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모둠은 도진, 태환, 상원 이렇게 셋이서 만나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강의와 달리 각자 느낀 것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삶과 인생길도 조금 듣게 되어서 여러 층위로 풍성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개체의 나와 전체의 나를 이해하려 여러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전체의 나를 깨달으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것 같고 심지어 보이스피싱을 당해도 그 돈으로 누군가 살아갈테니 괜찮을 수 있겠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의 나는 순환하는 관계, 곧 서로 살리는 관계 속에서 깨달을 수 있으니 일방적으로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는 오히려 각자 개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밥상에서 나를 살리는 여러 생명들을 먹어 한몸을 이루고, 나 역시 밥으로서 관계 속에서 누군가를 살리며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전체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쉬운 예가 아닐까, 이야기나눴습니다.
청년은 푸르른 때라고 했는데 직장을 다니면 비주체로 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소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푸르른 기운을 살리며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나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는 나눔이 기억에 남습니다. 둘째 시간에 '청년아, 생존에 소망을 두지 말고 창조에 소망을 두어라!' 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를테면 하는 생각은 생존을 위한 생각에 가깝고 나는 생각은 창조를 위한 생각에 가깝다고 나눴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예수와 나는 다른 존재라 여기며 차별하고 있었는데 강의를 들으며 그 차이가 좁혀진다는 나눔도 기억에 남습니다.
첫 시간에 마태복음 앞에 나오는 족보가 혁명적이라 배웠습니다. 에돔 족속 헤롯이 왕일 때에 나타난 유대 왕의 족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밭에 이것 저것 심다보니 족보 이야기에 씨앗을 대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왕은 개량씨앗(일회용씨앗)입니다. 유기농이든 무농약이든 상관없이 거의 다 일회용 씨앗만 씁니다. 한 해만 심고 끝나는 것이라 대를 잇지 못하니 족보란 것은 없습니다. 씨앗을 돈으로 사고 파니 권력자가 씨앗에 대한 판권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고 팔지 않으며 이웃과 나누고 정성껏 대를 잇고 족보를 남기는 씨앗은 재래종 씨앗, 토박이 씨앗이라고 부릅니다. 힘없는 민중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시대 흐름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고(예수 족보에 다말, 라합, 밧세바, 마리아가 나오는 것처럼) 지속성과 다양성으로 이어진 씨앗들이라 이것은 예수 씨앗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예수가 비둘기같은 성령을 받으신 것처럼 각자 성령을 받은 체험이 있는지, 그런 전환점을 경험했는지 나눴습니다. 여러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조금 울컥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고 이렇게 귀한 벗들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자리가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모여서 정리하고 질문에 답 들으며 아무리 교회라 할지라도 참된 공동체를 분별하는 지혜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1. 성경에 나오는(사도행전 2장과 4장) 공동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2. 역사의식과 시대의식을 갖는 공동체.
특히 시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성경만 주장하면 그 공동체는 무서워진다는 말에 지금 우리네 교회들의 자화상이라 느꼈습니다. 기독청년들이 기쁜 소식, 참된 공동체를 발견하고 성령께 이끌리어 새로운 삶, 당당하고 푸르른 때 만나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