것을 확인한 나는 2개의 증폭기를 류트의 옆면, 그러니까 류트의 머리의 반대편에 꽂았다. 상당히 큰 소리는 사람의 고막을 터지게 한다는 말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몬스터들에게도 통할까 하는 의문마저 압도적으로 날카로운 소리로 깨져버리고 순간적으로 고막이 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너무 크다.
"혹시 '사일런트'라는 마법 쓰실 줄 아세요?"
난 엘프에게 외쳤지만 그녀는 오히려 귀를 더 세게 막았다. 난 연주를 멈출 수 없기에-연주를 멈추면 저 트롤들은 당장 난동을 부리며 나에게 달려올 것이다-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내야했고, 그녀는 아마 귀를 더 세게 막으라고 들린 모양이다. '사일런트'라도 내 귀에 걸어주면 최소한 그 소리는 듣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소리를 견디어야했다. 난 매혹의 연주의 느낌을 바꾸었다. 강렬한 메탈의 느낌으로. 느낌이 바뀌니 매혹의 효과는 사라지고, 트롤들은 내가 상상한 것 보다 빨리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연주가 계속되고, 예전에 즐겨 치던 가락을 여기에 싣게 되자 몬스터들은 귀를 막고 고통에 울부짖었다.
"쿠워--"
계속 연주가 진행되자 내 머리도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한 기타하는 기타리스트들이 알면 발광해 금치 못할 노릇이겠군. 그래도 난 트롤보단 자 견디는 것 같았다. 트롤들은 소리를 못이기고 바닥에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어떤 녀석은 견디다못해 머리가 터져버리고, 그 외의 다른 녀석들은 데굴데굴 구르다가는 입에 타액을 흘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피를 토하는 놈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이 더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난 연주를 멈추었다. 멈추는 순간에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들이지 않았고,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결국 나도 쓰러졌다.
눈꺼풀을 열었을 때는 내 바로 위의 나무들만 볼 수 있었다. 주변의 따스함과 타닥거리는 소리로 내 옆에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괜찮으세요?"
내 주변에서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아까 상처는..."
정신을 잃기 전에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라 난 편하게 말하였다.
"'힐'로 치료했어요."
"그럼 여긴 어디죠?"
"여긴 야영장이에요."
엘프의 얼굴이 내 눈에 비치었다. 근데 왜 옆으로 보이지? 머리에 따스한게 받치고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이상해서 일어나려고 하니까 그녀가 나를 제지했다.
"그냥 누워계세요."
그제야 난 내 주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난 지금 그 엘프의 다리를 베고 누위있던 것이었다. 얼굴이 옆으로 보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난 사양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 폐를 끼칠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전 미스트라고 합니다. 이름이라 하기엔 좀 뭣하지만요. 그쪽은 어떻게 되나요?"
"에렌, 에렌 쥬리아나. 아까 구해주신 것 고마웠어요."
-은민, 지은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왜. 왜 고등학교 1학년 첫날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왜?
"지은민?"
나도 모르게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지은민? 그게 누구에요? 그렇게 낯선 이름은 아닌데...혹시 동방의 친구분이신가요?"
"아니요."
이렇게 말하면서 에렌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 역시 같아 보였다. 아까의 부상 탓인가.
우린 나무에 가대고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처음 만났지만 이야기는 잘 통하였다. 엘프인 에렌은 지금 여행중인 것도, 남쪽의 거트루스 출신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이는 물론 나보다 많았다. 230살 정도?
"혹시 미스트는 별 본적 있어?"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에렌은 말을 놓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경어를 썼다.
"많이 보았지요. 계속 여행하면서요."
누가 들으면 연상의 여인과 동생뻘의 남자의 대화인줄 알겠다. 엘프 연령 230살은 인간으로 따지면 23살. 나와 동갑일 것이다.
"그래? 하암.."
"피곤하신가요?"
그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렌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는 곧장 잠들어버렸다. 생각보단 털털한 엘프였다.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민도 무척 예뻤었다. 특히 내 어깨를 기대고 잘때면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귀여움이 느껴졌었는데. 그렇지만 계속 머리가 올려져있으니까 어깨가 아팠다. 그래도 이렇게 잠들어버린 사람을 깨워서 뉘일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난 그대로 있었다. 잠도 못 이룬 채 별을 감상하면서.
-고마워. 티우.
마음속에 작은 울림이 전달되었다. 은민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에렌의 목소리 같기도 하였다. 근데 에렌이라면, 어떻게 내 진짜 이름을 아는거지? 그러고보니 이상했다. 에렌과는 처음 만났는데 왜 이렇게 친해진거지? 원래 나 자신이 사교성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파니티에서 정착하는데도 두어달 정도 걸렸어Tssep 말이다.
-오랜만이야, 그치?
이 울림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잠을 설치고, 무사히 밤을 새버렸다. 결국 에렌이 깬 뒤에야 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정말 넌 여전히 둔하구나? 변한게 없는 것 같아. 너기 티우든, 미스트이든.
-은민?
-은민일수도 있고, 네 옆에서 잠을 잔 에렌일수도 있고.
-뭐. 뭐라고?
-음. 이젠 일어나야지. 자, 일어나~
"응?"
이상한 꿈을 겪고 난 일어났다. 대체 어제부터 왜 그런가지? 주위를 보니 내 짐만 남기고는 에렌은 떠난 것 같았다. 류트에 달아놨던 자신의 증폭기도 어떻게 알았는지 떼어갔다. 꺼져가는 모닥불에서는 적막이라는 불씨만이 남아있었다.
"이젠...돌아가야하나?"
난 짐을 챙기고 파니티로 향하였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라 오면서 보았던 풍경 그대로였다. 그래도 그녀의 흔적을 조금이나만 느낀 덧에 난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과연 은민이 에렌이였나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하루가 지나고 이툴째. 내가 빨리 걸은 탓인지, 그저께까지 함께 있던 에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그녀가 은민일까, 하는 마음에 물어보러 다가갔다.
"에렌양?"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가 대답했다.
"누구시죠?"
난 당황했다. 설마 벌써 잊어버린 건가? 난 달려가 그녀의 앞에 섰다.
"대체 왜..."
"정말로 누구시죠?"
그러고는 나를 지나쳤다. 그녀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그냥 모른 척 해줘. 제발..."
낮게 그녀가 나에게 전 말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지요."
일단은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약간의 연극을 하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착각했네요."
그러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앞질러갔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궁금하였다. 그러나,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궁금증은 곧 풀렸다.
-퍼억
"안돼!"
그녀의 비명과 내가 느끼는 고통이 함께 느껴졌다. 뒤통수가 싸한 느낌과 함께 머리 뒤에서 축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난 앞으로 쓰러지고, 덕분에 류트도 부셔져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야. 난 몸을 일으켜 뒤를 보려 노력하였다. 나를 때란 사람이 어느 남자 엘프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든 칼집으로 날 쳤음을 깨달았을 때, 이번엔 내 배가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차였음을 몸으로 느꼈다. 그런 고통 가운데 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그러는 너는 뭔데 내 여자한테 찝쩍대?!"
엘프 맞아? 말이 상당히 거칠었다. 혹시 인간물 먹었나. 그 남자를 다시 보았다. 흑갈색의 눈. 하프엘프인가.
"잠깐만. 내가 왜 니 여자야? 난 너가 싫다고 말했잖아!"
"난 영원히 너의 남자고, 너 역시 영원한 내 여자야. 이건 운명이야. 그 누구도 갈라놓을수 없는."
"난 싫어. 너같은 남자."
"그때 너가 준 약초, 그게 사랑의 표시가 아니면 뭔데? 또 내가 아플 때 치료한 건?"
"그건 너가 우리 마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해준거야. 너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없어."
너무나도 당차게 이야기해서인지 그 남자는 당황하였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는 말을 받았다.
"그래도 넌 나를 사랑하게 되어있어."
그러면서 에렌을 껴안으려 하였고, 거기에 놀란 그녀는 내 뒤로 숨었다.
"젠장. 그 거지새끼한테 맘 붙인가여? 간밤에 안보였는데, 나몰래 바람핀건가? 둘이 간밤에 같이 있었나? 이런 제기랄!"
그러고는 그 남자는 곧바로 나를 쳤던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상당히 날카롭고 앏은 양날검. 그리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 검을 들고 나를 향해 파고들다시피 하였다. 방랑은 좋아하지만 싸움은 잘 못하는 편이라 정말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는 예상이나 한 듯 검의 방향을 틀어 내 다리에 칼을 들이댔다.
"윽.."
다리는 잘려지지 않았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결국 난 에렌의 발 아래 쓰러지고 말았다. 피가 많이 나는 탓에 바지는 물론, 내 로브까지 피가 번졌다. 이런...그 놈은 나를 베고는 히죽대며 에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가 어떻든간에, 넌 내여자야. 죽어도 넌 내꺼야. 그걸 방해하는 놈은 죽어야되는 거야. 누구도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수는..."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제발 그만 하라고!"
순간 그의 동공은 커지고, 그는 잠시 모든 것이 멈추었다. 손의 떨림도, 그리고 호흡조차도. 그러고는 천천히 말하였다.
"그래. 이놈이 좋아진건가? 이 거지놈에게? 나 말고 다른 놈에게?"
그는 다가와 내 배를 밟고 칼을 내 목에 드리웠다. 그리고 그 풀린눈으로 에렌을 쳐다보았다.
"빨리...날 좋아한다고 말해. 안그러면 이놈은 죽는다. 켈켈.."
완전히 맛이 간 것 같다. 아까 에렌의 말에 충격을 받은건가.
"...당장 가."
"그래. 그럼 이 놈은 죽어도 상관없는 놈이라, 이거지?"
말을 끝내자마지 그는 칼을 약간 틀어서 내 어깨를 베었다. 뼈가 긁혀내려가는 느낌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윽..."
"다시 말해봐."
"에렌, 난 괜찮아."
"닥쳐."
배에 무게가 실리면서 표현할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한번의 고통이 내 배를 강타하였다.
"빨리 말해."
고통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잠깐 눈을 돌려 에렌을 보았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었다. 그리고 무언가 떨어짐을 느꼈다.
"미안해...그래. 난 널 좋아해."
"정말? 케케.."
스토커, 혹은 정신병자로밖에 안보였다. 제정신일까. 저놈은.
"가자. 집으로."
그는 에렌의 손을 잡고 소 끌고 가듯 데려갔다. 그리고 그의 한마디.
"그럼 저놈은 필요 없는거지?"
에렌의 손을 놓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여전히 검을 든 채로. 절망스러웠다. 여기서 내가 죽은건가. 훗...나쁘진 않다. 죽으면 그녀를 다시 찾을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검이 내 몸에 꽂힐 시간이 지났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때, 내 위로 물이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남자의 절규가 들렸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에렌!!"
에렌은 등에서 배까지 칼을 관통당한 채, 나를 안고 있었다. 아까 그 놈이 달려올 때 직감적으로 달려와 나를 감싼 모양이다. 하지만...이렇게 죽으면....어떻하라고...
"에렌..."
작고 희미한 나비의 소리가 들렸다.
"미스트...아니 티...안녀..."
그녀는 말을 다 잇지도 못한 채 나에게 완전히 안기었다. 검이 관통되어 있는 덕에 배에 무언가 찌른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난 그저 멍하니 에렌을 안은 채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에렌...은민아...."
-미안해, 이렇게 또 헤어져서. 하지만,
"이 바보야..."
-나 이제 다른데 안가고 네 곁에 있을꺼야. 너가 노래할 때, 너가 무얼 하든. ....사랑해.
"눈, 눈을 떠! 제발 눈을 떠!"
에렌을 땅에 누이고, 그녀의 몸을 계속 흔들었지만 죽은 영혼이 다시 돌아올 리는 없었다. 움직일지 모르는 그녀를 난 고통도 잊은 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이 새끼...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큭큭큭. 하지만 괜찮아. 이제 에렌은...에렌은 내꺼다!"
나를 발로 걷어찬 그는 에렌의 시신의 목을 검으로 쳐버렸다. 손목과 발목도, 정말 미친 놈처럼 그녀를 칼로 찌르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계속 히죽거렸다.
"그만해!"
기어서라도 말리기 위해 온 나를 발로 걷어 찬 후, 그는 계속 난도질을 하였다.
"이제 넌 내꺼야...크크크.."
잘려나간 에렌의 머리를 꼭 껴안고 뒹구는 모습은 정말 나를 경악케하였다. 에렌...미안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몸이 안움직여...그대로 내가 쓰러져 누워있을 때 그의 목소리, 웃음소리가 멈추어있음을 알았다. 왜지? 갑자기.
"시메트 로슈투. 너를 강도, 절도죄, 그리고 살인죄, 시체 유기죄로 체포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늣나긋하면서도 강인한 목소리. 내 생각이 맞다면 이실리아 이루릴, 카를 재상님의 약혼녀이자 카를의 호위기사단장. 호위기사의 임무가 치안유지도 있으니까...그럼 저놈을 잡으러 온건가....근데 왜이렇게 어지럽.......
내가 깨어나 간호하고 있던 시엔에게 들은 것은, 시메트 로슈투라는 하프엘프에 대해서였다. 그는 얼마전-내가 방랑을 떠난 날을 전후해서 성내에 침입, 경비병을 죽이고 보석을 훔쳐가 도주중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에렌을 광적으로 좋아한 '스토커'여서 카를 님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지금은 격리수용소에 갖혀있다고 한다. 상당한 정신병으로 추정되어서라나. 나를 데려 온 것은 이실리아이고, 완치되려면 석달 즘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이실리아가 사람을 시켜 에렌의 시신을 수습하라 하였을 때, 에렌의 시신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가 팔에 매고 있던 파란색 마력증폭기를 빼고.
"자, 여깄어, 그 것."
나는 말없이 받아들었다. 그녀의 유일한 유품을. 맑고 영롱하게 비치는 파란 수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변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시무룩한 모양인지, 시엔은 갖은 말로 나의 시선을 끌려 하였다.
"와, 이 류트. 지난번보다 더 멋있어졌네. 새로 산건가? 한번 켜봐야지~"
"뭐...뭐라고?"
난 일어나서 류트를 보려고 했다.
"미스트, 누워있어. 가져올게~"
하...여전한 시엔의 어리광섞인 말투다. 시엔이 류트를 가져왔을 때 난 류트를 들러 살펴보았다. 현의 질도 최고급이었고, 소리도 더 좋고..잠깐. 류트는 분명히 부셔졌는데. 미심쩍은 눈으로 계속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난 류트 뒤편 한쪽 구석에 작은 천사의 날개 한쌍이 새겨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작은 글씨가 써있었다.
-너의 노래가 아름답기를
너의 음악이 맑게 울리기를
너의 마음이 영원하기를
너의 영원한 사랑이.
다행히 시엔은 딴 데를 보고 있었다. 다행인가. 그 새로운 류트를 잡고 현을 켰다. 그 글씨대로, 내 노래가 맑게 물렸다. 그리고 맑은 울림은 나의 노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