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하다”는 말은 ‘소름이 끼치도록 조금 위태롭거나 두렵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좀 우스운 것 같습니다. 소름이 끼치는데 ‘조금 위태롭거나 두렵다’는 말이 앞뒤가 안 맞아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아슬아슬하다고 한다면 우리 국민 대부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가장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마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까 하는 안도감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이승만 대통령시절부터 노태우 대통령 시기까지는 늘 북한의 위험을 강조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이후에는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는 북한을 위험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대통령들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그 세 사람의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이 결국 김정은이가 큰소리 칠 수 있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완성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것입니다.
한 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주사파’로 활동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그 주사파의 상당수가 대한민국의 국회에 진출해 있고 정부 요직에도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아슬아슬하게 하고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의 원인은 우리가 우리 피를 흘려 우리 힘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른 나라가 아니고 왜 반드시 대한민국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신념을 갖기 어려웠다.
대한민국은 둘째 치고, 왜 국가여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 것이 더욱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다 보니, 매우 유력한 정치 세력 가운데 하나가 국가보다는 민족을 앞세우는 미성숙 상태를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아직도 국가를 이익공동체로 보지 못하고, 민족 공동체로 받아들인다.
해방 한참 전부터 전 세계 국가는 대부분 국민국가 체제로 됐지만, 국민국가 체제 속에 살면서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불일치를 채택하다 보니, 대한민국의 이익보다는 민족의 이익에 몰두하였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을 정의로운 일로 포장하고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민족’ 관념을 국민의 접착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촉매로 사용하는 정치 세력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비판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북한을 정당화하고, 북한을 향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비판이었다. 북한이 얼마나 강경한 독재체제인지, 얼마나 처참하게 인권이 억압받는 체제인지, 얼마나 가난한 체제인지, 대한민국에 얼마나 강한 적대성을 보이는 체제인지는 아무 상관없다.
그러다 보니, 박정희 비판하다가 김일성 품에 바로 안기고, 이명박 비판하다가 김정일에게 바로 넘어가 버린다. 급기야는 세월호 피해 지원비를 받아 북한 김정은 신년사 학습을 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행해진다. 이것이 정의와 평화로 포장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포용성이 아니라 분명히 취약성을 드러낸다.
대한민국이 형성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었는데, 이것이 다소 느슨하게 이뤄지면서 내내 대한민국 취약성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공산주의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심지어 히틀러마저도 ‘공산주의 박멸’을 1928년 총선에서부터 계속 내세움으로써 처음에는 2.6%라는 낮은 득표율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독일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그 정도로 공산주의는 국제정치의 큰 문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북한에 민족 정통성을 두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위협하는 정치 세력은 아직도 당시 좌파 계열이나 좌우 합작을 주장하던 계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곧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당시 분위기에서 좌우합작은 중국의 국공합작처럼 바로 공산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국부(國父)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합리적이거나 정의로운 결정을 합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 대한민국의 취약성을 보여줄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자신들을 정의로운 전사로 스스로 정하고 일관되고도 집요하게 투쟁해왔던 것에 비해 대한민국의 주류는 상대적으로 안일하고 게을렀다.
해방을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6·25 전쟁을 우리 힘으로 이겨내지 못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는 사건들에서 모두 주역이 되지 못하다 보니, 그 사건들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적 적극성을 내지도 못했다.
‘6·25 전쟁’이라는 용어는 그 안에 어떤 의미도 들어있지 않고, 제3자적으로 냉담하게 붙인 창백한 간판일 뿐이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개념화했으며, 북한을 도와 참전했던 중국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고 개념화했다.
사건에 대한 개념화 작업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다. 이런 확인 작업은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나는 공산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출발한 대한민국이 6·25 전쟁을 계기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개념화를 하지 않다 보니 ‘6·25’ 전쟁을 놓고도 지금 대한민국 내부는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개념을 추종하는 세력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약하고, 또 그 확신을 지키려는 용기도 없이 안일하고 게으른 쪽은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쪽의 무모함과 과격함을 당해내기 어려운 법이다.
취약한 대한민국은 사실상 정체성 문제에서는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아직 현실적으로 무릎만 꿇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정도로 위험했는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정신을 새긴 원훈석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던 반국가사범의 필체로 바꿨다.
그것도 대한민국 정체성이 담긴 헌법의 수호를 의무로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 일이었다.>중앙일보.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새말새몸짓 이사장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그래도 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지금처럼 노골적인 친북정책을 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이 분위기가 확 바뀐 것입니다.
김여정을 평창올림픽에 초청하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한민국에 ‘김여정 팬클럽’이 생겼다고 알랑거렸습니다. 요즘 그 김여정의 주둥아리에서 나오는 섬뜩한 소리들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아무 반성도 없을 겁니다.
평양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은 것을 자랑하고 경기도에 평양냉면 분점을 내겠다고 알랑거린 사람이 지금 대한맨국 거대 야당의 대표인 것이 현실입니다. 백두산에 가서 김정은이와 축배를 든 결과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 무리들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현실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