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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10) 초대 교회의 삶 ①
초기 신앙 공동체, 신앙 · 성사 · 성령의 은사를 공유
베드로 사도의 첫 설교,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 선포를 듣고 회심하여 세례를 받은 이가 3000명, 그리고 곧바로 장정만 5000명에 달한다고 사도행전을 알려줍니다.(사도 4,4 참조)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은 학자들에 따라 2만에서 6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사도행전의 기록을 그대로 따르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이룬 신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함께 기도하고 나누는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2-47)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 모습을 역사적 사실로 충실하게 묘사합니다.
첫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도들의 ‘신앙을 공유’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 가르침으로 성장한 신앙은 사도들에게서 받은 교회의 신앙이며, 나눔으로써 풍부해지는 생명의 보화입니다. 사도(使徒)는 헬라어 ‘ἀ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를 한자로 풀이한 단어로, 우리말로 ‘파견된 자’란 뜻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파견하셨죠. 지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 가운데 열둘을 세워 ‘사도’라 하며 그들과 함께 지내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마르 3,13-14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하시고,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마태 10,40)이라며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당신 사명에 열두 사도를 참여시키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 신자들은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입니다.
둘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사를 공유’합니다. 세례로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그들은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모든 성사의 효과는 신자 전체의 것이다. 성사들, 특히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문과 같은 세례 성사는 모두를 서로 묶어 주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 결합시키는 거룩한 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교부들의 신경 풀이에서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성사의 공유로 이해하고 있다. (⋯) 성사는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켜 주므로, 모든 성사는 친교의 성사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친교를 완성시키는 주된 성사는 성체 성사이므로 친교의 성사라는 말은 성체 성사에 더 적합하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50항)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주님 가르침을 우리 생활 안에 구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영성 생활’의 목적이기도 하지요. 하느님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알았기에 주님을 닮고자 성사를 공유하는 영성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중대한 사실을 전해줍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그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5,12)
셋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행하는 많은 이적과 표징을 목격하였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신자들이 하느님 자녀로서 더 깊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시키며, 교회와 더욱 튼튼하게 유대를 맺게 합니다. 또 신자들에게 교회의 사명, 곧 복음 선포에 더욱 깊이 참여하게 하며, 더욱 철저한 실천으로 신앙을 증거하게 합니다.
우리는 견진성사를 통해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받지요. “성령께서는 신비체의 모든 지체들이 하는 생동적이며 참으로 유익한 모든 활동의 근원이시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 안에서 온몸을 이루신다. 곧, 지체들을 완전한 사람으로 ‘세울 수 있는’(사도 20,32)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양육하고 치유하는 성사를 통하여, ‘그 선물들 가운데에서 사도들이 받은 가장 뛰어난 은총’을 통하여, 선을 행하게 하는 덕행들을 통하여, 끝으로 여러 가지 특별한 은사(카리스마)들을 통하여 신비체를 이루신다. 이 은사들은, 신도들이 ‘교회의 쇄신과 더욱 폭넓은 교회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이나 직무를 받아들이는 데에 알맞도록 준비시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98항)
영성가 마르미옹 신부는 성령의 은사를 영적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성화의 길’로 표현했습니다. 성화란 거룩함 자체이신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을 따름에 걸맞은 생활을 함으로써 믿음 안에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마르미옹 신부는 순수한 신앙심이 성화에 유익이 될 것이라 조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우리 신앙과 영성생활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나이다] (11) 초대 교회의 삶 ②
초대 교회 신앙인들은 모든 재물과 사랑을 나눴다
넷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하였습니다.(사도 4,32 참조)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모든 사람의 공동 소유로 여겨야 하며, 가난한 이와 이웃의 불행을 도와줄 준비와 열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자산 관리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52)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과 재물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야고 5,1-3)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사목 규칙에 “가난한 이들에게 필수적인 물건들을 줄 때,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것을 선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의 행위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의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교회는 초기부터 왜 가난한 이들을 이렇게 환대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가르쳤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는 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2)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고 하셨습니다.
잠시 「가톨릭교회 교리서」 내용을 곱씹어 보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사랑은 변함없는 전통에 속한다. 이 사랑은 참행복의 복음, 예수님의 가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배려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할 의무를 지우는 동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 사랑은 물질적 가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거나 종교적인 다양한 형태의 가난에도 미치는 것이다.”(2444항)
교회는 또 이렇게 가르칩니다. “물질적 궁핍, 부당한 억압, 육체적 정신적 질병, 끝으로 죽음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인간의 비참은 원죄 이후 인간이 놓이게 된, 타고난 나약한 처지와 구원의 필요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표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연민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이 비참을 짊어지시고,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45)과 같아지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에 짓눌리는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교회는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48항)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형제애의 증거로, 또 하느님께서 복을 주시는 정의의 실천으로 기쁘게 행한 이 아름다운 전통을 어찌 자랑하지 않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다섯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사랑을 공유하였습니다.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사도 2,46)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삶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로마 14,7-8)
이웃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입니다.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이시죠. 곧 하느님 사랑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래서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한 사랑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행위가 바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 곧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활동을 펼치기에 앞서 아버지 하느님께 당신을 맡기시는 기도를 늘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 뜻에 협력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셨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덕의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새로운 계명으로 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요한 13,1) 사랑하심으로써 당신께서 받으시는 성부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제자들은 서로 사랑하여 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요한 15,9)하고 말씀하시며, 또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라고 말씀하신다.”
[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34) 성체성사
빵과 포도주에 현존하는 예수님과 하나되는 성체성사
성체는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시다. 밀가루 제병이 곧 예수님의 몸이요, 포도주가 곧 예수님의 피라는 이 교리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 교리는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빵과 포도주 속에 예수님이 실체로 그리고 실제로 계시다는 교리는 성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 51)고 하셨으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이러한 예고를 완성하시고 실현하셨습니다.
① 성체성사에 관한 성경 말씀의 예고
성체성사는 이미 구약 시대부터 예고되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이란 긴 세월을 광야에서 지내면서 굶주렸습니다. 굶주리는 그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날마다 먹을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현세적 생명을 유지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살도록 내려주신 양식이었습니다. 이 ‘만나’로써 하느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새로운 백성이 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실 성체성사를 예고하신 것입니다.
② 성체성사의 제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시고,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마태 26,26-30; 마르 14,22-26; 루카 22,14-20; 1코린 11,23-25 참조)
③ 성체성사의 효과
세례성사로 받게 된 ‘성령 안의 생명’을 유지해 줍니다. 주님을 모시는 영성체로 주님께 대한 일치가 증대되며, 소죄를 용서받고, 대죄에서 보호받습니다. 또 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일치도 확고하게 해 줍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공적 예배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큰 은총의 성사이기 때문에 모든 성사의 중심이자 정점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은 다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구원의 은총을 새롭게 하며, 신앙생활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④ 영성체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을 영성체라고 합니다. 보통은 하루 한 번만 영성체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두 번까지 영성체할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에 속한 가톨릭 신자들은 보통 빵의 형태로만(단형) 영성체를 하지만, 빵과 포도주 두 형태로 ‘양형 영성체’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형으로 영성체를 해도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전체를 받습니다. 살아 계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빵의 외형 속과 포도주의 외형 속에 전체로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⑤ 거양성체
미사 중 가장 거룩한 순간입니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사제가 높이 들어 올려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41) 모든 성인의 통공
지난해 12월 24일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이 열리며 희년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 쉽게, 그리고 여러 차례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대사는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이에게 대리 기도의 형식으로 양도할 수 있고, 잠벌을 모두 없애준다는 점 때문에 연옥 영혼에게는 사실상 천국행 티켓처럼 보입니다. 물론 구원은 언제나 항상 인간의 행위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이기에 대사 역시도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는 행위입니다. 전대사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자비,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더불어 중요한 교회의 가르침 중 하나가 더 있으니, 그것이 오늘의 주제인 ‘모든 성인의 통공’ 교리입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고백은 하나이고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과 밀접히 연결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몸의 한곳이 아프면 온몸에 그 고통이 전해지고, 우리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건강해지는 것이 우리 몸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듯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곧 “모든 신자가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각자의 선은 모두에게 전달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47항)라는 것입니다. 물론 핵심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시기에 선의 공유에서도 그리스도의 모든 선이 지체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성인의 통공은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교회 안에 존재하는 ‘거룩한 것들의 공유’가 모든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교회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사람들 사이의 친교’가 맺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48항).
거룩한 것들의 공유. 거룩한 것들, 곧 영적 자산의 공유는 교회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로는 신앙의 공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 진리를 온 세상에 선포한 사도들의 신앙은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교회 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우리 역시도 그 신앙을 다른 형제들에게 전달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49항). 두 번째는 성사의 공유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분명하게 체험하도록 해 주는 성사들은 우리를 하느님께 결합시켜 줍니다. 세례성사는 이와 더불어 모두를 한 형제자매로 서로 묶어주며 특히 친교의 성사인 성체성사는 우리와 그리스도를 결합시켜 하느님과,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과의 친교를 완성시켜 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0항). 이와 함께 교회 내에서 교회의 건설과 발전을 위해 봉사하도록 각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들인 은사의 공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 공동 소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의 공유가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1~953항).
거룩한 사람들 사이의 친교. 교회는 곧 세 가지 형태가 있는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상 교회와 정화의 과정 중에 있는 연옥 영혼들의 교회, 하느님 나라의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4항). 거룩한 것들의 공유와 친교는 지상교회를 넘어 천상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함께 이루어집니다. 특히 하느님과 보다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성인들은 주님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며 우리 교회를 더욱더 튼튼하게 해 줍니다. 성인들과의 친교 안에서 그들의 전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친교, 교회 공동체의 일치는 더욱 강화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7항). 또한 우리는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커다란 신심으로 소중히 간직해 왔으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도움이 필요한 연옥 영혼들이라면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며, 천국에 있는 영혼이라면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를 더욱 효과 있게 할 수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958항).
[아는 만큼 보인다] 축복받은 성물을 거래할 수 있나요?
“신부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축복받은 성물’을 중고로 거래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가능한 건가요?”
‘성물’은 교회 전례와 기도, 신심 행위에 사용하는 물건으로서, 직접 구매하거나 선물을 받은 뒤, 성직자(주교, 신부, 부제)의 축복을 받아 사용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마케팅이 일상화된 요즘, 본당이나 교회 기관 그리고 성지 등에 있는 오프라인 성물방보다 접근성이 좋고 편리하게 성물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성물방 업체들을 이용하시는 교우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이런 경우에는 성물이 장식품이나 장신구가 아니라 신심 행위와 신앙 증진을 돕는 물건임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변형되고 왜곡된 성물은 그릇된 신심을 주입하게 된다는 사실에 주의하면서, 교회가 공인한 교리와 전승에 부합하는 상징이 표현된 성물을 구매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런데 중고 거래 사이트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개인이 가톨릭 성화, 성상, 묵주 등 성물을 거래하는 경우는 상황이 다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직자의 축복을 받은 성물을 거래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하여 교회법 제1171조는 이렇게 규정합니다. “봉헌이나 축복으로써 하느님 경배를 위하여 지정된 거룩한 물건들을 존경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개인 소유인 경우에도 속되거나 부적당한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축복받은 성물을 매매의 대상으로 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성물을 속되거나 부적당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행동을 금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법 제1380조의 내용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성직 성물 매매행위로써 성사를 거행하거나 받는 자는 금지 제재나 정직 제재 또는 제1336조 제2-4항에 언급된 형벌로 처벌되어야 한다.” 이 규정은 축복받은 성물을 매매하는 행위가 교회의 처벌 대상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직 매매 금지 규정이 오늘날 일반 신자들에게 확대 적용되어 축복된 성물을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입니다. 마치 준성사인 축복을 사고파는 것처럼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준성사의 남용은 성사의 남용과 같이 독성죄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미신적으로 사용하거나, 축복받은 성물을 매매하는 경우에는 교회의 형벌을 받게 될 수도 있음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1)
만약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성물이 있다면, 중고 거래를 하기보다는, 이웃이나 지인에게 선물한다든지 혹은 필요로 하는 교회 기관이나 성당에 기부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선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