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으로 향하는 의미
대하16: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사람의 뇌는 외부 자각에 대한 인식을 자기 자신의 측면에 대한 인식으로 의식의 내용을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자아를 인식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당신이 자신의 몸, 기억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아의 측면을 의식의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들이 ‘대상으로서의 자아’를 구성한다.”(<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41쪽) 살아가면서 자아는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아가 어떤 방향으로 향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세 번째 왕 아사는 구스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을 이끌고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대하14:11“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아사왕은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아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구스 사람들을 쳐서 전쟁에서 유다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후에 이스라엘의 바아스 왕이 라마를 건축하여 베냐민 지파에 속한 일부의 백성이 남쪽으로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했습니다. 아사는 이 상황에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아람왕 벤하닷에게 은금을 보내며 아람 군대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구스의 군대가 처들어 왔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던 아사왕이 아니었습니다.
2백년 후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아, 앗수르 왕의 요구대로 은금을 바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군대는 다시 처들어 와서 예루살렘까지 진군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으로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선한 왕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여호와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 천명을 쳐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주셨습니다. 이후부터 이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으로부터 15년의 수한을 연장받은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존영에 눈이 멀어 왕을 찾아온 바벨론 왕의 사자에게 보물 창고와 무기고의 모든 소유를 다 보여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자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자신을 추켜세우며 자신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라면 구원도 없습니다.
나 같은 비천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예수님! 나의 참 생명이 되신 예수님! 이제부터 나는 자아를 보는 대신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위해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비천한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주님은 내 사랑이요 고귀한 내 생명이요 내 가는 인생길에서 주님은 내 소망이요 주님은 내 행복이요 나에겐 참 사랑이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주님은 소중한 주님 나 주님 영원히 사랑하리 온 세상 모두가 변한다해도 주님만 사랑하리라 아무리 험난한 길도 주님과 우리 주님과 영원히 함께 가리라” (복음성가)
24. 6. 9 장기옥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